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인디 컬렉션, 김목인의 한 다발 시선으로 본 세상풍경(part1)

김목인 피쳐사진 18

2014년은 영기를 머금은 청마(靑馬)의 해이다. 말띠 사람들은 안정적인 것보다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것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다. 또한 유머가 넘치고 열정이 넘치는 매력적인 성격 때문에 주변에 항상 사람이 북적거린다고 한다. 그런 특성이 딱 들어맞는 말띠 뮤지션이 있다. 화려한 가창력을 구사하는 가수는 아니지만 소소한 일상을 다양한 자신의 시각으로 노래를 이야기하는 1978년 말띠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이다.

지금 서울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는 제 7회 레이블 마켓이 열리고 있다. 지난 1월 5일 그곳에서 열린 김목인, 강아솔, 빅베이비드라어버, 빅포니 등 일렉트릭 뮤즈 소속 뮤지션들의 쇼케이스 공연에 다녀왔다. 지난해 정규 2집 ‘한 다발의 시선’을 발표해 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낸 김목인의 공연과 피쳐사진 촬영에다 인터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기 위해서다. 김목인의 음악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일상을 이야기하듯 들려주는 따뜻한 언어와 다채로운 소리가 빛나는 노래로 대중과 소통하는 독특한 뮤지션이다. 그래서 공연을 앞두고 진행한 그의 피쳐사진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홍대 주차장 인근 도로에서 촬영했다. 그의 음악적 화두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휴머니즘이기 때문이다.http://player.uniqube.tv/Logging/ArticleViewTracking/tenasia/203479/tenasia.hankyung.com/1/0

김목인 상상마당 레이블 마켓 쇼케이스공연6
직 접 만나본 김목인은 자신의 노래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닮은꼴이었다. 진지함과 더불어 공연에 함께 출연하는 일렉트릭 뮤즈 소속사 식구들과 시종 웃음을 머금고 대화하는 유쾌하고 인간적인 성품은 따뜻함이 담겨있는 노래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공연 후 여성관객들이 길게 줄을 서 그에게 사인을 받으려는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인터뷰는 홍대 앞 복합문화공간 커먼인블루에서 3시간이 넘게 진행되었다. 예상과는 달리 그는 평범치 않은 음악여정을 걸어온지라 흥미로운 사연이 많았기 때문. 명문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고 인디음악 신에 진입한 뮤지션인 그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말띠 해를 맞아 앞서 언급한 말띠의 특징과 본인의 실제 성품이 얼마나 들어맞는지 궁금했다. “반반인 것 같아요. 솔직히 올해가 말띠 해인 줄도 몰랐습니다.(웃음)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가 말띠면 기가 세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도 말띠들은 성격은 좋은 데 자기주장이 강하고 기들이 쎈 것 같습니다. 저는 스스로 체계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는데 말띠에다 혈액형도 B형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은 외골수로 보더군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동갑내기 말띠들을 한동안 볼 일이 없었는데 최근에는 많이 만나게 되더군요.”

김목인 피쳐사진21 레이블 마켓에서 음반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모습
김 목인 음악의 매력은 담백함과 더불어 어수룩함이 아닐지. 노래는 스윙풍의 경쾌함이 담겨 있지만 감정의 기복이 없어 다소 심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미료가 가미되지 않은 한결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일상의 스케치하듯 들려주는 그의 노래는 은근 중독성이 강하다. 잘난 척 하는 화려한 수사도 의미가 모호한 중의적인 단어들을 늘어놓지도 않는 그의 담담한 이야기는 놀랍게도 청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단순 명료한 쉬운 가사는 문학성까지 느껴진다. 2002년 우연하게 참여한 컴필레이션 음반 ‘안녕하세요 카바레 사운드입니다’에서 ‘가정용피아노를 위한 프로젝트’로 음악생활을 시작한 김목인은 2004년 4인조 혼성밴드 캐비넷 싱얼롱즈를 결성해 솔로 데뷔 직전인 2010년까지 활동했고, 현재 솔로와 더불어 집시앤피쉬 오케스트라의 멤버로도 활동 중이다.

김목인은 충청북도 충주에서 고등학교 미술교사이면서 서양화가였던 아버지와 미술교습소를 운영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1978년 12월 26일 태어났다. 그림을 그리다 만난 부모님은 악기연주나 노래를 참 좋아하셨다. 그래서 그의 집안에는 아버지가 틀어 놓은 클래식 음악이 늘 흘러나왔다. 2살 무렵부터 김목인은 헤드폰을 끼고 LP를 가지고 노는 걸 무척이나 좋아해 사진까지 남아 있다. 정규 1집 재킷에 기타를 치는 음악가의 모습을 부감으로 그린 그림은 김목인이 직접 그린 작품이다. “서양화를 전공한 3살 아래 여동생이 사놓은 서태지나 넥스트 같은 가요음반을 듣긴 했지만 제가 찾아서 듣지는 않았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운영하는 미술교습소에서 지내 그림은 친숙하고 약간은 잘 그린다는 자신감도 있었지만 화가의 꿈은 없었습니다.”(김목인)

