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응답하라 1988이 끝났다.
역대 케이블 최고 시청률을 갱신하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끝에는 "덕선이의 남편찾기"에 너무 몰입된 나머지
"어남류"인가, "어남택"인가로 웃지못할 해프닝이 많이 벌어졌고
응답하라 시리즈의 실책으로 회자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응답하라 1988은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우리들까지...
모두에게 감동과 웃음을 선물해준 작품이다.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쌍문동 이야기의 주옥같은 명대사/내레이션을 모아봤다.
1. 덕선이가 자신은 항상 뒷전에 밀려있다고 설움 폭발했을 때
어쩜 가족이 제일 모른다.
하지만 아는게 뭐 그리 중요할까.
결국, 벽을 넘게 만드는 건 시시콜콜 아는 머리가 아니라
손에 손잡고 끝끝내 놓지 않을 가슴인데 말이다.
결국 가족이다.
영웅 아니라 영웅할배라도
마지막 순간 돌아갈 제자리는 결국 가족이다.
대문 밖 세상에서의 상처도, 저마다의 삶의 표현인 흉터도,
심지어 가족이 안겨준 설움조차도 보듬어줄 마지막 내편.
결국 가족이다.
2.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어른은 그저 견디고 있을 뿐이다.
어른으로서의 일에 바빴을 뿐이고
나이의 무게감을 강한 척으로 이겨냈을 뿐이다.
어른도 아프다.
3. 선우 엄마 도시락
그래도 가끔은 착각해도 좋다.
엄마를 행복한 요리왕으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면
지지리 맛없는 도시락 정도는 투정없이 먹어줘도 그만이다.
행복한 착각에 굳이 성급한 진실을 끼얹을 필요는 없다.
가끔은 착각해야 행복하다.
4. 택이가 엄마 보고싶을 때.
어른스러운 아이는 그저 투정이 없을 뿐이다.
어른스레 보여야 할 환경에 적응했을 뿐이고
착각어린 시선에 익숙해졌을 뿐이다.
어른스러운 아이도 그저 아이일 뿐이다.
착각은 짧고 오해는 길다.
그리하여 착각은 자유지만 오해는 금물이다.
5. 김성균 개그를 정환이가 받아줄 때
오래된 내 것만큼 지겹고 초라한 것도 없다.
하지만 지겨움과 초라함의 다른 말은
익숙함과 편안함일 수도 있다.
오랜시간이 만들어준 익숙한 내 것과
편안한 내 사람들만이
진심으로 날 알아주고 안아주고 토닥여줄 수 있다.
지겹고 초라해 때로는 꼴도 보기 싫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내 사람뿐이다.
익숙하고 편안한 오랜 내 사람들,
그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We cannot help loving them.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6. 보라가 잡혀가는 걸 막는 엄마.
가끔은 엄마가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엄마에겐 왜 최소한의 체면도 자존심도 없는지
화가 날 때가 있었다.
그건 자기 자신보다 더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바로 나 때문이라는 걸.
그 땐 알지 못했다.
정작 사람이 강해지는 건 자존심을 부릴 때가 아닌,
자존심마저 던져버렸을 때다.
그래서 엄마는 힘이 세다.
7. 엄마한테 전화해서 설움 터지는 선우엄마.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고 한다.
엄마의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엄마는 나의 수호신이며
여전히 엄마는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 메이는 이름이다.
엄마는 여전히 힘이 세다.
가까스로 엄마가 위로할 나이가 되었을 때
이미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엔
지나치게 철이 들어 버린 뒤다.
지금, 엄마를 기쁘게 하고 싶다면 그저
나 지금 엄마가 필요해요,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8. 선우의 고백
오늘 고백하신 모든 사랑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끝으로 혹시 아직 사랑하는 그 누군가로부터
고백받지 못하신 분이 있다면
아니면, 사랑의 상처로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이 혹시 계시다면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또 다른 누군가가 지금 당신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불쑥 고백해올지도 몰라요.
당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지난 오랜시간 동안
당신을 좋아했노라고.
9. 진주의 크리스마스 선물
지구에서 종교가 존속될 수 있었던 건
어쩜 세상의 아들내미, 딸내미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구든 붙들고 그들의 안녕과 행복을 빌고픈
부모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모든 엄마, 아빠들과 그들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하나님과 부처님과 알라신,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는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10. 자신에겐 마니또가 없다고 생각하는 덕선이.
이제 더 이상 산타를 믿지 않는 나이였고
마니또 게임에 설레지 않는 나이였다.
몰래 두고 가는 선물과 비밀스레 전해지는 은근함으론
성에 차지 않는 나이였다.
담아 두자면 목구멍까지 차올라 숨이 가빴던 그 두근거림.
털어놓자면 가슴 터질것 같던 그 쑥스러움.
못견디게 티내고 싶지만 들키기는 싫었던
쌍팔년도의 그 설렘.
우리는 열여덟이었다.
11. 어릴적 아빠의 영상을 보고 감동받은 택이
시간은 흐른다.
그래서 시간은 기어코 이별을 만들고
그리하여 시간은 반드시 후회를 남긴다.
사랑한다면 지금 말해야 한다.
숨가쁘게만 살아가는 이 순간들이
아쉬움으로 변하기 전에 말해야 한다.
