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서천석(마음연구소)


책임감이란 무엇일까?

내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다. 이 답변은 얼핏 보면 쉬워 보인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적잖은 사람들이 싫든 좋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금 박근혜 정권의 장관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일을 한다. 청와대에 머무는 공무원들 역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면서 맡겨진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부터 제대로 해내야지, 그건 방기하고 엉뚱한 짓을 하면서 다녀서야 되겠냐고. 일단은 할 일은 하고 자기 할 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그런데 자기에게 지금 주어진 일을 하면 그것이 책임을 다 하는 것일까? 여기서 묻게 된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과연 무엇인가?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아마도 위에서 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하면 우리는 책임을 다하는 것일까? 공무원이라면 국민에게 봉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신의 일이 유일한 권력자인 국민에게 봉사를 하는 것이어야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만약 위에서 시킨 일이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일이 아니라면, 오히려 국민을 배신하는 일이라면 그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셈이다. 스스로는 책임감을 다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떤 책임도 다 하지 않으면서 그저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순응을 책임감으로 생각한다. 또 반항을 무책임이라고 여긴다. 분명 책임감있는 순응도 있고 무책임한 반항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책임감 없는 순응도 있고 책임감에 기반한 반항도 있다. 책임감 있는 삶이란 스스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자신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지 묻고 그에 맞춰 진실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저 주어진 일을 하고, 상황에 순응하면서 사는 것이 책임감 있는 삶의 태도는 아니다.


부모의 책임감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약하다.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기 쉽다. 어른이 되었고, 아이를 낳아 키운다고 해도 어떤 것이 올바른 삶인지 생각하지 못할 수 있다. '인생이 별 것 있겠나?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적당히 상황에 맞춰서 살며 편안하면 그만인 거지.'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아이에게 나름 책임을 다한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같이 놀고, 공부도 시키고, 못 하면 야단도 친다. 힘들어 할 때는 도와주고 마음 아픈 일이 아이에게 생기면 같이 마음아파 한다. 어쩌면 이만해도 충분히 좋은 부모다.


하지만 이 부모들은 갈등 상황에 놓일 때 혼란을 느낀다. 아이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존중해야 할지, 공부에 대해 얼마나 강요해야 할지, 아이의 삶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이런 복잡한 고민 앞에 서면 무력감을 느끼고 그저 사회의 일반적 기대에 순응하고, 아이에게도 순응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렇게 순응하며 아이에게도 순응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책임있는 부모의 모습일까? 아이를 제대로 돕고 제대로 키운다는 부모의 책임을 다하는 것일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나름 생각을 가진 부모라도 막상 육아를 하다 보면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기란 쉽지 않다. 현실을 제대로 모른 채 가졌던 생각이라면 현실에 부딪히는 순간 무너진다. 또 자신과 아이가 부딪혀나갈 현실이 너무나 강고해 보여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는 것이 두려울 수 있다. 그래서 잠시 반항하고 저항하지만 그저 순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아이 인생은 아이 인생이라며 내버려 두는 것이 책임감 있는 태도는 아니다. 깊은 고민없이 무조건적인 저항적 태도를 선택한다고 책임감 있는 부모도 아니다.


책임감이란 이처럼 만만치 않다. 책임감 있는 태도를 꾸준히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책임감을 유지하려면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때론 어려움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을 망치지 않고 상황을 무리없이 처리하려면 지혜도 필요하다. 아이를 키워가는 과정에서도 끊임없는 고민과 결단, 그리고 정성이 들어간다.


지금의 부모 세대는 성장 환경 자체가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책임감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자율성을 존중하는 환경에서 성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기성 세대 중 상당수는 그저 순응을 책임감으로 착각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무엇인가? 그 일의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내가 놓인 상황은 어떠한가? 주어진 상황을 망치지 않으면서도 본질적인 가치에 충실하기 위해 나는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참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이런 삶의 태도가 오랫동안 몸에 배어있다면 그리 힘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삶의 태도를 만들어주기 위해 우리는 아이들을 존중하고, 선택하게 해야 한다. 선택을 책임지게 하고, 책임진다면 존중해야 한다. 실패에서 배우고 격려하며 앞으로 나가게 해야 한다. 스스로 선택할 힘이 있음을 알고, 지금의 자기 모습도 자신이 선택하였음을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은 진정한 책임감을 갖는다.


쉽지 않다. 나도 배워보지 못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가치있다. 이것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부모로서 나의 책임이다.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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