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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야르바키르의 아이들 (The Children of diyarbakir, 2009)

바다에 내리는 비 2013. 11. 16. 13:02

 

폭력과 가난 속에 버려진 남매의 생존기. 가족의 나들이는 일순간 폭력의 현장이 된다. 눈깜짝할 사이 부모가 살해당하고, 어린 남매는 갓난아기인 막내와 홀로 남겨진다. 시장을 맴돌며 근근이 연명하는 남매의 시련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린이의 시선 속에 투사된 현실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2010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디야르바키르의 아이들 (The Children of diyarbakir, 2009)

 

감독 미라즈 베자르

 

터키, 앙카라 출생. 많은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는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1980년 군사 쿠데타 이후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문화학을 공부했다. 이후, 베를린에 있는 독일 필름 및 TV 아카데미에서 연출을 전공하고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이다.

 

PIFF Progrem Note

 

평범한 가족의 나들이는 일순간 폭력의 현장이 된다. 눈깜짝할 사이 부모가 살해당하고, 어린 남매는 갓난아기인 막내와 홀로 남겨진다. 집안의 가구를 팔고 시장을 맴돌며 근근이 연명하는 남매의 시련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쿠르드족 암살로 인해 방치된 어린이 문제는 쿠르드족 사회의 현실이다. 사람들로 북적대지만 황량하기만 디야르바키르의 풍경은 이런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영화는 어린이의 순수함을 미끼로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거나 선량한 어른의 동정심으로 포장된 구원으로 현실을 윤색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하게 아이들의 서늘한 시선 속에 새겨 넣을 뿐이다. (조영정)

 

 

' 감독이 말 하고자 하는 게 확실한 영화'

 

쿠르드 영화 특별전. 쿠르드라는 명칭 자체를 처음 들어 보았다. 쿠르드 라는 것이 나라 이름인가? 하며 검색을 해보니 쿠르드족. 터키, 이라크, 이란에 걸친 쿠르디스탄 지역을 주요 거주지로 하는 종족(네이버 사전). 간단하게 이해하자면 나라가 없다. 이 것도 영화를 보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GV를 통해서) 아무 사전 지식도 없이 영화관에 들어섰다. 그 덕인지 여러가지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쿠르드 영화라고 하니 기술적으로 뒤떨어진듯한 마치 고전 영화를 보는 듯한 생각을 영화 시작도 전에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는 시작되었다. '와..' 착각이었다. 그것도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영상은 깨끗했으면 사운드는 깔끔하고 편집은 매끄러웠다. 영화는 기술적으로나 서서적으로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으며 전하고자 하는 것이 강하게 느껴졌고 엔딩신에서는 생각할 거리를 던저주었다.

 

일단 줄거리는 이렇다. 배경은 터키. 쿠르드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은 부모를 잃는다. 생계가 막막해진 아이들은 거리로 내몰리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젖먹이였던 막내는 죽고만다. 거리로 나선 아이들은 그들만의 생활을 시작하는데 우연히 부모를 죽인 살인자를 만난다. 살인자에 대한 아이들의 복수가 실행된다.

우선은 동시대 이야기이다. 그리고 비극이다. 하루 전에 봤던 영화 '더 나은 내일' 과 유사한 점이 많이 보이는데 아이들의 감정이나 전개는 사뭇 다르다. 더 나은 내일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 냈다면 이 영화는 관람하는 내내 비극임을 강조한다. 우선은 영화 초반에는 일상을 보여 준다. 주인공 남매는 다정한 부모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며 있는데 이로 인해 나중의 부모의 죽음은 더욱 큰 충격으로 와 닿는다. 부모들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살해당하게 되는 듯 보이는데(정말 별 다른 이유가 없어 보인다.) 살해 당한 가장 큰 이유는 '쿠르드족' 이기 때문이다. 이미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불안불안한 방아쇠가 당겨질 찰나 였던 것이다. 쿠르드족이라는 이유 만으로..