어쩜 시간이 남기는 가장 큰 선물은
사랑했던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쑥스러움을 이겨내고 고백해야 한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12. 정봉이의 "동생아... 코피는 괜찮아??"
말에는 가슴이 담긴다.
그리하여 말 한마디에도 체온이 있는 법이다.
이 냉랭한 악플의 세상이
그나마 살만하도록 삶의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건
잘난 명언도,
유식한 촌철살인도 아닌,
당신의 투박한 체온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다.
13. 보라가 선우와의 관계를 주저할 때
선이라는 건 딱 거기까지라는 뜻이다.
선을 지킨다는 건
지금까지 머물던 익숙함의 영역,
딱 거기까지의 세상과 규칙과 관계들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그건 결국 선을 넘지 않는다면
결코 다른 세상과 규칙과 관계는 만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새로운 관계를 꿈꾼다면,
사랑을 꿈꾼다면 선을 넘어야만 한다.
선을 지키는 한,
그와 당신은 딱 거기까지일 수 밖에 없다.
14. 선우가 택이아빠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때 / 택이가 덕선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 정환이.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건
그 사람이 널 끝없이 괴롭게 만든대도
그래서 그 사람을 끝없이 미워하고 싶어진대도
결국 그 사람을 절대 미워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
사랑한다는 건 미워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결코 미워할 수 없다는 뜻인거야.
15. 쌍문동 아버지들.
어릴 적 우리집엔 슈퍼맨이 살았다.
그는 세상 고칠 수 없는 물건이란 없는 맥가이버였고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나타나
모든 걸 해결해주는 짱가였으며,
약한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히어로 중에 히어로였다.
하지만 철부지를 벗어난 뒤에야 간신히 알게 되었다.
다만 들키지 않았을 뿐, 슈퍼맨도 사람이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꼽고
슬프고 무섭고 힘겨운 세상들이 아빠 앞을 스쳐가는지를.
그리고 이제 간신히 깨닫는다.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꼽고 슬프고 무섭고 힘겨워도
꿋꿋이 버텨냈던 이유는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음을.
가족이 있었고, 내가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다른 누구도 아닌
아빠의 이름으로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음을 말이다.
16. 인생은 타이밍.
적어도 운명적이라는 표현을 쓰려면
아주 가끔, 우연히 찾아드는 극적인 순간이여야 한다.
그래야 운명이다.
그래서 운명의 또다른 이름은 타이밍이다.
만일 오늘 그 망할 신호등에 한번도 걸리지 않았다면
그 빌어먹을 빨간 신호등이 날 한번이라도 도와줬다면
난 지금 운명처럼 그녀 앞에 서있을지 모른다.
내 첫사랑은 늘 그 거지같은,
그 거지같은 타이밍에 발목잡혔다.
그 빌어먹을 타이밍에.
그러나 운명은 그리고 타이밍은
그저 찾아드는 우연이 아니다.
간절함을 향한 숱한 선택들이 만들어내는 기적같은 순간이다.
주저 없는 포기와 망설임 없는 결정들이 타이밍을 만든다.
그 녀석이 더 간절했고 난 더 용기를 냈어야 했다.
나빴던 건 신호등이 아니라, 타이밍이 아니라
내 수많은 망설임들이었다.
17. 인생은 초콜릿 상자
인생은 초콜렛 상자와 같다.
열어보기 전엔 무엇을 잡을지 알 수가 없다.
쓰디 쓴 초콜렛을 집었대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내가 선택한 운명이다.
후회할 것도, 질질 짤 것도, 가슴 아플 것도 없다.
18. 보라가 시집갈 때 성동일의 편지
보라야,
27년전 딱 이 맘 때였나보다.
니 엄마의 절규소리가 들리고, 곧 들리던,
너의 응애소리가 이 아빠는 아직도 귀에 선하단다.
그렇게 핏덩이같던 니가,
언제 이렇게 자라서 시집을 다 가고...
보라야.
아빤 이렇게 좋고 행복한 날에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남들처럼 용돈 한번 풍족하게 못 주고,
맏이의 무거운 짐만 지게 한 것 같아 늘 미안했다.
보라야,
니가 누구의 아내가 되든, 며느리가 되든,
너는 이 아빠의 영원한 딸이라는 걸 기억해다오.
니가 태어난 순간부터 한순간도 빠짐없이
이 애비의 가장 소중한 보석이란 걸 잊지말아라.
내 딸 사랑한다.
내 딸로 태어나줘서 더 없이 고맙다.
19. 굿바이, 쌍문동
봉황당 골목을 다시 찾았을 땐,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골목도 나이 들어버린 뒤였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건 내 청춘도, 이 골목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기어코 흐른다.
모든 것은 기어코 지나가버리고, 기어코 나이 들어간다.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찰나의 순간을 눈부시게 반짝거리고는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눈물겹도록 푸르던 시절, 나에게도 그런 청춘이 있었다.
쌍팔년도 우리의 쌍문동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그 시절이 그리운 건, 그 골목이 그리운 건
단지 지금보다 젊은 내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 곳에 아빠의 청춘이, 엄마의 청춘이, 친구들의 청춘이,
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의 청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한데 모아놓을 수 없는 그 젊은 풍경들에
마지막 인사조차 못한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이제 이미 사라져버린 것들에,
다신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에 뒤늦은 인사를 고한다.
안녕 나의 청춘, 굿바이 쌍문동.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쌍팔년도, 내 젊은 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