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소박한 문화활동이 가능한 문화사랑방, 마을공동체를 꿈꾸며 시작했지만 큰 일을 격고 ..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고 .. 아마 내가 이해할 수 없지만 상처도 주었겠지만 .. 그리고 그저 살아있는 것이 목표였던 시간이 흘렀습니다. 2010년 2월에 시작했는데 .. 일상에서 문화활동을 누릴 공간을 넓히려고 했던 노력은 의도하지 않은 결실을 낳았습니다. 지난 2월 바느질 공방을 함께하던 꽃길이가 <달이네>로 자기 공간을 만들어 이사가면서 하나의 공간은 세 개의 공간이 되었고, 새로운 사람이 다행에 들어왔구요. 2010년 2월 문을 열었던 도시속의 마을공동체 '다행 多行_하다' 초기 공방식구들은 모두 제 갈 길을 갔습니다.
마을 목공방 청개구리는 그해 10월 철로변길 창고에 자리잡아 <풍경너머 다른세상>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사회적 기업 예비기업으로 선정되어 활동중이시고, 이야기공방 '숨'을 만들어가려던 해진은 결과 함께 거리 어딘가에 그림을 그리며 배우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금속공방 우민은 여러 상황을 속에 공간을 떠났고, 아팠고, 이젠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에 아픔이 폭력성으로 자라 비슷한 사람과 맞닥뜨리면서 지울 수 없는 갈등을 만들고 사라졌습니다. 술낌에 괜한 갈등으로 반지하와 다행의 반목을 가져와 이 작은 공동체가 깨어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나쁜친구는 아니지만 끊임없는 터지는 물리적 폭력행위에 대한 변명을 더이상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졌고, 자신 이야기만, 아픔만 쏟아내는 태도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나를 이해한 듯 연락은 끊어졌고, 굳이 연락하려고 한다면 연락이야 되겠지만 .. 더이상은 감당하기 싫어졌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도 그자신 처럼 어렵고 힘든일을 격고 살아간다는 걸 그걸 표현하거나 감당하는 방법이 다를뿐이라는 걸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비어진 자리에 <다인아트>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다인이 그해 11월에 들어와 월세를 내주고 다음해 5월 한점갤러리를 열었고, 지난 10일 전 1주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월 꽃길이님이 <나비날다>나비가 지난 늦가을 부터 힘들게 마련해 청소하고 정리하고 가꾼 배다리 마중물 공간<달이네>2층으로 자리를 옮겨 안락한 뜨개공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섯이 운영하려던 다행하다는 이제 저_강이 일상적으로 머물면서 옆 공간 <한점갤러리>도 봐주고, 모퉁이에 새로생긴 <띠_갤러리>도 봐 주면서 홀로 지내고 있습니다.
여럿이 살아가다보면 다양한 이야기가 생깁니다. 좋은 것 만큼 나쁜 것도 있을테고, 이해하는 만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을껍니다. 큰 일속에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시선은 기존으 것을 흔들거나 무너뜨릴 수 있는 도화선이 되기도 합니다.
다행多行_하다와 반지하의 지역공동체의 꿈은 그렇게 새로운 시선을 가진 우민이라는 친구에 의해서 깨어졌습니다. 도화선은 취중 폭력이었지만 .. 그 안에 잠재되어 있었던 다양한 문제점이 그의 입을 통해 드러났고, 그 평가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 갈등이 되어 작은 공동체 활동의 꿈은 깨졌습니다. 그것을 극복했더라면 전화위목이 되었을텐데요 더 멋지게 날을 수 있었을텐데요 ... 결국 극복하지 못하는 여러 개인의 한계가 있었던거죠.
누구의 잘못이라기 보다 어떤 가치를 지키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라는 걸, 그래서 남들이 알지 하는 자신들의 한계를 감추고, 덮고, 잊은듯이 살거나 개인이 떠나는 것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결국은 외부의 새로운 시선으로 문제점을 명확히 읽어냈고, 그 암덩어리를 걸러내는 과정에서 단절이 되거나 깨어지게 되는 거죠. 작은 단체는 그렇게 되기가 더욱 쉬운 거 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너무 큰 짐을 지느라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잃게 되고, 또 누군가는 그 짐진 자를 옹호하다가 그를 신처럼 절대자로 인식하게 되어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세상속에 스스로의 모습을 변명하게 되고, 나머지는 적이 되기도 합니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며 나 자신을 봅니다. 인천인권영화제를, 진보적인 정치활동을, 진보적인 문화예술운동을, 그리고 치열하게 소중한 삶의 운동을 함께 해왔던 이들속에서 맹목적으로 그들을 옹호했던 자者로서의 나_ 강은 다양한 성장을 거듭했고, 여전히 그 가치들은 유효한 것들이 많았지만 수 많은 갈림길을 만났고, 결국 갈라서기도 했습니다.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지지자로서의 나는 그랬던 만큼 많이 절망하고 아팠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서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고통속에서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고, 각자의 한계와 가치를 감성적으로 이성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과학적으로 확인하고 인정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이들이 절대적으로 당연한 듯이 생각했기에 잊고 지내거나 나도 그렇게 물들어 간 측면이 많았습니다. 단절의 과정에서 그것을 다시 인식하고, 냉정해질 수 있었습니다만 통진당의경우도 아마 민노당 시절부터 혹은 훨씬 이전부터 있어온 그러나 '진보'라는 가치를 위해 희생해온 수 많은 것들이 이번 비례대표 후보 선거의 문제속에 드러난 것입니다. 운동권이라 할 수 없는 '참여당'이 있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날 문제였지만 아직 약한 '진보'의 가치가 깨질까봐 숨기고만 있었는데 새롭게 만나진 이의 눈에는 그 암덩어리가 너무도 크고 선명하게 보였겠지요.
새로운 것은 미흡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오래된 것은 그 새로운 것들이 단단해지고 견고해지고 지혜로와지는 과정에서 신뢰를 얻고 지속되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유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 뻣뻣한 몸이 세상과 함께 변해가도록 하는 것이 새로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조금씩 새로움에 물들고, 새로움은 성장하고, 너무 단단해져 굳거나 썩기전에 다른 새로움이 그것을 도울 것입니다. 이것이 멈춰진 사회가 아마 멸망하겠지요.
다양함이란 그 수 많은 '새로움'과 '오래됨'의 '무엇'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봅니다. '맹목'이란 그래서 위험한 거 같습니다. '절대'적인 것이 그래서 나쁜 거 같습니다. '당연'한 무엇은 있겠지만 그 '당연한 무엇'도 변해간다는 걸 잊지 않아야한다는 걸 알겠습니다. 그래서 기본이라는 거, 원칙이라는 거, 상식이라는 것들이 그 시대의 보편적인 정서와 어떻게 닿아있는지, 어떻게 변해가는지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 다들 고민스러운거겠지요.
결국 한 사회의 문화라는 게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져왔는지를 말해줄 것이고, '바람직한',' 건강한' 것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미래가 만들어지겠죠. 작은 단체가 쉽게 깨지고 사라지지만 한 사회는 수 많은 조건과 환경들에 의해 과거를 살았겠고, 현재를 살고, 미래를 살것입니다.
나_강은 지금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 그 가치, 그 이유를 놓쳤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이럴 땐 땀흘려 일하거나, 책을 읽거나, 또 무엇을 해야겠는데 넋만 놓고 있습니다. 그런 내가 또 멍청하고 불안합니다. '내가 만들면 된다', '내가 하면 된다', '내가 시작하면 된다'고 끊임없이 자기암시를 하지만 그래서 '아직' 살아있기는 합니다.
그래서 나, '다시' 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