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오후에 비가 오거나 눈이 올꺼라는데?' 했더니 엄마는 '햇빛이 짱짱한데 무슨!' 하신다. 오후 3시인 지금 .. 날이 흐려졌다. 몸은 으슬으슬 .. 며칠 목이 까끌거리고 아프더니 기어이 콧물이 나온다. 감기다.

오늘은 찻잔과 찻주전자를 씻었다.

어제는 갑작스래 차거워진 날씨에 속이 좋지 않아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었다. 주먹밥이나 사발면이라도 먹어야 약을 먹을까 싶어 작업실을 나섰는데 모퉁이 '귬 작업실'에 불이 켜져있었다. 창문으로 살짝 들여다보니 작업중이다. '똑똑!!' 유리문을 두드렸더니 문이 열린다.
잘 지냈어?' '오랜만이예요, 잘 지냈어요? ..' 작업찻주전자 뚜껑을 물레에서 떼어내며 규미가 인사를 했다. '불이 켜져있길래 .. 식사했어? ..' '아뇨, 아직..' '새우탕 사발면 사러가는 중 .. 먹을래? 내가 쏠께!' '네 ^^'
그녀의 작업실은 작고 따뜻하다. 물론 오랜만에 환한 빛이 채워지기도 했지만 훈훈하고 온화한 작업실의 연두빛 온기가 함께 흐르는 것 같다. 그녀의 작업실에 있으면 갑작스레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부드러운 기운이 가볍게 움직이는 느낌을 받는다.
컵라면을 먹고 근황을 나누면서 그년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따뜻한 하얀색 다시 세트를 내온다. 뜨거운 물로 다기를 데우며 몸은 어떤지, 올해는 뭘 하는지, 하던 일은 잘 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잔을 데운 후 그 물을 차탁에 버리고 연한 초록빛 차를 따라 건넨다. 라면의 조미료맛이 걷어지고, 입안이 맑아진다. 문선이 이사때 마셨던 차가 생각이 났다.
가끔 규미의 작업실에 들면 홍차며 세작, 허브차를 다양한 작업자들의 다기로 만날 기회를 얻는다. 다기를 데우고, 물을 끓이고, 간단한 다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시간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그러고 나면 며칠 그렇게 다기를 거내고, 묵은 차를 꺼내 우려마신다.

오늘 아침, 빛은 좋았지만 더 쌀쌀해진 날씨에 어제 그 차가 떠올랐다.
물을 끓이면서 다기를 찾았다. 나비가 준 차주전자(다관)와 차가 있고, 영진이 준 중국 다기세트도 눈에 들어왔는데 주전자가 보이지 않았다. 규미 작업실에서 만든 숙우와 찻잔을 꺼내 먼지를 닦고 따듯해진 물을 담았다. 펄펄 끓은 물을 무심히 찻잎에 부었다가 얼른 따라냈다. 원래 첫 물을 버리는 과정이 있지만 너무 뜨거운 물로 하면 쓴 맛이 난다. 차에 대해 잘 몰랐을때 뜨겁고 쓴 차를 마시고는 녹차등에 대한 인상이 나쁘게 남았었다.

가을이었는지 봄이었는지 초여름이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친구와의 여행중에 우연히 다른 여행자에게 차를 대접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대나무숲 가운데 찻집이 있었고, 그때 대나무 숲을 흔드는 바람속에서 마신 차는 참 부드럽고 편안하고 향기로왔다. 다행히 그 이후 차에 대한 내 인상이 달라졌다.

좋은 차를 잘 우려야 향기롭다는 걸 알았다.

식힘잔(숙우)에 물을 따르고, 다관에도 좀 식힌 물을 따랐다. 약간 쓴맛이 우러나긴 했어도 나름 성공적. 천천히 차를 마시며 창 밖을 봤다. 맘에 드는 풍경은 아니어도 익숙해진 창밖을 보며 생각은 다른 곳으로 흘렀다. '아침에 이렇게 차 한 잔 좋네, .. 전기포트로 물을 끓이고, 물을 끓이는 동안 카페 문을 열고, 다기를 준비해야지. 차는 다행에서 마시는 게 좋겠어. 이동진의 책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네 .. 카페의 재즈가 흘러오지 않는다면 말야 ..' 그렇게 생각이 이어졌다. 
 
다시, 흩어지고 먼지 낀 일상을 다듬어갈 시간이다.
차 한 잔이, 시 한 수가 위로가 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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