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동구 송림동에 있는 배다리는 인천의 개항기와 근대기, 산업화 역사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경인철도 착공지(1907), 창영사회복지회관(19세기 말), 창영초교(1907) 등 시 지정 유형문화재와 인천양조장(1920년대), 헌책방거리(1953) 등이 있는 인천의 근현대사를 증언하는 역사적 공간이다. 그러한 역사적인 공간이 개발의 불도져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그것은 폭 50m나 되는 신흥동 삼익아파트~동국제강을 잇는 산업도로가 배다리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려 하기 때문이다.
보통 개발사업의 경우 개발로 인한 수혜자와 피해자가 있어 주민의 찬반이 양분되는 경향을 보이지만 배다리는 거의 모든 주민들과 시민문화예술계까지 반대하고 있다. 이는 산업도로가 배다리를 관통할 경우 배다리는 두개 지역으로 나뉘어 지역 주민들의 삶과 공간을 단절시킬뿐더러 인천의 근현대역사문화의 보고이자 인천의 정체성을 간직한 얼마 남지 않은 곳인 배다리가 사라질 위기에 있기 때문이다.
송현근린공원을 바라보고 있는 아파트는 온 몸으로 지역을 가로지르는 산업도로를 반대하고 있다. 송현근린공원 위에는 수도산 달동네 박물관이 있다 그러한 위기속에 놓인 배다리에는 지역주민들의 아름다운 삶터를 만들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있었다. 흔히 아파트 재건축으로 대변되어지는 도시 재정비사업이 아닌 기존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며 그 환경을 아름답게 바꾸려하는 노력이 배여있는 배다리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육교부근에 배다리가 있었다. 배다리라는 이름은 저곳에 간척되기 전에는 배가 다닐수 있는 다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간척되어 저곳이 바다였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한 때 이 지역은 선박으로 인한 물동량이 많아 상업이 발달하여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다. 그 사람들의 숙식을 해결해주던 여인숙들이 아직도 골목 곳곳에 남아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곳이 되었다. ![]() 1990년대 배다리에는 헌책방들이 3-40개 정도로 많았다. 서울로 치면 청계천 헌책방 골목과 같은 곳이었다. 서울의 청계천 헌책방골목처럼 이곳 또한 많이 폐업하고 지금은 대여섯 곳의 서점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벨서점 곽현숙대표 "배다리는 기록역사가 적다. 오늘날로 말하면 비정규직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그러니 기록이라는 것이 없다.
사진책 도서관<함께살기2>지킴이 최종규씨 사진책 도서관. 사진에 관한 많은 책과 자료들을 많은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개인적으로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다. 배다리를 관통하는 도로에 대한 반대는 초기에는 지역을 관통하는 폭 50m의 산업도로가 생기면 지역이 반토막나고 그로 인해 지역의 삶이 반토막 아니 반에 반토막이 되어 버린다는 위기의식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산업도로를 반대하는 많은 집회를 하였다. 그러한 시간속에 지역에 대한 고민은 배다리라는 지역의 특성을 되살리는 것과 또 지역에서의 삶이라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그러한 문제제기 속에 마을이라는 곳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의 터가 되어야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되고 그렇다면 그 삶의 공간들을 어떻게 가꿀것인가 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흔히 지역재개발이라고 하면 있는 집들들 모두 철거해버리고 콘크리트 더미를 쌓아올린 아파트 건설만을 이야기 한다. 그러한 재개발은 그곳에 살고 있던 대부분의 세입자들을 다른 곳으로 쫓아내게 된다. 그것은 이미 다른 재개발지역에서 개발후 새로 지어진 아파트로 원주민이 재입주하는 비율이 20%도 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세입자뿐만 아니라 많은 건물주들 또한 새로 만들어진 아파트로 인하여 약간의 금전적 이익은 얻을지 몰라도 그 비싼 아파트 분양가를 감당하지 못하여 결국은 싼 집을 찾아서 그 지역으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몇 푼의 돈은 손에 쥐었을지 모르지만 삶의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값싼 집을 찾아 도시외곽으로 쫓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개발은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한 지역개발이 아니다. 건설업자들과 땅 많은 소수의 지주들만 이익을 보고 세입자를 비롯한 원주민들은 도시 밖으로 밖으로 내모는 개발일 뿐이다. 그래서 기존의 재개발을 통한 지역개발이 아닌 삶의 터를 아름답게 가꾸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또 다른 몇몇 공공미술을 실시한 지역을 보면 그들의 생활속으로 파고들어가 많은 이들과 아름다움을 함께 공유한다고 하면서 정작 그곳에 사는 삶들과는 유리된 조형물이나 그림을 설치되어 있다. 그렇게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삶과 유리되어진 설치미술을 지양하고 지역주민들의 삶 속으로 녹아들어가고 삶의 공간이 아름답도록 꾸미는 작업을 고민하고 진행되었다. 배다리의 다시 태어남의 산실이 된 소통과 공유의 공간이다. 우리는 이곳이 지닌 그대로의 숨결을 잊혀진 것이 아닌 동시대에 공존하는 물질로 구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지난 역사적 사실들을 버려진 회색의 공간들을 찾아 그림과 공간조형을 구성하는 작업을 2007년 진행했으며 그 이름은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으로 기록되었다. 그 과정에서 다시 발견된 지역의 노인들과 텃밭, 자연의 의미등을 담아 2008년 구성한 지역환경미술 활동이 바로 '골목길에 뿌려진 씨앗이야기'이다. 배다리에서의 이러한 고민들은 생활속으로 녹아든 작업들이 되었다.
한때 양조장이었던 건물이다. 이제는 지역미술인들이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름이 재미있다. 동네美술공장이다. BLUE 청춘이라고 검은 테이프로 작업한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부분이 떨어졌다.
경인철도 옆길인 우각로는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첫 신작로로 처음 철도가 생겼을 때 일본인들이 철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철도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우각로를 이용했다고 한다.
공간이 남는 곳 마다 텃밭이 조성되었다. 부지런히 땀 흘려 가꾸고 거두고 또 함께 나누고 하는 일들이 나이드신 분들에게 더 없는 즐거움이 되는 일이다.
인천 기독교 사회복지관. 19세기 말 미국 감리교회가 파견한 여자 선교사들의 합숙소로 이용하려고 지은 건물로 원래 모습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 ![]() ![]() 지역에 연세드신 분들 중에는 전철등에서 폐지를 모아오시는 분들이 많다. 그 분들이 모아온 폐지를 편하게 판매할 수 있도록 전철역 앞에 고물상이 있다.
배다리 뿐만 아니라 전국이 재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명박정권은 4대강을 비롯하여 전국을 공사판화 만들겠다고 한다. 땅은 지구의 피부다. 지구가 살아있는 별이듯이 땅은 지구의 살아있는 피부다. 그 땅을 수도 없이 파헤치는 자들은 땅의 신음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개발에 눈먼 자들에게는 그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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