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도 안먹는 걸 먹으라니” 분노의 촛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움직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온라인 서명운동이 오프라인 집회로 이어지고 시민단체와 대학 총학생회 등 각계각층의 반대운동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회원수 7만여명의 '안티 이명박' 카페가 2일 저녁 서울 청계천 광장에서 개최한 촛불문화제에는 퇴근길 직장인·시민·학생 등 1만5000여명이 참석했다. 인터넷 모임이 주도한 집회에 시민들이 대거 가세한 것은 2002년 효순·미선양 추모,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이후 처음이다.
↑ 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인근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김영민기자
'안티 이명박' 카페가 개최한 이 행사에는 30~40대 직장인과 주부, 중·고생까지 몰려나와 오후 6시30분쯤 시청앞과 무교동 청계천 거리를 모두 채웠다. 손에 촛불을 켜든 시민들은 "미국 쇠고기 반대"를 외쳤고 "이명박 대통령 탄핵" 구호도 나왔다. 교복을 입고 참여한 여고생 이수빈양(17)은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미국인도 안 먹는 걸 우리보고 먹으라는 거냐. 미래세대인 청소년의 건강을 책임지지 않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어머니 손을 잡고 참석한 변주현군(14)은 "광우병 증상이 당장 안 나타나도 수십년 있다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고 말했다. 육아카페에서 집회 공지글을 보고 참석했다는 김선화씨(30·주부)는 "처음엔 잘 몰랐는데 엄마들 카페에서 진실을 알고 아이들과 함께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광우병에 대한 우려를 '괴담'으로 몰고간 일부 보수 언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진해원씨(57·일산·자영업자)는 "민심이 좋지 않자 보수언론들이 자신들의 과거 입장과 모순되게 광우병 공포가 과장됐다고 보도하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껴 참석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미 쇠고기 수입 발표 이후 단식에 나섰던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연단에 등장하자 시민들은 "강기갑"을 연호하기도 했다. 강 의원은 "협상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짓을 한 정부에 화가 난 국민들이 드디어 직접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집회를 주최한 '안티 이명박' 카페지기 김은주씨(36·학원강사)는 "정부가 검역주권을 포기하면서 건강권의 직접적인 위험에 직면한 국민들의 저항이 생각보다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행사의 정치적 성격을 배제하기 위해 태극기와 카페 깃발만을 사용하고, 질서 유지대를 앞세워 시위대를 통제했다. 행사는 충돌없이 밤 10시쯤 끝났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37개 중대 3700여명을 청계천 일대에 배치했다.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쇠고기 반대 시위는 확산일로다. 지난달 6일 한 포털사이트에서 시작된 '이명박 대통령 탄핵요구 서명운동'은 2일 66만명을 돌파했다. 이 대통령이 이날 "쇠고기 논란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발언했지만 하루 만에 15만여명이 가세한 급증세다.
서명에 동참한 한지유씨(22·서울 동작구 사당동)는 "보수언론이 광우병 위험을 '괴담'으로 몰고가고 청와대가 이를 받아 대국민 강력 홍보전에 나서는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며 "탄핵요구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현 정부에 대한 상징적인 경고"라고 말했다.
그동안 사회적 발언을 피해온 대학 총학생회도 적극 나서고 있다. 부산대 총학생회는 "정부가 수입하려는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미국에서는 개나 고양이가 먹는 것인데 국민보고 먹으라는 것이냐"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3일부터 본격적인 행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려대·한양대 등 서울지역 대학 총학생회도 쇠고기 수입 반대운동을 준비 중이다. 인터넷에선 광우병 위험을 '과장됐다'고 보도한 일부 보수언론과 미 쇠고기 수입 계획을 밝힌 특정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참여연대는 3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미국소 수입 반대' 시민 문화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 강병한·박수정기자 >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