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제 72조 :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현재의 투쟁을 냉정하게 돌아봅시다.
많은 분들이 이 불길이 혹시 사그러들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을 보이시기도 하고,
조급한 마음에 더욱 수위 높은 투쟁을 제안하시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한 친구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을 찍었다며,
빚갚는 마음으로 싸운다고 거의 매일 촛불 시위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그 친구도 말을 합니다. 이 에너지가 이대로 사라져 버리면 어쩌냐고...
아마 운동이라는 것도 모르고 진보라는 말도 생소하게 여기는 그 친구도
지금이 어떤 역사적인 계기라고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87년 투쟁, 91년 투쟁 때 처럼 어떤 역사적인 계기가 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5년, 10년이 지나 2008년을 돌아보게될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늘의 우리 표정과 함성, 눈물과 가슴 벅찬 감동이 생생하게 살아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2008년 5월과 6월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였는지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야기될 것입니다.
진보신당 동지 여러분,
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 같습니까? 지금의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겠습니까?
누군가는 말합니다. 대중을 지도하려 들지 말라고.
하지만 대중을 지도하려 드는 것과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은 다릅니다.
현재 투쟁은 폭발적인 시민 항쟁의 힘이 다양하게 분출되는 양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시민인 제 친구가 투쟁의 불길이 꺼질까 걱정하는 불안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저는 구체적인 성과,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의 실물적인 대안이 없어서 라는 생각을 합니다.
87년 대투쟁이 대통령 직선제라는 구체적인 성과를 가졌고,
부정적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91년 투쟁을 거치면서 전국연합이라는
대중운동의 구심 조직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체적인 목표를 고민하고 그것이 실현 가능함을 알리고 실천을 새로이 조직해야 합니다.
이명박 퇴진... 실현 가능할까요?
누군가는 4.19의 예처럼 대통령 하야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현재 투쟁 현장에서 구호의 최대수위도 이명박 퇴진입니다.
'구호'로서는 저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개인적 심정으로는 멍청하고 오만한 독재자에게 그 이상의 '방법'을 행하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전략에서는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입니다.
국민이 모여서 힘을 보이면 물러나야 하는 자리가 대통령이라면
우리는 스스로 쟁취한 민주주의를 의지와 무관하게 후퇴시키는 결과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주권자인 국민이 스스로 그 '주권'을 행사하는 경험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고 국민의 의지가 모아지면
그것은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지금의 투쟁의 의지를 모아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FTA 재협상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발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물러나는 것이나 찬성이 뻔한 국민투표에 붙이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릅니다.
국민의 의지가 이러하다는 것을 법적으로 검증된 절차와 결과로 제시하도록 만들어 낸다면
미국과의 재협상은 현실적으로 가능합니다.
재협상 의지가 없는 관료나 협상가는 물러나도록 하고
진정으로 민의를 대변한 거국내각과 새로운 협상단을 구성하도록 현 정부를 압박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보수야당 손들어 주는 격이 될 수도 있고
우리 진보진영은 예상되는 그 이후의 결과에 마땅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시민의 의지가 민주적으로 구체화되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실현시키는 과정과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정한 국면이 지난 후에 우리는 여전히 거리에서 선동을 하기 위해 목청을 돋우고
낮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동네 곳곳에서 정말 고달프면서 힘겨운 사업들을 지속해야 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 우리가 만나게될 지역 주민들,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자신의 주권의 무엇인지 확인했고 민주주의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가진
역사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이어야만 할 것입니다.
제가 법에 대해 잘 모르지만 국민투표는 대통령의 권한인 듯합니다.
우리는 구체적인 의제로 투쟁의 방향이 집중되도록 하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활동가로서의 자신감이나 운동권으로서의 의무감 같은 것들...
당장은 접어두고
진보적 열망과 의지를 가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정말로 확인하도록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할 것입니다.
국민투표 말고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런 의견도 듣고 의견을 나누고 싶습니다.
또한 국민투표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냐는 점에 대해서도 토론해보고 싶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다양하면서도 구체적인 투쟁의 진로에 대한 정말로 진지한 고민입니다.
진보신당 동지 여러분,
저는 일개 평당원에 지나지 않지만
이번 투쟁에서 여러 당원 동지들이 보여준 헌신적 노력과 피와 땀에
최고의 명예를 헌사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투쟁의 불길이 어이없이 사그러들어 그 모든 노력이 무위에 그치지 않도록
우리 싸움을 더욱 '조직화'해야 하는 것도 우리 스스로의 임무가 아닐까 합니다.
지난 몇 년간 수동적이고 냉소적이었던 스스로의 모습을 반성하면서
이번 투쟁을 계기로
대중과 함께하는 진정한 진보가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동지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