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따사로운 금요일 오후, 경기예술고등학교 미술 동아리 ‘마스터피스’ 친구 6명이 배다리 답사에 나섰다. 이 동아리는 그림쟁이 학생들이 모여 미술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들을 외부 단체에 기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는 함께 할 단체를 배다리마을로 정했다. 오늘 나들이가 배다리마을과 함께 하는 동아리 활동의 첫 출발이다.
배다리 지도 들고 본격 답사 시작
동인천역 밖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중앙시장이다. 예전에는 결혼 예단과 예복을 사러 온 사람들 때문에 북새통을 이뤘다고 하는데 요즘은 거리가 한산하다. 사람은커녕 포켓몬도 하나 없는 불모지라며 학생들이 깔깔댄다. 시장통을 빠져나오니 4차선 도로 건너편으로 배다리가 보인다. 공예방들로 가득한 지하 공예상가를 지나 계단을 오르니 드디어 ‘배다리마을’이다.
예전에는 이곳이 배가 드나들던 갯골이어서 동네 지명이 ‘배다리’ 이지만, 지금은 망원경을 들고 아무리 멀리 내다보아도 바다는 보이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먼 옛날 갯골을 따라 배를 타고 멀리 강화, 김포에서 물건을 지고 오는 사람들로 부산했을 시장모습을 잠시 상상해 본다. 배다리 초입에 있는 ‘배다리안내소’에 들어가니 고양이 지킴이, ‘반달이’가 우리를 반겨준다. 이곳은 배다리마을의 소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쉼터를 겸한 책방이다. 안내소 주인장이자 이번 동아리 활동의 매니저 역할을 해 줄 배다리마을 활동가, ‘청산’과 이야기를 나눈 뒤 마을그림지도를 들고 본격적인 답사에 나섰다.
▲아벨서점 시 다락방
첫 방문지는 ‘아벨전시관 시 다락방’. 오래된 책 전시와 시 관련 행사들이 열리는 곳인데, 옛 모습을 살려 곽현숙 사장님이 직접 만든 공간이다. “여기 시 다락방의 오래된 벽돌에는 얼룩들이 있어요. 시간이 만들어 놓은 그림들이죠. 일상이 시간과 어울려 만들어 놓은 얼룩을 새로운 눈으로 발견해서 표현하는 것, 그런 게 그림이 아닐까요?” 그림쟁이 학생들에게 사장님이 시와 같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오래된 벽돌 위에 새롭게 쌓아 올린 벽돌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간이 참 근사해요. 시다락방에서 열리는 ‘시인과 함께 하는 시 낭송회’에 와 보고 싶어요.” 박기효(경기예고 2년) 학생이 벽을 손바닥으로 쓸어보며 말했다.
‘스페이스빔’, ‘박 의상실’, ‘나눔가게’ 등 다양한 공간 구경
두 번째 방문지는 대안예술공간 ‘스페이스빔’. 건물 앞 깡통 로봇과 눈 맞춤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니 이곳에도 고양이 지킴이, ‘낙낙이’가 졸린 눈을 하고 있다. 스페이스빔 활동가, 서예지 미술가의 안내로 공간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막걸리를 만들던 양조장이었는데 지금은 예술가들의 작업과 전시, 교육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 스페이스빔에서
“각 공간마다 양조장 시절 모습이 남아 있고 발효실, 고두밥실, 숙성실 같은 이름이 그대로 붙어 있어요. 문짝, 창문, 천정 모든 게 낡아서 더 재미있어요.” 최한결(경기예고 2년) 학생이 고양이와 장난치며 신기해한다. 이곳에 마련된 생활 전시관도 둘러보고, 작년에 기획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던 ‘배다리 생태놀이 숲’ 조성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배다리마을에는 잘 쓰지 않게 된 물건들을 가져와 서로 나누는 ‘나눔가게, 돌고’가 있다. 나에게 필요 없어진 물건들을 메모와 함께 놓아두면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 사용하는 무인 교환 장소이다. 벽에는 이야기가 적힌 메모지가 빼곡하게 붙어있다. 동아리 학생들은 이곳에서 나눌 물건들을 집에서 챙겨왔다. 문구용품, 가방, 액세서리 등등. 6명이 들어서니 꽉 차는 작은 공간이지만, 마음만은 풍성해지는 곳이다.
