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장성으로 식물대통령 된 거다"
[촛불 해석] "인터넷 카페 약진 주목"…진보 "조직화 말랑말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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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박장성으로 식물대통령 된 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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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 빅트아르산, 세잔. 1904 | ||||||||||||||||||||||||||||||||||||
그래서 위에 나와있는 생트 빅트아르산 중 어디를 쳐다봐도 쳐다본 곳을 중심으로 소실점이 생기는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이게 실제 인간 시각체계에도 맞다고 한다) 게다가 각각의 사물도 분명한 형태를 가진게 아니라 사물에 반사되는 빛을 그렸다 한다. 그림에 나온 사물의 형체가 흐릿한 건 이 때문이다.
이 사태를 바라보는 경찰, 청와대의 심정도 나랑 비슷하지 싶다. 촛불시위가 처음 문제 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튀어나온 얘기가 그놈의 ‘배후론’이었다. 하나의 소실점을 중심으로 모든 그림이 사물이 배치되는 것 처럼 이번 사태도 하나의 정치적 배후를 중심으로 기획됐다는 얘기다. 나 역시 처음엔 똑같이 생각했다. 아니, 어찌 마땅한 조직도 없이 어떻게 40일씩 집회를 이어갈 수 있고, 가두행진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은 가두행진에 한번 참여해보고 나서 단박에 깨지고 말았다. 헉!!!!!! 조직없이도 가두시위가 가능했다.
지금까지는 집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이유를 한 두 문장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87년 6월 항쟁은 ‘직선제 쟁취’.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집회는 ‘억울한 죽음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게 만드는 SOFA와 미군에 대한 분노’가 원인이었다. 허나 2008년의 촛불집회를 어느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고시철회 협상무효’, '이명박 정권 퇴진’을 내걸고 있지만 진짜 이게 원인이라 얘기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시청 앞에서 어떤 대학생이 촛불시위반대 1인시위를 하면서 '중국이 납이 든 생선이랑 온갖 해로운 것을 수출해도 가만 있더니 왜 미국을 붙들고 늘어지냐?'라는 주장을 했다는데... 그 심정 충분히 이해된다. 나 역시 처음 소고기 수입 재개 소식을 들었을 때, 별 문제가 안 되고 넘어 갈 줄로만 알았다. 언제나 그렇듯 민주노동당이랑 진보신당 의원 몇명이 단식 몇일 하다 그냥 잊혀지고, 엄마는 미국산 쇠고기로 내 생일 미역국을 끓이며 '한우보다 미국산이 더 낫다'라고 했을 테고.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에서 조용히 타다 꺼질 줄 알았던 촛불이, 청소년들이 잘 가는 1층 잡화 매장을 불태우고, 더 나아가 2층 신사복, 3층 숙녀복, 4층 아동복 매장까지 태울 줄은 누가 알았단 말인가?
솔직히 이번 사태를 '제2의 87년', '68혁명에 이은 08혁명', '새로운 민주주의 시작' 등으로 표현하는 건 오바에 가깝다고 본다. 하나의 소실점, 한 두 문장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그림은 아닌 듯하다. ‘미국에 대한 분노’,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노’ 한 두 문장으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넘어가려고 했다가는 다음 촛불집회의 대상은 MB가 아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이 될 수 있다.(황우석 사태, D-WAR사태를 보라) 또 다시 사람을 모으고, 또 한편으론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으로 들이닥칠지 모를 파도를 막기 위해, 사람들을 조직이라는 방파제로 쌓아올리기 위해서는 세잔이 사물을 벽돌 쌓듯 하나씩 쌓아올렸던 것처럼, 각각의 사람들, 각각의 카페들이 왜 모였으며, 어떤 과정을 통해 거리에 나오게 되었으며, 모여서 무얼했는지를 분석해야 하지 않을까?
같이 집회 가기로 한 K군을 만났다. K군은 정치학 석사 과정에 있다. 입구에는 조갑제 닷컴이 발행한 촛불시위 반대책자가 있었다. 아마 을지면옥 사장님이 실향민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밥먹고 나오면서 그 책자를 몽땅 들고 나왔다. 그리곤 으슥한데 갖다 버렸다. 사장님 미안 ㅜㅜ) K군 : 니 시각이 올드하기 때문에 그런 거다. 사람들의 관심은 정치에서 사회문제, 생활문제로 이동했는데 운동권들만 정치적인 문제에서만 허우적 대고 있다 했다. (난 운동권 아닌데 ㅜㅜ) K군: 개헌 논의가 본격화 될 것 같다. MB가 물러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식물대통령이 된 것이 아닌가? MB를 대체할 만한 정치적 리더가 한국에 존재한다면 그 사람에게 대통령직을 넘기는 형태로 사태가 정리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다.
시청 앞에 모인 이명박 찬성 시위대에 왔다. 100~150명 정도가 앉아 있었다. 이미 집회가 끝난 듯 무대가 정리되고 있는 가운데 남은 사람들이 같은 찬송가를 끊임없이 부르고 있었다. 헤딩라인뉴스로 유명한 이명선씨가 뭔가 진행중이었다. 실물이 훨 예뻤다.