김목인 2살때 집에서 헤드폰 끼고 노는 모습 1979년 10월

1979년 10월 김목인 두 살 때

김목인은 초등학교 시절, 충주지역 사생대회에 나가 무수하게 입상을 했고 음악 콩쿨대회에서도 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상을 많이 받아 어릴 때 잘난 척하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사실 아버지가 사생대회 심시위원이었습니다.(웃음) 저는 호기심이 많아 남의 집에 가면 서랍 안이 궁금해 다 꺼내보는 특이한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직접 조립하는 장난감을 좋아해 그림보다는 과학자나 이공계 쪽이 적성이 맞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음악은 충주 시내가 작아 악기를 배울 곳도 별로 없었는데 어머니가 배워보라 해 초등학교 2학년부터 5학년까지 동네 피아노학원에서 띄엄띄엄 배웠습니다. 당시 충주시내 우륵문화제 어린이 사생 음악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는데 당시 피아노 치는 남자아이가 없어 남자 피아노 선생님이 전공을 하라고 했는데 관심이 없어 싫다고 했습니다.(웃음)”(김목인) (part2로 계속)

김목인 피쳐사진 32 길거리에서 만난 후배가수 빅포니와 담소

골든 인디 컬렉션, 김목인의 한 다발 시선으로 본 세상풍경(part2)

김목인 피쳐사진22

(part1에서 계속) 어린 시절 김목인은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음악과 미술이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 때까지 그는 음악적으로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었다. “중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반항적이지도 않고 뭐하고 지냈는지는 모를 가장 별 볼일 없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김목인) 당시 그는 보통 아이들만큼도 음악을 듣지 않았다. 심지어 라디오 음악프로그램도 듣지 않았던 이이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아버지께서 영화 부베의 연인, 엘비라 마디간 같은 어른 세대가 좋아하는 영화음악 악보를 시내에서 사와 손님들이 오면 늘 쳐보라 해서 너무 싫었습니다.”(김목인)

영화음악을 듣다보니 중3때 자연스럽게 영화에 관심이 생겼다. 이공계 과목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충주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문학과 글쓰기에 관심이 생겼다. “당시 수학, 과학은 잘했고 국어와 영어는 못하는 편이었는데 완전히 취향이 변했습니다. 처음으로 장래에 영화감독이 되고 싶더군요. 사실 구체적으로 영화감독이란 직업을 생각한 것은 아닌 것 같고 막연하게 첸카이거의 ‘패왕별희’와 레오 까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고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당시 영화포스터를 열심히 모으기도 했습니다.”(김목인)http://player.uniqube.tv/Logging/ArticleViewTracking/tenasia/203491/tenasia.hankyung.com/1/0

김목인 상상마당 레이블 마켓 쇼케이스공연11
음 악을 싫어했던 그가 노래를 찾아서 듣게 된 것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부터. 초중고를 같이 다녔던 친한 친구 이성호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금은 공무원인 그 친구는 지금도 제 음반이 나오면 열심히 듣고 평가할 정도로 늘 제 음악이 궁금한 죽마고우입니다. 당시 성호의 형이 음악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 형이 서울로 가면서 듣던 음악 테이프를 방안에 두고 갔는데 친구가 들어보라 해 도어즈 같은 오울드 록밴드들의 음반을 참 열심히 들었습니다.”(김목인) 자연스럽게 록음악을 좋아하게 된 그는 도어즈의 음악을 커버하고 싶어 처음으로 연주를 어떻게 하는 건지 관심이 생겨났다.

“사춘기 때 아버지가 고상한 클래식 음악과 영화음악, 연주음악만 들으시는 것이 왠지 고상하게 보이려하는 것 같아 싫었습니다. 제가 음악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냐면 고2때 너바나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요즘 밴드로 알고 들었는데 리드보컬 커트 코베인이 죽은 지 한 참 된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가수는 노래를 숨을 쉬지 않고 이어서 부르는 게 굉장히 신기했습니다.”(김목인) 고2때 친구 이성호가 학교축제 때 팀 이름도 없이 “스쿨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한다.”고 했다. 같이 해보고 싶은 마음에 합류했다.

