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3)비정규직인 나와 부자인 그에게 나라는 평등하지 않다

이주영·장은교·김형규·박광연·최민지 기자 young78@kyunghyang.com


ㆍ붕괴된 공동체…‘각자도생’ 시대
ㆍ의지하지 말라…국가는 ‘가진 자’만을 떠받든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김포공항 순환버스 정류장 앞에서 삭발한 청소노동자 손경희씨(51)가 멀리 보이는 공항공사와의 대화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br />이상훈 기자 doolee@kyunghyang.com

비바람이 몰아치는 김포공항 순환버스 정류장 앞에서 삭발한 청소노동자 손경희씨(51)가 멀리 보이는 공항공사와의 대화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doolee@kyunghyang.com

1993년 세계은행은 ‘동아시아의 기적’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한국경제에 대해 시장주의 경제로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고도성장과 상대적으로 평등한 소득 분배를 동시에 이룬 국가라고 세계은행은 평가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 경제성장률은 연 10%에 육박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 때에도 매년 7~8%대의 성장세를 유지했다. 전쟁 후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서 자원도, 기술도 없이 출발한 산업화는 오로지 노동력에 기댔다. 경제가 성장하자 국민소득도 늘어났다. 1961년 100달러도 안됐던 1인당 국민소득은 50여년간 300배 이상 불어났다. 높은 성장률은 고용 증가와 임금 상승의 원동력이 됐다. 특별한 분배 정책이 없어도 초스피드 성장 자체가 어느 정도의 분배를 보장해줬다. 

압축 성장에 대한 경고음이 나온 것은 ‘동아시아의 기적’이라고 평가받던 무렵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1994년 “아시아 국가의 경제 성장은 기술 진보 없이 값싼 노동력과 정부 주도의 자본 투입으로만 이뤄졌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하며 조만간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3년 뒤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았다. 

■“내부 식민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 8월, 대전에서 하루 새 홀로 사는 노인 세 명이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은 하나같이 심각하게 부패되거나 잘 먹지 못해 마른 상태였다. 두 달 전 강원도에선 아내가 숨지자 거동을 못하던 70대 남편이 아사 직전 구조되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에서 특권층·중산층이 아니라면 노인으로 산다는 건 징벌에 가깝다. 지난해 1245명이 무연고로 사망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 자살과 노인 빈곤율 모두 1위이다. 노인 빈곤율은 49.6%(2013년 기준)로, 노인 절반이 빈곤의 나락에 떨어져 있다.

높은 노인 빈곤율은 낮은 수준의 공적연금과 관련이 깊다. OECD 국가 노인가구는 소득의 59%를 공적연금에서 얻는다. 한국 노인의 소득 대비 공적연금 비중은 16.3%다. 공적연금만 받아선 생활이 안되니 고령자도 일을 놓을 수 없다. 한국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1.4%(2013년 기준)로, OECD에서 두 번째로 높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는 고도성장이 빚어낸 샴페인 잔을 일거에 깨뜨렸다. 외형적 확장 외에는 거의 아무런 제도적 정비 없이 달려온 고속 성장의 민낯은 거칠었다. 성장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임금상승률도 급락했다. 성장률 하락은 분배 악화로 이어졌다. 노동 시장도 분절됐다. 1980년대 후반까지는 중소기업에 다니다 대기업으로 옮기는 것도, 돈 모아 집을 사는 것도 제법 가능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이런 일은 힘들어졌고 소득 격차가 벌어져 양극화가 심화됐다. 중산층은 와해됐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고 정부가 뒤로 물러선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결과다. 민주공화국의 위기는 양극화에서 시작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정치적 측면에서는 민주공화국의 틀을 만드는 데에 기여했지만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는 계층 분화나 양극화가 심화됐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로 가면서 계층 이동이 굉장히 어려워졌고 이미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강하게 굳힐 기회가 됐다. 우리는 신분제 사회로 가고 있다.”(박찬승 한양대 교수) 

‘빈곤노인 기초연금 보장 연대’ 관계자들이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들의 기초연금 수여를 요구하는 도끼 상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빈곤노인 기초연금 보장 연대’ 관계자들이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 노인들의 기초연금 수여를 요구하는 도끼 상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정부는 청년 일자리 예산으로 매년 2조원 이상을 쏟아붓지만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기 바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청년실업률은 9.4%를 기록했다. 9월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잠재적 실업자를 고려하면 체감실업률은 2~3배 더 높다. 장관, 국회의원, 법조인 자녀들이 ‘부모 스펙’을 이용해 취업 특혜를 받았다는 소식은 청년들을 절망케 한다.

“헬조선과 수저계급론은 우리로 하여금 민주공화국인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한 사회현상이다. 나라의 미래를 담당해야 할 젊은이들이 사회를 지옥이라고 규정지은 것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전근대적인 신분주의가 깊게 뿌리내렸다는 현실 인식은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현상이다.”(김호기 연세대 교수) 

불평등을 보여주는 통계는 차고 넘친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한국의 개인소득 분포: 소득세 자료에 의한 접근’ 논문을 보면 2010년 20세 이상 성인인구 3797만명 중 상위 10%(10분위)는 전체 소득의 48.05%를 가져갔다. 이들의 평균소득은 8085만1000원으로, 전체 소득자 평균소득(1682만5000원)보다 4.81배 많다. 하위 70%(1~7분위)가 갖는 소득은 전체 소득의 18.87%다. 이들이 버는 돈을 다 합쳐도 상위 10%가 버는 돈의 절반도 안된다. 

소득이 한쪽으로 쏠리는 속도도 빠르다. 국회 입법조사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상위 10% 소득 집중도는 44.9%(2012년 기준)로 OECD 회원국 중 미국(47.8%) 다음으로 높다. 1995~2012년 소득 집중도 상승폭도 15.7%포인트에 달해 비교대상 국가 중 가장 높다. 이 속도라면 2020년쯤 미국을 제치고 OECD에서 소득이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될 수 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상용 노동자 중 저임금 노동자(중위 임금소득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노동자) 비율도 미국 다음으로 높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보수는 절반밖에 받지 못한다. 삭발식을 치르고서야 언론의 조명을 받은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은 30년간 일해도 시간당 6030원밖에 받지 못했다. 낙하산 인사로 내려온 이들에게 갖은 횡포와 성추행을 당했다. 비정규직이라서, 하청업체 직원이라서 겪은 차별이자 모욕이다. 뇌병변 2급 장애를 앓는 8세 아들을 맡길 데가 없어 화물차에 태우고 다니며 키우다 교통사고로 함께 숨진 일용직 노동자의 소식은 민주공화국에 사는 가난한 자의 삶과 죽음을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사고 차량에서는 어린이용 카 시트도 발견되지 않았다.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너무 없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해결책 없이 그대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 것 같아 기운이 빠진다. 일을 하면 금전적으로 돌아오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점점 의욕이 사라지는 것 같다. 내년 계약에 대한 두려움이 벌써부터 밀려온다.”(비정규직 방과후 교사 정모씨)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탄생>을 쓴 역사 교사 김육훈씨는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대거 계약직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꾼 것은 국가가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며 “국가는 국민 모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그때의 조치들은 국가가 견지해야 할 공공성을 크게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저임금을 줄이고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려고 도입한 최저임금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내년도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6470원으로 올해보다 440원(7.3%) 인상됐다. 한 달 임금으로 환산하면 135만2230원. 1인 가구의 월평균 생계비(167만3803원)에도 못 미친다.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최저임금도 못 받는 ‘근로자 비율’은 11.8%(2013년 기준)다. OECD 26개국 중 세 번째로 높다.

[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3)비정규직인 나와 부자인 그에게 나라는 평등하지 않다

■“국가가 곧 기업이 됐다” 

서울 강남구 신사역 인근의 ㄱ감자탕집은 24시간 영업을 한다. 80석 식당의 한 달 매출은 평균 1700만원 정도 되지만 월세 440만원(보증금 5000만원)에 인건비 등을 제하면 주인 부부 손에 쥐어지는 돈은 월 300만~400만원 남짓이다. 주인 ㄴ씨의 얘기다. “강남이라 다른 동네보다 임대료가 높다. 월세 내고 인건비 주면 수입이 안 나오니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받으려고 24시간 한다. 새벽 시간대 손님이 많을 때는 5~6팀, 적을 때에는 1~2팀이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지난 추석 대기업 계열 대형마트들은 ‘추석 당일 정상 영업’을 했다. 명절 당일 영업하는 게 ‘정상’인 나라, 새벽에도 식당 문을 못 닫는 나라. 노동의 가치가 땅값보다도 못해 벌어지는 일이다. 

땀 흘려 노력해도 부의 축적이나 계층 이동이 어려워진 시대엔 부동산 투자가 모든 사람의 로망이 됐다. KB금융연구소의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큰손’들의 재산 절반(52.4%)은 부동산이었다.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이 주로 찾았던 부동산 경매학원은 20대 대학생, 30대 직장인들로 붐빈다. 초등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건물주’라는 답이 나온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풍자하듯이 세입자들의 입지는 취약하다.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건 대세가 됐다. 노무현 정부 때 1.66%이던 전셋값 상승률은 박근혜 정부 들어 18.16%로 10배 이상 높아졌다. 전세 비율은 1995년 29.7%에서 2014년 19.6%로 내려간 반면, 월세 비율은 같은 기간 11.9%에서 21.8%로 높아졌다. 이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의도한 방향이다. ‘최경환 경제팀’은 2014년 8월 부동산 대출 규제를 대폭 풀었고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내리며 손발을 맞췄다. 업자들도 “전세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제도”라며 전세 씨말리기에 힘을 보탰다. 이들에게 매달 임대료 대느라 허덕이는 서민들은 안중에 없었다. 

임대소득은 대표적인 불로소득이다. 그런데 세금은 제대로 걷지 않는다. 현행법상 모든 주택임대소득은 원칙적으로 과세대상이지만 예외 조항이 너무 많다. 1주택 소유자는 주택 기준시가가 9억원을 넘지 않으면 아무리 월세를 많이 받아도 과세대상이 아니다. 연간 2000만원까지의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는 정부가 비과세 특례 기한을 2년 더 연장하면서 내년에도 물 건너갔다. 전세 임대인의 경우 3주택 이상 소유자이고 전세보증금 총액이 3억원 이상인 경우에만 과세대상이 된다. 미국·일본 등에서 주택 수나 가격에 상관없이 임대로 발생한 소득에 모두 과세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부는 매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도, 이 같은 불균형을 시정하는 데에는 손을 놓는다.

“세계에서 제일 비싼 부동산은 그 자체로 부의 불평등 문제와 더불어 높은 자본소득(낮은 노동소득)의 문제를 제기한다. 높은 부동산 가격은 두고두고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소득 불평등을 더욱 압박할 것이다.”(이정우 경북대 교수) 

경제활동으로 만들어낸 국가 소득은 가계, 기업, 정부에 분배된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는 가계와 기업에 분배된 소득 비중에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가계소득의 몫이 지속적으로 줄어든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1990년부터 2014년까지 국민소득 중 가계소득 비율은 70.1%에서 61.9%로 8.2%포인트 감소한다. 이 기간 기업소득의 비율은 17.0%에서 25.1%로 8.1%포인트 증가했다. 임금·이자·배당과 같이 가계소득으로 분배돼야 할 몫이 줄어들고 기업 몫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서울 도심 속 대표적 달동네인 종로구 창신동에서 지난 14일 오후 한 주민이 옥상에서 키우는 채소에 물을 주러 가고 있다. 뒤쪽엔 고층 아파트촌이 자리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서울 도심 속 대표적 달동네인 종로구 창신동에서 지난 14일 오후 한 주민이 옥상에서 키우는 채소에 물을 주러 가고 있다. 뒤쪽엔 고층 아파트촌이 자리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7·4·7’ 공약(성장률 7%,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경제강국)을 내걸고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 주도 성장의 과실이 국민 전체로 확산된다는 ‘낙수 효과’를 믿었다. 이명박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고, 노무현 정부 때 도입한 종합부동산세도 부과 기준을 올리고 세율을 낮춰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기업과 자산가들에 대한 감세 조치였다. 

선거 때 재벌 개혁과 양극화 해소를 강조한 정치세력들은 집권 후 친재벌로 돌아섰다. 대통령마다 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밥을 먹으며 투자와 고용을 당부하는 장면은 익숙하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 역시 “규제는 암덩어리”라며 규제완화를 통한 경제활성화를 강조했다. 기업 이윤은 국가의 유일무이한 목적이 됐다. 

