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전쟁이란 걸 배우는 시간




[한겨레] 종이 울리기 무섭게 달려가 긴 줄을 서고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점심… 환경 교육이나 문화와 함께 진행되는 ‘따뜻한 급식’을 고민해야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급식이요? 전쟁이에요.”

서울 영등포구 한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민지(15·중2)양은 점심시간이 힘들기만 하다. 김양을 비롯한 학생들은 점심시간 종이 울리기 무섭게 급식실로 달려간다. 조금이라도 일찍 줄을 서야 빨리 급식을 받을 수 있고 인기 있는 반찬을 대량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부리면 10~20분 기다리는 것도 예삿일이다. 급식을 받고 자리에 앉은 뒤 주어진 시간은 10분 남짓이다. 김양은 황급히 밥을 먹고 일어선다. 재빠르게 행동하지 않으면 밥 먹고 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없다. “비좁은 급식실에서 애들과 뒤엉켜 밥을 먹다 보면 식사를 하는 건지 배를 채우는 건지 헷갈려요. 떠밀려 먹는다는 기분으로 먹어서 그런지 점심시간이 제겐 스트레스예요. 소화도 잘 안 돼요.”

558개 초등학교 중 132곳만 식당 운영

70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은 김양과 비슷한 환경에서 하루에 한 끼씩, 일주일에 5번, 12년 동안 매일 점심을 먹는다. 전쟁처럼 치러지는 급식은 겉으로 보면 그저 식사시간에 지나지 않지만 수업시수 1시간, 수업일수 180일로 엄연한 학교 교육과정의 일부다.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 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의 정책홍보 자료집은 학교 급식에 대해 ‘영양을 공급해 몸과 마음의 건전한 발달과 함께 올바른 식습관을 갖게 해 협동·질서·공동체 의식 등 민주시민으로서 자질과 덕성을 함양하고 국민의 식생활 개선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한 교육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점심시간에 밥 한 숟가락 마음 놓고 뜨기 힘겨운 현실에서 ‘교육’을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설이다.

밥상은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다.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부르는 식사시간에는 자연과 환경, 생산과 소비 등을 생활 속에서 배울 수 있다. 또 식사는 문화의 기본 뼈대인 ‘의식주’ 중 ‘식’(食)에 해당하기에 문화와 전통까지도 가르쳐준다. ‘무엇을 먹느냐’만큼 중요한 것은 ‘어떻게 먹느냐’이고 영양학·위색학적인 접근만큼 문화적·교육적 접근이 필요하다.

아무리 영양 만점의 깨끗한 음식이라고 해도 20분 줄서다가 15분 만에 뚝딱 먹고 일어나면 그 음식은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 힘들다.

대안교육지 <민들레>의 현병호(46) 발행인은 “급식을 단순히 한 끼 때우는 에너지원 보충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 지금의 급식 문화”라며 급식 문화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현씨는 “밥을 먹는다는 것은 자기 몸을 대접하는 과정”이라며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음식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오늘의 학교급식에서는 가장 중요한 이 과정이 빠져 있다.

위탁급식은 식중독만큼 커다란 ‘교육의 부재’라는 결점을 안고 있다. 대량생산돼 공급되는 위탁급식으로는 음식에 대한 교육이 불가능하다. 아이들은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나 누구의 손을 거쳐 식탁에 올라왔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음식을 먹는 학생들은 음식의 고마움을 느끼기보다는 ‘맛이 있다, 없다’를 평할 뿐이다. 음식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편식 등 식습관 교정도 불가능하다. 현 발행인은 “음식의 소중함을 가르치지 않고 그저 ‘음식을 남기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교육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밥상머리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급식 환경이다. 2005년 9월 교육인적자원부가 국회에 제출한 ‘학교식당 보유현황’을 보면, 서울 시내 558개 초등학교 가운데 학교 식당이 있는 곳은 132곳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위탁급식의 비중이 큰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위탁업체가 시설 투자를 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식당 시설은 있지만 학생 수에 비하면 턱없이 좁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교는 한 시간에 2~3회전씩 학생들을 돌리며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줄을 서는 시간 만큼 밥을 먹는 시간은 짧아진다.

이에 견줘 교실에서 급식을 먹으면 줄을 서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아이들이 서로 등을 보며 밥을 먹는 풍경이 펼쳐진다.

또 음식물이 상온에 오랜 시간 노출되는 일이 생기고 음식물 냄새 등 뒤처리도 문제가 된다. 이빈파 학교급식네트워크 공동대표는 “같은 밥상에서 서로 마주 보고 먹는 것이 밥상머리 교육의 시작”이라며 “교실에서 밥을 먹으면 교실에서 수업받는 것처럼 아이들이 조용한 분위기에서 선생님에게 혼나가면서 밥을 먹게 된다”고 말했다.