▲'나눔가게, 돌고'앞에서
생태놀이 숲으로 가는 길에 ‘박 의상실’에 잠깐 들렀다. 박태순 디자이너가 활짝 웃으시며, 옷이나 재봉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들르라고 말씀해 주셨다. 생태놀이 숲 초입에는 커다란 목각 로봇이 마을 안내도 옆에 서서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다. 이곳은 산업도로로 예정된 부지였는데, 공사가 중단되면서 빈 공터로 남게 되었다. 시간과 자연이 만들어 놓은 생태계 속에 마을 주민들이 일궈 놓은 소박한 텃밭과 여기저기 놓인 친환경 놀이기구들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다. 사다리로 만든 다리도 건너고, 정자에도 앉아 보고, 사각 시소도 타고, 윈드 차임으로 동요도 연주해 보았다. 들꽃으로 가득한 생태놀이 숲에서 어른들은 텃밭을 가꾸고 아이들은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그려본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도깨비 숨결이 머문 헌책방에서 한아름 책도 사고
기찻길 옆, 양지 바른 ‘벽화마을’과 좁은 골목길을 지나 감리교 여선교사 기숙사 건물까지 올라갔다. 이곳은 개항기 때 선교와 교육을 위해 건너온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지어진 학교와 기숙사 건물이 남아있어 근대의 역사를 둘러 볼 수 있었다. 벽돌로 지어진 아름다운 서양식 건축물들이었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건물이에요. 저 계단으로 올라가서 창밖을 보면 참 근사할텐데.” 두 눈을 현관문 유리에 대로 건물 안을 들여다보며 학생들은 아쉬워했다. 내려오는 길에 ‘한점 갤러리 카페’에 들렀다. 이곳은 작은 전시공간이 있는 카페인데, 주인장 ‘강’은 사진작가다. 지금은 엘살바도르에서 온 화려한 색감의 그림과 주인장이 그린 그림들이 전시 중이었다. 이곳에서 마스터피스 동아리 작품 초대전을 해보자는 주인장의 제안에 학생들은 신나 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서
이젠 헌책방에서 책을 고를 시간이다. 10대들은 헌책이라는 개념이 생소하고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것에 익숙하지만, 바닷가에 가면 물고기를 먹고 브로드웨이에 가면 뮤지컬을 봐야 하듯이 헌책방 골목에 왔으니 헌책을 사는 것은 당연한 일! 게다가 도깨비의 숨결이 머물렀던 책들을 살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한아름 가득 미술 관련 서적과 소설책을 샀다.
▲ Bag메고
배다리 안내소가 있는 조흥상가 건물로 다시 돌아왔다. 조흥상가는 지어진 지 60년이 넘는 건물로, 배다리안내소 외에도 가죽공방 ‘Bag메고’와 “요일가게”가 들어 있다. ‘Bag메고’에서 주인장 ‘록산’이 만든 공예작품들과 가죽공예에 사용되는 다양한 기구들을 둘러보고, 마지막 방문지 ‘요일가게’로 향했다. 이곳은 옛날에 창고 건물로 지어진 곳인데, 지금은 요일별로 주인이 바뀌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벽돌벽과 높은 천정이 있는 멋진 공간에 반해서 다음번 동아리 모임을 이곳에서 하기로 했다.
▲ 배다리 요일가게
오늘 동아리 학생들은 배다리마을 구석구석에서 마을사람들이 소중하게 가꾸어 나가는 삶의 모습과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낡은 것을 버리지 않고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인상적이었어요. 빨리빨리와 새로운 것을 강조하는 요즘에도 이런 분들이 지켜나가는 마을이 남아있다는 것에 감명 받았어요.” 아파트로 이루어진 신도시에 거주하는 박민아(경기예고 2년) 학생에게는 오래된 구도심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아파트 키즈’로 살고 있는 이 학생들이 그려 나갈 배다리마을 모습은 어떤 것일까? 삶이 스며있어 아름다운 배다리마을과 미술동아리 마스터피스 그림쟁이들이 함께 만들어 갈 앞으로의 활동이 무척 기대된다.
[글·사진 박수희 I-View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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