9시 20분 시청광장 시청광장에 쓰레기 줍는 사람들 많았다. 영화 대부2의 마지막 대사가 생각났다. ‘돈 안받는 사람과 돈 받는 사람이 싸우면 돈 안 받는 사람이 이길 수 밖에 없지’ 시청 광장을 촘촘하게 막고 있는 버스 틈을 비집고 나와 가두시위 대열에 합류했다. 합류하자 마자 낯익은 로고가 지나갔다. 엠팍. WWW.MLBPARK.COM. 메이저리그 야구 동호회 였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카페의 약진' 사실 이번 집회의 중요한 축 중 하나가 돈을 모아 신문광고를 내고, 집회에도 꾸준히 참여한 ‘소울드레서’ 같은 인터넷 카페라 생각한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나 인터넷 카페에 주목을 해야 한다 생각한다. 조직화에 대한 관점을 좀더 말랑말랑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나중에 기회되면 별도의 글을 통해 꼭 얘기해보겠다)
동행한 친구 K와 함께 컨테이너로 쌓은 ‘명박장성’ 구경을 가기로 했다. 나 말고도 많은 인파가 메카로 성지순례를 가고 있었다. 장성 앞에 가니 수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낙서를 하며 놀고 있었다.
MB는 정말 정치적 감각이 제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MB가 진정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시위대의 청와대 행이 아니라 자신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다.
사실 사태가 지금까지 오게 된 것도 분노가 원인이라기 보다는 정부의 연이은 어이없는 행위 때문아닌가? 인터넷을 봐도 분노보다는 조롱과 풍자가 판을 치고 있다. 정치인은 말의 무게로 먹고 사는 법인데, 내가 볼 때 이 컨테이너 하나로 MB는 식물대통령이 된거다. (이로부터 2시간쯤 후엔 정말로 MB에게 챙피한 일이 벌어졌다. 시위대가 스티로폼을 가져와서 계단을 만들었던 것. 격론 끝에 컨테이너를 넘지는 않았다. 시위대는 청와대에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란 말이다. MB가 쓰는 잔 머리는 이런 식으로 족족 깨져나가고 있다) 아프리카 북을 치며 행진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흥이 났다. 시위대는 우회전해서 청와대를 향했다. 새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여성집단이 있어 뭔가 하고 봤더니 인터넷 카페 소울드레서 회원이었다. 여느 집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미녀가 많았다 갑자기 왠 사람들이 화급히 모래 포대를 들고 달려 나갔다. 왜냐 물어보니 “쁘락치가 기름을 뿌려놔서 그 기름이 하수도에 들어갈까봐 막으려 하고 있다”고 했다. 따라 가보니, 누군가 경찰버스 기름 밸브를 열어둬서 온 사방에 기름이 흘러있었고, 기름 냄새도 심했다. 그 주변으로는 인근에 사는 50대 아주머니 두 분이 나와 악다구니를 하고 있었다. “시위대 때문에 잠 못잔다! 시위대가 무슨 비폭력은 비폭력이냐! 내가 봤는데 시위대가 먼저 돌을 던졌다. 전경들이 불쌍하다.” 누군가 응대할 때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비폭력”이라고 외쳤다. “싸우면 낼 아침 신문에 어찌 나올지 생각하라”라고 소리치는 아저씨도 있었다. 촛불집회는 이대로 끝나는가? 대열은 더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옴짝달짝 못하고 있었다. 지휘부도 없는데다 인원이 너무 많았다. 벽에 가로막히자 대열은 어쩔줄 몰라하는 듯 했다. 신기하게도 시위대가 서대문 역쪽으로 유턴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많은 인원이 지휘부도 없이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뒤에서 못빠져나온 사람들 50~55명 정도는 풍물에 맞춰 춤을추고, 기차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반경 20m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춤을 췄다. 통제되고 재미없는 풍물공연만 보다 이런 공연은 첨 봤다. 재미있었다. 11시 영천시장 앞 서대문 쪽으로 조금 가자니 칙칙한 분위기가 났다. 앞에서의 소울드레서, 풍물과는 달리 주변의 호응도 없었다. 금속노조에서 단체로 앉아 박수를 치고 있었다. 11시 15분 경찰청 앞 유턴하고 있는 시위대의 선두를 따라 경찰청으로 향하던 중 어디선가 님을 위한 행진곡이 들려왔다. 4/4박자 노래를 안 좋아하는데다, 행진곡풍의 민중가요에 질려서 집회 가면 노래 안부르고 립싱크만 하곤 했는데, 저절로 노래가 따라 나왔다. 경찰청 앞에 멈춤 시위대 선두를 지나 서울역 쪽으로 계속 내려오다 보니 중앙일보 쪽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폭력시위 한 번 할 법도 한데, 사람들이 다들 점잖더라. 비폭력이란 컨센서스가 이뤄지고 지켜지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짧은 집회 후 사람들은 중앙일보 게시판에 낙서를 하고, 유인물을 붙이고 있었다. 내일 새벽 비정규직 아줌마들이 저거 지우느라 죽을 고생을 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이런 집회 자주해야 고용창출이 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11시 40분 다시 시청광장
여전히 똑같은 찬송가 ‘예수보혈~ 예수피~’를 부르고 있는 친 이명박 시위대 구경 좀 하다가. 진보신당 칼라TV에서 해주는 비정규직 관련 동영상을 봤다. 핸드폰을 보니, ‘너도 왔냐? 어디 있냐?’는 문자가 수도 없이 와 있었다. 이들과 술 한 잔 했다. 1. 우리나라 법 질서와 한미FTA는 예수님이 수호하더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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