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이니까 얼추 이곳을 집처럼 드나들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 6년차다. 종종 드르기 시작했던 건 운봉공고 아이들과 다큐멘터리 <직업>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역아동센터 중학생들 대상으로 했던 대안적인 문화예술교욱 활동을 아벨전시관에서 할때니까 2005년이다. 주1회 이상은 왔었다. 아벨전시관은 양조장 건물에 있었는데 곽현숙 사장님이 고치고 다듬던 곳으로 지금은 스페이스빔이 수리하고 보수해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지금 사무실로 쓰고 있는 공간에서 수업도 하고, 전시도 했다.
이듬해 청소년 대상 대안적 학교인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을 도원역 근처에 조성할때 함께 작업하며 오갔던 일이 생각난다. 2006년은 인천지역민중민주열사희생자 단체에서 그 기록을 만들기로 햇었고, 여름인가 초가을까지 안동근 열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종종 드르다가
2007년 아트인시티 우각로프로젝트를 제안받고 동인천 창영동에 자리잡으면서 일상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샌드위치판넬로 지어진 건물을 둘러보고, 함께 공간을 만들어가며, 마을에 벽화를 만들고, 동구관동산업도로 반대투쟁이라는 주민운동을 함께 참여하면서 주민들과의 친화도 넓어졌다. 그 속에서 산업도로반대투쟁 영상을 만들고, 우각로 스페셜- 기억과새로움의 풍경이라는 영상을 만들어 그해 활동을 마무리했고, 컴펙트카메라 익서스750으로 찍어오던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고자 D50중고를 구입했다. D50과 표준줌 번들렌즈와 70-210망원렌즈로 다양한 생사-뚝딱뚝딱 재활용 목공, 산업도로 흙을 이용한 황토축제 등 지역활동을 영상보다 적극적으로 찍기 시작했다. 그 사진은영상에서 유용하게 쓰였고, 이젠 영상보다 사진을 더 많이 찍게 되었다.
2008년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을 준비하면서 간간히 오가며 활동을 공유하다가 2009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준비해 진행해보는 게 어떻겠나는 제안을 받고, 문화예술활동가 조합이라는 상과 지향을 가지고 지역공동체 창작공방 <다행多行_하다>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봄부터는 지역생활에서 예술하기-동구편을 기획 진행했고, 마을이 되어가는 사진전을 공동기획 진행하면서 내 사진들을 함께 활용했다.
하반기 다행하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지역주민들이 활동하는 문화예술공방을 만들기로 하고 2010년초부터 준비하여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하여 작업하고 2월 지역공동체 창작공방 <다행多行_하다>라는 다수가 운영하는 공방을 마련하여 운영을 시작했다. 나는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으로 마을사진신문을 만들었고, 꽃길이는 뜨개와 바느질을 했고, 해진은 자기 공간의 일을 만들어내려고 고민했고, 우민은 청개구리사장님과 작업실을 공유하기위해 노력하면서 공간을 구성해 나갔다.
하지만 같은 사람을 통해 만났으나 사람들의 상은 다 달랐고 이것을 맞춰가는 와중에 태생을 제공했던 사람과 공방구성원들간의 갈등이 생기면서 거의 해체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공황상태의 위태로움 속에 한 사람은 새로운 공간으로, 한 사람은 공간을 정리했고, 또 한사람은 의미를 찾지 못해서 공간을 접었다. 2010년은 위태위태하게 공황의 상태 또는 멘붕의 상태에서 흐르고 있었다.
<강's 마을사진이야기 전>이라는 사진전을 카페에서 열기로 하고 준비하면서 이전의 적지 않은 활동속에서의 개인적, 정치적, 사상적, 생활적, 경제적 모든 문제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집중했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사진전의 머릿말을 정리하면서 이해와 한계, 함께 하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 달라지는 것들과 그것들에 대한 나와 남의 태도, 다양한 활동들에서 형성된 나의 모습을 되새김 하는 과정이었다. 되새김질 하고 되새김질하면서 .. 조금은 성숙해진 나를 토해내며 다시 아프락사스가 떠 올랐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다른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의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너무나 유명한 문구가 언제나 절체절명의 순간에 떠 오른다. 쉽게 정반합이거나 하는 말로 정리될 수도 있지만 정반에 익숙해져 있는 내가 합으로 가는 과정은 참 어려웠다. 그때가 딱 마흔 직전이었거나 마흔이었다. 그렇게 나는 좀 어른이 되었다.
2010년 가을 이 마을을 떠나 새로운 공간을 알아보다가 그만두었다. 형편도 좋지 않았고, 당당한데 피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였고, 그것을 풀어야 할 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이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시 긴 겨울을 견뎠다. 단절된 아랫동내도 구경가고, 이야기를 트면서 겨울을 지났고, 마을의 또 한명의 사진쟁이 최종규가 아픈 아내와 아이를 위해 시골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나비를 소개시켜줬고, 2011년 초 아랫동네의 고양이를 키우는 북카페 나비와 인사를 나누고 그의 유기농가게 준비하는 일을 도와주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묵인했던 단절의 공간과 시간과 사람에게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다. 정신이 나가있는 사이 가까이 사각공간이라는 헌책방이 문을 열었고, 새로운 이웃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을 했다.
2011년 다시 다행을 정비하고, 나비와의 소통을 지속하며 아무런 프로젝트 없이 한 해를 보내며 참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으로 못내고 있었던 마을사진신문도 간간히 내고, 벼룩시장도 열고, 마을이야기를 인터넷 신문에 올리면서 나를 좀 쉬어주는 시간을 가졌다. 마을의 골목청년 세원과도 알게 되고 .. 여름 즈음 그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렇게 관계가 늘어나고, 한점갤러리도 오픈하고, 다인과 친해지고, 그 즈음 돈벌이가 요원했던 사각공간은 문을 닫고 떠났으며, 그해 가을 띠갤러리와 작은도서관 아침햇살도 문을 열고, 다인이 진행하는 일들을 간간히 도우며 갤러리를 운영하며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렇게 한 해가 갔다.
2012년은 홀로 선 2년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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