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지어져 있는 자체가 자산, 서울이 과거 품고 있다는 것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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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은화 기자

서울 종묘를 방문한 라파엘 모네오. 그는 “담장 밖은 바쁜 서울인데 담장 안 종묘는 전혀 다른, 영적인 세계에 온 것 같다”며 감탄했다.
1985년 스페인 메리다 지역에 지어진 국립 로마 박물관은 세계 건축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포스터모더니즘의 상업화로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건축물이 마구 지어지던 시기였다. 박물관은 기원전 150년경에 있었던 로마 유적지 위에 지어졌다. 붉은 벽돌로 로마식 아치벽을 옛 돌담 사이에 겹치지 않게 쌓아 올렸다. 밖에서 보면 박물관은 마치 로마 시대부터 있었던 건물처럼 보인다. 건물은 지하 뿌리부터 유적지를 품고 있고, 거기서 나온 유물은 상층부에서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과거를 되살린 집이었다.
한국 온 스페인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
건축가는 바르셀로나 공대의 건축이론과 학장을 역임하고 마드리드 공대에서 건축이론을 가르치던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80). 사람들은 이론 교육자가 세운 건축물이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는 이후 미국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 학장으로 5년간 학생들을 가르쳤고, 96년 스페인 건축가 중 최초로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세계 건축계에서 드물게 이론과 실무를 양수겸장한 대스승으로 그가 꼽히는 배경이다.
반세기 넘게 활동하는 동안에 한국과 인연이 유독 없었던 그가 최근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서울에 6일간 머물며 도시를 관찰하고 있는 라파엘 모네오를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단독으로 만났다.
반세기 넘게 활동하는 동안에 한국과 인연이 유독 없었던 그가 최근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서울에 6일간 머물며 도시를 관찰하고 있는 라파엘 모네오를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단독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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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무르시아 시청사 (Murcia City Hall) 별관, 1998 광장 너머 1668년에 지어진 성당과 마주 보고 있다.

스페인 국립로마박물관(National Museum of Roman Art), 1985 고대 로마 유적지 사이사이 벽체를 쌓아 만든 박물관은 근대와 고대 건축의 합성물처럼 보인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노스웨스트 코너 빌딩(Columbia University Northwest Corner Building), 2010 체육관 위에 세우기 위해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지었다. 외벽 자체가 기둥 역할을 하는 트러스 구조로 내부에 기둥이 거의 없다.
“옛 것과 새것 하나로 합쳐져 있어 놀라”
- 질의 :서울에 대한 첫인상은 어떤가.
- 응답 :“전체적인 구조체계가 다른 대도시에서 찾아볼 수 없던 것이어서 놀랍다. 중심과 주변, 옛 것과 새것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기보다 하나로 합해져 있다. 중심지에서 변두리로 이동한다는 느낌이 없다. 옛 도시와 고층 건물이 함께 존재한다. 전통적인 역사 도시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옛 모습을 바탕으로 도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 사라진다.”
- 질의 :유럽과 비교하면 서울의 변화 속도는 너무 빠른데.
- 응답 :“유럽 도시의 경험을 아시아 도시에서 적용하며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유럽과 달리 아시아 도시만의 에너지와 용기가 있다. 새로 지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당연히 옛 것이 헐리고, 그러면서 혼합적인 성격을 갖는 게 당연하다.”
- 질의 :다른 도시를 방문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보나.
- 응답 :“사람이다. 그들이 도시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며 관계를 맺고, 공간을 사용하는 지 본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한 도시를 가장 잘 나타내는 곳이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 질의 :여러 나라에서 많은 건축물을 지었다. 스페인 밖에서는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나.
- 응답 :“역시 본다. 대도시의 모습이 비슷해지는, 국제화 물결이 일고 있지만, 도시마다 각각의 성격이 분명히 있다. 건축가의 역할은 그걸 보는 것이다. 도시의 피드백을 감지하는 게 건축가의 일이다. 이를 통해 도시와 건축가를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 질의 :도시의 역사성이 왜 중요한가.