“행정부나 사법부가 예전에는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게 문제였다면 지금은 국가권력이 자본의 영향에 좌지우지된다.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이 정치인데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하승수 변호사) 

대통령 사면권은 법원 판결을 없던 일로 해버리는 예외적 권한이다. 역대 정부는 때마다 재벌 총수들을 풀어줬다. 명분은 민생·경제 살리기였다. 효과는 없었다. 투자나 고용을 늘리더라도 반짝 이벤트에 그쳤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12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한 명을 위한 ‘원 포인트’ 특사도 단행했다. 이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맡고 있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게 이유였다. 당시 법무장관은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자”고 말했다.

낙수 효과는 실종됐지만 친재벌 정책은 그대로다. 롯데가 김영삼 정부 때부터 추진한 제2롯데월드 신축은 군 항공기 안전 문제로 장기간 표류했으나 이명박 정부는 활주로 각도를 변경하고 롯데가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내줬다. 복지 재정 확충을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지만 정부는 ‘증세 불가’ 도그마에 갇혀 있다. 기업들은 수백조원의 유보금을 쌓아 두고도 투자나 임금 인상에는 인색하다. 

경제력 집중은 심화된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재벌에 속한 기업 24곳이 생산한 부가가치는 2011년 94조1000억원에서 2013년 119조원으로 늘었다. 삼성그룹 소속 9개사는 2013년 총 62조8000억원의 부가가치를 생산해 50대 기업이 생산한 부가가치의 37.1%를 차지했다. 범4대 그룹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자산 비중은 2000년 45.8%에서 2012년 말 69.7%로 약 1.5배 늘어났다. 매출액 상위 10대 기업이 각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 15.1%, 일본 22.0%, 프랑스 29.4%, 독일 30.1%이지만 한국은 47.1%에 이른다. 

노동자나 소비자가 희생양이 된 사건에서 개입·조정 책임을 진 정부는 방관자로 전락했다. 생명이 걸린 문제도 외면할 때가 많았다. 2007년 3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기흥공장에서 2년간 일하던 황유미씨가 급성백혈병으로 스물셋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가 그해 6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한 뒤 백혈병이 직업병이었음을 인정받기까지 7년3개월이 걸렸다. 정부 집계에서도 사망자가 100명이 넘고 수천명의 피해자를 낳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위해성이 명백해질 때까지도 제조·유통 업체에 대한 제재나 피해자 구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지난달 정기회의에서 채택한 ‘유해물질 및 폐기물 처리 관련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의 한국 방문 보고서’에서 “산재보험 체계와는 별도로, 피해를 구제받아야 할 노동자·피해자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1차적 책임 주체인 정부가 수행한 대책의 수준이 놀랄 만큼 낮다”며 “산재보상 청구인에게 부과된 과도한 입증 책임 때문에 보상을 받기 어려워지는 점을 우려한다”고 적었다. 

“공공성의 표상이자 골간인 국가까지 시장화돼서 국가가 ‘재산관리 국가’로 전락했다. 국가가 형평이나 공공성, 자유, 시민 권리의 보호가 아니라 더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박명림 연세대 교수) 

■“신계급사회, 계층 이동 사다리를 치우다”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한다. 고대 로마처럼 신분제를 바탕으로 하는 귀족공화국도, 중국처럼 권력이 내각이나 당에 집중된 ‘인민공화국’도 아니다. 민주공화국은 삼권 분립과 인권 평등이 보장되는 나라다. 조선왕조 500년, 식민통치 35년이 끝난 뒤 들어선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은 마침내 공공 가치를 공유하고 균등한 권리를 누리며 주체가 되는 사회가 될 거라고 믿었다.

2016년 대한민국은 다시 봉건사회다. 학벌, 재산, 직업에 따라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가 구분된다. 교육부 고위 관료는 “구의역에서 죽은 아이가 어떻게 내 아이처럼 생각되나.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라고, 계급과 신분을 구분 짓는 엘리트층의 의식체계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자기 자식은 이미 평등의 고원 위로 올라가 있다는 거다. 구의역 노동자의 죽음에 감정이입을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아이(구의역 노동자)는 평등의 고원에 올라온 애가 아니라는 거다. 그들이 받는 부당한 대우를 부정의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불행하거나 능력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이택광 경희대 교수) 

20대 국회의원 300명 중 139명(46.3%)은 교수·법조인·관료 출신이다. 81명(27%)이 서울대를 나왔고, 141명(47%)이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이다. 이른바 명문대를 나오고 사회 주류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몇 년 전까지도 국회에서 소수자를 대변했던 농민, 환경미화원 출신은 자취를 감췄다. 20대 국회 신규 재산등록 의원(154명)의 재산은 평균 34억2200여만원, 4명 중 1명은 재산이 20억원이 넘는다.

퇴직한 ‘전관’들에게 노후 걱정은 딴 세상일이다. 최근 5년간 공정위에서 4급 이상 고위직을 지내다 퇴직한 뒤 재취업한 사람 가운데 85%가 대기업이나 로펌행을 택했다(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는 공직에서 쌓은 다양한 특별수사 노하우를 ‘거물들’ 변호에 재활용하며 연간 100억원 가까운 소득을 거뒀다. 대기업이나 로펌이 고액 연봉을 주고 고문, 자문위원 등으로 전관들을 영입하는 건 이들의 ‘힘’이 로비 과정에서 통한다는 것을 뜻한다. 

“공공성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정의다. 그런데 돈 많이 벌고 성공하면 당장 욕을 먹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게 성공한 사람들이 보여준 모습이다. 절차를 무시하고 부패하더라도 돈 많은 것이 존중받는다.”(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본부장) 

과거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했던 교육은 계층 굳히기의 수단이 됐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의 ‘세대 간 계층 이동성과 교육의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최하위 25% 임금을 받는 아버지로부터 최상위 25% 임금을 받는 아들이 나오는 비율은 18%이지만, 최상위 임금을 받는 아버지로부터 최상위 임금을 받는 아들이 나오는 비율은 36%로 두 배 높다. 과거엔 집안이 가난해도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부모 경제력에 따른 교육 격차가 커지면서 계층 간 대물림을 공고화한다. 고시제도의 배타성을 보완하려고 도입됐지만 ‘금수저’를 위한 제도가 되어버린 로스쿨이 대표적인 예다. 로스쿨의 1년 등록금은 1600만~1800만원. 고위층 자녀가 로스쿨 졸업 후 취업 과정에서 부모 스펙의 도움을 받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교육 여건이 열악한 지역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서울대가 2005년 도입한 ‘지역균형선발’ 전형은 오히려 서울 학생들에게 유리하다. 올해 지역균형선발 전형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서울 출신 학생은 4명 중 1명꼴이다(더민주 오영훈 의원).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등 사회적 배려자를 위한 전형인 ‘기회균형선발’로 입학한 학생은 2012년 5.8%(195명)에서 올해 2.9%(163명)로 줄었다.

“공화라는 말은 세습 귀족이나 왕이 없고 모든 사람이 동등한 조건에 처해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흙수저론이 나올 정도로 불평등이 심각하다. 교육, 복지, 노동의 권리가 동등하게 주어져 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특정 계층에 편중된 부분이 있다. 경제적 불평등만이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정치에서 (민중을) 배제하기 위한 장치들로 가득 차 있다.”(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특별취재팀 

김종목 이주영 장은교 황경상 김형규 심진용 박광연 이유진 최미랑 최민지 허진무 기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특집 페이지 주소 http://news.khan.co.kr/kh_storytelling/2016/republic/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182236005&code=940100&s_code=as166#csidx50011336b9d4f41b007f842cc64f2c8

[공화국을 묻다-하승수]“우리의 삶, 우리가 결정해야 민주공화국”

정리|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ㆍ“생활 속에서 우리는 주인으로 살고 있나요? 주어진 대로 살고 있나요?”
ㆍ “자본이 다스리는 과두정을 시민이 지배하는 민주공화국으로”

하승수 변호사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하승수 변호사 |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향신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기획 특별취재팀은 지난 7~9월 지식인 40여명과 기획 자문을 겸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도움 주신 분들의 양해를 얻어 전문을 싣습니다. 게재 전 보완 과정을 거쳤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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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변호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라는 물음에 “우리의 삶과 일상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결정되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대한민국은 자본의 눈치를 보는 나라가 됐다고 진단했다. 물과 공기, 먹거리, 에너지 문제마저도 자본권력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는 우리가 우리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해선 시민들이 작은 생활단위에서부터 결정하고 책임지는 경험을 쌓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기획으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라는 주제를 던져보려고 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 개인적으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두정이라고 봐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사회죠. 근본적으로 보면, 재벌, 기득권 정치세력, 행정·사법관료, 기득권 언론들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처럼 원시적이고 비민주적으로 통치를 하는 권력이 일시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기도 하구요. 어떤 나라가 민주공화국인가를 분석해 볼 수 있는 여러 틀이 있는데, 먼저 ‘누가 지배하는가’의 관점이 있습니다. 민주공화국은 다수의 국민들이 참여해서 공동체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인데 지금 과연 누가 결정하고 누가 지배하고 있죠?

정치시스템 말고 일상 생활에서 한번 생각해보죠. 물이나 공기 등 우리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실제 어떻게 결정되고 있는지, 우리의 의견은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생활 속에서 우리는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주어진대로 먹고 살고 있는지요. ‘소비자주권’이라는 말도 하지만 결국 자본의 논리때문에 노동자도 소비자도 다 대상화 될뿐 소외되고 있습니다.

제헌헌법이 실린 대한민국 30년(1948년) 9월 1일자 관보

제헌헌법이 실린 대한민국 30년(1948년) 9월 1일자 관보 

역사적으로 접근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해방 이전 임시정부에서 꿈꾼 대한민국의 모습이 있죠. 가장 잘 나와있는 것은 1948년 제헌헌법입니다. 

제헌헌법 제5조는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해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고 명시했습니다. 

제18조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제87조는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고 했어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강조했던 헌법이었던 거죠. 그런 정신만 잘 실현됐어도 지금 우리사회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제헌헌법은 이승만 쪽을 빼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대체로 합의했던 공화국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꿈꿨던 공화국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고 변질됐습니까? 

알권리의 실태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최소한의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공해야 하는데 지금 중앙정부는 최소한의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보 3.0’을 한다는데 ‘정보 1.0’도 안되고 있어요. 시민들이 정보를 찾으려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렵습니까.”

-임시정부에서까지 민주공화국을 꿈꿨는데 지금 그렇게 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저해요인을 꼽아본다면요. 

“행정부나 사법부가 예전에는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게 문제였다면 지금은 국가권력이 자본의 영향에 좌지우지됩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자본의 영향을 받는 게 심해졌어요. 새만금 토건사업 문제도 토건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정책이 엉망이 된 거에요. 4대강도 마찬가지죠. 국가 의사결정이 자본에 의해서 좌우된 겁니다. 원전문제라든지 이명박 정부 때 대량허가가 난 석탄화력발전소 등등…자본의 이익에 맞춰 에너지와 먹거리 문제까지 결정됩니다. 유통 마켓도 대형 재벌회사가 장악하고 있죠. 우리의 일상, 먹는 것과 전기, 마시는 물까지도 이제는 자본아래 다 넘어가 버리는 현상이 점점 심해졌어요. 

언론의 경우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난 15년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 자본과 언론의 힘이 커진 것이 민주공화국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저해요인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자본의 힘이 가장 강하고 자본의 힘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이 정치인데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권자와의 거리도 멀잖아요. 거대정당들을 중심으로 시스템이 굴러가니까 견제하는 것이 불가능한 거죠.

‘민주주의 지수 평가’라는 게 있는데 잘되는 나라는 대체로 다당제 정치구조가 형성되어 있고, 선거제도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다당제 시스템을 하면 정치가 불안정해진다’는 이상하게 왜곡된 논리가 퍼져있어요. 미국이나 한국처럼 거대정당의 양당제로 굴러가는 나라가 더 불안하죠. 그러나 헌법학자, 정치학자들도 출처불명의 논리를 들고 나와 양당 시스템을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그 역할을 합니다. 이번 기획에서 잘못 알고 있는 민주주의상식. 왜곡된 점들도 짚어주면 좋겠습니다.“ 

지난 8월 25일 경북 고령 낙동강에 발생한 녹조 위로 물고기 한 마리가 떠다니고 있다. | 이상훈기자

지난 8월 25일 경북 고령 낙동강에 발생한 녹조 위로 물고기 한 마리가 떠다니고 있다. | 이상훈기자

-최근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 더불어민주당의 김부겸 의원 등이 공화국과 공화주의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공화주의 얘기를 하는 것은 좋은데, ‘공화국’ 앞에는 반드시 민주라는 말이 붙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한국은 사실상 민주국가가 아니라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정 상태인데, 자칫 ‘공화주의’만 강조하면 ‘소수 엘리트가 사회 공공선을 실현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왜곡될 수 있다고 봅니다. 무엇이 공동체의 이익이고 가치인지도 시민들이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서 가려질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근 15년내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사건은 무엇이 있을까요.