김목인 피쳐사진 3
이 성호는 건반, 김목인은 피아노 연주가 가능했지만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을 치는 친구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기타가 없어도 가능한 익스트림의 ‘웬 아이 퍼스트 키스드 유(When I First Kissed You)’를 연습해 학교 축제에 나갔다. “학교 음악실에서 7팀이 일종의 오디션 격인 예선을 치렀습니다. 둘이서 건반을 치며 팝송을 노래하니 아이들이 재즈를 한다고 놀라워하더군요. 저희가 나갈 축제는 학교의 어학경연대회였는데 영어노래를 했던지라 뽑혔던 것 같아요.”(김목인) 베이스, 보컬, 키보드 2개 등 총 5명이 선발되었다. 성당에서 성가대 활동을 했던 김목인은 노래를 부를 줄은 알았지만 가요를 전혀 듣지 않아 아는 노래가 없었다. “다른 멤버들은 자기들이 다들 노래를 잘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카피곡만 불렀는데 녹음해둔 테이프를 이사를 하면서 잃어버려 아쉽네요.”(김목인)

직업적으로 밴드 활동이나 뮤지션이 되려는 마음은 없었지만 밴드에서 악기를 어떻게 나눠서 연주하는지 궁금했다. “음악적인 호기심은 많았습니다. 재즈나 레드 제플린 같은 하드록 음악을 피아노로 쳐보고 싶어 시내에서 테이프를 사서 열심히 들었습니다. 록음악 역사에서 거론되는 밴드들을 책에서 알게 되면 음악이 궁금하면 다 찾아서 들었던 것 같아요.”(김목인) 충주역 쪽에는 충주 유일의 합주실 ‘퓨즈’에서 지역의 헤비메탈 밴드멤버들이 레슨을 해 구경을 갔단다. “충주에 있는 대학 록 동아리 형들이 결성한 ‘포세이돈’ 같은 밴드가 있어 교류를 했습니다. 요즘 활동하는 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조웅과 임병학이 고향 후배들입니다. 당시 1살 아래 조웅은 잘 몰랐고 3살 아래 임병학은 여동생의 동네친구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두 사람은 저보다 충주에서 음악 하는 사람들과 교류가 많았을 겁니다.”(김목인)

김목인 피쳐사진 93 공연 전 대기실에서 파안대소하는 김민규 대표 강아솔 빅베이비드라이더 일릭트릭 뮤즈 식구들

공연 전 대기실에서 파안대소하는 빅베이비드라이버, 김목인, 김민규 일렉트릭뮤즈 대표, 강아솔(왼쪽부터)

학업성적이 우수했던 김목인은 영화 쪽 일을 하고 싶어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었지만 학교에서 원서를 써주지 않았다. “충주고는 공부만 시켰습니다. 선생님들도 ‘너희 라이벌은 강릉고다, 입시에서 강고를 이겨야 한다’고 했던지라 원하는 대학과 과를 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고2때 선생님과 부모님이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할 줄 알았는데 영화에 관심이 많은 걸 아시고 실망이 크셨습니다. 집안에서 처음으로 공부하는 학자가 나올 줄로 아신지라 씁쓸해 하시더군요. 걱정은 하셨지만 심하게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선생님들과 삼촌들이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면 방송PD하다가 영화도 할 수 있다고 저를 설득해 넘어갔습니다.”(김목인)(part3로 계속)

김목인 피쳐사진 39

 

골든 인디 컬렉션, 김목인의 한 다발 시선으로 본 세상풍경(part3)

김목인 피쳐사진 91

(part3에서 계속) 학업성적이 우수했던 김목인은 학교 선생님과 집안 어른들의 반대로 연극영화과 진학을 포기했다. 1997년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간 그는 영화와 음악 동아리 선택을 놓고 고민하다 영화를 공부하는 ‘시각매체’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다. “고등학교 시절, 헤비메탈 밴드들이 충주 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한다기에 구경을 갔는데 레드 제플린으로 시작해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로 끝나는 짬뽕 스타일이더군요. 그때 자신 있으면 무대에 올라와 연주해라 했을 때 저희 밴드 멤버들이 올라가려고 했었죠.(웃음) 저는 음악보다는 영화 제작에 관심이 많았습니다.”(김목인)

당시는 컴퓨터 편집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기 이전의 아날로그 시절이었다. 영화 동아리에 가입한 김목인은 2학년 때까지 8mm 비디오촬영을 열정적으로 했지만 편집 시설이 없어 완성작을 내지는 못했다. “그때는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영화연출과 연기 자체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관심 있는 걸 찍고 붙이면 영화가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당시로서는 첨단 기계 같아 열심히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그냥 친구들이 공연하는 걸 찍었죠. 그리고 홍대 쪽에 영화 수집하는 분이 운영했던 영화공간 ‘빛’에 들락거리며 영화역사에 나오는 영화들을 보고 비평하는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동대문에 있었던 독립영화협회 사무실에서 사용료를 내고 편집기를 사용했지만 작업이 너무 어려워 포기하면서 체계적인 실무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김목인)http://player.uniqube.tv/Logging/ArticleViewTracking/tenasia/206286/tenasia.hankyung.com/1/0

