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장가에서 가장 뜨거운 영화는 <1987>이다. 사실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이라면 한국도 어느 나라 못지 않다. 전쟁, 독재, 학살, 국가의 폭력 등등. 그래서 본문에서 언급되는 영화들의 이야기가 '다 어디서 보고 들어본'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굳이 떠올리기도 싫은 일들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이야기되고 알려져야 하는 일들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챙겨보자. 그리고 우리의 역사와 현실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1. 블러디 선데이 (Bloody Sunday, 2002)

출처이미지=영화 <블러디 선데이>

아일랜드와 영국의 뿌리 깊은 분쟁, 특히 북아일랜드 사태는 많은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그중 <블러디 선데이>는 1972년 북아일랜드에 주둔하던 영국군이 평화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14명이 사망한 ‘피의 일요일’ 사건을 다뤘다. 영화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어떤 감정도 끼워 넣지 않은 사실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차라리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라 오히려 더 묵직한 충격이 느껴진다. 제이슨 본 시리즈의 감독으로 유명한 필립 그린그래스의 작품으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함께 금곰상을 공동수상 했다.

 

2. 액트 오브 킬링 (The Act of Killing, 2013)

출처이미지=영화 <액트 오브 킬링>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군부 정권이 대대적인 공산당 숙청작업을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살해당했던 사람의 수는 무려 100만 명 이상. 이 영화는 학살을 주도했던 우익 조직의 행동대장 격이었던 안와르 콩고가 주인공이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인도네시아의 이 끔찍한 역사를 직접적으로 다루기가 쉽지 않자, 콩고를 섭외해서 그에게 자신의 업적을 재현하는 영화를 만들자고 한다. 그리고 콩고는 자신이 했던 살인의 추억을 아무 죄책감 없이 즐겁게 이야기한다.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큰 공포와 충격을 던져주는 다큐멘터리.

 

3. 그르바비차 (Grbavica : The Land Of My Dreams, 2005)

출처이미지=영화 <그르바비차>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한 마을에서 살고 있는 엄마와 열두 살 딸 사라의 이야기다. 사라는 아버지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전사한 전쟁영웅이라고 믿고 있지만, 어머니는 딸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좀처럼 해주지 않는다. 사실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비밀을 금방 짐작할 수 있다. 내전 당시 보스니아 여성 수만 명이 세르비아군의 ‘인종청소’에 따라 조직적으로 강간당하거나 혹은 목숨을 잃었다. 사라는 바로 거기서 태어난 아이인 것. 그르바비차라는 제목은 세르비아군의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곳의 지명이다.

 

4. 이노센트 보이스 (Innocent Voices, 2004)

출처이미지=영화 <이노센트 보이스>

전쟁과 아이들은 영화의 중요한 소재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정부군과 게릴라의 싸움이 12년 동안이나 이어진 엘살바도르 내전이다.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열한 살 소년 차바의 마을이 내전에 휘말리고, 이웃집 누나는 총을 맞아 죽고, 정부군은 아이들까지 징집해간다. 이 영화는 한 소년이 현실에 분노하고 결국 총을 들 수밖에 없는 우울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전쟁이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아이의 시선을 통해 전달하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5. 바시르와 왈츠를 (Waltz With Bashir, 2008)

출처이미지=영화 <바시르와 왈츠를>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고,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가 이스라엘의 비호 아래 3천 명의 무슬림 민간인을 살해한 ‘사브라-샤틸라 학살’을 독특한 방식으로 담았다. 당시 레바논에 주둔한 이스라엘군의 한 명이었던 감독은 그때의 기억이 기억상실증처럼 사라져버린 것을 발견하고, 이를 추적하는 과정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애니메이션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당시의 관계자들이 인터뷰를 하면서 얼굴을 공개하기를 거부했기 때문. 애니메이션으로만 표현 가능한 초현실적 이미지가 뒤섞여, 충격이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6. 디아즈 : 이 피를 지우지 말라 (Diaz : Don't Clean Up This Blood, 2012)

출처이미지=영화<디아즈 : 이 피를 지우지 말라>

2001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일어난 사건을 영화화했다. G8 정상회담이 개최되자 세계화와 자본주의의 부작용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제노바로 모이고, 그중 100여 명이 학교 기숙사에 머물며 평화적인 집회를 이어간다. 그때 이탈리아 경찰이 갑자기 건물을 급습해 저항도 하지 않는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한다. 21세기에 유례를 찾기 힘들만한 공권력의 만행이었다. 영화는 진압보다는 린치에 가까운 이 과정을 참혹하리만치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행되는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소름끼치도록 피부로 느껴진다.

 

페이퍼백 에디터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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