“먼저 한·미FTA죠. 우리 주권이 양도되는 조약인데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만들어졌어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굉장히 큰 문제에요. FTA는 한번 체결되면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지만 체결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의사결정과정에 국민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습니다.

국정원 대선불법개입사건도 그렇습니다. 국가권력이라는 것이 최소한 지켜야 할 기준이나 원칙이 있는데 무너졌어요. 정보기관을 포함해 법을 집행하는 기관들의 최소한의 중립성이 무너진 사건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에라도 민주공화국이 되려면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의민주주의를 할 수밖에 없으니까, 대의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혁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선거제도는 세계 최악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지난해 2월에 독일식에 가까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전면개편하자는 제안을 냈습니다. 보수적인 공무원들이 보기에도 한국의 선거제도는 엉망이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민주주의 역사를 돌아보면, 정당이 얻은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상대적으로 좋은 선거제도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 단계에선 직접민주주의의 경험과 무대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시민들이 작은 생활단위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해야 합니다. 시민들이 결정에 참여하는 경험, 시민들 스스로 공동체의 가치를 찾아내야 하는 거죠. 누가 제시해주는 것이 아니라요. 지자체에서 참여예산제도 등 여러가지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아직까진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런 변화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4월 11일 20대 총선 투표참여를 호소하는 율동을 펼치고 있다. | 정지윤기자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4월 11일 20대 총선 투표참여를 호소하는 율동을 펼치고 있다. | 정지윤기자

개헌 얘기할 때 자꾸 권력구조만 말하는데 이제는 지금 하고 있는 대통령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4년 중임제를 주장하는 분도 있지만, 4년 중임제란 8년 독재를 할 수 있는 것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4년 중임제를 하고 있지만, 큰 탈 없이 하고 있는 것은 그 제도가 좋아서가 아니라 국회 권한이 우리보다 세고 연방제를 하면서 주정부 권한이 강하기 때문이에요. 대통령이 나라를 완전히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독재까지는 못가는 거죠. 우리나라는 좀 달라요. 굉장히 위험합니다.


개헌에 대해 자꾸 중앙에서 힘있는 사람들끼리 권력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만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다른 논의를 해봐야 해요. 우리나라는 국민발안 제도가 없고, 국민투표도 대통령만 발의할 수 있도록 돼있다잖아요. 다른 나라에 비해서 국민투표제를 굉장히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원전 문제나 통상정책 문제도, 안전에 관한 문제도 국민들이 참여해서 결정해야 하는데 국민들은 배제돼있습니다. 영국에서 브렉시트를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했는데 우리나라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저는 시민들의 참여 기회를 여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120838001&code=940401&s_code=as166#csidx96eb82aa727346f99372cecc16d3542

[민주공화국]권력이 그 주인을 억압할 때, 국민은 ‘헌법 제1조’ 떠올렸다

황경상·최민지·허진무·박광연·이유진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ㆍ최근 7년간 ‘민주공화국’ 언급 트윗 분석

가끔 그 문장을 꺼내 읽으며 쓰다듬고 싶을 때가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하는 헌법 제1조 이야기다. 시민들이 민주공화국을 떠올리는 때는 언제일까. 트위터 사용자가 본격 늘어난 2009년 4월부터 2016년 8월까지 7년4개월 사이 ‘민주공화국’을 한 번이라도 언급한 트윗을 모두 모았다. 맥락 없이 반복 게재된 트윗을 제외한 7639건을 들여다봤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 문장이 이렇게나 공허한 문장이었나요?”

가장 처음 등장한 트윗이다. 2009년 5월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벌어진 날이다. 시민들은 노제가 끝나도 서울광장을 떠나지 않았다. 경찰은 해산작전에 돌입했다. 이 트윗은 당시 경찰을 비판하면서 쓴 것으로 추정된다. 한 자릿수에 머물던 ‘민주공화국’ 언급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도 1년 뒤인 2010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즈음이다. 

그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풍자 의미로 ‘쥐 그림’을 그린 박정수씨에 대한 긴급체포와 구속영장 청구가 알려졌다. 정부는 G20 행사를 앞두고 학생들을 동원했다. 쓰레기 배출까지 자제시켰다. 시민들은 껍데기 민주공화국의 탈을 쓴 ‘왕정’을 떠올렸다. “세계 각지 정상들이 모이니까 이거 하지 마라. 이해할 수 있어. 근데 헌법에 민주공화국이라고 써뒀으면, 제발 미안해하는 척이라도 하라고! 니들 지금 당당한 걸 넘어 아예 명령조잖아!” 당시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대우조선해양 비리 연루 의혹이 제기됐다. “국모가 상처를 받았다.” 황영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의 반응이었다. 

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될 때 사람들은 헌법을 떠올리며 ‘민주공화국’을 언급했다. 트윗 성격을 분야별로 나누어 보니 ‘정치’(38.1%) 분야가 가장 많았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2011년 6월 ‘민주공화국’ 언급이 처음으로 한 달에 200건을 넘어섰다. 반값등록금 운동이 확산되고,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위한 희망버스 운동이 전개되던 시기다. 시민들은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의 칼럼을 인용해 트윗했다. “희망버스는 단순히 주변부로 몰린 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지원 투쟁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삶의 뿌리와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민주공화국의 운동이다.” 


11월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을 날치기로 처리했다. “우리는 이름만 민주공화국인 국가에 살고 있었다”는 분노가 나왔다. “다수결, 이게 민주공화국인 것”이라며 비준 과정에서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터뜨린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의 행위를 비판하면서 비준의 절차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넉 달 뒤인 2012년 3월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민간인 사찰 관련 폭로가 나왔다.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민간인을 감찰했다는 것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말한 헌법 1조를 무시하고 국가 근본을 흔들어버린 중대 범죄행위다.” 

12월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는 문재인 후보 지지연설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데, 투표를 안 하면 만주공화국이 된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인용 트윗을 올렸다.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의 대선 개입 현장 상황을 조롱하는 “민주공화국 VS 만주공화국 = 잠금 VS 감금”이란 트윗도 나왔다. 똑같은 ‘민주공화국’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문재인 : 퍼다주고 평화를 유지하겠다 이정희 : 북한이 원하는 대로 통일을 하겠다 박근혜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선거 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민주공화국’은 ‘부정선거’라는 키워드와 함께 꾸준히 거론됐다. 2013년 6월 국정원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이 검찰 기소로 기정사실화하면서 한 달 사이 400건에 육박했다. 역대 최고치였다. “꼭 탱크 몰고 한강다리 건너야 쿠데타인가? 민주공화국, 주권재민의 가치를 부정하고 권력을 탈취하면 모조리 쿠데타이다. 국정원이 만든 권력, 당연히 쿠데타 정권이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후에도 ‘민주공화국’을 떠올리는 일이 잦아졌다. “어떤 민주공화국에서 국민이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으며 자신들의 권리를 빌며 얘기한단 말인가.” 그해 12월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하면서 언급량은 200건 가까이 뛰었다. “심판대에 선 것은 통합진보당이 아니라 헌재 재판관들이며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이다.” 그즈음 정윤회씨의 청와대 비선 실세 의혹 사건,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이 벌어졌다. “‘십상시’ ‘궁중암투’ ‘세습’…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절대 왕정이 통치하는 ‘중세 신분제사회’!” 

2015년 7월, 다시 ‘민주공화국’을 불러낸 것은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였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압박으로 물러나면서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의 가치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헌법 1조 1항을 대통령에 의해 쫓겨난 새누리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듣게 될 줄 상상 못했다”는 트윗이 붙었다. 11월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 사건 등으로도 언급량이 늘었다. “정치인이나 정부가 국민의 자격을 묻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국민의 자격 따위는 없다. 끊임없이 정부의 자격을 묻는 것이 민주공화국이다.”

어떤 시민들에게 민주공화국은 다가오지 않은 미래다. 실현해야 할 가치다. 어떤 시민들에게는 지금 대한민국은 당연히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는 아직 민주공화국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지난 8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건국절 주장 비판 발언도 많은 트윗을 불렀다.


사용자 수 차이를 감안해야겠지만 ‘민주공화국’이 점점 더 많이, 더 넓게 호명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빅데이터 분석가인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민주공화국 가치가 내년 대선 화두로 계속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민주주의의 급속한 후퇴,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사법 정의 실종 등 전방위적 퇴행 속에서 많은 후보들이 헌법적 가치를 박근혜 정부와의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공화국]“이 정권에선 헌법 조문조차 거짓말 같다” “박 대통령은 왕정국가 공주 캐릭터”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ㆍ트윗 7639개 속 어떤 키워드 있나


경향신문이 취합한 ‘민주공화국’ 언급 7639개 트윗에는 헌법 제1조에 나오는 단어들이 가장 많이 등장했다. 대한민국(1위·3959회), 국민(2위·2113회), 권력(5위·1195회) 등이 그렇고, 헌법(4위·1685회) 자체를 언급한 사람들도 많았다. 헌법 제1조의 조문만을 트윗한 시민들도 이어졌다. “만우절 0시를 즈음해 헌법을 읽어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 정권 아래선 헌법 조문조차 생구라 같다.”

분노가 치밀고, 어이가 없을 때는 헌법 조문으로 ‘이 나라’(40위·151회)의 현실을 돌아봤다. 헌법 제1조 속 단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나라(3위·국가 포함 2004회)였다. “아니 뭔 나라를 되찾자는 것도 아니고 당연한 권리 찾기도 이리 힘들어서야. 이게 민주공화국 맞어?”

시민들은 대통령(8위·828회)의 자격을 물었다. 박근혜 대통령(9위·652회)도 많이 언급됐고 왕(15위·504회)이 85차례, 독재(17위·463회)가 57차례나 함께 쓰였다. 시민들은 민주공화국의 반대를 ‘왕정’이라 생각했다. “박근혜씨는 왕정국가의 공주로 보면 나름 매력있는 캐릭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공화국의 대통령감으로는 전혀 아니다. 외계인이 지구생태를 책임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민들의 민주공화국은 거창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투표하는) 국민에게서 나온다.” 선거(6위·투표·투표율 포함 892회)나 대선(29위·238회)으로 민주주의(11위·588회)가 잘 작동한다면 민주공화국이다. 따라서 부정(12위·567회)한 선거, 국정원(18위·408회)의 대선 개입은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였다. 투표로만 공화국을 ‘인증’하다보면 이런 주장도 나온다. “2008년 광우병 촛불폭동 때, 종북좌파들이 100일간 수도 서울을 짓밟으며 매일 밤 틀었던 음악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였다. 민주공화국이 뭔가? 투표로 자신의 신념을 쟁취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받으면 민주공화국에 의문을 품었다. 집회(23위·시위 포함 282회)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경찰(30위·223회)의 무자비한 진압이 이뤄질 때 절규처럼 민주공화국을 내뱉었다. 재벌(51위·126회), 삼성(66위·103회), 돈(69위·101회) 등 자본도 민주공화국을 위협하는 요소였다. 체념한 시민들에게 민주공화국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북한(26위·북조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포함 255회)은 좋은 소재였다. “사람들이 헷갈리나본데, 한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독재하는 나라들은 다 자기가 민주공화국이라고 한다구. 북한만 봐도 알잖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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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2)“돈이 지배하는 갑·을의 사회…중세 신분제와 뭐가 다른가”


황경상·최민지·허진무·박광연·이유진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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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시민이 말하는 ‘당신들의 민주공화국’


우리 모두는 민주공화국에 산다. 그런데도 일상에서는 잘 느끼지 못한다. 개개인이 맞닥뜨린 삶에서 민주공화국의 원칙은 자주 흩어져 버린다. 무력감을 느낀 시민들은 ‘민주공화국이 맞는지’를 되묻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정지윤 기자

우리 모두는 민주공화국에 산다. 그런데도 일상에서는 잘 느끼지 못한다. 개개인이 맞닥뜨린 삶에서 민주공화국의 원칙은 자주 흩어져 버린다. 무력감을 느낀 시민들은 ‘민주공화국이 맞는지’를 되묻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정지윤 기자


정선숙씨(49)는 초등학교 방과후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쉽게 말해 비정규직 교사”라고 했다. 매년 3월이 되면 정씨는 ‘360일짜리’ 계약서를 쓴다. 학교가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쓰는 편법이다. 그나마라도 지키면 다행이다. 11월쯤 일방적으로 끝내기도 한다. “그냥 끝입니다 하면 끝이더라고요.” 초등학교 정규 1교시 수업은 40분인데, 방과후교사는 50분을 한다. 시간당 받는 3만원은 20년 전과 같다. 그런데도 정씨는 “철저한 을이라 소리를 낼 수도 없다”고 했다.

