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혁명의 열정을 그린 화가들

 

   
 

 

 20세기 초 멕시코 혁명을 추구하는 일단의 예술가들이 혁명의 명분과 목적을 고취시키는 예술작품을 창작하려고 단합한다. 그 예술가들은 공공장소의 벽에 벽화를 수단으로 삼아 전통과 현대의 만남, 영웅적인 일상적 삶을 모두에게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리하여 그들이 서명한 선언문은 유명한 현실참여 선언문의 하나가 된다.

 

 로랑 쿠르텐스 | 예술비평가

 

 1922년, 멕시코 교육부의 후원 아래 소수 예술가들이 멕시코시티에 있는 식민지 시대의 한 건물 안뜰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이들은 거인들을 그리고 있었다. 이 예술가들은 농민, 광부, 토지 없는 인디언, 십장, 피둥피둥한 은행가, 한마디로 무장한 국민과 탄압자, 그들의 노동, 축제 등 멕시코의 혁혁한 무훈들을 함께 그렸다.

 

 같은 해, 이 예술가들은 십여 명의 또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기술노동자, 화가, 조각가 조합을 결성했다. 그들은 “수세기 동안 멸시 당해 온 인종들, 상관의 명령에 따라 학살자가 된 병사들, 부자의 횡포에 방치된 노동자와 농민들, 부르주아 계급에 영합하지 않는 지식인들”에게 보내는 “사회, 정치 및 미학 선언”에 서명했다.(1) 멕시코 벽화주의의 토대가 되는 이 선언서는 전통적 화판 그림이 “극단적으로 지적이고 귀족적”이라고 비난하면서, “교육적, 투쟁적인 모두를 위한 예술”의 필요성, 기념비적이고 대중적 예술의 필요성을 천명하였다. 그 목적은 세상 속에 들어가서, 다른 한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 선언은 사회적 공간을 대표하는 벽면을 소재로 삼았다.

 

 불타는 열정과 그에 대한 정부지원은 벽화주의 예술이 50년에 걸쳐 1300개 이상의 대중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였다. 도서관을 장식하는 단순한 표지판에서부터 수백 제곱미터의 미켈란젤로 풍의 벽화에 이르기까지, ‘벽화’는 길거리, 정부부처, 종합병원, 대학, 노조건물 등 삶의 도처에서 나타난다. 이 작품들은 무엇보다 “3대 거장”,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디에고 리베라,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와 공동 서명한 동료화가들의 업적이다.

 

  한 세대 예술가 전체가 벽화주의 예술을 실천하거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고, 후세 예술가들은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벽화주의 예술을 이어가든, 파괴하든, 몰아내든지 간에, 멕시코에서 이는 기준틀이자 거의 피할 수 없는 시각적 환경을 이루고 있다.

 

 벽화주의 운동은 국경을 초월하여, 라틴아메리카에서 ‘변별적 언어’로서 ‘정의에 대한 갈망이 토착민 뿌리를 회복하고자 하는 욕망과 거의 자동적으로 맺어졌던 시대에, 정치, 사회, 문화 사상의 전달자’로서 자리매김하였다.(2) 그리하여 이 운동은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에 의하면 “예술운동으로서, 멕시코에서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전반에 걸쳐서 근대예술의 시초”를 장식했던 것이다.(3) 또 다른 뜻밖의 결과가 있다. 미국에서 멕시코 모델이 특히 잭슨 폴록의 예술행로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는 시케이로스가 1936년 뉴욕에서 개설한 실험 화랑에서 일부 교육을 받았다.

 

   
 

 광범위한 영향력과 풍부함을 지니고 있는 이 같은 폭발은 멕시코 혁명과 관련이 있다. 1910년, 프란시스코 마데로 지휘 하에 시작되고, 판초 비야와 에밀리아노 사파타와 같은 강력한 거물들에 의해 주도된 멕시코 혁명은 1917년 새 헌법 공포를 이끌어 냈다. 오랫동안 혁명진영의 내적 분란과 반혁명세력의 격렬한 대항을 겪은 피의 혁명은 장군 출신 포르피리오 디아스 대통령의 거의 종신 장기집권에 막을 내리게 했다. 그의 집권 당시 멕시코는 미국의 완전한 산업개발 장악, 프랑스로의 문화적 종속, 인디언과 그 역사에 대한 철저한 멸시 등을 초래했었다.(4) 국가적이고 토지개혁적인 이 혁명은 그야말로 “멕시코 국민에 의한 멕시코 발견”이었다. 그것은 ‘깨달음’이었다.(5)

 

