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내리는 비 2018. 1. 17. 17:51

인천일보/김진국/ 애관의 탄생, 영화의 시작          

2018년 01월 17일 00:05 수요일       

공교롭게도, 애관극장(이하 애관)과 영화는 같은 해 탄생한다. 1895년 인천엔 공연장 '협률사'가 들어섰다. 현 애관의 전신이다. 같은 해 프랑스에선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을 세상에 공개한다. 50초짜리 무성영화였다. 애관과 영화가 비로소 만난 때는 1920년대 중반이다. 1924년 애관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인천 최초의 '활동사진 전문관'으로 변신한다. 영화관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한 세기를 넘긴 지금까지 애관은 현재 '신과 함께', '1987'과 같은 최신 대작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중이다.  

영화는 물론 연극, 레슬링대회, 조봉암 선생의 건준위 인천지부 발족식에 이르기까지 애관은 인천문화의 랜드마크였다. 뤼미에르 형제의 사진기술 혁명은 영화란 장르를 21세기 세계문화의 중심축 반열에 올려 놓았다. 고색창연한 아우라(Aura)를 펑펑 내뿜는 애관과 몽환적 영상으로 가득한 최첨단 CG영화의 만남. 애관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123년을 관통하는 공간에서 과거-현재-미래를 자유롭게 오가는 꿈결 같은 영화를 관람한다는 데 있다. 현실 속에서 비현실적 세계를 경험하는 셈이다. 

거대자본으로 무장한 멀티플렉스가 상영관을 장악한 시대. 애관이 지금까지 버텨온 것은 차라리 기적에 가깝다. 극장주 탁경란 씨의 철학과 투자가 없었다면 문을 닫았어도, 벌써 닫았을 것이었다. 부친 탁상덕 씨에 이어 그가 애관을 인수하면서 인터뷰할 당시, 빈틈없는 미장셴으로 빛나는 스크린 같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 그가 극장 매각을 결심했다면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공익기관이 아닌 일반 자본이 애관을 사들일 경우 철거나 변형이 우려된다는 사실이다. 인천기상청, 공보관, 애경비누공장과 같은 오랜 역사를 품은 건물들이 허망하게 철거되면서 받은 트라우마가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다. 정작, 있는 것은 부수면서 대불호텔 복원, 존스톤별장 복원 등을 논하는 것을 보면 대체 어쩌자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지자체나 공익기관이 애관을 매입한다면 그 비용은 사라져 버린 옛 건물 복원 비용에 한참 못 미칠 게 분명하다.

어디에 있건 간에, 가족은 존재만으로 행복감을 안겨준다. 애관극장은 그런 가족 같은 존재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기쁨과 안도감, 평온한 휴식을 주는 그런 존재 말이다.


‘애관극장 살리기’ 나선 인천시민들 2018-01-15 03:00수정 2018-01-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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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전통 국내 최초 실내극장… 멀티플렉스에 밀려 매각설 돌자
시민모임 결성 “문화유산 지켜야” 市도 “공공시설로 보존 방안 검토”

매각설이 불거지고 있는 120년 전통의 국내 최초 실내극장인 인천 중구 애관극장의 현재 모습(왼쪽 사진). 6·25전쟁 때 소실돼 다시 지은 1960년대 애관극장 모습. 외관과 뼈대는 거의 그대로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인천시 제공

영화 ‘1987’에서 대학생 박종철 고문에 가담한 형사의 아버지 역을 한 배우 이상희 씨(57)는 인천 중구 애관극장 단골이다. 아내와 함께 1주일에 한 번꼴로 애관극장을 찾아 영화를 본다. ‘남한산성’을 비롯한 여러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한 그는 고향인 인천에서 극단 ‘사랑마을’을 운영한다. 이 씨는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점 영화관보다 학창시절 추억이 많이 묻어 있는 애관극장에서 꼭 영화를 감상한다. 스크린이 큰 1관보다는 소극장처럼 작고 아담한 2∼6관이 좋다”고 말했다. 이 씨는 120년 전통의 애관극장이 경영난에 처했다는 얘기에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다.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인천참여예산센터 같은 시민단체 회원과 변호사, 예술인 등 100여 명은 ‘애관극장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애사모)’이란 단체를 만들어 애관극장 살리기에 나섰다. 국내 최초 실내극장을 이렇게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애사모는 14일 성명서를 통해 “인천의 소중한 건축 자산인 애관극장을 인천시가 매입해 공공문화 유산을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애관극장 매각협상 사실을 처음 알린 향토사 연구자 A 씨는 “소유주가 애관극장 전통을 이어가려 노력했지만 지인에게 ‘극장을 팔아야겠다’고 토로했다”고 말했다. 애관극장 현황을 조사한 인천시 관계자는 “애관극장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건물을 담보로 상당한 금융부채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애관극장 관계자는 “경영난에 따른 매각설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애관극장의 전신은 협률사(協律舍)로 1895년 인천 경동에서 문을 열었다. 서울 최초의 실내극장인 협률사(協律社)가 1902년 문을 열었으니 이보다 7년이 빠르다. 서울 협률사는 황실과 국고 지원으로 지었지만 인천 협률사는 객주 출신의 ‘인천 부자’로 통했던 정치국(丁致國)이 세웠다. 