겉보기에 분명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한꺼풀 벗겨서 각각의 집단 안으로 들어가면 민주공화국 원칙은 작동을 멈춘다. 법은 약자의 눈물을 외면한다. 소수가 권력을 움켜쥐고 돈이 지배하는 사회, “중세 신분제 사회와 뭐가 다르냐”고 묻는 대한민국이다. 


■국민이 주인인가, 노예인가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박혀 있다. 국민이 공화국의 ‘진짜 주인’이 되려면 ‘노예’가 아니어야 한다. 김경희 성신여대 교수는 <공화주의>(책세상)에서 “국민이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 주인으로 서려면 적어도 신분·지위·재산 같은 조건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예속되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지배가 없는 자유가 보장되고 사람이 아닌 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공화국의 기본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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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에서 일하는 이민석씨(31·가명)는 “24시간 중 나를 위해서 쓰는 시간이 하루에 한 5시간이 안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 5시20분에 출근하고, 퇴근 전 갑자기 일이 던져지거나 상사 눈치가 보여 제 시간에 퇴근하지 못하는 날이 많다고 했다. 그런 속에서도 힘이 빠지고 설움이 오래 뭉치는 것은 ‘을 중의 을’이 될 때다. “손님이 막무가내로 욕부터 하니까 직원들이 한 번씩은 다 우는 것 같아요.” 이씨는 “VIP가 오면 정말 영화 속 장면처럼 90도 각도로 인사한다”고 말했다. “완전 계급사회죠. 돈이 곧 권력이 되고, 그게 그냥 신분이 되는 것이죠.” 

취재팀이 만난 시민 40여명은 각박한 세상살이 속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김세정씨(24·가명)는 회사 안에서 ‘입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킨다. “수당도 안 주는데 연차도 제대로 못 써요. 하지만 ‘불합리합니다’ ‘고쳐주십시오’ 하고 자유롭게 말 못해요.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 자체도 알려질까 두려워요. 법이 보장하는 내에서 개인이 자유롭게 할 말 못하는 이 사회는 민주공화국이 아니죠.” 제조업체 영업사원인 정형준씨(30·가명)는 노동조합에 가입할 생각이 없다. 노조를 만들려다 한 방에 ‘훅 가는’ 사람을 봤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과장님이었죠. 그분이 현재 노조가 어용이라며 복수노조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러다 지방 생산직으로 발령받았죠.”


■출발선과 기회가 다른 나라 

취업준비생 송주용씨(27)는 대학 시절 온갖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섭렵했다. 백화점 의류매장 점원, 식품코너에서 고구마 팔기, 보일러 수리공 보조…. 학기 중에도, 방학에도 일했다. 어렵게 졸업의 문턱을 넘었지만, 돌이켜보면 상처투성이다. “반말은 예사고요. 고구마를 봉지에 담는데 장갑 끼지 않은 손이 조금 닿았다고 화를

내며 안 산다고 하기도 하고…. 내가 인격적으로 하등한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죠.” 송씨는 대한민국이 누구나 똑같이 배우고 도전하고 꿈꿀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사회라고 했다.

대학원생 김태진씨(28)도 “금수저 친구들의 생활을 보면 마치 다른 나라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방학 끝나고 물어보면 흙수저인 애들은 대부분 알바했다고 하고, 집이 여유로운 애들은 외국 갔다왔다고 해요.” 그의 눈에는 한국의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됐고 쉽게 열려 있지도 않다. “선출직 공무원이나 사법·행정 고위관료들이 권력을 다 잡은 것 아닌가요.” 김씨는 “선거도 공탁금이나 선거비용을 보전해 주는 최소 득표율이나 진입 문턱 자체가 너무 높다”며 “이젠 5급 공무원 준비도 경제적 부담이 커 좀 사는 집 애들이 준비도 많이 하고 합격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구성재씨(28·가명)는 보통 오전 7시20분 출근해 오후 9시까지 일한다. 회식도 잦다. 오후 11~12시에 들어가 다음날 오전 5시에 일어나야 한다. 몸의 에너지가 소진된 삶을 생각하면 “토가 나온다”고 했다. “지방에서 서울 올라와 사느라 매달 월세만 50만원 넘게 내는데 언제 집을 마련하고 결혼도 하겠어요.” 그는 “한국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2)“돈이 지배하는 갑·을의 사회…중세 신분제와 뭐가 다른가”


■지배받는 ‘약자의 끝’ 여성 

김세정씨는 회사에서 그만둔 여자 선배들의 이름을 다 외운다. 남자 상사들이 “결혼하면 그만두겠지”라며 입에 달고 다녔던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여자는 ‘뻑 하면 울거나 그만두는 존재’들이다. “같이 입사한 동기는 회식 자리에서 ‘결혼하고 그만둘 생각이면 폐 끼치지 말고 당장 그만두라’는 말을 듣고 서럽게 울었다고 해요.” 

담배를 수시로 피우러 나가는 상사들은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러 가는 여직원을 삐딱하게 본다. 여직원은 분위기나 구색 맞춰 주는 존재로만 남길 바란다. “노래방에서 술 취한 상사가 더듬으려고 한 적도 있죠. 한 입사 여동기는 호텔 나이트클럽 룸에서 춤추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거부했다가 울었어요. 상사가 ‘분위기 정말 못 맞춘다’며 되레 화를 냈다고 해요.” 

서울의 한 여대를 졸업하고 로스쿨에 입학한 전민영씨(28·가명)도 “여성이 소수자인 사회로 나오니 목소리를 마음껏 내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 ‘검사 힘든데 왜 하려고 하냐’는 질문은 늘 여자만 받아요. 자기 검열에 빠지는 것이 요즘 가장 힘들어요.” 가정주부로 살다 2006년부터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는 김영숙씨(49·가명)는 “한국에서 ‘아줌마’로 산다는 것은 무지와의 싸움”이라며 “학교에서는 민주주의를 가르치지만, 한국 사회 자체가 여성이 자기 생각을 말하면 불편해한다”고 주장했다.


■제도를 채울 알맹이가 없다 

공화국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시민적 덕성’이다. 법과 제도가 잘 갖춰져도 사람들이 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직장인 손정우씨(26·가명)는 “한국은 하드웨어는 갖춰져 있는데 소프트웨어는 못 따라간다”고 짚었다. “예를 들어 파업을 하잖아요. 노동 3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죠. 근데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는 거예요. 민주공화국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니까 다른 사람들이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하는 것도 배 아파하는 거죠.” 

마키아벨리는 공적 이익을 추구하는 시민적 덕성이 사라지고 사적 이익만을 챙기는 부패가 만연하는 이유가 불평등 때문이라고 봤다. 권력과 재산을 많이 가진 이들이 법과 제도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사람들은 능력과 자질을 함양하기보다는 부정한 방법에 의탁한다는 것이다. 학원강사 허역씨(52)는 개인을 탓하기 앞서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체가 텅 비어버린 거죠. 사회구조 자체가 배려나 공동체 의식을 내세우면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지게 만들어져 있어요.”

제도 그 자체로서 민주공화국에 만족하고 나머지는 개인 노력으로 채워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학생 최영환씨(24·가명)는 “정권교체까지 가능할 정도로 선거제도가 정착된 한국 사회는 불안정한 면이 있더라도 민주공화국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 자영업을 하는 지준성씨(56·가명)는 청년들이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표현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 사는 곳을 지옥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사회라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국회의원들이 자녀들 취업하는 데 야비한 수를 쓴다든가 그런 걸 보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고는 봐요.” 


■일상이 정치·민주주의·공화국이다 

“전 골치 아픈 건 될 수 있으면 안 보려고 해요. 뭐라 그래도 어차피 바뀌는 게 없잖아요. 힘 없는 우리는 짜증만 나니까요. 성완종 사건도 그렇고 뻔한 건데 위에서 다 덮어버리죠. 뭐 할 말 있는 사람들 보니까 다 죽더군요. 무서워요, 아주. 이게 무슨 민주공화국이에요.” 주부 김은숙씨(52)의 말엔 대다수 시민들이 품고 있는 울화가 담겼다. 

대학생 이상목씨(24)는 우리가 받는 교육부터 잘못됐다고 본다. “제가 고3 때 촛불집회가 크게 일어났어요. 그때 정치에 처음 관심을 가졌는데,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제 정신이냐고. 정치를 알아선 안되는 듯이 하다가 성인이 되면 갑자기 너희의 책임과 의무라면서 관심 가지라는 게 너무 이상해요.”

여성학·평화학 연구자인 정희진씨는 “사람들이 현실정치와 일상정치, 절차적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를 나누고 있는데 사실은 이게 분리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일상의 민주주의가 진짜 민주주의이고 현실 정치는 일종의 그림일 뿐”이라며 “근본적으로 정치의 개념을 달리해야 한다”고 짚었다. 겉보기에 민주공화국에선 법과 제도의 틀이 갖춰지고 공정한 선거가 치러진다. 그러나 취재팀을 만난 대한민국 시민들의 일상에 ‘민주공화국’의 이상은 배어 있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특집 페이지 주소 http://news.khan.co.kr/kh_storytelling/2016/republic/

■특별취재팀 
김종목 이주영 장은교 황경상 김형규 심진용 박광연 이유진 최미랑 최민지 허진무 기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112215005&code=940100&s_code=as166#csidxc81e473a27d3eae83887180ef71fa8a



ㆍ권력에 ‘아니다’ 말 못하는 나라, 그래서 우린 길에 나섰다
ㆍ“국민 의견 안 들어주는 국회…우린 왜 대표자를 뽑았을까요?”


김동애·김영곤씨 부부는 비정규직 강사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투쟁을 10년째 진행 중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부근 국민은행 앞 천막은 가장 오래된 농성장이다. ‘자발적 가난과 고난’을 택한 장기 농성자들의 삶은 민주공화국의 부재 또는 위기를 드러낸다. 지난달 27일 아침 출근길 시민들은 농성장 앞에서 팻말을 든 김씨 부부 앞을 무심히 지나갔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김동애·김영곤씨 부부는 비정규직 강사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투쟁을 10년째 진행 중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부근 국민은행 앞 천막은 가장 오래된 농성장이다. ‘자발적 가난과 고난’을 택한 장기 농성자들의 삶은 민주공화국의 부재 또는 위기를 드러낸다. 지난달 27일 아침 출근길 시민들은 농성장 앞에서 팻말을 든 김씨 부부 앞을 무심히 지나갔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기획은 불평등, 노동 탄압, 특권 세습, 권력 독점, 법치 실종, 부정부패, 대의제 한계 등 ‘민주공화국’의 부재와 위기를 7회에 걸쳐 진단합니다. 지면과 온라인에서 동시에 기획을 진행합니다. 웹·모바일 페이지에 취재팀이 만난 노동자, 장애인, 활동가, 지식인 등 100여명의 육성을 특집으로 싣습니다. 특집 페이지는 시대를 진단하는 아카이브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트북 전원이 갑자기 꺼졌다. 남은 배터리 용량은 30%. 유성기업 해고노동자 김선혁씨(39) 말을 받아치던 중이었다. 폭염으로 과열된 탓일까.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 농성장 밖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스마트폰으로 온도를 확인했다. 8월11일 오후 3시 기온은 36도, 체감기온 38.6도. 차량으로 가득한 도로는 초대형 온풍기처럼 열기를 뿜었다. 햇볕이 살갗을 파고드는 날씨에도 천막을 치지 못한다. 구청은 “뼈대가 들어간 천막은 가건물”이라며 ‘철거 대상’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김씨가 가로수 그늘 아래 차린 농성장에서 얼음 조각을 입에 넣고 말했다. “겨울 노숙은 하거든요. 우리끼리 그러죠. 그게 낫다고. 아~ 여름 노숙은 정말 힘들어요.” 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2011년 해고 뒤 회사와 법원을 오가며 노숙 투쟁만 2년을 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해고 뒤 삶 자체가 억울하고 분한 일의 연속이다. 민주공화국이라면 벌어져선 안될 일들이다. 지난 1월 현대차 협력업체인 유성기업과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이 ‘노조 파괴’를 공모한 사실이 확인됐다. 노조는 직장폐쇄와 노조 탄압 배후에 현대기아차가 있다고 여겼다. 5월17일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 석 달째인 7월21일 대전고등법원은 유성기업 노동자 2차 해고 무효 판결을 내렸다. 법원 판결은 농성을 중단시키지 못했다. 복직은커녕 누구 하나 사과하지 않았다. 회사는 대화도 거부한다. 

