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내리는 비 2017. 7. 9. 16:10

처음 '청소년을 위한 사진집'을 써보라는 말을 듣고 벌써 여러번의 머리말을 쓰고 있다. 열 문장을 넘어가지 못한 채 벌써 여섯번째 다시 쓰고 있다.  어떤 책이어야 할까? 어떤 이야기여야 할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본다.


청소년을 위한 사진책이 뭐 그리 특별할까 싶다. 나에게는 그렇다. 다만 어른이든 아이든 '처음 사진을 만나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시선'을 제안하는 사진 이야기라면 쓸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누군가의 시선에 나를(나의 사진을)두지 않는다. 내 시선으로 들어온 그대로 사진을 찍고, 택하고, 읽는다. 나는 그렇게 해도 된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그래도 청소년을 위한 사진집인데 .. 싶어 가만히 고개를 들고 청소년들의 모습을 생각해봤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긴 시간 학교와 학원, 교과서와 참고서에 묶여있을테고, 그나마 그쪽에 관심 없는 이들은 TV며 인터넷, SNS며 게임, 연예인들에 마음쏟고 살텐데 .. 나는 그런 아이들을 잘 이해할 수 없을텐데 ..  '이래라 저래라'하는 어른들의 뻔한 가르치기말을 하는 건 싫은데 .. 그렇다고 그들의 시선을 쫒아 사진을 찍지도 않을텐데 .. 그들이 사진책을 본다면, 읽는다면 어떤 이유일까 싶었다. 


결국 나는 어떻게 사진을 만나게 되었을까? 하는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어렸을 적엔 (.. 아, 정말!! 이런 말로 시작하게 되는군 ^^; .. ) '눈에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어떤 그림이나 이미지를 달리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교과서나 잡지(책도 흔치 않았다. 가난한 나에게는 더욱 그랬다.), 흑백 이미지의 TV와 신문, 잡지도 거의 단색이었고, 간간히 컬러 이미지가 끼워져 있는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좀더 다양한 컬러이미지를 만나게 된 건 삼성출판사의 '올컬러대백과사전'이었다. 거기서 만난 별과 우주의 사진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아른거릴 정도로 강렬했다. 


책 속의 사진을 내가 찍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건 대학에 들어가서였다. 어려운 형편에 사진기 하나 장만하기 어려웠고, 수학여행때 사진관에 가서 학생증을 맞기고 몇 천원을 내면 필름을 끼운 올림포스 하프카메라를 빌렸던 기억이다. 사진을 뽑는 것도 돈이 드는 일이라 카메라를 반납하고, 필름을 맡긴 후 돈이 생겨야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어렵게 인화한 내 사진에는 친구들이나 선생님보다 물과 바위, 나무와 풀, 산등성이 같은 게 잔뜩 찍혀있었다. 3월의 산은 참 건조하고, 색깔도 없고, 심지어 입은 옷은 겨울 옷이었다. 그런 계절에 수학여행을 갔는데도 잔뜩 찍어온 풍경이라니 .. 


대학교때는 카메라도 없이 사진동아리에 들어갔다. 알바를 해서 돈을 모을때까지 이론수업을 들었고, 도구 없이 공부한 내용은 잘 남아있지 않았다. 대략 카메라와 필름 케이스에 있는 영문과 숫자의 의미를 알 뿐이었다. 폼은 멋져도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 나오지도 않는 수동 카메라보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잘 나오는 자동 카메라다 훨씬 마음에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처음 출사(사진여행)에서 친구 둘을 잃었고, 그 과정에서 마련한지 얼마 되지 않는 사진기를 바닷물에 빠뜨려 쓸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카메라를 살 여력도 되지 않았고,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도 버렸다. 슬펐다.


대학 졸업 후 자동카메라를 하나 사서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낯선 공간과 사람들이 그 사진기에 담겼다. 3달이 약간 안되는 동안 찍은 필름은 한국으로 보냈다. 그리고 인화된 사진을 앨범에 끼웠다. 다양한 빛깔이 선명하게 빛나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유럽의 빛가 우리나라의 빛이 다르다는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인권영화제를 통해 낯선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만났고, 어떤 영화보다 매혹적인 이 기록영화장르에 빠져들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직장을 다니며 번 돈으로 영화아카데미에 등록해 공부를 했다. 다른 친구들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는 선택을 했지만 나는 촬영을 선택했다. 마음속에 사진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걸까? 아니면 번갈아가며 찍는 과정에서 다시 사진이 찍고 싶은 마음이 들어온걸까? 뭐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당시 2-3년의 영화제작강좌에서 8mm필름, 16mm 비디오테이프, 디지털 6mm라는 기록장치의 변화를 체험했다. 대형장비를 다루고 많은 돈과 사람이 필요한 상업영화의 스텝보다는 혼자 촬영, 편집을 하는 1인 제작 시스템이 그나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분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조언했다. 


