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아르헨티나 할머니

바다에 내리는 비 2009. 10. 7. 16:35

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글 요시모토 나라 그림

 

엄마가 죽었을때 내게서 평범한 세게는 사라졌다. 그 대신 지금까지 커튼 너머에 있던 어떤 굉장한 것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이란 정말 죽는 거네, 아주 평범했던 하루하루가 순식간에 달라질 수도 있는 거네. 그 지지부진하고 따분했던 감정들이 모두 착각이었어. 깊은 슬픔속에서도 매일, 신선한 발견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열여덟 살 때 일이다.

 

아바는 그 엄청난 과정의 중요한 순간에 보란 듯이 도망쳤다.

비석과 정원석을 조각하는 천생 장인인 아빠는 내 기억 속에서 늘 일터에 있는 모습이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석공 밑으로 들어가 수많은 도제들과 함께 거의 눌러 살다시피 일한 끝에 젊은 나이에 독립을 했고, 석공은 아빠에게 일감을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아빠 시대의 방식은 점차 시대의 흐름에 밀려나게 되었다.

그런 방식 자체가 이 세상에서 아예 없어져 버린 것이다. 가공이 다 된 돌을 수입할 수 있으니 굳이 산지까지 걸음을 할 필요도 없고, 일감도 외주를 주어 해결하면 그만이고, 기계만 있으면 누구든 돌을 자르고 다듬을 수 있다. 아빠는 무덤의 크기에 맞춰 돌을 고르고 그 장소에 심기 적당한 나무의 종류가지 고려했던 시대, 석공이란 직업이 없어서는 안 되는 풍요로운 시대를 마지막으로 산 사람이었다.

요즘은 비석 값도 한층 싸졌고, 대형 할인점 같은 곳까지 생겼다.

하지만 이런 요즘에도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수작업을 고집하는 아빠의 방식을 애호하는 사람이 있어,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아빠는 간간이 비석을 만들었다.

엄마는 석공의 딸이었다. 보쌈을 해 오다시피 해서 살림을 차린 모양인데, 내가 생기자 외할아버지는 엄마 아빠와 화해를 하고 집도 지어 주고 일터도 물려주었다. 덕분에 근대화에 발맞출 필요가 없었으니, 장인 체질의 아빠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엄마가 입원을 하자 아빠는 아무리 일이 바빠도 엄마가 좋아하는 케이크 가게의 케이크나 과일을 사 들고 아침저녁으로 병원을 드나들었다. 그런데 하필 엄마가 죽던날 아침에는 늦잠을 자느라 가지 못했다.

나는, 아빠는 진작 알았으리라고 생각했다.

전날 밤 이미 알았던 것이라고.

그런데도 무서워서 도망친 것이라고.

그래서 그 커다란 선물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