 

부모의 죽음 이후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남아있는 삼남매에게 도움을 주던 옆집 아줌마와 이모는 아이들의 곁에서 사라지게 되고 세명의 아이들만 남겨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부모의 살해 후 또 한번의 비극이 찾아오는데 그 것은 막내의 죽음이다. 아직 젖먹이였던 막내의 죽음은 어느정도 예정된 듯 하여 크게 충격을 받지 않았는데, 오히려 다른 쪽에서 충격을 받았다. 바로 남매중에 동생이 소년의 태도가 무감각해 보였기 때문이다. 부모를 잃었을 때도 소년의 태도는 감정에 휩싸이기 보다는 무감각해 보였는데 이에 의문을 가지고 있던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는지 GV 시간에 고맙게도 한 관객분이 질문을 던져주었다. 영화에서 부모잃은 아이들의 슬픔이 잘 나타나지 않았던것 같은데(특히 소년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에 대한 감독의 대답이 왠지 모르게 슬프게 들렸다. 그 소년의 감정은 대부분의 쿠르드 성인들의 대표적인 태도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소년과 소녀를 현재의 비극에 대처하는 쿠르드인들의 두가지 모습을 형상화 했다는 것인데 소녀처럼 감정에 휩싸여 흐느끼지 않고 무덤덤하게 받아 들이는 쿠르드인들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가슴이 먹먹했다. 그만큼 일상다반사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영화가 진행되면서 남매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소년이 폭력에는 폭력으로 반응을 하기 시작하는데 반해 소녀는 그렇게 대처하지 않는다. 이런 두가지 모습을 다 보여주면서 영화 안에서 가장 감독의 메시지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동화이야기' 가 나오는데 이 것은 전체적인 영화의 서사와 닮아있다. 동화는 어머니의 유품으로 테이프에 녹음한 목소리인데 이 유언과도 같은 동화는 아이들이 폭력적으로 변해갈려고 할 때 계속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고 있다. 아이들은 극의 마지막에 폭력으로 복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포기하고 아이들만의 방식으로 대처한다. 이 것은 감독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쿠르드인들이 폭력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소녀를 통해 나타내고자 했다고 한다. 결국 영화 안에서의 남매는 아이들이지만 모든 것은 쿠르드인 전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스타일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그렇게 특이한 점이 없는 클로즈 업을 보여 주어야 할 때는 보여주고 설정 샷을 보여주어야 할 때는 보여주는 등 무난한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더 나은 내일' 과는 다르게 디야르바키르의 아이들은 철저하게 서사에 맞춰 진행되는 듯이 보이며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식을 택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난 후, GV 시간을 가졌는데 이번 영화제에는 많은 GV를 참가하였지만 디야르바키르의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었다. (최악은 '월 스트리트') 무엇인가 영화를 하자고 마음먹었으면서도 결여된 듯한 것이 채워진 듯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감독은 어린이들이 고통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정의, 재산, 권리도 없는 상태로 스스로가 정부가 되어 힘들게 살아야 하는 현실을 꼭 영화로 만들어야 겠다는 일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영화를 통해 알리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터키라는 나라가 너무 나쁜 이미지로 비쳐지지 않겟냐는 관객의 질문에 감독은 국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달라고 했지만 영화에서 느껴지는 터키라는 나라는 너무나 악독하게 표현되어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특히, 더 나은 내일에서 보여지던 러시아의 풍경과 사람들은 비극을 다루는 이야기임에도 너무나 따듯하게 그려진 반면에 터키라는 나라는 비극만이 보여졌기에 감독이 좋은말로 돌려 말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어쨋든, GV를 들으며 가장 크게 선물을 받은 것이 있다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너무나 확고하며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 할려는 힘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느끼게 해줬다고 해야 할까?

 

재미있는 것은 계속 언급하게 되는 '더 나은 내일' 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두 영화 모두 아역들이 아역배우가 아닌 실제의 삶과 흡사한 아이들을 캐스팅 했다는 점이다. 두 영화 모두 아이들은 자신의 삶을 영화에 드러내놓고 있으며 그 덕분에 영화적 감동은 더해지는 것 같다. 아이들을 데리고 촬영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에 이 말을 듣고 나서 두 영화의 감독들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근데 이 영화에서도 계속 거슬리는 것이 보이는데 그 것은 너무나 우연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남매는 부모를 살해한 살인범을 우연히 계속 마주치게 되는게 그 과정 조차 억지성이 강해 행동에 대한 결과라기 보다는 복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집어 넣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야기를 모두 전하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나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안타까운 점이다.

 

GV 도중 감독이 했던 말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이런 영화를 터키에서 촬영 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냐는 관객의 질문에 감독은 영화를 만드는 것 보다 만들고 나서 상영 하는 것이 더욱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독을 감독으로 보기 보다는 마치 독립투사같이 느껴졌다. 현실을 바꾸기 위해 영화라는 도구를 선택한 것처럼 이 영화에는 너무나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최근에 영화를 보며 구성이나 촬영이나 연출 방식을 세세히 보지 않고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자체에 집중하고 본 것이 너무나 오랜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