와중에 동료는 세상을 떠났다. 농성장엔 지난 3월17일 자살한 유성기업 노조원 한광호씨의 간이 분향소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동료들은 그가 노조 탄압에 괴로워하다 죽음을 선택했다고 전한다.

노조 파괴는 이어진다. “갑을오토텍 노조 문제도 똑같아요. 컨설팅한 회사 노무사가 창조(컨설팅)에 있던 사람입니다.” 김씨는 기업과 언론, 지식인들이 노조를 탄압하면서 이윤을 내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한참을 생각하다 강정과 밀양, 성주 이야기를 꺼낸다. “국민이 주권을 가지고 있다면 그만큼 존중해야 하는 거잖아요. 간담회를 얼마나 열었나요? 얘기를 들어봤느냐는 거죠. 왜 권력층과 다른 생각을 말하면 외부세력으로 매도하느냐는 거죠. 이게 과연 민주공화국일까요?”


■길에서 민주공화국을 묻다 

특별취재팀은 지난 8월 서울의 장기 농성장 13곳을 찾았다. 22년 만의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때다. 노동자가, 농민이, 장애인이 잔뜩 달궈진 거리로 나와 끝 모를 싸움을 이어갔다. ‘자발적인 가난과 고난’을 감당하는 이들은 지금 이 시대의 ‘장기수’ 같아 보였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의미를 물었다. 길에서 더위와 추위와 싸우는 이유가 헌법 제1조의 실현과 직결된다고 여겼다. 농성장에서 ‘민주공화국’을 찾기는 어려웠다. 민주주의, 공화주의, 주권은 부재한다. 권력을 가진 이들의 ‘법과 원칙’이라는 칼날만 시퍼렇게 번득인다. 농성자들은 추방당한 채 탄압에 시달리고, 무관심에 고통받는다. 생계는 힘들고 위태롭다. 힘에 부친 몇몇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국민의 죽음 

하이디스 노조 2·3대 지회장을 맡았던 배재형씨는 지난해 5월 세상을 등졌다. “제가 다 책임지고 이렇게 갑니다. 동지들, 끝까지 싸워서 꼭 이겨주세요”라고 유서에 썼다. 사람이 죽고서야 투쟁이 ‘조금’ 알려졌다. 배씨의 죽음 전 해고자들은 “(언론에 나려면) 사람이 하나 죽든가”라는 말을 들었다.

광화문 동화면세점 농성장에서 김승배씨(44)가 말한다. “노동조합을 깨기 위해서라면 자본가들은 돈이나 시간이 얼마가 들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김씨는 배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현수막은 이들의 투쟁 이유를 압축해 보여준다. “흑자 정리해고! 우량공장 폐쇄! 특허기술 유출! 무책임한 외국기업 횡포를 정부는 즉각 저지하라!” 처음엔 금방 끝날 줄 알았다. 싸운 지 1년 반이 됐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8월 하이디스가 시설관리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한 것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이들이 삶으로 복귀할지는 미지수다. 판정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김씨가 스마트폰으로 ‘민주공화국’을 검색하고 말했다. “이런 투쟁에 전혀 관심 없었거든요. 가장으로 아이들 키우는 데만 초점을 맞췄죠. 해고 뒤에 너무 부당하고 불공정한 것을 많이 접했어요. 분명한 건 일한 만큼, 노력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게 민주주의고, 민주공화국이죠.”

농성장은 밤이면 종종 위험해진다. 취객들이 술병이나 돌멩이를 농성장에 집어 던진다. 농성장에서도 헌법은 작동하지 않는다. 윤효선씨(32)는 위협적인 상황을 보고도 신경 안 쓰는 경찰들이 있다고 했다. “눈으로 보면서도 도와주러 안 와요.” 국가는 이들을 ‘국민 생명 보호’의 대상에서 배제한다. 종종 ‘비국민’으로 취급한다. 

[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1)서울 장기 농성장 13곳서 길을 묻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티브로드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농성 천막은 중구 명동 신일빌딩 앞 화단 옆에 있다. 티브로드 최성근 수석부지부장(41), 권석천 부지회장(42)이 8월11일 저녁식사를 하러 천막으로 돌아왔다. 티브로드·세종호텔·사회보장정보원 공동투쟁단의 충무로 시위를 마친 뒤였다. 매연이나 더위는 차라리 견딜 만하다고 했다. “인생이 없다. 젊은 날을 도둑맞은 것 같다.” 비정규직의 삶을 두고 최성근 부지부장이 말했다. 저임금에 근로기준법 미준수가 다반사다. ‘당일 처리’는 온전히 노동자 몫이었다. 자정까지 일해도 콜센터 예약을 감당하지 못했다. 방송 송출선 담당 기술자들은 새벽에도 전화가 오면 뛰어나갔다. 유선방송 설치가 늦었다며 항의하는 고객에게 회사 대신 사과했다. ‘위험의 외주화’에도 무방비로 노출됐다. 별다른 안전장비 없이 전봇대에도 올라갔다. 소비자들은 눈비가 와도 설치해달라고 했다. 회사도 종용했다. 관련 법은 우천 시 전봇대 작업을 금지한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를 들은 순간 한마디로 ‘우리랑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국은 자본의 나라일 뿐이다. 권 부지회장이 말했다. “자본이 우선되는 사회는 민주공화국이 아니죠. 돈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대우를 더 잘 받아야 하고, 갑질을 해도 된다고 사람들이 느끼는 거 같아요.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생각을 하는데 아무 말도 없어요. 참 이상하죠.” 최 부지부장은 곰곰이 생각하곤 말을 이었다. “지역 센터장은 자기가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없고 본사가 해줘야 한다고 하는데, 또 본사(원청) 가서 얘기하면 ‘너희와 상관없다’고 해요.” 그에게 민주공화국은 사회·경제·정치 부문의 구조적 잘못을 누군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불평등 투쟁해야 민주공화국 

명동역 10번 출구를 나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세종호텔 벽에 기대어 세워진 팻말과 호텔 노조원들의 1인 시위다. 8월18일 고진수 위원장이 서 있었다. 연봉제 확대와 임금 삭감을 통한 정규직 퇴출, 일일근로계약서, 연장수당·주휴수당 미지급 등 사측이 끌어들인 여러 조치를 하나씩 이야기했다. 과장급 직원은 연봉제 대상자가 되고 4년 뒤 임금이 반토막 났다고 한다. ‘노동 탄압의 백화점.’ 고 위원장은 회사를 이렇게 표현했다. 

“헌법 제1조? 네. 잘 알죠. 하도 많이 외치고 듣고 했으니까요. 노래도 있고요.” 그가 웃으며 말했다. 다만 헌법 제1조는 ‘말’로 익숙할 뿐이다. 민주공화국인가는 회의적이다. “힘 있는 몇몇이 ‘이거 맞지’라고 물으면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는 구조가 됐어요.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조차도요. 그것이 민주주의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을 뿐이죠.” 농성은 고달프다. 생계도 위험하다. 부당함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절망이 삶을 피폐하게 만들 거라 생각한다. “구세주가 짠~ 하고 나타나서 바꿔줄 수 있는 건 없어요. 불평등과 부조리에 투쟁해야 바꿀 수 있죠.” 


■연대로 이어진 섬들 

농성장은 언뜻 외딴섬처럼 보인다. 광화문에서, 명동에서, 강남에서 각자의 소리만 외치는 듯하다. 이 섬들은 가늘지만 강고한 ‘연대’라는 이름의 다리로 이어진다. 운동은 연대의 힘으로 확장한다. 세월호 유족이, 유성기업 노조원이 백남기 농민의 농성장을 찾았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반올림 농성에서 공연한다. 농성장 사람들은 참사, 노동, 도박, 장애인 문제를 함께 투쟁할 일로 여긴다.

8월18일 고진수 위원장과 함께 간 곳은 세종호텔에서 5분 거리의 사회보장정보원 집회장이다. 동양시멘트·하이디스·티브로드·하이텍·세종호텔·콜트콜텍 노동자 등 30여명이 모여 있었다. 고 위원장은 2012년 파업 당시 기륭전자·쌍용차·코오롱·재능교육 노동자들이 왔다고 전한다. “150여명의 동지들이 로비를 메웠을 때 굉장히 큰 힘이 됐죠. 이후 다른 투쟁 사업장에 꾸준히 다닙니다.”


■생명줄이 끊겼다 

8월11일 관악구 한남운수 차고지 입구 농성장에서 만난 버스정비 해고노동자 이병삼씨(46)는 노동부의 근로감독관이 사업주들의 잘못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장도 자주 찾지 않았다고 한다. “법치국가나 3권 분립을 상징하는 저울 있잖아요? (투쟁하면서) 저울이 절대 평평하지 않다는 걸 느낀 겁니다. 검사든, 경찰이든, 판사든 목소리를 들어주는 데가 없더라고요.”

하도 답답해서 들춰본 게 헌법이다. “내가 누군지 처음 생각해본 거죠. 왜 당하고 살아야 하는가도요.” 노동법, 근로기준법, 취업규칙을 읽었다. 이씨는 자신의 투쟁이 ‘준법투쟁’이라고 확신했다.

민주공화국인가? 이씨는 미숙아로 태어난 조카 이야기를 꺼냈다. 여동생 부부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병원비 내기도 힘들다. “둘이 죽어라 벌어도 빚만 지고 살죠. 팔, 다리, 치아 다 성치 않은데 국가 보조는 한 달 20만~30만원입니다. 큰 병원에 한 번 가면 기본이 몇십만원 넘죠. 이게 개인 잘못인가요?”

이씨의 삶도 망가졌다. 농성 뒤 집을 헐값에 팔았다. 대출과 투쟁기금으로 간신히 살아간다. 생계는 농성자 모두가 겪는 문제다. 농성장을 떠나는 이들도 있고, 계속 싸우는 이들도 있다. 40대 중반 나이. 그는 “생명줄이 끊겨 버렸다”고 말한다.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이 일 아니면 죽는다’는 각오로 배운 정비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마지막 투쟁이라고 각오한다. 그래서 농성장을 더더욱 떠날 수 없다고 했다. 

[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1)서울 장기 농성장 13곳서 길을 묻다

■자라난 아이들, 해고도 이어진다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씨(54)가 해고됐을 때 큰아이는 고교 2년생이었다. 그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알바’를 하다 직장인이 됐다. 신협에서 계약직으로 2년 일하다가 해지됐다. 임씨는 “은행은 다 정규직인 줄 알았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8월11일 임씨의 투쟁은 3482일, 여의도 농성은 312일째였다. 임씨가 해고된 뒤 확인한 건 “한국은 독재국가이고 부정부패한 나라”라는 것이다. “권력도 돈으로 좌우되잖아. 돈이면 판사도 사고 검사도 사고 다 사잖아. 해고조건이 법에 정확히 명시되어 있는데 그걸 다 무시하고….” 한국 땅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건 “너무 힘들고 비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근 콜텍지회장(51)은 민주공화국의 부재를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했다. “박정희 정권하에서는 ‘지금은 분배의 시기가 아니다. 축적의 시기’라고 이야기하며 민중들을 착취했잖아요. 여전히 분배는 이루어지지 않고 자본 축적만 이뤄지죠. 민중의 삶은 하나도 나아진 게 없죠.”


■판결도 이행하지 않는 나라 

노동부는 지난해 2월13일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인 동일산업이 ‘유령회사’이며 하청노동자들은 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동양시멘트 소속 정규직 노동자라고 판정했다. 동양시멘트는 노동부 판정에 하청업체와의 계약 해지, 노동자 100여명 해고로 답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이를 부당해고로 판단했지만 동양시멘트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소송 소장도 보냈다. 23명 조합원에게 매긴 배상금이 총 16억원이나 된다. 

정부와 법원이 가끔 해고 무효와 복직 판정을 내려도 기업은 잘 듣지 않는다. 동양시멘트 해고노동자들이 광화문 미국대사관 뒤편 삼표그룹 본사 건물 입구 앞 천막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지난 8월10일 노동자들이 353일째 노숙 농성 중이었다.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데 그게 민주공화국일까요? 헌법대로 한다면 부당해고 판정이 났는데 우리가 노숙 농성을 할 필요가 없죠.” 이재형씨(42)가 말했다. 이씨는 26세이던 2000년 10월 동일산업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임금은 정규직의 40%를 받았다. 회사 식당에선 “하청 주제에 왜 먼저 밥을 먹느냐”는 말을 들었다. 이를 악물고 굴착기와 불도저를 몰았다. 연장근무를 밥 먹듯 했다. 그렇게 일하다 해고됐다. 이씨가 서울에서 싸우는 동안 아내는 삼척에서 돈을 번다. 여섯 살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식당에 나간다. 아내는 남편의 투쟁을 성원한다. 이씨는 아이들에게 “해고된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정치도 대의도 없다 

분수대에서 초등학생들이 뛰어놀았다. 8월8일 낮 기온은 35도. 광화문광장 세월호 유족 단식 농성장 바닥은 물로 흥건했다. 열기를 식히려고 분수대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뿌려놓았다. “광화문광장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닌가 싶어요. 다른 곳에선 호소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세월호 특조위 김형욱 언론팀장이 말했다. 

