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빗소리에 잠이 깼다. 아니 빗소리에 잠을 설친 거겠지? 여튼 뭐 대략 그렇다.
출근준비하려 옷을 갈아입는데 어깨가 아팠다. 오십견이란다. 뭐 아직은 살만하니 그냥 산다. 시간이 나서 병원을 가봤는데 일상에서 가능한 치료가 아니다. 시간이 될 때 다녀봤는데 효험이 거의 없었다. 보험적용이 적어 비용도 비쌌다. 무지 아파서 일상의 지속이 힘든 상황이었으면 도움이 됐으려나? 운동하면 위험하다던 의사의 말을 듣고 치료를 그만두었다. 통증클리닉 정도였던거 같다. 다시 스트레칭을 신경쓰기로 했다.
(역시, 일기라는 걸 쓰면 순간순간을 다 들여다보게 된다. 10분만 쓰자 했는데 .. 최대한 줄여보기)
이번 봄은 전에 비해 비가 자주 많이 내린다. 다른 지역에 비해 비가 적은 인천에 이 정도로 내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질 정도다.
고스란히 우산 네개가 사무실에 있어서 짧은 우산까지 가져오니 다섯개다. 공간을 청소하다보니 하나 더 있다.
여튼 우산이 촉촉히 젖을 정도의 비가 내린다. 이 정도면 그냥 안가져와도 됐는데 .. 도원역을 내려 철로변길을 내려올땐 우산을 쓰지 않았다. 들장미가 화사하다. 꽃태가 아주 아름답지는 않은데 이렇게 전형적인 5월은 오랜만이다. 파란지붕 집 장미가 눈부시고 철로변길 화단의 멋진 장미도 제법 단단하게 피고 진다.
요즘은 벽돌책 모임에서 함께읽는 <코스모스>(칼 세이건/사이언스북스)와 와니가 권해준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하 '동네형')>(류승연/푸른숲)을 읽는다.
와니와 책을 쓰고 있다. 발달장애 두 아들 25살 생일까지 그들의 스토리북을 만들고 싶다는 기획과 서점에서 팔 수 있는 책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가지고 왔다. 나는 그의 제안에 조금 더 의미를 담아보자며 부모이자 엄마, 그 전에 김태완이라는 여성이자 한 인간의 삶도 같이 담기기를 바란다고했다. 그동안의 글도 모아서 정리해 담기지만 사회적인 글, 발달장애인 뿐 아니라 소수자의 차별까지 담아보자는 제안을 했다.
두 아이에게 온 몸을 집중할수 밖에 없었던, 게다가 아이들 장애와 더불어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남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그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싶고, 그가 한 인간으로 한 생을 사는 것을 응원하고 싶다. 수 많은 사건사고들 속에 두 아이와 남편의 장애와 함께 사느라 응어리진 그의 삶이 조금 더 자유로웠으면 하고, 주님인지 하느님인지 하는 존재에게 조금 덜 기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스스로를 믿고 지지하며 살기를 바라게 된다.
'동네형'은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글쓰기가 가능한, 10살 발달장애 아이의 엄마가 격고 나눈 이야기다. 지난 화요일 와니가 그 책을 권한 이유는 본인이 다 설명할 수 없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줬다고 했다. '너는 25년이다 임마! ' 하며 건네 받았다.
나에게 특별한 책은 아니었다. 발달장애 아들과 비장애 딸 이란성 쌍둥이를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 사회적 시선, 부모의 심정, 엄마로서 아빠로서의 10년의 고단한 일상이 다양한 스팩트럼으로 사회를 비추고 있다.
다만 안타까웠던 것은 이런 수준의 책이 이제야 나온 것에 좀 어이가 없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리고 물론, 장애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없이 사는 그들의 삶은 충분히 공감한다. 아마도 난 우리나라의 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에 화가나고 어이가 없는 모양이다.
와니는 짧은 문장으로 쓴다. 그의 짧은 문장, 빈 공간에서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어 난 참 많이 울었다.
내가 와니를 만난 건 그의 남편인 승은이 형을 영화감상 동아리를 통해 만나고 한참 후였다. 공무원인 형이 눈내리는 겨울, 일요일에 눈청소를 하러 출근했다가 큰 사고를 당해 한 다리를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리고 2003년인가 2004년 아들 쌍둥이가 발달장애가 있다는 소식과 그 아이들의 부모로서 교육청 투쟁을 시작할 즈음이었다. 난 민주노동당 당원이었고, 인천영상집단이자 인권영화제사무국일도 하고 있어서 다양한 문제들에 관심이 많았고, 기록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거기서 까까머리 멋있는 와니를 처음 만났다.
2016년 우리 아들이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졸업하는데? 바리스타를 하고 싶어하는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내 작은 카페에서 해봐도 되겠냐는 말이었다. 핸드드립이라 어떨지 모르지만 그것도 괜찮다면 그러라 했다. 두어달 그렇게 오고 갔다. 배다리에서 공동체 공간을 찾느라 애쓰기도 했고, 아이들 자립공간 마련을 위해 지인들과 공부하고 고민하던 시기였다. 아이들의 자립공간은 만석동에 마련했고, 간간히 들러 아들이 만석동으로 이사했다. 여러 친구들과 주말에 만난다고 했고, 그러다가 각자의 특성이 달라 개별 공간을 마련하고 흩어졌다는 이야기까지. 가끔씩 커피를 마시거나 원두를 갈아서 사가던 그가 출판사를 만들었는데 엄마의 생애사를 쓰게 하고 있다는 말을 했고다. 아마도 2019년. 그러자 그는 아들들을 위한 책을 만들고 싶다며 내고 싶다고 했다.
"그래! 그러자!!"
(한동안 글을 안썼더니 쓸 말이 끝도 없이 나온다. 10분만 써야 하는데 ... 12시 35분 .. 흠 .. 일단 틈틈히 쓰자. 10분은 최소한을 잡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