- 응답 :“거대 도시일수록 역사의 연속성을 가지는 게 불가능해졌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도시가 갖고 있는 고유의, 창조적인 조건을 많이 무시하는 것 같다. 서울이 과거를 품고 있다는 것을, 과거가 오늘날에도 실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서울이 그곳에서 사는 도시민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도시에 귀 기울여라. 도시가 지어져 있는 것 자체가 자산이다.”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 증축, 2008 1785년 지어진 신고전주의 건물 옆으로 붉은 벽돌의 회랑형 갤러리를 지었다. 증축 건물은 지하로 연결된다.
건축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척도
이는 라파엘 모네오에 이어 두 번째로, 올해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스페인 건축가 그룹 RCR의 지향점과 비슷하다. 자연 환경과 땅의 맥락을 중심에 두는 지역 건축이라는 점에서다. 건축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주류에 속하지 못했던 스페인에 요즘 세계 건축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라파엘 모네오가 2007년 증축한 프라도 미술관의 경우 새 공간이 새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1785년 지어진 기존 신고전주의 건물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철저히 절제했다. ‘무르시아 시청사 별관(1998)’의 경우 1668년 지어진 성당과 1768년 지어진 성공회 궁전이 함께 있는 광장에 지어졌다. 모네오는 주변 건물의 높이와 재료, 기둥이 나열된 입면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시청 건물을 지었다.
재료에 대한 실험도 쉬지 않는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노스웨스트 코너 빌딩(2010)’의 경우 기존 체육관 위에 건물을 높이 들어올려 짓기 위해 비행기 만들 때 쓰는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건물을 지었다. 그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현대의 문제를 해결하고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게 건축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 질의 :건축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 응답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시적인 사회일수록 건축에 더 의존하게 되지만, 현재는 많은 공간이 디지털화되고 있다. 공간에 대한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있는 시대고, 더 이상 그렇게 공간이 필요한 것 같지도 않다. 지금 시대에서 건축은 작은 공간 단위를 넘어서서, 더 큰 단위에서 도시와 관계를 맺으며 기반시설로써 역할을 고민할 때인 것 같다.”
- 질의 :반세기가 넘게 현역 건축가로 학계와 현장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비결이 뭔가.
- 응답 :“교육자이면서 실무를 한 것이 큰 영향을 줬다. 건축가로 일한다는 것은 사회로부터 어떤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건축가는 주어진 땅 안에서 고립되는 게 아니라 더 넓게 문화적인 의미를 찾으며 작업해야 한다. 나는 작업을 하며 내가 그 의미를 찾고 있는지 질문하고 거기서 만족감을 얻는다. 가르치는 것 자체도 건축의 의미를 찾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다시 산다고 해도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같은 방식으로 살 것 같다.”
그는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삼시세끼 한식만 먹었다. 된장찌개가 특히 맛있다고 했다. 나이 들수록 익숙한 음식을 더 찾게 되는데, 그의 입맛은 낯선 한국을 서슴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어느 나라에서도 그 장소의 지역적 맥락을 살펴서 건축물을 짓는 건축가다운 입맛이기도 했다.
라파엘 모네오는 고국에서 15년째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어떤 일을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며 “와인을 통해 내 삶이 얼마나 건축에 고립되어 있었는 지 깨달을 수 있었다”며 웃었다. 땅 위에서 평생 집짓기를 했던 건축가는 와인 농사를 지으며 또 다른 땅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와인을 재배하는 것은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많은 요소가 결과를 지배함을,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우리가 왜 건축을 이해해야만 하는지 다소 도발적으로 물었다. 건축가는 양 손으로 몇 차례 얼굴을 감싸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종묘의 정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건축을 볼 때마다 ‘왜 이걸 이렇게 지었을까’라며 이유를 찾습니다. 건축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척도입니다. 문화적인 이유를 찾는 일이기도 하죠. 건축은 설명될 수 있어요. 나에게 나를 설명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알아가는 것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크지 않나요.”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Michael Moran/O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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