오후 2시40분쯤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단식 농성장에 나왔다. 딸 예은양의 단원고 학생증이 목에 걸려 있었다. “헌법은 그냥 갖다 제일 위에 꽂아놓은 두꺼운 책 정도의 의미일 뿐이죠.” 한참 뜸 들이다 말을 이었다. “헌법은 그 누구라도 어떤 경우라도 함께 지키자고 약속한 기본이고 상식이잖아요. 그것을 무시하는 현실에서 어디에 희망을 걸고 살 수 있을까요?” 

‘정치’도 ‘대의민주주의’도 없다고 유씨가 말한다. 야당은 수시로 말을 바꿨다. “19대 국회 때는 ‘소수 야당이라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더니, 시민들이 다수당을 만들어 주니까 ‘국회 법과 절차, 질서를 해칠 수가 없다,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게 국회의원의 특성’이라고 하더군요. 그 다음 말이 제일 웃겨요. ‘가족 여러분들이 여론을 만들어 주십시오.’ ” 정세균 국회의장이 한 말이라고 했다. 세월호 이후 참사가 마치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유 위원장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등 참사 때마다 현장을 찾고 있다. 그는 1명이든 300명이든 생명을 계량할 수 없고, 인권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뽑은 정치인들은  

파란색 유리로 덮인 용산화상경마장 건물은 겉만 봐선 ‘도박장’인지 알 수 없었다. 입구에 흰색 유니콘과 황금색 말 조형물이 화상경마장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사람들은 알고 찾아온다. 화상경마장 앞엔 종종 오토바이가 행렬을 이룬다. “생업으로 오토바이를 타는 분들이죠. 현금 만지는 택시기사 분들도 와요. 힘들 게 사는 사람들 주머니 털어가는 거죠.” 

정방 용산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 공동대표(46)는 농성 후 헌법을 찾아봤다. “ ‘권력’이라는 단어는 헌법 제1조에만 썼다는 걸 처음 알았죠.”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나왔다. 국회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대의민주주의도 작동하지 않았다. 19대 국회 때 용산화상경마장 관련 법안은 16개 상정됐다가 논의 없이 끝났다. 

20대 국회 들어 시민 1500명의 뜻을 모아 입법청원을 제기했다. “일정 숫자 이상의 시민이 입법청원하면 추진해야 합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말해놓고서 국민 요구를 국회가 안 들어주면 헌법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마사회는 무소불위의 존재였다. 농림축산위 소속 국회의원들에게서 ‘마사회로부터 농림축산기금을 받기에 이전을 대놓고 찬성하기 곤란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화상경마장 반대는)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 구청장, 시장 등이 해야 되는 거죠. 우리가 반대 운동까지 할 거면 대표자들을 왜 뽑았나 싶어요.” 8월11일 현재 도박장 반대운동은 1198일째였다. 정 대표는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다. 영화 <부산행>을 떠올리며 그가 말했다. “ ‘나만 아니면 괜찮아’라는 이기적인 생각,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예우하지 않는 문화가 민주공화국을 위협합니다.” 


■이 외침은 뭘 타전하는 걸까 

광화문역 9번 출입구 왼편에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농성장이 들어섰다. 8월10일 현재 1452일째.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정훈 권익옹호국장(47)이 휠체어를 탄 채 행인들에게 서명을 요청했다. 김 국장이 강조한 건 시설 격리·수용 문제다. 사회는 장애인이 원하는 삶을 인정하지 않고, 지금 ‘민주공화국’은 거대한 시설과도 같다. “집단 격리돼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인권도 민주주의도 없는 상태에서 사는 겁니다. ‘사람들이 중증장애인이면 사회에서 어떻게 사느냐, 격리되는 게 맞지 않느냐’고 하는 소리를 들을 때 민주공화국이 맞나 싶죠.” 스웨덴 정부는 1950년대부터 장애인 거주시설을 없애왔다고 했다. “자본주의 잣대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왜 같이 보듬고 살아야 하는지 알리는 게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소리/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소 … 귀뚜루루루 … 보내는 내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김 국장은 가수 안치환의 ‘귀뚜라미’를 떠올리곤 한다. “우리 외침이 사람들에겐 ‘타전’을 한다고 봐요. 언젠가는 사람들 가슴을 울리며 좋은 날을 맞이할 겁니다.”


■정부는 자본을 비호한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농성장은 44층 높이의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배경으로 두고 서 있다. 8월11일은 서초사옥 농성 투쟁 309일째다. 반올림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등 직업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들에 대한 사과와 대책을 요구하며 9년째 투쟁 중이다. 농성장엔 삼성전자 직업병 사망자 76명을 상징하는 흰고무신 화분과 추모 ‘솟대’가 보였다.
 농성장에서 만난 이종란 상임활동가는 삼성전자와 자본, 국가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종란 상임활동가는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당시 23세)가 병원 치료를 받을 때 삼성 관계자는 4000만원을 지원해 줄 것이라고 말해놓고, 정작 들고온 돈이 500만원이었다고 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평등하게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 이 활동가가 내린 민주공화국 정의다. “노동법에다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마저도 구현되지 않아요. 정부와 공권력은 자본을 철저히 비호합니다.” 야당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삼성 출신 양향자씨가 더민주 공천을 받아 지난 총선에 출마했을 때 사망 사태에 관한 질의서를 보냈다. 답변은 오지 않았다.. 


■삶의 고통을 응축한 농성장에서 

김동애·김영곤씨 부부는 비정규직 강사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투쟁을 10년째 진행 중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국민은행 앞 1.5평 규모의 천막은 대학강사 교원 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다. 8월11일 3262일째였다. 가장 오래된 농성장이다. 김동애씨가 민주공화국에 관한 질문을 듣고 목소리를 높였다. “똑같은 걸 가르치는데 한쪽은 1억원을 받고 한쪽은 교원 신분도 없이 연봉 500만~600만원을 받고. 그게 민주공화국이에요? 논문 대필이 관행이라는 나라가요? 국회도 묵인하는 그런 나라가 어떻게요?” 

전국의 대학 시간강사는 지난해 4월 말 기준 5만9000여명이다. 대부분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받고 일한다. 

오랜 투쟁에도 바뀐 게 없다. 지난해 12월 국회는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인정 등 처우 개선을 골자로 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일명 시간강사법)을 유예시켰다. 3번째 유예였다.

농성 10년.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교원 지위 회복은 장년에 접어든 두 사람이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일까? 김동애씨도 자주 이 생각을 한다. 결론은 내린 듯하다. “꼭 해야 되는 일이니까요.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하는 데까지 하는 거예요.” 

농성은 삶의 고통을 응축한다. 이 장소는 쉬이 감당할 곳이 아니다. 자본은 외면한다. 국가는 추방한다. 법은 작동하지 않는다. 몸은 상해간다. 마음엔 화병이 든다. 사람들은 관심 없다. 투쟁에 지쳐간다. 농성자들은 서로 힘을 주는 ‘연대’와 조그만 ‘관심’으로 이 ‘민주공화국’을 버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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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051827005&code=940100&s_code=as166#csidx39633f509277d39a04ffde78ba8dc88

“복덕방이라는 게 지금은 생소하지만 예전에는 동네 사랑방이자 소식통이었어요.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하기 쉬운 토지거래 등을 중재해주던 역할을 했죠. 그런 일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오가며 고민을 나누기도 하던 공간이었고요. ‘이 문제는 건너 마을 아무개를 찾아가면 해결할 수 있다’ 등의 정보가 모이고 교류하던 곳이지요. 예전에 진짜 그런 역할을 했다고 문헌에 기록돼있습니다. ‘우리동네문화복덕방(이하 문화복덕방)’도 그런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동네 소식이 모이고, 동네에서 필요한 것을 내어줄 수 있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요. ‘마담 뚜’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



 
▲ 라정민 우리동네문화복덕방 기획팀장.

라정민(28) 문화복덕방 기획자를 지난 9월 23일 인천시립박물관에서 만났다. 서구 가좌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문화복덕방은 이날 시립박물관에서 ‘소통과 조화,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 동네’라는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사례를 발표했다.

문광부 지원 사업 ‘시시콜콜’로 시작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시민 문화예술교육 활동 지원 사업인 ‘시시콜콜’로 시작한 문화복덕방은 지난해와 올해 2년 간 지원 사업에 채택됐다.

‘시시콜콜’이란 시간(時)과 장소(市)에 구애받지 않는 교류(call)와 협업(collaboration)을 의미한다. 문화예술활동은 특별한 남의 것이 아닌, 시시콜콜한 일상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할 때 의미가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람책’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와 시간을 적어 두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대출을 신청합니다. 반대로도 가능하겠죠. 어떤 이야기가 궁금해 적어두면 그걸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책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궁금한 걸 묻고 답하며 실컷 떠들고 노는 거죠”

휴먼라이브러리인 사람책은 덴마크의 사회활동가 로니 에버겔이 고안한 프로그램이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며 고정관념이나 오해, 편견을 깨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사람책 소통 방법론은 세계 70여개 나라로 퍼져나갔다. 사람책은 말 그대로 사람이 책이 돼 자기가 가진 가치와 철학, 삶의 방식을 들려주는 책이다.

“동네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던 차에 사람책을 생각했고, 문화복덕방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람책’을 만나다

  
▲ 청소년인문학도서관 ‘느루’ 세미나실에 마련된 우리동네 문화복덕방.<사진제공·문화복덕방>

문화복덕방은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동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보려고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학교나 시장, 도서관에서 만난 서구 가좌동 주민 468명은 영화 관람ㆍ운동ㆍ여행ㆍ음악 감상 등을 하고 싶어 했다.

“작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사람책 17개를 진행했어요. 올해 들어서는 6개를 했습니다. 청소년들이 원하는 사람책을 중심으로 진행했죠. 사람책은 기본적으로 저희 사무실이 있는 가좌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찾았습니다”

라 씨는 반응이 좋았던 사람책으로 요리사를 꼽았다.

“남인천고등학교 조리과학과를 다니는 친구들이 요리사 사람책을 만났어요. 우리 동네 일식집 사장님과 제빵사, 호텔 셰프를 만났는데 목표가 명확한 친구들이라 관심이 많았죠. 사람책으로 활동하신 분들도 청소년들과 의미 있는 만남이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한번 맺은 사람책 관계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학생들은 사람책으로 활동한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에 찾아갔고, 차 한 잔 마시며 진로를 상담하기도 했다.

“바둑을 두는 사람책이 있었어요. 바둑을 좋아하는 청소년이 생각했던 것보다 동네에 많더라고요. 예전에 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주산 배우는 게 유행했듯이 한때 바둑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죠. 아이들이 잘 하더라고요. 올해는 바둑대회를 열어 동네 바둑왕을 뽑아 볼 생각입니다. 청소년리그와 성인리그로 나눠서 운영할 생각인데, 바둑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기제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에는 리그 우승자들의 결승전을 해 바둑왕을 선발할 예정입니다”

어른과 아이들이 하나 되어

  
▲ 우리동네문화복덕방이 추진한 사업 중 하나인 ‘사람책’ 사업. 사람책으로 초청된 요리사가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직업과 경험 등을 이야기해주고 있다.<사진제공·문화복덕방>

대게 아이들은 어른들을 ‘꼰대’로 생각해 이야기를 들으려하지 않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무시해 의견을 묵살하는 경우가 많다. 소통의 부재는 관계의 단절을 불러온다. 그러나 문화복덕방 사람책은 어른과 아이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아이들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할 때면, 태도가 좋지 않죠. 원하지 않는 얘기는 들으려하지 않고요. 그런데 원하는 걸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니까 그들의 얘기를 경청합니다. 사람책이 갖고 있는 지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고요. 어른 사람책들도 아이들이 원하는 걸 알고 있고 자신의 말에 집중하니 아이라고 치부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지를 고민하죠”

자연스레 소통하며 하나가 된다. 어른과 아이들이 두터운 관계를 맺기까지에는 동네에 있는 20대 청년들이 큰 역할을 했다. 10여명이 문화복덕방 기획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청소년인문학도서관 ‘느루’

  
▲ 우리동네문화복덕방은 9월 23일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린 포럼에서 활동 사례를 소개했다.

