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흐렸다. 사진집에 고민이 머릴 떠나지 않아서 약속시간에 맞춰 나오려다가 그냥 나왔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동중로(지금은 이름이 바뀌었으나 기억나지 않음)>에 노란 은행잎이 바람부는 봄날의 벚꽃잎처럼 날렸다. 버스를 기다리려다가 그냥 걸었다. 땀이 났다. 거센 바람인데도 차갑지는 않았다. 오히려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온다고 해서 나름 대비를 하고 나와서 땀이 날 정도로 덥기까지 했다.

도원역에 내려 철로변길에 들어서니 할머니들이 바람 부는 와중에 낙엽을 쓸어내느라 분주하셨다. 그치면 한번만 쓸어도 되잖아요? 했더니 비가 올 거라 하수구 구멍이 막히면 안되기 때문이라신다. 총총히 인사를 드리고 사진관에 오자마자 외투와 스카프, 겹쳐 입은 티셔츠를 하나 벗고나니 좀 땀이 천천히 말라간다.

 

사진집, 수고비를 좀 남기라고들 하지만 난 그것을 포기하고 좀 더 좋게, 풍부하게 담고 싶었다. 나의 마을사진은 이미지로 이야기하는 방식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카이빙의 의미를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 밤에 다인이 사진을 추렸고, 어제는 300페이지로 하려면 제작비가 과도해진다고 한다. 이미지텔링 방식을 포기하면 애초 구상했던 아카이빙은 의미가 없어진다.

줄여도 줄여도 줄지 않는 것 같아서 사진을 세어봤더니 지난 6년간의 사진이 34만여 장, 속으로 스스로에게 미친거아냐? 했다. 디지털 사진의 낭비가 여실히 느껴졌다. 시간시간마다 날씨와 계절마다, 사람들이 있고 없고 달라지는 것에 따라 찍어왔던 것, 하루하루의 출근길을 찍었고, 그때마다 길위의 풍경들을 달랐다. 척박한 도시에 생명들이 신기하고 신비롭도록 열심히 살아갔고, 그 위에 사람들도 그러했다. 그런 것들이 이어져 있어야 일상의 이미지 기록이 의미가 있는데 이것을 300장 이하로 사진을 줄이는 자체가 의미가 있을지.. 고민스러워졌다.

글을 줄이고 사진으로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들어갈 수 있는 사진의 양이 너무 적고, ‘의미’도 사라지고 ‘아카이브’이라는 의도에서도 벗어난다. 일상의 기록은 그렇게 잘라내어서는 의미가 담겨지기 어려운 자료다. 물론 한 장의 사진으로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한 장의 사진으로 이야기하기 위한 사진을 찍어오지 않았다.

 

2007년 아트인시티 작업과 함께 시작한 창영동에서의 반지하 활동과 그 과정에서 만난 산업도로 투쟁하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마을, 그 마을의 자연과 집들, 그 공간들 속에 만나는 살아있는 것들과 죽은 것들, 사라지는 것과 남아있는 것, 변해가는 것들의 이야기가 ‘나’라는 존재와 나와 관계 맺는 공간과 사람들 속에 남아있는 시간의 이야기를 애초에 그렇게 남기는 것은 배다리 사진 아카이빙이라는 제목에는 걸맞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의미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와 관계 맺은 시간과 공간과 사람의 이야기, 어린왕자와 여우의 그것처럼 ...

길들어 가고, 길들여 온 것에 대한 .. 의미들이 거기에 있는 걸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 놓칠 것 같다. 

의미가 있다 없다는 결국 나의 선택인거겠지?

의미가 없다면 포기 ..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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