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우리 삶이 바뀐다]

車·쇠고기·섬유 3대 쟁점 결국 뒷걸음

입력: 2007년 04월 02일 07:48:02
 
정부가 ‘선진 경제체제로의 진입’을 명목으로 밀어붙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성적표가 초라하다. 특히 핵심 쟁점인 쇠고기와 자동차, 섬유 부문에서 대부분 미국측 요구를 받아주며 당초 기대에 훨씬 못 미친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우리 수출이 늘어나 이익이 된다”고 한 정부의 한·미FTA 추진 명분이 퇴색한 셈이다.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반대 집회를 열고, 광우병으로부터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전문가들은 마지막에 협상을 이틀 연장한 것은 미국의 한국 자동차시장 개방용 포석으로 풀이했다. 특히 미국이 한국내 수입차 시장점유율을 일정선까지 보장해줄 것을 강력 요구한 때문으로 관측된다. 이전까지 한국측은 미국이 관세 2.5%를 즉시 폐지하는 데 대한 대가로 한국도 관세 8%를 철폐해주겠다는 입장이었다. 더불어 배기량 기준이어서 큰 차 비중이 높은 미국차에 불리한 현행 한국 자동차 세제는 물론 할부금융, 소비자 인식개선 등 80여가지를 완화해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 수입차 점유율은 약 4.2%대다.

그러나 협상이 이어지면서 한국은 미국의 관세를 승용차는 3년, 픽업트럭은 10년, 부품은 10년내 철폐로 물러섰다. 나아가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등이 미 무역대표부(USTR)에 서한을 보내 보다 강력한 한국시장 개방을 주문하자 더욱 궁지로 몰렸다. 핵심 내용이 한국내 수입차 시장점유율 보장이라는 초강수였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기 전에는 미국의 관세철폐는 절대불가로 3년, 10년간 순차적 철폐안마저 거둬들이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가 막판 ‘딜 브레이커(협상 결렬요인)’로 급부상한 것이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시장점유율 20%까지 보장하라는 것은 ‘자유무역’을 넘어선 것”이라며 “1986년 미·일 반도체협정 당시 일본내 20%까지 미국산 반도체가 점유할 때까지 일본산 수입규제를 명문화한 굴욕적 협정을 연상시킨다”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그룹도 1일 “원화절상 등 다른 문제를 감안할 때 2.5% 미국 관세 인하 효과는 크다고 볼 수 없다”며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또 즉시 철폐가 아닌 단계적 인하시 효과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현대측은 “배기량 기준세제를 바꾸면 일본차나 유럽차 등 고려할 문제가 남아 있다”고도 했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도 “현대차의 미국 현지 생산이 현행 20%선에서 3년 뒤 70%, 4~5년 뒤 100%까지 갈 수 있어 관세철폐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부품도 현지 조달비율이 높아져 10년 뒤 관세 철폐 실효가 없고, 픽업트럭은 수출용으로 만들지도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쇠고기 위생검역에서도 한국측은 미국 요구를 거의 들어준 것으로 관측됐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뼛조각이 발견된 박스만 전량 반송하는 조치에 이미 합의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미국이 ‘광우병 통제국’ 예비판정을 받을 것이라며 수입조건 완화 ‘명문화’를 요구한 데 대해 한국은 5월 판정후 들어주겠다며 ‘구두 약속’으로 버텼다. 그러나 사실상 시기 문제만 남았을 뿐 전면 수입은 기정 사실화됐다. 그밖에 돼지고기와 오렌지 등에 대한 관세 철폐안도 모두 들어줄 가능성이 커 최악의 농업협상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섬유 분야 기대이익도 최하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섬유 수출 증대를 한·미FTA의 최대 기대효과의 하나로 선전해왔다. 그만큼 처음부터 1500여 항목의 개방을 요구하며 자신있게 공세를 취했다. 그러나 85개로 줄었다가 막판에는 5개만 요구할 수 있었다.

주요 쟁점인 ‘얀 포워드(원사기준 원산지 판정방식)’ 적용 면제를 요청했으나 미국의 대답은 ‘예외없는 적용’이었다. 이는 미국과 FTA를 체결한 싱가포르가 제3국 원사 사용에 대해 얀 포워드 예외를 인정받고, 중남미 국가도 역내 생산지 원사는 예외로 인정한 것과 대조된다. 페루와도 제한된 쿼터내에서는 예외를 적용받은 사실과 비교하면 최소 수준이다.

이러한 낮은 기대효과는 미국시장에서 중국 등 경쟁국과 비교하면 실익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NAFTA를 맺은 멕시코도 2000년까지 섬유산업이 컸다가 관세까지 감내하며 밀고 들어온 중국산에 밀려 났다. 중국산에 대한 수입규제마저 내년이면 끝날 예정이다. 이교수는 “기대이익이 당초의 10%도 안된다”고 평가했다. 섬유 분과 고위급 협상의 한국 대표인 이재훈 산자부 제2차관이 오전 협상 뒤 “갈 길이 멀다. 노력하고는 있으나 어려운 점이 많다”며 고충을 털어놓은 배경이다.

〈전병역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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