청소년인문학도서관 ‘느루’는 2011년에 동네 청소년들과 어른들이 함께 만든 공간이다. 가좌동 청소년들의 필요와 어른들의 공감대로 만들어진 ‘느루’는 처음부터 청소년들의 의견과 주도로 만들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청소년 60여명이 ‘청소년 공간 건축학교’에 참여해 공간을 디자인했으며, 매달 청소년 운영위원회를 개최해 ‘느루’의 활동과 계획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한다.

‘느루’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이 청년들이 되고, ‘느루’가 좋아 모인 청년들이 문화복덕방 활동을 하고 있다. 라정민 씨도 3년 전 ‘느루’에서 ‘이야기책 만들기’ 강사로 참여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느루 자원봉사자들이 문화예술로 동네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이야기책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우리 동네에는 가좌시장이라는 재래시장이 있는데 인천에서 규모도 크고 잘 유지되고 있는 시장 중 하나죠. 동네 시장의 얘기를 담은 ‘예샘이 시장에 가다’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고, 작년에는 ‘우당탕탕 푸른샘해결단(이하 해결단)’이라는 책을 아이들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해결단에 참가했던 아이들은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해결단’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모였다. 얼마 전 마을잔치를 하는데 해결단 회원들이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쓰레기 치우기나 안내, 접수 등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이들 또한 이런 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성장한다.

청년들이 살아가는 동네

라 씨는 작년에는 사람책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올해는 사람책을 확장하는 게 목표였다면, 내년에는 청년들이 지역에서 무언가 일을 하며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세대를 넘나드는 문화복덕방을 만들려고 하는데 쉽지는 않습니다. 워낙 요즘 청년들의 삶 자체가 피폐하잖아요.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하죠. 그래도 재밌을 만한 것들을 찾아 계속 시도하고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현광일, 2014

문화예술과 교과통합에 대한 이론적 고찰

전국음악교과모임 여름 자율연수 : 음악교과의 경계를 넘어 행복한 학교 만들기 中


1. 감성적 활동으로서 문화예술


감성의 힘


문화예술 영역 전반에서 인간의 감성이야말로 억제할 수 없으며 해체할 수 없는 본원적 에너지다. 이 에너지를 통해 문화생산 및 비판 능력, 예술적 향수와 비평 능력 등 다양한 문화예술적 유기물이 생성되며 문화예술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독일의 시인 실러에 의하면, 인간이 자연의 힘에 예속된 감각적 단계에서 그 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감성적 단계라는 어려운 고비를 넘겨서야 비로소 지적, 윤리적 단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는 <독일이데올로기>에서 현존하는 세계의 기초를 '감성적 활동'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감각이 인간 현실의 확실한 토대라는 데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는 인간의 감성적 활동 전체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계가 감각 세계인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감성 안에서 태어나고 감성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본래 '감성적 활동'이란 감각적 세계를 변형시키는 활동 일반을 의미한다. 삶 자체가 감성적 활동으로 이루어졌으며 동시에 삶의 감성적 활동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행위이다. 그 행위로써 삶은 바꾸는 것이자 바뀐 것으로서 자기 자신을 바꾼다. 감성적 활동으로서 문화예술은 자기 자신을 느끼는 일이자 그 존재의 모든 지점에서 자기 자신을 깨닫는 일이다. 문화예술교육 차원에서 '느끼기'와 '깨닫기'의 감성적 힘은 자기 형성과정의 노력과 관련하여 중요한 부분이 된다.


생물학적, 문화적 몸


고유수용감각은 몸의 경험에 있어 바탕이 되는 중요한 것이다. 물질에 대한 근육감각이나 촉각은 손지식을 형성시킨다.


몸으로 생각하는 것은 근육의 움직임, 자세, 균형, 접촉에 대한 우리의 감각에 의지한다. 운동선수와 음악가는 동작의 느낌을 상상하고, 물리학자와 미술가는 몸 안에서 전자나 나무의 움직임과 긴장을 감지한다.


음악에서 체험의 감각적 성격은 청각으로 단순화되고 번역되어 작품으로 남게되는 변용과정을 거치게 된다. 피아니스트들은 근육이 음표와 소나타를 기억한다고 말하다. 배우도, 조각가도 몸과 다른 것 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요소다.


감성적 체험의 특질


현재 이곳에서의 감성적 체험이 제대로의 경험이라면 활력으로 고양되어 자발적 자기형성에 중요한 체험이 되고도 남는다. 감성적 체험의 특질은 음악에서 두드러진다. “정서의 구조는 음악의 구조와 비슷하다. 음악은 정서가 느끼는 방식으로 소리를 낸다.”(음악학자 판스워스) 세상에 존재하는 감성적 힘에 반응하는 정서에는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체험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 체험들은 개인적인 감정과 감각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고, 세계와의 활발하고 민첩한 교제를 의미한다. 이때의 감성적 체험은 존재론적 체험을 현재화함으로써 존재에 지속적인 변화를 허락하는 힘의 작용에 대한 경험이다. 이는 인식론적 경험으로서의 미적 체험을 존재론적 체험으로 확장함으로써 그것은 예술의 맹아라고 할 수 있다.


감성적 체험에서 힘의 작용은 초보적인 형식에서조차 미적 경험이라는 유쾌한 지각에 대한 전망을 안고 있다.


존 듀이는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형식-그것은 무엇인가가 완벽한 마무리를 성취했을 때 드러나는 궤적의 추상적인 용어인가?”


특히 학습과 관련하여 감성적 체험의 내용적 특질은 재미와 감동 그리고 관심 등이 있으나 여기서는 관심이라는 말에 주목하고자 한다. 관심은 어떤 욕구에 의해서 휘몰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능동적인 관심 또는 무엇인가 지향하려는 노력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감성적 체험의 기능적 특질에서 지배적인 관심은 매슬로우가 <존재의 심리학>에서 제안한 감성적 상황에서의 '절정체험'이라는 것에 모아지고 있으며, 더불어 절정체험을 전통 미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카타르시스라고 부르는 체험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몬로 비어슬리가 주목한 감성적 체험의 기능적 특질이 제공하는 일곱 가지 효과

1. 긴장을 제거하고 파괴적 충동들을 진전시키는 효과

2. 자아 속에서 야기되는 작은 충동들을 해결하고, 통합 또는 조화의 창조에 도움을 주는 효과

3. 지각과 식별력을 세련화하는 효과

4. 상상력 그리고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 놓는 능력을 개발하는 효과

5. 치료보다 예방으로서 정신 건강에 기여하는 효과

6. 상호 이해와 신뢰를 북돋아주는 효과

7. 인간적인 삶을 위한 이상을 제공하는 효과


2. 문화예술과 교육


문화예술과 자기 생산(형성)


예술의 기원인 시짓기(poiesis)는 인간 사유의 본성에 뿌리박고 있는 짓기의 본능과 건축에의 의지에서 비롯한다. 포이에시스적 예술이론에 따르면, 예술은 기술과 같이 인간의 창작 능력인 동시에 제작하는 능력인 테크네(techne)와 동일한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을 진리로 이끄는 삶의 한 방식으로서의 포이에시스는 '참된 것을 끄집어 앞에 내어놓는 것' 그리고 포이에시스적 삶의 의미란 다름아니라 현실을 의도적으로 뛰어넘고 변형시키는 것, 현실에 없던 새로운 잉여가치를 덧붙이는 것, 이로써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창조하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와 예술 그리고 자기 생산은 상호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


교육이란 객체화된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그 존재로 있게 하는 '존재 드러남', '자기 생산성'이라는 원리에서 이해된다. 자기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은 인간의 힘을 생삭적으로 사용한다는 의미에서의 내면적 활동 상태를 뜻한다.


예술은 표현욕구를 특정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성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자신을 실현하는 그 과정을 현재화한다. 그리고 그것으로써 자기 이해를 얻게 되므로 이러한 지평에서 문화와 예술이 만나게 된다. 여기서 문화와 예술이 공유하는 것은 인간의 삶이라는 존재론적 지평이며 그 과정이다. 예술은 문화에 대한 체험과 표현을 담고 그것을 재현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문화예술과 존재론적 발달체험


문화예술을 교육영역으로 끌어들인다면, 그것은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적 관점에서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성장과 발달적 관점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세계와 사회에서 인간이 스스로 되어가는 존재론적 발달 성취의 과정, 역동적으로 자신의 존재성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영역에서의 문화예술은 인간의 성장과 발달을 도모하는 자기형성과정으로서,특히 삶의 자기 변화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발달을 이끌어내는 문화예술교육은 존재론적 체험으로 성취된다. 존재론적 체험을 겪으면서 인간은 왜 사는지, 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게 된다. 자연을 변형하고 개조하여 자신의 삶에 맞게 바꾸어나가는 그 이면에서 자연을 이해하고 자신의 의지와 의미체험을 바라보게 된다.


예술을 포함하는 광의의 문화는 인간의 존재조건인 것이다. 그런 문화에는 당연히 인간 존재의 자기 실현, 그 존재성이 담겨있다.


인간이 거주하는 실존적 공간을 '장소'(topos, ort, place)라고 부른다. 유독 인간존재만이 시간과 공간에 속한 사이-존재로서 특정한 시공의 '사이' 안에 그때그때 한정된 '장소'에 거주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 사람과 물건 사이의 오랜 길들여진 사귐과 마주침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간성과 역사성을 띤 국지적 공간에서 직접적인 감정적, 정서적 관계의 풍부한 내용을 갖게 된다.


문화적 존재로서 발달적 성향을 지닌 인간은 근본적으로 현실적 세계를 넘어 그 이상의 것을 지향하고 그를 향해가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문화는 인간의 정신과 삶의 표현이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행하도록 자기 자신에게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발달적 교육의 관점에서 본 존재론적 문화인 것이다.


문화예술교육과 몸의 발달


다양한 감각이 소통되고 통일되는 것은 순수 지성의 작용이 아니라, 고유한 몸의 종합이며 지각적 종합이다. 이외에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이 이미 신체의 운동감각적 사고에 대해 강력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운동감각적 사고란 몸의 운동 이미지나 기억된 동작의 측면에서 사고하는 것을 말한다. 근래에 들어와 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는 저스 <마음의 틀>에서 이와 유사한 운동감각적 사고의 개념을 주장하고 있다. 가드너는 “몸은 자신의 지성을 품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생각함으로써 배우지 않고 함으로써 배운다. 즉 배운다는 것은 세계에서 지각하고 행동하는 한 사람의 방식을 변형시키는 '몸 스케마'의 새로운 적응과 이해이다. 게임을 플레이함으로써 우리가 게힘을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적 행동은 특수한 언어 게임에서의 규칙들을 그의 '몸 스케마'의 새로운 적응과 이해이다.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에 의하면 “지속적인 그러나 무의식적인 감각의 흐름이 우리 몸의 동작부위에서 나온다.”라고 한다. 이 감각의 흐름이란 우리가 '제6감' 혹은 비밀의 감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우리는 자신의 근육을 살피고, 위치나 긴장상태, 움직임을 끊임없이 재조정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숨어있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감각장의 자연구조는 생후 약 4개월경, 지각, 운동 능력이 완전하게 발달함에 따라 유아는 손뻗기와 조작을 통해 사물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유아는 사물이 자리하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하며, 바라는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사물을 이용한다.


아동의 고유수용감각은 비고츠키에 따르면, 눈과 손뿐 아니라 말하기의 도움을 받아 발달한다. 실제적인 과제들을 해결하려고 할 때, 고유수용감각이 발달한 아이들은 어떤 것을 배우고 익힐 때 먼저 대상의 속성을 파악하고 그 대상에 맞게 신체를 숙련시킨다. 그 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신체를 고도로 분화된 방식으로 사용한다. 세계의 의미를 배우는 이런 방법은 모두 몸을 수반한다. 즉 몸의 지각적 능력, 운동 기능, 자세, 표정, 정서와 바람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근육의 움직임에 대한 감각, 몸의 느낌, 촉감 등은 상상력 넘치는 사고의 강력한 도구가 된다. 심리학자인 베라 존 스타이너(Vera John Steiner)는 몸을 '사고의 도구'로 보고 있다. 지각은 감관과 홰재적 대상들이 접촉한 결과가 아니라, 지성적 감정적 실천적 활동이자 세계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체는 몸으로 보고 만지고 듣는 육화된 주체이다. 육화된 주체인 우리는 지각의 장 안에서 존재나 현상을 지각하고, 그러한 존재나 현상에 대해 지각과 함께 산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비판 없이는 발전 없다. 비판 없는 성역은 있어서도 안 된다. 우리 교육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판이라는 칼날로 아픔을 느끼더라도 도려내야할 것이 있다면 과감히 결단해야 한다. 교육 사상들은 어느 시대나 있어 왔다. 절대 진리로 군림하는 교육 사상은 없다.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는 만능해결사인 교육 사상도 없다.


