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마을 누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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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 시다락방 - 62회 시낭송회 - 이정록 시인
토요일 아침,
흐린듯 하면서도 어딘가 햇살이 느껴졌다. 토요일은 원래 집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청소를 하거나 일주일에 한 번 밥을 해먹는 날인데 동생이 다시 직장을 다니면서 아직 어린이 집 다니는 조카를 보러 잠실까지 간다. 아이가 혼자서도 잘 놀는 조카보기는 쉽다. 하지만 왕복 4시간을 오가는 일은 확실히 피곤한 일이다.
이런 출퇴근을 매일 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자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직장을 구해 일하는 것이 돈을 조금 더 버는 일보다 4시간이라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것이 훨씬 나은게 아닐까 싶다. 물론 직장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은 요즘 배부른 소리일수도 있다 싶지만 돈보다는 자신의 시간을 갖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늘어나는 요즘이다. 다행이다.
철로변 입구에서 나를 반기는 녀석들
도원역에서 내려 한평공원 하루,터에 닿을 즈음 보이지 않던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개나리다. '아 그래, 여기 이 녀석들이 있었지.' 꽃잎이 떨어진 후 잊고 있었는데 서늘한 날씨에 조금 마른듯, 여윈 개나리 봉오리가 더러는 활짝 핀 꽃들이 반갑게 피어 있었다. 두어 달은 이 녀석들이 철로변 입구에서 나를 반긴다. 이 녀석들이 꽃잎을 떨구고 초록색 잎이 생길 즈음이면 보랓빛 나팔꽃인 긴긴 여름과 늦은 가을까지 아침마다 나를 반긴다. 매일 같은 듯 다른 녀석들을 사진기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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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철로변길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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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봄이네.. 개나리가 피었으니.. 그런데 가을에 피는 개나리는 어쩌지?
게으름을 피운 건 아닌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이런저런 일들이 밀려있다. 맘 바쁜 걸 어찌 알았는지 토요일에 가끔 조카를 봐줄 수 있는 이웃을 알았다고 했다. 덕분에 동생네 가지 않는 느긋한 토요일엔 늦잠도 자고, 점심이 다 되갈 즈음 출근을 한다. 그런데 게으름을 피우느라 늦어진 마을신문 편집을 위해 서두르는 참이다. 조급한 마음을 알았는지 토요일까지 나와 편집을 한 다혜씨가 수정본을 올렸다고 전화를 줬다. 후다닥 나비에게 먼저봐달라고 전화하고 집을 나섰다.
철로변 길 입구에서 개나리에 빠져 있을때 즈음 나비가 벌써 사진관 앞이라며 전화가 왔다. 흰 가락떡을 아침삼아 내밀기에 입안에 밀어 넗으며, 함께 점검했는데 12시다. 오늘은 시낭송회가 있고, 달이네 게스트하우스 손님이 드는 날이라 나비는 타 놓은 커피 한 잔도 못하고 휘리릭 내려가고, 편집본을 웹하드에 올려 놓은 나는 어제 받는 기계를 설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1시 44분. 2시에 있는 시낭송회도 들러봐야 하고 동생이 부탁한 색깔 찰흙을 사려면 늦지 않게 문구점으로 가야한다. 토요일이니 일찍 닫을 꺼 같다.
사진관을 나서는데 하늘이 흐려져 있었다. 뭐 그리 바쁘다고 3월엔 날씨를 제대로 헤아려본 기억이 없다. 따뜻한 날씨에 두꺼운 옷을 입고 나와 애먹는가 하면, 차가와졌는데 외투를 두고 나와서 재활용 매장에서 옷을 사입기도 했다. 햇빛이 드는 걸 보고 나왔는데 어느덧 회색바람에 아이들 조차 없는 토요일 오후의 거리는 좀 쓸쓸하고 비를 품은 듯 바람까지 스산했다. 그래도 산업도로 텃밭을 지나는데 맘이 뿌듯하다. 사람들의 손길로 단정해진 모습을 보니 내 밭은 없어도 함께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겨울에 심었다는 마늘과 양파가 쑤욱 자라고, 할머니가 심은 씨감자는 언제 싹을 틔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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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도로 텃밭은 봄맞이 단장이 끝나간다
여지없이 아벨쌤의 자전거가 전시관 앞에 놓여져 있고, 스산한 날씨에도 책을 보러 오는 이들의 발길이 많다. 배다리에 봄이 되니 낯선 이들의 방문도, 낯익은 이들의 발길도 잦아지고 있다. 사진관 쪽이야 지나는 사람들이 많을 뿐, 드르는 이들은 별로 없는데 맘이 바빠 정성스럽게 대하지 못하는데 나비나 아벨샘이나 극성스럽다 싶도록 정성 가득이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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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전시관 전경
전시관에 들어가니 쫄리가 지인들과 연주를 준비하고 있다. 쫄이의 정식 연주를 듣는 건 지난 해 여름 배다리 아래서의 연주 이후 처음이다. 디리링~ 기타선율이 멋드러지게 다락방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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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리의 기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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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이 '쫄리'다. 왜 쫄리지? 궁금하시면 화요일 저녁 5시기타교실에 오셔서 물어보시면 되요~
기타 줄을 뜯는 손길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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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플루트의 가늘고 우아한 선율도 다락방을 넉넉히 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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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리의 노래와 함께한 연주도 너무 좋았다.
 
무대에서 하는 연주와 달리 목소리의 떨림까지 들리는 다락방의 연주를 들으며 오랜만에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 말고 문득 고운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비에게 우리 노래 배워볼까? 했다. 얼마전에 본 <언터처블 1%의 우정>에서 본 실내악의 느낌도 조금 더 이해가 되고, 관객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는 게 정말 가까이 느껴져 오랜만에 목소리가 많이 떨렸다는 쫄리의 마음도 참 좋았다.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함께하는 다락방에서는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이런 행사가 없을 때는 전시된 옛날 책들을 차분히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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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 쫄리를 배웅하고 나니 시낭송회가 이미 시작되었고, 시 읽는 소녀의 목소리와 어떤 이유에서인지 까르르르 .. 웃음소리가 들려와 궁금해져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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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끝났고, 한 청년이 거울을 싫어하는 어머니와 거울을 주워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며 시에 대한 감상을 전하고 시를 읊었다. 목소리로 듣는 시는 참 다르다. 시인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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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지긋한 어른들 부터 어린 청년들까지 가득한 다락방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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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시를 읽는다는 건 .. 밥상머리 대화와는 또 다른 어떤 이야기가 있다. 같은 시를 읽지만 각자의 느낌과 생각들 속에서 어떤 것이 느껴질지 .. 궁금하다면!!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2시 아벨 전시관 2층 다락방에 오시면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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