김목인 상상마당 레이블 마켓 쇼케이스공연13
2 학년을 마치고 영화실무 교육을 본격적으로 받아보기 위해 휴학을 한 그는 학교 선배가 운영한 청소년신문사에서 근무하면서 영화잡지 ‘시네21’에 소개된 ‘필름in’의 수강생 모집 광고를 보고 16mm 필름 촬영 워크샵에 참여했다. “영화라는 게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죠. 일단 혼자가 아닌 집단 작업이고 프레임 안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후반 작업이란 걸 알게 되면서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수강생들이 각자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를 찍기로 해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는데 제 작품이 채택되지 못해 그냥 스탭으로 일하려니 영 재미가 없더군요.”(김목인)

영화 쪽으로 빨리 재능을 인정받고 싶었던 그는 마음이 조급했다. 여름쯤에 영장이 나와 입대를 했다. 군 복무 중이었던 그해 말,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제대 후, 2001년에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영화 쪽에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시네21’ 잡지에서 평론하는 동아리 선배, 친구들을 통해 비평작업을 해보려 영화비평공모전에도 출품했지만 당선되지는 못했다. “뭔가 해볼까 하는 생각에 학교 앞에 있던 사회과학 서적을 파는 서점에 갔는데 크라잉넛의 노래가 들어있는 아우어내이션 같은 인디음반을 팔더군요. 홍대 앞에 뭐가 있다는 건 알았는데 자세히는 몰랐습니다. 그러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제1회 프린지 페스티발 독립예술제 공연에서 ‘새봄에 핀 딸기꽃’과 ‘갱톨릭’이란 인디밴드의 공연을 처음 보았습니다. 부산출신인 ‘새봄에 핀 딸기꽃’의 여성보컬은 지금 복합문화공간 무대륙의 사장님이세요.”(김목인)

김목인 피쳐사진 48
인 디밴드의 공연을 본 후, 김목인은 세션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재즈피아노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컴퓨터로 영화 편집 작업을 시작한 그는 피아노와 기타 소리를 비디오에 더빙하는 작업에 흥미를 가졌다. 홈레코딩과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우연하게 인디레이블 카바레 사운드 홈페이지에서 5주년 기념앨범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는 광고를 보았다. 지미 헨드릭스 같은 록 음악을 피아노로 조금 연주해 캠코더로 녹음한 데모 CD를 만들어 보냈다. “기성곡 연주가 아니라 자작곡을 보내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영화를 하면서 작품을 여러 번 보냈지만 단 한 번도 답장을 받지 못했던지라 신이 나더군요.”(김목인)

그때까지 김목인은 창작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곧바로 낙원상가에서 17만원짜리 키보드를 구입했다. 병실에 오래 입원해 꿈과 희망이 없는 환자의 모습을 생각하며 피아노를 반복적으로 친 창작 연주곡을 만들어 다시 보냈다. 덜컥 채택이 되었다. 바로 카바레 사운드 5주년 기념앨범에 수록된 ‘장기입원환자의 꿈’이다. 팀 이름이 필요하니 빨리 지으라는 재촉에 ‘가정용피아노를 위한 프로젝트’로 급하게 정했다. “가사 없이 연주만 했는데 곡에 대한 피드백이 조금 있었지만 사람들은 제 연주인지는 잘 모를 겁니다. 그땐 밴드들이 피아노에는 관심이 없던 시절이었어요. 카바레사운드 작업실에 피아노가 없어 이성문 형과 충주 고향 집에 내러가 녹음을 했습니다. 형이 제 방에 있는 테이프 진열장을 보고 음악을 꽤 듣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김목인)

김목인 상상마당 레이블 마켓 쇼케이스공연15
본 격적으로 음악을 해보고 싶어 집에 있는 기타를 가지고 올라왔다. 2001년 5월. 당시 카바레 사운드에서 일했던 김민규(현 소속사 일렉트릭 뮤즈 대표)가 망원역으로 오라는 연락을 했다. 처음으로 작업실에서 밴드의 합주 모습을 구경했다. “갑자기 전문가들을 만났다 생각하니 당황스러웠지만 저를 써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때 제가 건반을 친다고 하니까 밴드 ‘오 브라더스’ 멤버들이 피아노로 로큰롤 곡도 치냐고 묻더군요. 뭔가 해보고 싶어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해 ‘오 브라더스’ 라이브 때 가끔 세션으로 피아노를 치게 되었습니다.”(김목인)(part4로 계속)
 

 

골든 인디 컬렉션, 김목인의 한 다발 시선으로 본 세상풍경(part4)