 훗날의 벽화주의 화가들은 그 깨달음을 병사로, 장교로, 종군기자로 생생하게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예술교육개혁을 위해 나섰던 미술학교 학생들(시케이로스와 오로스코 등이 포함)이 1911년에서 1913년 사이,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그들은 혁명군에 합류하였고, 라 반가르디아 신문의 창간에 참여하게 되고 오로스코가 그 신문의 삽화가가 되었다. 시케이로스는 스무 살에 디에게스 장군 휘하의 한 대대의 부관이었다. 이 젊은 청년들은 국민과 국가, 그리고 시케이로스가 “선 스페인 시대의 우리 문화의 경이적인 사원들, 전성기 식민지 시대의 교회들, 우리의 스승 및 교수들에 의해 무시당해 왔던 대중예술”이라고 일컬은 국민유산 등을 발견하였다.(6) 이는 교육적, 정신적 소명을 띤 공공예술, 결국 벽화예술이라고 하는 수많은 예들의 하나였다.

 

  벽화예술의 또 다른 근원, 또 다른 촉진제가 있었다. 1919년, 교육부 장관의 추진에 의한 유럽 여행을 기회로 시케이로스는 파리에 체류했다. 그는 1909년 이래 파리에 정착하여 전위예술가들, 특히 입체파 화가들과 교류하고 있던 리베라와 재회했다. 모든 가능성을 추구하는 그들은 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회화, 초현실주의와 미래파 화가들의 초기 업적들을 수용하고, 안드레아 만테냐, 마사치오 등의 작품들을 접하고 열광했다.

 

 서로 다른 의견이 나타났다. 그래서 벽화운동 가담자들은 각각 독특한 형식을 펼쳐 내지만, 모두는 근본적으로 멕시코 혁명이라는 원천적 동기들에 상응하는 예술을 창조했다. 그것들은 수백 년에 걸친 인디언들의 고통과 식민지 태생 백인들의 욕구불만, 토지와 자유에 대한 국민의 열망과 ‘멕시코 정체성’과 예술 근대화에 대한 지식층의 희구였던 것이다. 벽화주의는 전통과 근대 사이의 경색을 해소하고, 공동의 지평선을 그리려 했다. 그 지평선은 역사의 그 순간에 출현한 또 다른 지평선과 불가분의 관계로 나타났다. 그것은 사회적 혁명과 사회주의였다.

 

 오로스코, 시케이로스, 리베라가 표현하는 중심인물들은 신들에게서 불을 훔쳐 사람들에게 갖다 준 프로메테우스, 고문당하면서도 실토를 거부한 아즈텍의 마지막 황제 쿠아우테목, 스페인 정복자들에 대한 저항의 상징 목테수마 황제 등이었다. 이외에도 마데로, 사파타, 칼 마르크스, 레닌도 있었고, 신화, 선구자들, 혁명투사들도 있었다. 세 명의 화가는 거대한 벽화를 그렸다. 리베라의 ‘우주의 주인 인간’은 가로가 11미터 세로가 5미터에 달했다. 그 벽화들은 ‘인간이 되기 위한 투쟁에서 인간을 돕기 위해’(7), 학문적인 동시에 과감했다.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형식을 고안하여 교육적이고 심지어 가끔은 선전적 측면을 담당하기도 했다.

 

 역사의 상황들은 공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벽화주의는 보편화될 수 있는 모델은 아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부여할 수 있었던 위대한 모델 중의 하나이다. 현실참여에 대한 필요성이 명백하게 제기될 때, 현실참여는 실존의 현실 속에서 어디서 어떻게 닻을 내릴 것인가?

 

   
 

 글·로랑 쿠르텐스 Laurent Courtens

예술비평가, 조형미술언어 고등연구소의 기획자

 번역·손종규

프랑스 렌느2대학 박사과정 수료. 번역가.

 (1) David Alfaro Siqueiros에 의해 작성되고, Ramón Alva de la Canal, Xavier Guerrero, Carlos Mérida, Roberto Montenegro, José Clemente Orozco, Fermín Revueltas Sánchez, Diego Rivera 등에 의해 서명됨.

(2) Edward Lucie-Smith, ‘Latin American Art of the 20thCentury’(20세기 라틴아메리카 예술), Thames and Hudson, 런던, 1933년.

(3) Octavio Paz, ‘Le signe et le Grimoire. Essais sur l’art mexicain’(기호와 마술서. 멕시코 예술론), Gallimard, collection<Art et artistes>, Paris, 1995년.

(4) 참조. Leslie Manigat, ‘L’Amérique latine au ⅩⅩe siècle’(20세기 라틴아메리카), Seuil, coll. <Histoire>, Paris, 1991년.

(5) (4)와 동일.

(6) Dans Philip Stein, ‘Siqueiros. His Life and Works’, International Publishers, New York, 1944년.

(7) Diego Rivera, ‘Ecrits sur l’art’(예술에 대하여), Ides et Calendes, Neuchâtel,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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