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가을 - 배다리 풍경
도시의 가을 이야기
배다리 산업도로가 멈춘 그 곳에 지난 봄 끄트머리 6월
코스모스가 가득 피었을 때, 중국산 코스모스라느니 어쩌니 하면서
요란을 떤 적이 있었다.
아마 마른 들판에 코스모스 가득한 가을풍경을
볼 수 없으리란 걱정이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아직 거기에 그렇게 코스모스는 피어 있다. 

어느 집 옥상에 자라는 감나무를 모며 놀랐다.
자꾸 줄어드는 땅 대신 땅 아닌 땅이 흙을 품고 나무를 기른다.
콘크리트로 덮이고, 아스팔트로 보도블럭으로 덮여가는 도시에서도
흙에 대한, 아니 땅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은 언제나 그렇게 흐르고  있다.
이젠 아마도 그 껍데기들을 걷어내야 할 시간이 온 건 아닐런지.

우리 작은 공방 앞 꽃화분도 지난 번 갑작스런 추위에
죽을 줄 알았는데 잘 살아 있다. 
저 작은 화분, 얼마 안 되는 흙 속에서 참 질긴 생명들이
안타깝게 꽃을 피어 눈물이 날 것 같이 고맙고 미안하다. 

한점갤러리 프로젝트 기획전-'응시'가 바쁜 가을 속에 전시를 끝나갈 즈음, 


원주 토지문화원 고창영 관장님과 직원들이 배다리를 방문하였다.
 박경리 선생이 신혼시절 있었던 인천 동구 금곡동과 창영동을 돌아보며
자신의 이름과 같은 창영동 작은 갤러리에 들러
  마침 한점갤러리에서 전시중이던 '응시'를 보고는
자신이 지은 시가 있다며 써 주고 가셨다.

브래지어 끈을 풀면서

밋밋했던 가슴에 숨 막히게 고여 오던 멍울

밤새 진저리치게 솟아오르며 화끈거리던 통증

여학교 교실마다 순서대로 줄 지어 서서

검사 받던 브래지어


여성의 몸으로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목소리로 세상을 살면서

내 가슴 옥죄었던 것이

어디 비너스 브래지어뿐이었던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수많은 세상의 끈 속에서

나조차도 나를 숨 막히게 조였던

끈 하나 놓는다

브래지어 끈을 풀면서

큰 숨 들이 마신다

/고창영

그들이 돌아가고, 가을의 시간이 흐른

 한 초등학교 방과후 미술교사가 개인전을 열었고,
아이들 눈에 비친 '우리 선생님 그림'은

또박또박 방명록 첫 장에 전해졌다.

도시의 가을은 작은 마을 저녁에 푸르고 깊어진다.

9월부터 작업을 하던 창영초교 입구 귀퉁이에
또 하나의 갤러리가 내장을 마쳤다.  '띠-갤러리'다.
곧 오픈과 함께 개관전을 하게 된다.
시들어가는 해바라기와 좁은 화단, 멀리 비친 그림자와 이미지들까지 멋지다며
두 선생님은 연거푸 감동을 전한다.  


역시 9월부터 도배를 하고 장판을 하며 의견을 구하던 한 곳이 내장을 끝냈다.
아동문학지 계간지도 발행하고,  대학에서 유아교육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햇살님이 자신의 계간지 '아침햇살'의 이름을 따서 작은 공간을 열었다. 
'띠-갤러리'와 같은 날 오프닝을 한다.
작은 도서관과 어린이와 관련한 여러가지 사업을 기획해
동구의 새로운 사회적기업으로 예정되어 있다.  

가을이 오면서 동네 이곳저곳 공간을 정비했다.
마을창작공방인 '다행多行_하다' 역시 바닥 카펫타일과 나무바닥을 떼어내고
장판타일로 교체하는 작업을 낙타사막 주인장 도움으로 마치고
좀더 편안하고 밝은 공간으로 정비되었다.

도원역에서 철도 옆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창영어린이공원이 하나 있고,
그 공원 옆 창고 건물에 자리잡은 마을목공소 - '풍경너머 또 다른 세상'도
동구의 새 사회적기업으로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기타강습이 있다.
3개월에 10만원이라고 하니 관심 있는 분은 문의를 주길. (문의:임병수)

처마 밑 작은 나무는 벌써 집의 지붕을 넘어 자라고,
텃밭이자 화단에는 시든 식물이 내년 밑거름으로 쌓인다.

그이가 다시 멀리 떠난다.
대신 그이 할머니가 그이가 벽화를 그려놓은 곳으로 이사를 하셨다.
그렇게 떠나고 채워지는 일, 아쉬운 이별이 있고, 반가운 만남도 있는 삶이다. 
다만 좀더 오래 함께 살아가며 인사를 나누길 바랐던 마음에
서운함이 차가운 가을비처럼 흐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이는 왜 떠나게 되었을까? 우리가 삶을 지속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함께 어울려 정주하며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 말처럼 현대인은 그렇게 유목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까?
다만, 원하는 자는 정주할 수 있고, 원하는 자는 유목할 수 있기를.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 그러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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