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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우리 삶이 바뀐다] 먼저 ‘속’ 다 보인 채 끝까지 끌려다녔다

바다에 내리는 비 2007. 4. 2. 18:24

[FTA, 우리 삶이 바뀐다]

먼저 ‘속’ 다 보인 채 끝까지 끌려다녔다

입력: 2007년 04월 02일 07:48:42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정부가 꺼낸 최후 협상 카드는 ‘비장의 카드’가 아니라 ‘버린 카드’가 돼버렸다. 우리는 제시할 수 있는 모두를 미국측에 보여준 반면 미국측은 우리의 협상카드를 본 뒤 그들의 입맛에 따라 제맘대로 요리했다. 우리측 협상단에 협상전략은 없었고, 타결해야 한다는 과제만이 있었다. 미국은 막판까지 자신의 속내를 감춘 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던 협상시한을 스스로 물리면서까지 요구 수위를 높여갔다. 반면 우리측 협상단은 협상 초기 내세웠던 호언장담에서 갈수록 후퇴를 거듭해 애초부터 이익의 균형은 불가능했다는 분석이다.

1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최종협상을 벌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김종훈 수석대표가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한 뒤 오후 11시쯤 어두운 표정으로 하얏트호텔 협상장에 돌아오고 있다. /서성일기자
◇먼저 전략 노출해버린 한국=정부는 협상 타결을 목전에 둔 마지막 순간까지도 미국에 끌려다녔다. 의회가 주말에는 일하지 않으니 원래 협상 시한보다 이틀 앞당겨 마무리하자고 독촉했던 미국을 철석같이 믿고 시한에 맞춰 마지노선을 공개했는데 돌아온 미국의 반응은 우리측의 허를 찔렀다.

가부를 답변하는 대신 ‘의회가 일할 수 있다고 하니 원래대로 가자’며 48시간 더 논의하자는 제안을 해 온 것이다.

시한 결정도, 시한 연장도 모두 미국이 결정하는 것이고 정부엔 ‘따르느냐, 마느냐’는 선택만 있을 뿐이었다.

당황한 정부는 고심끝에 ‘일단 타결선언은 하고 후조문화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이마저도 사실상 미국은 거부했다.

결국 김종훈 수석대표는 지난달 31일 ‘양국은 이틀 더 논의하기로 했다’고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협상 타결 선언도 없었다.

‘자동차 등 핵심쟁점에서 더 받아내겠다’는 조건으로 미 의회의 연장 협조를 끌어낸 미측 협상단은 추가 논의시간인 48시간 내내 우리측을 압박했다.

1일 속개된 농업 분야 협상에서 쇠고기와 오렌지 등 핵심 민감품목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다시 강경해졌다.

한·미FTA저지 범국본 등은 “우리가 왜 미국이 정한 시한 때문에 밤잠도 자지 못하고 밤샘 협상에 임해야 하느냐”며 “굴욕적 협상을 접고 지금이라도 협상장을 뛰쳐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협상 내내 끌려다닌 한국=미국식 표준안 관철을 내세운 전방위 공세 앞에서 한·미 FTA 협정 타결을 지상 최대 목표로 내세운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처음부터 넓지 않았다. 미국은 협상이 거듭될수록 공세를 강화해 협상 막바지에 히든카드를 들이미는 협상 방식을 구사했다.

협상 초기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미국과의 FTA는 미국이 정한 표준안에 끼워맞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반FTA 진영의 비판에 정부는 ‘두고보라’며 일축했다.

하지만 미국은 예상대로 협상 막판에 ‘쌀 시장 개방’ 요구를 시사하며 판을 뒤흔들었다. 협상 의제도 아닌 쇠고기 수입 위생·검역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사실상 개선 약속을 받아냈다.

반면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문제는 철저한 논의 배제 전략으로 일관, ‘빌트인’ 방식이라는 모호함 속에 가둬버렸다. 우리측의 거의 유일한 공세분야였던 무역구제는 ‘어림도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자동차 및 섬유 관세를 철폐하라는 우리측 요구는 ‘수출하는 만큼 수입하라’ 및 ‘우회수출 방지를 위해 현지실사 및 세세한 경영정보까지 제공하라’는 과도한 요구로 맞대응하며 돌연 공수 위치를 바꿔버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국가의 생존이 걸린 외환위기 같은 비상사태시 자금송금을 일시적으로 제한하자는 최소한의 요구마저도 미국은 거부했다.

정부는 협상 초기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미국과 대등한 협상이 가능할 것처럼 포장했지만 실제 드러난 결과는 미국에 수입되는 한국산 물품에 대해 물품 취급 수수료를 면제하기로 합의한 것 외에 별반 얻어낸 것이 없다. 우리측의 목소리는 협상이 거듭될수록 잦아들어갔다. 전문직 비자쿼터 확보 요구는 막판 통상장관급 쟁점까지 올라가보지도 못하고 ‘아웃’됐다.

〈권재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