기록이라는 생각을 넘어서는 사진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영상작업을 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사진의 도움이 필요했다. 다양하게 사진이 쓰였고, 나중에는 필요한 사진을 찍어서 활용햇다. 특히 디지털 영상제작으로 넘어가면서 사진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했고, 동영상으로 다 담을 수 없는 내용을 사진으로 촬영했다가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다. 기존의 사진이나 필름도 스캔해서 다시 사용했고, 조금 더 좋은 화질의 사진이 필요해 다시 사진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일상이 예술, 예술이 일상인 삶


사진을 찍으니 작가라고, 예술가라고 한다. 처음엔 참 부담스럽고 불편한 호칭이었다. 그냥 사진작업자, 사진기록자, 사진쟁이 .. 그쯤이면 좋겠다고 했지만 매번 그런 설명을 하는 게 귀찮고 힘들어서 그냥 그러려니 한다. 


나는 일상을 찍는다. 나와 만나지는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을 무심히 담는다. 물론 때때로 열심히 찍어야 할 필요가 있을때도 있지만 억지로 찍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찍고 싶을때 찍는다. 대신 어떤 카메라든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한다. 커다란 카메라도 일상적으로 어깨에 걸고 다닌다. 다들 떨어지면 어떻게 하냐고,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한다.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장롱에 넣어둔 카메라들이 많다는 걸 안다. 사진을 배우다보니 장롱에 귀하가 모셔둔 카메라 이야기가 많다. 그런 카메라의 렌즈에는 으례 곰팡이가 피어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걸 청소하는 것만 해도 적잖은 비용이 들어갔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카메라의 용도를 생각해보면 싼 가격은 아니더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싶었다. 


디지털 기계들은 더더욱이 안쓰면 고장난다는 말이 있다. 일상은 수 많은 먼지와 습기, 부딪힘이 있다. 일상적으로 갖고 다니는 것들이 가질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될 수 밖에 없으니 잘 관리하는게 필요하다. 난 그걸 잘 못한다. 아주 가끔 먼지도 닦고, 렌즈도 닦지만 관리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성 가득히 사진기를 관리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사진기 자체에 대한 애정으로 흠 하나, 먼지 하나 없이 열심히 닦고 관리하는 분들이 훨씬 더 많다. 그렇게 관리하면 고장도 적고, 좋은 사진을 찍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도 난 그게 잘 안된다. 습성인거 같다.


'막 쓴다.'는 말이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일상에 시선을 두는 나에게 집에 있거나 가방에 들어있는 사진기는 의미가 없다. 가끔 그 무게와 부피 때문에 가방에 넣거나 집이나 사무실에 두고 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때면 꼭! 놓치기 싫은, 놓쳐서는 안될 장면이 내 앞에 놓여질때가 많았다. 아마 찍지 못해서 더 그렇게 느껴질 수 도 있지만 나는 그렇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중고를 사는 것, 그리고 잃어버리거나 깨지거나 하기 전까지 알차게 쓰는 것. 그렇게 사용하지만 생각보다 많이 잃어버리지도 떨어뜨리지도 깨지지도 않았다.


물론 워너비 사진기가 있기는 하다. 막강한 CCD나 맑은 렌즈, 아름다운 사진기를 보면 종종 넋을 놓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감당하지 못할 것을 포기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상황과 여건에 맞는 것을 선택하고 그거을 사용하고, 그 한계를 이해하고 아는 일이다.


디지털이 사진기와 만나 보급되면 급격하게 발전되는 기술과 함께 비용도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사진기 자체의 가격은 예전에도 비쌋지만 문제는 새로운 기술과 성능이 도입된 사진기가 너무 자주 나온다는 것. 기계를 사용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그 기술비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고 감당할 수도 없다. 어떤 기계도 그렇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싼 사진기로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싼 사진기로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도움이 된다.


잘 찍은 사진과 좋은 사진은 다르다.


사람마다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이 다르다. 그래서 사진기, 렌즈, 촬영 내용이 다르다. 같은 것을 찍어도 사람마다 기계마다 그 결과물은 다르다. 옳고 그름도 없고, 좋고 나쁨도 없이 다르다. 물론 저마다의 판단은 언제나 다를테지만 그래서 가치있는 무엇이 있는게 아닌지 싶기도 하다.  


예술로서의 사진, 사진으로서의 예술은 앞뒤 단어가 바뀌었지만 의미는 상당히 다르게 여겨진다. 나의 경우 전자는 미술의 한 영역으로서의 사진이라 여긴다. 파인아트FineArt라고 하는데 기록을 전제로 찍는 사진이 아니라 작가의 표현을 위해 다양하게 변형되고 활용되는 측면이 강하다. 이와 달리 기록이라는 사진의 역할에 충실하되 그 결과물이 아름답고, 감동을 주게 될 때 후자에 속하게 되는게 아닌가 한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