벽돌로 지은 인천 협률사는 개관 무렵에는 남사당패나 성주풀이 같은 전통 악극을 공연했다. 1910년 신파극을 선보이며 축항사(築港舍)로 이름을 바꿨다. 1921년에는 서양영화를 주로 상영하며 연극도 공연하면서 이름을 애관(愛館)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극작가 함세덕 진우촌과 연기자 정암 등 인천 문화계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자주 찾았다. 6·25전쟁 때 소실된 뒤 1960년 현재 모습으로 지어 애관극장으로 재개관했다. 

애관극장을 중심으로 인천 시네마거리가 형성됐다. 1980년대까지 주변에 미림 인영 현대 자유 키네마를 비롯해 극장이 20곳 가까이 생겼다. 2000년대 들어 멀티플렉스 영화관 열풍이 불면서 모두 문을 닫았지만 애관극장만은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극장 소유주가 매각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은 만큼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서울 세실극장처럼 폐쇄되지 않고 영화사를 잘 간직하는 공공시설로 보존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인천 애관극장 매각설 '해프닝'…"근대 문화유산 보호 계기 돼야"

"지역경제 활성화, 문화유산 보존과 함께 해야"( 최태용 기자 | 2018-01-14 17:52 송고   

1950년대 애관극장 모습.(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제공)/뉴스1 © News1 DB

우리나라 최초 실내극장으로 알려진 인천의 '애관극장' 매각설이 돌면서 지역 시민·문화단체들의 보존 요구가 이어졌다.

극장 측 부인으로 매각설은 결국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지만 지역 근대문화 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애관극장 측으로부터 매각 의사가 없음을 확인했다"며 "오히려 시민단체와 언론의 지나친 관심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고 14일 밝혔다.

애관극장은 1895년 청일전쟁 때 지어진 창고를 개조해 '협률사(協律舍)'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국내 첫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알려졌으며, 1912년 '축항사(築港舍)'에서 1926년 '애관(愛觀)'으로 이름을 바꿨다. 원래의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돼 현재의 극장은 1960년대 지금의 동인천역 부근에 지어졌다.

동인천 상권 부흥기에는 영업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2000년대 들어 거대 자본의 멀티플렉스 상영관에 밀려 폐관 위기를 맞기도 했다. 2004년 5개 상영관을 갖추고 재개관했지만 지역 상권이 오랫동안 침체돼 경영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6시께. 주말 오후였지만 인천 중구 동인천동의 애관극장 골목은 오가는 사람 없이 한산했다. 인근 동물병원과 카페가 있는 상가 몇 군데만 불이 켜졌을 뿐 옷가게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상가는 문을 닫았다.

우현로 건너편의 신포시장과 문화의 거리는 중구에서 설치한 갖가지 조명들로 빛났다. 그러나 역시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곳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젊은 사람들이 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동인천은 인천에서 가장 잘 나가던 곳이었다. 당시엔 왜 그랬는지 정치하는 사람들이 잘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철거 전 인천 중구 가톨릭회관.(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제공)/뉴스1 © News1 DB

인천 중구는 '답동성당 일원 관광자원화 사업'을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가톨릭회관을 철거하고 주차장을 만들고 있다. 1973년 지어진 가톨릭회관은 1970~80년대 군부 독재 시절 시국회의와 농성이 열린 지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앞서 중구는 지난해 5월에도 세제·비누 제조업체인 애경의 모기업이 공장으로 사용했던 115년 된 '애경사' 건물을 역시 주차장을 짓겠다며 철거했다.

아울러 1930년 일제 강점기 당시 지어진 송주옥(1930년)과 1939년 지어진 조일양조장, 1941년 지어진 동방극장도 모두 철거되고 표지석만 남았다.

인천시는 뒤늦게나마 역사적 지역의 역사적 건축물을 전수조사하고 문화재 지정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는 2016년 11월 했던 실태조사를 토대로 개항기인 188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지어진 건축물 233곳을 관리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 가운데 172곳(82%)이 개항장 주변인 중·동구에 밀집돼 있다.

대안예술공간 스페이스빔의 민운기 대표는 "이번 일은 지자체가 지역 문화유산의 가치를 자각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지역경제 활성화도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의 틀 안에서 진행할 때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철거 전 인천 중구 애경사.(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제공)/뉴스1 © News1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