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월.맑음 ... 토끼이야기
토끼가 토끼똥을 안쌌다.
동글동글 알맹이 한약 처럼 생긴 그 똥을 안싸고 ..
밥통에 마른풀과 사료가 있는데 .. 언젠가 한 번 거기에 똥을 싼 모양이다.
무심히 지나갔는데 .. 오늘 보니 안쪽이 썩어 있었다.
그래서 열심 없어지던 마른풀을 안먹었던 모양이다. 옆에 있던 사료통에도 그 썩은 물이 옮겨진 듯 ...
이 녀석이 잘 살지 모르겠다.
이 녀석이 언제 왔더라 .. 1월 말인가 2월 초 ...
학교를 끝내고 마을카페 앞을 지나가던 여고생들이 토끼가 담긴 토끼집과 먹이를 들고가던 참에
지경이 토끼 보여달라고 아이들을 불렀다.
아이들이 지나가는데 한 할아버지가 토끼집을 준데서 마침 애완동물을 키우는 아이가 햄스터는 아니고 어쨌든 그런 비슷한 녀석을 키우고 있어서 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 토끼집 뿐만 아니라 토끼도 있었던 것 ... 냉큼 넘기고 할아버지가 들어가버려 엉겁결에 들고 가는 참이란다.
어찌어찌하여 아이들은 차만 마시고 가고
토끼는 우리가 맡았다.
눈탱이가 까맣다.
펜더가 생각나서 '팬다'라고 불렀다.
친구가 없어서 걱정했다. 외롭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
첨에는 낯을 가리더니
이틀만에 ..
토끼장 문을 열어놔도 나올생각을 안했다.
하루 종이 열어놨더니 얼굴만 빼꼼거리더니 ..
물에 담궈놓은 당근의 새싹을 다 먹어버렸다.
그리고 화분에 있는 파란 잎파리 들을 다 먹어버렸다.
하는 수 없이 ... 겨울 화초겸 키운 작은 봄동배추 잎사귀를 가끔 준다.
결국 ... 다시 가둬놨다.
이젠 꽤 섹시한 자태로 느긋하게 여유를 즐긴다.
그릇에 있는 물은 먹지 못하고 .. 매달려 있는 물통의 물만 먹는다.
바보다.
지가 먹는 밥통에도 똥을 쌌다. 에유~~ ... 더러라 ..
그러더니 기어이 설사가 난 듯 ..
하는 짓이 고양이 같다.
몸 닦는 걸 봐도 디게 신기하다.
이빨은 꽤 날카롭다.
통나무 한 토막을 넣어줬다.
나무로 된 밥통이 다 갉아져 있었는데 그걸 .. 손수 만들어서 그런 줄 알았더랬다.
아녓다. 그래서 ...
한 할아머지가 지나가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셨다.
그 할아버지도 어디서 얻은 것 .. 이 녀석이 여러사람의 손을 거쳐왔다는 걸 알았다.
그럭저럭 먹꺼리도 있고, 똥치우는 것도 어렵지 않은데 .. 문제는 털 ..
아침이면 토끼집 주변에 가득한 하얀 털이 보드랍고 이쁘지만 .. 목이 맥힌다. 켁 ....
게다가 결과 지경은 약간 알러지도 있는 듯 .. 멀쩡한 나도 목이 아픈데 ...
주말 내내 갖혀 있었을 녀석을 생각하니 맘이 안좋았다.
아침 공기좀 쐬라고 문 밖에 내놓고 ... 청소를 했다.
지난 금요일 내가 청소한 모양 ... 거의 그대로다.
지경의 담뱃재 .. 컵도 달랑 두 개 .. 주말에 카페가 열리면 주말여행 온 사람들이 많이 드른다고 했는데
이번 주에는 나오지 않은 모양이다.
음악을 틀고 .. 커피를 내리고 .. 마루를 닦고 .. 봄 인사를 한 마디 써서 붙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