김목인 피쳐사진 71

(part3에서 계속) 쌈지와 월드컵 경기장 지하철 역 구내에서 진행된 카바레 사운드 5주년 기념 공연에 참여한 그는 밴드와 합주를 하면서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하지만 레이블에선 한동안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홍대에서 음악 하는 친구들에 관심을 가지고 공연을 보려 다니기 시작했다. 2001년 시민단체 ‘문화연대’에서 다큐영상 찍는 스태프로 참여한 그는 집회나 토론회를 기록했다. ‘문화캠프’라는 여름캠프를 촬영하러 갔다 ‘퍼포먼스 반지하’란 모임을 알게 되면서 외부활동 많아졌다. 모임은 퍼포먼스에 대한 철학이 강력했다. 자연스럽게 연기론, 인생을 표현하는 방식을 위한 워크숍에도 참여하면서 김목인은 가사쓰기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공부를 심도 깊게 하게 되었다. 그 모임은 이후 4인조 혼성그룹 케비넷 싱어롱스의 멤버들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 번 맛을 본 음악에 대한 갈증이 생겼지만 아무 연락이 없어 김민규가 리더로 활동하는 혼성듀엣 플라스틱 피플 공연에 찾아가기도 했다. “나중에 민규 형이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앨범작업에 참여하는 세션이 아니라 카바레사운드에서 직원을 뽑는데 관심이 있냐고 하더군요. 무조건 관심이 있다고 했죠.(웃음)”(김목인) 2003년 여름 카바레 사운드에 취직하면서 대학을 그만 두는 중대 결심을 했다. “어머니가 막연하게 아들이 창작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실을 아셨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아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당시 작은 것이라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모르는 분야에서 일하면서 배우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김목인)http://player.uniqube.tv/Logging/ArticleViewTracking/tenasia/206303/tenasia.hankyung.com/1/0

케비넷 싱얼롱즈 2006년 높빛어린이세상 덕양어울림놀이 공연후

케비넷 싱얼롱즈 2006년 높빛어린이세상 덕양어울림놀이 공연(사진제공 일렉트릭뮤즈)

카바레사운드에서 제작, 홍보 쪽 일을 시작한 그는 케비넷 싱어롱즈 멤버가 될 친구들과 합주를 하면서 2004년 정식으로 밴드를 결성했다. 처음 자작곡을 연주하는 밴드라기보다 음악을 좋아하는 멤버들이 모인 이름도 없는 아마추어 같은 밴드였다. “가끔 데모도 만들었는데 멤버들이 인디레이블에서 일하고 있으니 관심 많은 친구들은 저희를 거의 전문가인줄로 알았죠.(웃음)다. 가끔 데모도 만들었는데 멤버들이 인디레이블에서 일하고 있으니 관심이 많았다. 처음 4인조로 시작했는데 창작 작업을 바로 시작하진 않았고 저는 플라스틱 피플의 건반 세션으로 한동안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건반을 치시지만 초창기 플라스틱 피플에선 윤주미 씨가 드럼을 치면서 보컬까지 했었습니다.”(김목인)

케비넷 싱어롱즈 멤버들은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버스킹 문화를 알게 되면서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연주를 하면서 악기조합에 변화를 주는 실전경험을 쌓으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창작을 시작한 것은 친구들의 캐릭터를 재미삼아 노래로 만들어보면서부터. “2003년에 처음 노래를 만들었는데 간단하게 친구들 이야기를 담은 포크송 같은 ‘모닝담배 블루스’입니다. 녹음 한 적은 없습니다. 그 다음 만든 노래는 2004년 겨울에 카바레사운드에서 캐럴앨범을 제작했을 때 성문형이 만들어 해보라해 멤버들이 공동 작업으로 습작처럼 만든 ‘어느 밴드의 캐럴송’입니다. 정식으로 녹음을 하면서 ‘케비넷 싱어롱즈’라고 밴드명도 지었습니다. 저희가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본 어떤 아저씨가 니들 보니 옛날 싱어롱하던 때가 생각나 재미있다고 말해주더군요.”(김목인)

케니넷 싱얼롱즈 2005년 달리는놀이터 공연 원산도행 배에서

케니넷 싱얼롱즈 2005년 달리는놀이터 공연 원산도행 배에서(사진제공 일렉트릭뮤즈)

처음 멜로디가 쉬운 러시아 민요나 팝송 같은 이런 저런 커버 곡을 짬뽕처럼 노래했던 이들은 자작곡을 만들면서 2005년 디지털 음원으로 ‘노래는 멀리 날아가리’를 발표했고 광복60년 기념 문화사업교류로 사할린에도 방문했다. 2006년 자작곡들로 구성된 정규 1집 ‘리틀 팬페어(LITTLE FANFARE)’를 발표했다. 멤버 모두 그림을 그렸지만 앨범 재킷을 장식한 그림은 김목인의 그림으로 채택되었다. 길거리 음악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가득한 앨범에는 방안에서 혼자 기타를 치며 부르는 노래부터 다 함께 부르는 노래까지 마치 내 이야기로 느껴지는 무려 15곡이 수록되었다.