“시간 늘리자” 주장에 학부모 반발

학교 식당이 따로 없는 초등학교 426개 중 설치 공간이 부족한 학교는 391개, 설치 공간은 있으나 예산이 부족한 학교는 35개다. 현재 학교에 식당을 설치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고 식당을 설치하거나 확장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학생 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에 섣부르게 지을 수도 없다는 것이 학교의 입장이다. 이 대표는 “학교가 공간·예산 부족 탓만 하지 말고 남는 교실은 특별실로 활용하고 특별실 등 규모가 큰 공간을 식당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또 식당이 없어 교실에서 급식을 하는 학교는 책상을 돌려 서로 바라보면서 먹을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급식 시간이 짧은 것도 문제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의 점심시간은 50분에서 1시간 정도. 식당 등 시설이 열악하다 보니 아이들은 줄을 서고 배식을 받는 데 점심시간의 반 정도를 쓰고 있다. 천천히 급식을 먹으면 점심시간을 즐길 여유도 없이 곧바로 5교시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급식 관련 시민단체들은 급식 수업시수를 2시간으로 늘리자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 학부모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점심시간을 2시간으로 늘리면 하교시간이 늦춰져 방과 후 활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이유다.

이러한 급식 환경에서는 교사의 지도가 들어갈 틈이 없다. 경기도 안양의 한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최아무개(32) 교사는 점심시간마다 학생들을 줄 세우느라 지친다. 최 교사는 “많은 아이들을 줄 세우고 배식받을 때 반찬 가지고 아옹다옹하는 것을 감독하는 것 정도가 전부”라며 “급식이 교육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음식에 대한 교육을 할 만한 여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렇듯 현재 일반 학교 중 급식이 교육과 함께 이뤄지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친환경 생태학교를 지향하는 대안학교는 어떨까.

지난 6월29일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의 도시형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의 점심시간을 찾았다. 12시10분이 되자 식당에 초등부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벽에 세워져 있는 상을 제 손으로 폈다. 그리고 일렬로 줄을 서서 배식을 기다렸다. 학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다. 급식판에 밥과 반찬, 국을 받아와 상에 앉자 비로소 즐거운 식사시간이 시작됐다. “잘 먹겠습니다!”를 외친 뒤 서로 눈을 맞추며 밥숟가락을 든다. 물론 선생님은 학생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했다. 선생님은 편식하는 아이들에게는 조곤조곤 반찬을 먹도록 설득했다.

이 학교의 점심시간은 1시간20분이다. 12시30분이 되자 중등부 학생들이 내려왔다. 이 학생들 역시 배식을 받아 자리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밥을 먹었다. 밥을 천천히 먹는다고 재촉하는 선생님도 없었고 자리를 비켜달라고 기다리는 학생도 없었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은 식당 한쪽으로 가서 자신이 먹은 식판을 닦았다. 몸이 불편한 학생들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식사부터 설거지까지 마쳤다. 초등부 1학년인 채진주(8)양은 “설거지도 전혀 힘들지 않다”며 “점심시간이 즐겁다”고 웃었다.

대안학교의 ‘식탁위원회’를 보라

성미산학교 초등교사 대표인 정현영(45) 교사는 “자녀들이 1~2명에 그치는 핵가족 시대에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서로 배려하고 식사 예절을 배우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며 “생태 프로젝트 등 음식과 관련된 교육도 꾸준히 하고 있고 학교급식 반찬을 만드는 조리사가 직접 아이들에게 먹거리 교육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는 학생과 교사, 부모로 구성된 ‘식탁위원회’도 있어 두 달에 한 번씩 모여 급식의 장단점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도시형 대안학교인 이우학교도 급식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학생 수 500여 명으로 제법 규모가 큰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의 점심시간은 1시간30분이다. 학생들이 2회전을 하면서 점심을 먹지만 넉넉한 식사시간 덕분에 조급해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농촌 봉사와 농사 수업을 하면서 자신들이 먹는 음식에 대해 배우고, 음식 프로젝트 등을 통해 몸에 좋은 음식과 좋지 않은 음식에 대해 스스로 공부한다. 송덕희(36) 영양사는 “학생들에게 유기농 음식을 먹어야 우리 농업이 산다는 점과 운동적인 관점에서 생산·소비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학생 수가 적고 일반 교과과정이 아닌 생태친화적 교과과정으로 운영하는 대안학교가 현재 일반 학교의 급식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안학교는 급식이 환경 교육이나 문화와 함께 진행될 때 그 교육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설과 인력 등 환경을 갖추는 것은 급식 문화를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 음식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면 비로소 아이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삶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직 환경도 갖추지 못한 일반 학교의 급식은 갈 길이 멀다.

지금 우리의 ‘급식’은 ‘도시락’처럼 따뜻한 소리를 내지 못한다. 급식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이라기보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식판에 올려진 한 덩이 밥이다. 급식이 금속성 단어가 된 것은 정서나 교육, 문화라고는 없는 급식 환경을 제공해온 어른들의 탓이다. 급식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다. 어른들이 변해야 밥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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