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인 1948년 사진입니다.
이미 올렸던 사진입니다만..
길 왼쪽편의 건물들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다시 올렸습니다.
조흥상회..라고 쓰인 건물은 지금 배다리의 조흥상회 자리입니다.
물론 건물은 바뀌었습니다만..위치는 같습니다.
조흥상회 왼쪽 건물..2층에 임치과..라는 간판이 보이는군요.
오늘 포스트의 포인트 건물입니다.
그런데 임치과..전에도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
이 당시..인천에 임씨 성을 가진 치과의사는 임영균원장님 뿐이니..
일단은 임영균원장님께서 운영하시던 치과로 봐야 하겠는데..
최초에는 창영동 인천양조장 2층에서 하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분께서는 양조장집 사위가 되시는데..
부인과의 로맨스가 당시 인천에서는 유명한 화제였는지..
신태범박사의 인천한세기에 그 얘기가 나옵니다.
또 고일선생의 인천석금이 연재되었던
주간인천의 운영자가 바로 임치과 원장이셨습니다.
어쨌든 1948년 늦가을에는 분명 배다리 지성소아과 자리에서 치과를 운영하셨습니다.
1960년대에는 신포동 화선장 옆으로 이전하셔서 병원을 운영하시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시지요.
인천 최초의 한국인 치과의사요..
주간인천의 사장이셨던 분이니..
인천향토사에는 이름이 회자될 만한 분인 것은 확실합니다.
임치과가 있던 건물은 사라지고..
그 왼편에 있던 건물들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1953년 사진으로 추정
며칠 전에 올렸던 사진입니다.
바로 위에 있는 사진을 보시면 정확한 위치를 아실 수가 있겠습니다.
부미식품, 인천정육점, 선수상회..다 그대로 있습니다.
1954년으로 추정
1960년 4월 시위학생 사진입니다만..
2층 기와집 부미식품 건물이 사라지고..슬라브건물이 들어섰습니다.
1968년 항도제 사진입니다.
인천정육점, 선수상회 자리에 지성소아과 건물이 들어섰군요.
재미있지 않습니까..
6.25 전에 임치과가 있던 건물 자리에 정육점이 들어섰다가..
다시 소아과가 들어 선 것이지요.
지성소아과 김관철원장님도..인천의료계에서는 비중 높으신 분이지요.
지금은 아드님이 좀 위치를 옮기셔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진료를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배다리가..인천에서는 아주 중요한 곳은 틀림없는 모양입니다.
벌써 13번째 포스팅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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