케비넷 싱얼롱즈는 인디 신에서도 겉도는 독특한 밴드로 지방에 까지 입소문을 타면서 특히 영화제에 많이 초대를 받았다. “음악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친구들이라 여기저기에 일거리가 연결되었습니다. 저희는 마인드는 프로가 아니었지만 공연수익으로 생활을 했을 정도로 프로처럼 활동하면서 여러 공연 기획자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유분방한 밴드였지만 레이블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어 스트레스도 많았습니다.”(김목인) 유럽여행을 떠났던 2007년 고향 후배들인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조웅, 임병학이 회사로 데모를 보내와 만났고 2008년에는 집시앤피쉬 오케스트라 멤버들과도 만났다.

김목인 상상마당 레이블 마켓 쇼케이스공연12
친 구들 모임 같은 자유로운 스타일로 밴드를 운영했기에 멤버들은 음악적인 욕심이 없었다. 당연 활동은 제한적이었고 점차 멤버간의 연주 실력에도 편차가 나기 시작했다. 2010년 카바레 사운드를 그만둘 때까지 밴드활동은 병행되었다. “일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회사이면서 음악인들의 공동체인 작업실인지라 경계가 불분명했어요. 활발하게 밴드를 한 것도 아니었고. 창단멤버로 아코디언를 연주하며 보컬도 했던 여성 멤버 차지은은 마지막까지 남았던 친구입니다. 특이하게 뭘 해보자는 건 아니었고 둘이 하니까 함께 낭독을 해보기도 했죠. 1집에 나레이션을 넣은 것은 그 연장선상입니다.”(김목인) (part5로 계속)

 

 

 

골든 인디 컬렉션, 김목인의 한 다발 본 세상풍경(part5)

김목인 피쳐사진 86

(PART4에서 계속) 혼성밴드 케비넷 싱어롱즈는 1집 발표 이후, 팬클럽이 생겨났을 정도로 예상치 못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멤버 대부분은 음악이 본업이 아니었기에 활동이 부진했다. 이에 멤버들은 진지하게 음악 작업을 했던 김목인에게 솔로 활동을 권유했다. 천성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김목인은 밴드에서 독립해 솔로 뮤지션이 되려는 마음이 없었다. “밴드 활동이 불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활동이 뜸하니 새로 만든 노래가 쌓여 가는데 발표를 못해 답답했습니다.”(김목인)

인디레이블 카바레 사운드에서 5년 정도 일하는 도중에 그를 음악 신으로 인도했던 김민규가 자신의 레이블 ‘일렉트릭 뮤즈’를 창립하며 회사를 나갔다. 2010년 김목인도 퇴사를 했다. 케비넷 싱얼롱즈의 활동이 지지부진했지만 김목인은 곧바로 솔로 데뷔를 꿈꾸지 않았다. 여성멤버 차지은과 듀엣활동을 간간히 했던 그는 다른 멤버 스캥크와 함께 홈레코딩을 시도했지만 무산이 되면서 막다른 골목에 봉착했다. “활동을 쉬고 있을 때, 민규 형이 가끔 건반 세션을 해달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솔로 앨범을 제안했을 때, 솔직히 레이블 일에 질려 있어 고민을 좀 했습니다. 결국 비즈니스로 이어지겠지만 그래도 민규형은 내 곡을 성심성의껏 들어줄 거라는 신뢰가 있어 녹음이 잘 되는 쪽으로 생각하고 해보자는 말에 결국 솔로 데뷔앨범 제작을 결심했습니다.”(김목인)http://player.uniqube.tv/Logging/ArticleViewTracking/tenasia/209125/tenasia.hankyung.com/1/0

김목인 벨로주 공연

2011년 솔로 1집 녹음에 들어가기 전 김목인은 여러 가지 자기 검열 과정을 거쳤다. 밴드활동이 중단되어 혼자 홈레코딩을 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이것저것 노래하기보다는 이왕이면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새로운 스타일로 가보고 싶었다. “밴드 때는 멤버들이 제 곡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노래마다 어떤 감성인지에 대해 전달이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음악가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중간자적 입장에서 음악에 대한 입장이나 주변의 반응들을 제 시선으로 솔직하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김목인)

연주에 신경을 많이 썼던 밴드 앨범과는 달리 솔로 데뷔앨범은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음악적 방향을 잡고 데모 제작에 들어갔다. 노래마다 제목을 붙이면서 제작이 끝나갈 무렵에 케비넷 싱어롱즈 1집에서 시도했던 내레이션 곡을 하나 넣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자신의 제안을 김민규 대표가 100% 수용할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고집이 강한 민규 형은 트랙순서, 악기구성에 아이디어가 참 많아요. 앨범 두 장을 함께 작업하면서 편곡은 제가 많이 했지만 트랙순서와 믹스, 마스터링은 형에게 맡기는 편입니다. 10곡을 들어본 형이 내레이션 곡을 1번 트랙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솔직히 저는 1번 트랙을 그저 평범한 팝이라 생각했는데 제 앨범은 구현동화에 가깝기에 그 느낌이 잘 살아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습니다.”(김목인)

