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다시 내 앞에 서다.
엄마의 자궁에 잉태되어 나고 자라 마흔이 되었다.
마흔이 불혹이라 했던다.
어떤 미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 ..
과연 불혹이 그런 나이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 설명할 수 없어도 그렇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같다.
신기하게도 ...
모든 것이 이미 아는 것 같은 자만이 드는 나이더라.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아는 나이더라.
아마도 자신감.
그것이 어디서 왔는가 묻는다면
자기 삶을 성실히 살다보면, 노력하고 시도하며 살다보면 ...
실패하고 아파하고 힘들어하며 살다보면 ...
그 속에서 잘 이겨내고 버텨내다보면 ...
등등등 .. 그 시간 오롯이 살아내면
오더라 .. 그 자신감이라는 게 ..
그것은 믿음에서 오고,
그저 대책없는 믿음 대책없는 자신감에서
내 마음이, 내 몸이 그리고 나를 아는 이들도 함께 느끼는 그것이
오더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하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하며 살고자 했고,
자유[自由] 롭게 사는 것이 꿈이었다.
지나간 어제는 오지 않고, 오지 않을 내일에 목매지 않고 .. 오늘, 지금 .. 이 순간에 충실히 사는 것 ..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삶에서 그저 오늘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게으름을 피우는 것 조차도- 그것이 내가 사는 방법이었다.
그저 주어진 것도 있고, 선택한 것도 있다.
삶에는 고비가 온다. 그것은 넘었다고 끝난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넘었는데 다시 오기도 하고 ... 삶은 죽을때까지는 그렇다.
스스로를 자각하는 것, 내 존재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었다. 태어나는 것은 선택할 수 없으나 죽음은 선택할 수 있는 존재. 그 가운데의 모든 것은 단 한번 나에게 있고, 그래서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는 자만심과 허영같은 그러나 나에게는 스스로의 존재를 지속하게 하기위해 꼭 필요했던 시간.
나는 이때 스스로 태어나는 과정이었다고 정리했다.
무조건 배워야 하는 시기에서 스스로 배워야 하는 .. 스스로 배울 줄 아는 존재가 되기 위한 고비가 온다. 그것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 알게 된다. 왜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는지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머리로 만이 아니라 몸으로 아는 것, 일단 부딪혀보는 것, 할 수 있다면 언제든 선택은 새로운 것이며, 기꺼이 모든 것을 다해 해보는 것이었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경험하고 그것을 믿는 것. 그리고 그 경험속에서 깨닫는 것 - 자신의 경험이 모든 것이 아니며(자수성가하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이다.) 그러므로써 다양한 삶과 세상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갖는 것이리라. 인간이란 이름으로 다 같지만 67억 지구인들은 67억개의 시간과 경험과 과정과 환경이 다른 특벼란 존재를 아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고비는 .. 슬프고 아픈 단어들이다. 그것을 삶 속에 물들이는 일이다. 모두가 격지만 나만이 격는 것 같은 아픔들이 많다. 사람을 많이 믿는다. 사람에게 가장 많이 다치고, 가장 많이 배우며 가장 많이 아프고 가장 많이 슬프다.
물론 나는 아름다운 단어들을 먼저 배웠다. 벗과의 우정, 믿음, 피血로 지키는 자유, 목숨을 걸어야할 사랑, 인간다움, 정의는 이긴다는 믿음, 과학이 밝히는 진리, 지켜야 할 의로움, 어려움 이겨나가는 지혜로움, 통찰을 갖게 하는 현명함이나 지혜로움, 생명에의 존중, 투쟁, 목숨을 걸만한 신념, 손과 발이 움직이는 실천, 땀 흘리는 노동과 배움의 즐거움, 성실, 말로 다하지 못할 ... 좋은 게 좋아서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 기억하지 않아서 .. 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좋은 게 가슴으로 들어왔던 거 같다. 그것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
그런데 그것이 인간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 많다보니 .. 인간이 변하는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알았던 .. 알았다고 믿었던 그 존재이기를 바라기 때문이겠다.
내게 알게 했거나 나에게 믿게 했던 이들이 그렇게 스스로가 말한 것, 그래야 한다고 했던 것을 배반했을때 .. 그것을 알았을때의 아픔이 너무 크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랬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게 된다. 인간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수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는 것.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배신이나 단절이나 뭐 그런 추상적이지만 분명히 있는 것들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또 한 고비 넘기도 하고 ..
사실 나는 대책없이 믿는다. 모르는 것, 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거의 모두 믿는다. 많은 어려움속에서도 긍정적인 생각들이 먼저다. 내가 모르기 때문에 다른이를 쉬이 인정하고 믿는다. 잘못했다고 동의가 된다면 기꺼이 사과한다. 쉽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스스로 또는 그 관계속에서 한걸음 더 나가게 된다는 것을 안다면 용기를 내볼 일이다.
비우는 것, 버리는 것, 잃는 것, 놓는 것, ... 그것이 무엇인지, 언제 그래야 하는 지, ... 조금씩 알아 가는 것 .. 용기를 낸다는 것, 담대해진다는 것 .. 그것을 아는 것, 느끼는 것 ..
자기 중심을 갖고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어린적 철없는 꿈과 이상이 그런 인생속에서 중심으로 자리잡는다. 삶 속에서 가치관이라든가 철학같은 게 누군가에게는 설명하기는 어려워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그것이 중심이 되어있다는 걸 안다.
그런 많은 것들이 딱 맞아떨어지는 시기가 가끔 있다. 정리되고 이해되고 .. 이런 것들이 말이다. 이 시기가 그렇다. 그리고 다음을 .. 그 다음 시간을 살아갈 무엇이 필요하다.
이런게 내 방식인데 어떤 고비과 과정, 경험이 어떤 의미나 철학으로 나름의 정리가 되면 다음을 살아가기위한 무엇인가를 설정할 시기가 오더라. 그것이 아주 긴 시간동안 고민해서 오기도 하고, 아주 순간적으로 결정되기도 하고, 상황적으로 오기도 하며, 누군가에 의해서 그렇게 되기도 한다.
홀로 자라는 나무도 수 많은 관계속에서 성장하듯이, 한 줄기 흐르는 강물이 결코 하나의 샘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이, 주변의 환경과 관계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기 마련이니 ..
마흔의 나이에 .. 나는 다시 내 앞에 선다.
살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관계나 흐름 때문에 선택했거나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다시 자유롭게 선택할 시간이 주어졌다.
다시 아름다운 언어들을 발견하고, 그동안 내가 얻고 배운 것을 나누며 살아가도 좋을 나이인거 같기도 하고, 전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
지금 .. 이 저녁 기분이 참 좋다.
어제 저녁 한평공원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결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올해 가장 힘들었던 상황에 대한 이해와 정리가 되게 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텅 빈 충만充滿' .. 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스무살이 좀 넘었을때인가 ... 세상 앞에서 .. 좋아하던 모든 것들이 의미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일년반이 넘게 .. 그랬던거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느낀 그 감정 .. 사랑을 놓치고 그랬던 것과는 좀 다른 .. 그 느낌은 .. 정말 멋졌다.
지금 .. 오늘 .. 그때와는 다르지만 같은, 같지만 다른 '텅 빈 충만'을 느낀다. 자유롭다는 느낌을 오랜만에 가지게 된다.
오늘, 지금 ..
살짝 흥분과 설레임 ..
작게 쿵닥거리는 심장 ..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