김목인 피쳐사진 59
1 번 트랙은 바로 김목인 정규 1집 ‘음악가 자신의 노래’에 수록된 ‘음악가, 음악가란 직업은 무엇인가?’다. 김민규 대표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같은 질문에 줄기차게 다른 대답을 제시하는 자문자답 형식인 이 곡은 솔직히 노래라기 보단 이야기에 가깝다. 그의 재치 넘치는 화법에는 기본적으로 음악가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녹아 있다. 2011년 발표한 그의 솔로 1집은 동료 음악가들의 감탄을 불러내며 ‘음악가의 음악가’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영미권 음악을 들으면서 감정이 파도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도 루 리드나 앤디워홀처럼 연극적인 것을 좋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습니다.”(김목인)

‘음악가 자신의 노래’라는 앨범 타이틀은 시인 월트 휘트먼의 ‘나 자신의 노래(Song of Myself)’와 비슷한 의미로 김목인 개인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모두의 이야기로 흘러든다. 1집 녹음은 그의 충주 고향집에서 첫 레코딩 때 연주했던 가정용 피아노와 클래식기타 연주와 주변 소음까지 자연스럽게 포용하는 자연스런 음향을 담아냈다. 케비넷싱어롱즈, 집시앤피쉬 오케스트라 멤버들과 동료 음악인(더블베이스 이동준, 집시스윙기타 이호석, 아코디언 박혜리, 바이올린 조윤정, 드럼 장희원, 하모니카 허세정, 코러스 황진영, 윤주미)들이 세션에 우정 참여했다. “2008년부터 집시 앤 피쉬 오케스트라 멤버로 활동하면서 집시 스윙기타리스트인 장고 라인하트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1집에서 저보다 연주를 잘하는 분들과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은 낙원상가에서 기타 제작을 했던 노상백사장님이 운영하는 카페 ‘홍대 물고기’에서 음악적 교류를 많이 했던 덕분입니다. 하림형이 중심적 인물이고 아코디언 연주하는 바드의 박혜리도 그렇게 알게 되었습니다.”(김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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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록곡들은 각기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연히 마주친 낯선 이와의 사연(꿈의 가로수길), 바쁘냐고 묻는 음악가의 이야기(일주일에게), 문을 닫는 단골 카페에 바치는 뮤지컬의 수록곡(뮤즈가 다녀가다), 음악 신에 대해 거는 말(씬), ‘글렌 굴드에 관한 32개의 이야기’란 영화를 보고 쓴 이야기(글렌 굴드), 음악가란 직업의 특수성에 대한 생각(음악가의 밭) 등 세상과 자신의 일상을 명민하게 스케치한 그의 가사들은 제법 문학성까지 느껴질 정도로 정겹다.(part6로 계속)

 

 

골든 인디 컬렉션, 김목인의 한 다발 시선으로 본 세상풍경(part6)

김목인 벨로주 공연21

(PART5에서 계속) 김목인의 따뜻한 노래는 그의 분신이다. 그는 주변사람들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해주고 무엇보다 확실하게 웃어주는 리액션으로 친근감을 주는 뮤지션이다. 실제로 만나본 김목인은 자신을 근사하게 포장하거나 꾸미려 하지 않았다. 그의 음악도 인간미 넘치는 그와 붕어빵이다. 누구나 공감하는 편안하고 재치 넘치는 가사, 감성을 파고드는 밝고 경쾌한 스윙풍의 선율, 다양한 악기들의 적절한 편곡과 청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는 오직 그만이 구사하는 너무나 평범해서 오히려 특별한 가락이다.

1집을 발표한 후 활발한 활동에다 2012년 결혼까지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2집 준비에 들어갔다. 2집은 콘셉트를 정하지 않아 1집보다 자신감이 붙었지만 노래 제목을 정하고 앨범의 통일성을 찾는 과정이 힘들었다. 2013년 ‘한 다발의 시선’이란 타이틀로 각기 다른 시공간 속에서 바라 본 12가지 세상 이야기로 꾸민 2집을 발표했다. 네이버 ‘이주의 발견’에 선정되며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포크에서 집시 스윙, 보사노바, 클래시컬한 시도까지 다양한 장르음악은 이번에도 동료 음악가들의 참여로 근사하게 갈무리되었다. 예술가 지망생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던 방 풍경과 느낌을 노래한 ‘지망생’부터 쓸쓸한 겨울 이미지를 담은 ‘흑백사진’까지 독백 같은 그의 노랫말은 더욱 쉽게 청자의 귀를 파고든다. 특히 전작에 비해 멜로디가 강화되었고 일상 속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하나의 통일된 앨범으로 만드는 그의 음악적 능력도 한결 진화했다.

김목인 피쳐사진 60
2 집도 스윙재즈 같은 빈티지 풍의 나른한 사운드가 여전하다. 음폭의 고저가 없는 담담한 김목인의 목소리는 마치 뮤지컬처럼 다채롭게 리듬을 타니 기분 좋은 중독성까지 발휘한다. “곡을 꾸준히 쓰고 싶지만 창작 작업은 현실적으로 힘든지라 앨범 발표 기간은 2년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아쉬움은 있지만 앨범 작업하면서 늘 공부가 됩니다. 2집에선 음악적으로 다른 걸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인위적으로 스타일을 바꾸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변한 관심대상에 집중했습니다. 솔직히 2집까지는 곡을 만들 때, 작곡 기법보다는 가사에 어울리는 편곡을 하는 정도였습니다.”(김목인)

빈티지 풍의 나른한 사운드에다 음폭의 고저가 없는 김목인의 목소리가 마치 뮤지컬을 구현하는 것 같은 2집은 중독성 가득한 음악선물을 ‘한 다발’ 받은 것 같다. 김목인의 음악은 치밀하게 곡의 흐름을 치밀하게 계산한 깔끔하고 세련된 웰메이드 음악과는 거리가 있다. 편안하고 꾸밈이 없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음악적으로 평범하고 심심해 보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랑과 혼성듀엣으로 부른 ‘불편한 식탁’ 같은 근사한 노래가 있지만 솔직히 수록된 12곡 중에는 임팩트가 강한 특별히 튀는 곡은 없다. 문제는 모든 수록곡을 다시 듣고 싶어 안날이 날 정도로 뺄 곡도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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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목인은 2집을 만들면서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 보였고 사람들의 말은 더욱 격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시기는 분석하고 논쟁하기엔 좋지만 차분하게 노래를 만들기엔 적절치 않다. 그러니까 노래로 만들 수 있는 사건이나 떠오르는 말들은 많았지만 그는 노래를 쓰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음악은 뭔가 말하기 위한 좋은 수단으로서가 아닌 그 자체의 감동으로 제게 점점 다가옵니다. 앨범에 직접적으로 담겨있지는 않지만 방에서 피아노로 좋아하는 곡들을 연습하다 좋은 순간이 있으면 그 분위기를 작품에 옮겨보려 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2집은 음악이 지닌 그런 깊은 결에 좀 더 집중해보고 싶은 생각과 여전히 뭔가 기발한 걸 들려주고 싶은 생각 사이를 오가며 작업한 결과물입니다.”

지난 1월 19일 홍대 앞 라이브클럽 벨로주에서 열린 ‘새해의 포크 공연’에서 김목인은 콘트라베이스를 동원해 한층 깊이 있는 소리를 구현했다. 여성싱어송라이터 빅베이비드라이버와 혼성듀엣으로 들려준 ‘사려 깊은 밤’도 참 좋았다. 이는 예전에 많이 듣지 않았던 클래식 음악을 요즘 즐겨 들으며 생긴 그의 음악적 변화다. “클래식은 작품을 해석하는 영역이 광범위한 것 같아요. 영역은 다르지만 저는 음악을 너무 쉽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음악은 이야기가 중심이기에 주변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 작곡자로서 새로운 것을 써보고 싶은 욕망이 생깁니다. 클래식은 참 섬세한데 제 곡은 멜로디와 이야기가 나오면 땡인 것 같아요. 밴드시절에도 멤버들이 편곡을 할지 몰라 파트를 주먹구구로 적어주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면 어수선해 아쉬웠습니다. 여력이 되면 리듬이나 질감보다 화성 쪽으로 어떻게 다른 시도를 해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김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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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인 데뷔앨범 안녕하세요 카바레사운드입니다(2002), CHRISMAS MEETS CAVARE SOUND(2004), 캐비넷 싱얼롱즈 1집 Little Fanfare(2006), 김목인 1집 음악가 자신의 노래(2011), 김목인+빅베이비 드라이버 싱글 사려깊은 밤(2012), 김목인 2집 한다발의 시선(2013)

김목인은 평범한 삶의 시공간을 자신의 시각으로 스케치한 이야기로 대중과 소통하는 싱어송라이터다. 순박한 어쿠스틱 사운드에 일상의 언어로 채색한 그의 노래는 사실 평범하고 어눌한 구석도 있다. 하지만 화려한 가창력이 없이도 청자를 몰입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놀라운 힘이 그에겐 있다. 편안하게 들려주는 그의 세상살이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는 마법 같은 경험은 이제 클래식으로 채색된 한 차원 다른 고급스런 멜로디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3집이 벌써부터 기대되는 이유다.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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