과거 우리 교육은 행동주의 교육관과 구성주의 교육관으로 점철되어 왔다. 피아제의 인식론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으로 대변되는 단계별 발달교육관을 진리인 것처럼 맹신해 왔다.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투입-결과라는 기계론적인 입장으로 일관해 왔다. 과거 교육을 담당하는 부처가 '교육인적자원부'였던 적이 있었다. 사람을 자원으로 보는 극히 도구적 관점으로 교육을 생각해 왔다. 부끄러운 과거이다. 모두가 만능해결사라고 생각해 왔던 인식론적 교육관에 지배된 결과였다.


경쟁이 아닌 모두가 함께 하는 교육, 전인적인 발달을 위한 과정을 중요시하는 비고츠키의 교육론은 21세기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있는 교육 사상이라고 본다.


"발생적 발달의 변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한 초등 교육과정은 입시 경쟁적 선행 학습의 식민화에 따른 심각한 발달적 왜곡 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육문제를 총론적으로 다뤄왔던 관행에서 벗어나 초등 교육이라도 해방적 관심에서 교육적 실천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학문 중심 교육과정의 초중등 위계화 체제를 해체해야 한다."(58~59)


수학 도식처럼 단계에 맞는 체제 교육을 탈피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인간의 전면적 발달을 위해서다. 교육의 목적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지적 본성에 따라 얼마든지 또 누구와 함께든지 공통적인 것을 발견하고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150)


전면적인 발달을 도모하는 학교는 지적인 면만이 아니라 실천적이고 감각적이고 미학적인 측면에도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건강과 생활양식 문제 역시 주목을 받아야 한다. (153)


교육과정은 원래 라틴어 '경주하는 말이 달리는 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단위 과정에서 이수해야 할 교과(내용)의 목록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과정은 학교의 지도 아래 학생이 겪는 실제 경험, 문화적 재생산의 도구, 사회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 등으로 다양학 해석된다.(233)


"나는 듣고 잊는다. 나는 보고 기억한다. 나는 참여하고 이해한다" 이 격언은 발달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시사한다.(9)


기존의 심리학은 어린의 발달을 진화론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았다면 비고츠키는 발달의 복잡성을 주장한다. (63) 학생들의 내면적 발달은 공식처럼 진화 단계를 밟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고츠키의 발달 교육 개념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신 분이 한국에서는 이오덕 선생님이라고 하신다.  




"음악이 좋고 사람이 좋아 23년간 버텨냈죠"

신포동 재즈클럽 '버텀라인' 허정선 대표       

2016년 07월 22일 00:05 (금)

▲ 허정선 '버텀라인' 대표

인천 토박이 부평 '음악소녀'
LP 카페 시절 단골손님 인연
친구 대신 맡으며 공연 열어

33살 된 국내 最古 재즈클럽
유명 연주자 즐겨찾는 명소
"늘 순탄치는 않아도 즐거워"


인천에서 음악 하는 멋쟁이들이라면 누구나 거쳐간 재즈클럽 '버텀라인'(Bottom line)이 문 연지 올해로 33주년을 맞았다.

미국 뉴욕에 있는 유명 재즈클럽의 이름을 딴 이곳은 주말이면 재즈 연주가들의 공연과 음악 감상회가 열리고 평일에는 진짜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마니아들이 모인다.

손님으로 찾았던 버텀라인의 주인이 돼 23년째 운영을 맡고 있는 허정선 대표를 만나 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며 아무런 욕심 없이 음악에 대한 애정 하나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음악이 마냥 좋았던 소녀

허정선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음악을 접했다.

인천에서 쭉 살아온 그는 어린 시절을 미군 부대가 있던 부평 2동에서 보냈으며 미국 유니버셜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20대가 되자 문화의 중심지인 신포동에 매일 드나들면서 LP 카페 곳곳을 누볐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했다. 버텀라인도 그 시절 매일 찾던 단골 가게 중 하나였다.

"1대 사장님을 거쳐서 제 고등학교 동창이 버텀라인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결혼하면서 미국으로 떠나야 했고 저한테 맡아달라고 부탁했죠. 그렇게 시작한 게 어느새 23년이 흘렀네요"

음악 없는 삶을 생각해볼 수 없었던 허 대표에게 사람들과 음악을 듣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갖는 것은 오랜 꿈이었다. 버텀라인을 맡기 전에 내리교회 근처에서 '소리 창고'라는 LP 카페를 3년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월세, 전기세, 수도세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도 모를 나이에 막연히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공간을 마련했던 게 신기해요. 직접 페인트칠을 해서 벽을 꾸미고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 막무가내 정신이 지금까지도 있어서 해야겠다 싶으면 무조건하고 보는 경향이 있죠."

그 열정은 버텀라인을 23년간 운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허 대표는 97년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공연을 기획했고 그가 오기 전에는 음악을 틀어주는 LP 카페였던 버텀라인은 이제 유명 재즈 연주자들이 꼭 거쳐가는 재즈클럽이 됐다.

"인천에도 홍대처럼 음악을 듣고 공연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공연을 하신 분이 우리나라 재즈 1세대인 재즈 피아니스트 신관웅 씨에요. 그분과 13인조 빅밴드가 공연을 펼쳤는데 사람이 꽉 들어찼을 정도로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해요. 버텀라인을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이 공연을 시작으로 당시 재능대학교 재즈음악과 학생들과 인천에서 내노라하는 음악가들이 버텀라인에서 끊임없이 연주를 펼쳤다. 요즘은 유명 재즈 연주가들이 먼저 공연 요청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10월에 열리는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프랑스 국민 베이시스트 앙리 텍시 호프(Henri Texier Hpoe)도 버텀라인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외에 유러피안 재즈를 선보이는 띠에리 마이야르 트리오(Thierry Maillard Trio)와 국악평론가 윤중강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하루하루가 버텀라인의 역사

박성건 음악평론가가 집필한 <한국재즈 100년사>에서 버텀라인은 가장 오래된 재즈클럽 중 하나로 소개된다. 1983년 처음 문을 열었고 건물의 역사는 100년이 넘어 가치 있는 근대 건축물로 꼽힌다.

"제가 버텀라인을 인수한 게 1993년도에요. 꾸준히 운영을 하고 있지만 순탄한 건 아니에요. 하루에 손님이 한 팀 넘게 오지 않는 날도 여전히 많고 이 건물을 언젠가 떠나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늘 있어요"

허 대표가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사람들 때문이다. 신포동과 차이나타운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들이 많이들 온다고 하지만 버텀라인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오랜 시간 버텀라인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손님들과 공연을 요청하는 연주자들이 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올해는 33주년이 됐고 내년이면 34주년이지만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음악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버텀라인의 역사에요."

재즈는 겉으로 보기에 자유롭고 즉흥적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나름의 질서와 체계가 잡혀있는 음악이다.

그 틀을 벗어나서는 아름다운 선율이 나올 수 없다. 자유와 질서가 공존하기에 좋은 음악으로 평가된다.

"제 삶도 재즈와 비슷한 것 같아요. 남들이 보기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늘 곁에 두고 살기 때문에 화려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제 나름의 기준과 규칙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거예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죠."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인 음악이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지 상상이 안 된다는 허 대표는 버탐라인이 신포동의 역사적 장소로 오래오래 남아주길 바랄 뿐이다.

"얼마 전 미국 맨해튼에 갔었는데 극장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시카고나 오래된 뮤지컬들을 꼭 보고 가요. 버텀라인도 인천에 오면 음악을 듣기 위해 자연스레 찾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 때는 다른 사람이 버텀라인을 맡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할머니가 돼도 음악을 즐기러 나올 거예요. 아르바이트생으로 써준다면 더 좋겠지만요."


/글 김신영 기자 happy1812@incheonilbo.com
/사진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 사진01> 2012 ⓒ유광식


인천을 안다는 의미, 공간에 스며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다들 의견이 분분하다. 하물며 각자의 몫으로 늘상 숙제가 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숙제 하다 만난 곳, 인천 동구 안 만석동 괭이부리말이다. 지도 보는 걸 좋아하는 나는 인천의 모양 속에서 만석동을 찾아보게 되고 조금씩 거닐게 되었다. 근처 화수·만석부두, 만석동 우체국, 철길, 만석고가, 굴까는 집, 제분공장, 송림변전소, 동일방직, 두산인프라코어 등 큼지막한 구조물들 사이로 쪽방이 닥지닥지 모여 공극을 줄인 모양새로, 낮은 언덕배기 위 빼곡한 허름함에 처음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괭이부리말은 가난한 피난민과 근처 공장노동자가 지붕과 처마까지 쪼개 쓰며 살고 있는 인천의 여러 달동네, 쪽방촌 마을 중 한 곳이다. 군데군데 좁고 깊은 골목 속까지 한 여름, 한 겨울의 모습이 배지 않은 곳이 없다.

한편 아이들과 어르신을 자주 접할 수 있었으며, 잠자리가 선도하는 가을, 길가에 널린 빨간 고추야말로 마음까지 물들이는 새빨간 개운함을 선사한다. 지금까지도 공중화장실이 위치해 있고 화재로 소실된 집도 있으며 굴 까는 천막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곳을 누비는 아이들의 표정만큼은 어둡지 않았던 탓에 공간의 온도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87년 시작된 공부방 역사도 30년이니 어느새 한 세대를 넘겼다. 이 사이 얼마나 많은 굴곡진 사연이 있었을까.

만석동은 오래 전 서울 거주시 모 노래운동단체와 기찻길옆 공부방(기찻길옆 작은학교)의 인연으로 얼떨결에 알게 된 지역이다. 이후에 공부방의 20주년 기념공연(길·동무·꿈 2/ 2007.4.15/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을 보게 되었다. 이리저리 사회전반에 기웃거리며 서성이던 대학교 시절, 몇 군데의 공부방을 접할 수 있었는데 기찻길옆 작은학교는 여느 공부방과는 다소 같은 듯 다르게 느껴졌었다. 매 해 정기공연은 노래와 인형극, 풍물 등 아이들의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재미나게 혹은 조금은 차가이 선보이는 것이었다. 공부방과는 직접적인 연은 잇지 않았으나 공부방이 위치한 만석동을 차분히 기록하는 계기로는 이어졌으니 이것이 인연일까?



< 사진02> 2007 ⓒ유광식


괭이부리말의 정확한 생리는 모르지만 현재를 바라보고 기록하는 작가의 입장으로서 매 해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좁은 골목길을 들어설 적에는 가슴이 철썩거린다. 그 길은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좁은데 집 안쪽에 놓이지 못한 가재도구마저 나와 있음이 길이긴 해도 누군가의 삶의 공간이란 생각에 그렇다. 문을 열고 나오는 어르신이 있으면 잠시 멈추기도 해야 하고 굽어진 곳에서는 긴장을 두고 방향을 잡아야 하며 살금살금 시끄럽지 않게도 걸어야 한다. 안쪽 골목에는 비어져 오래된 빈집도 눈에 띈다. 그 실내에는 과거 삶의 진한 투쟁만큼이나 냄새가 시큼하기도 하다. 간혹 새롭게 터를 잡은 고양이 가족이 주인행세를 하기도 하지만 사람이 빈 이상 건물은 취약해지고 위험해질 것임을 안다. 아이들 주변으로 좋지도 않은 풍경이다.



< 사진03> 2012 ⓒ유광식


<사진04> 2012 ⓒ유광식

2012년 괭이부리말 저층주거지 절반가량이 임대형 보금자리 주택으로 개선되는 사업이 발표되었다. 이후 공사는 급물살을 타고 진행이 되었고 다음해 겨울 지역주민들이 다수 입주·정착할 수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동구는 옛(가난) 생활체험관(2015.6)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일을 벌이려다 현지 주민과 활동가, 지역 여론에 혼쭐이 나기도 했다. 가난까지 상품화한다는 행태를 주민이 앞장서 가만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사례로 사업은 백지화 되었으나 기관장이 사업계획을 진행한 공무원을 칭찬했다는 후일담 기사에 다시 한 번 주무기관은 미움을 받아야 했다. 어느 곳에나 지난 삶의 힘겨운 모습은 수두룩 남아 있다. 힘겨움은 홍보가 아니라 격려가 더 필요할 것이다. 격려의 형태는 다양할 것이고 말이다. 동구 수도국산에는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있다. 이곳엔 과거 수도국산 달동네 서민들의 삶의 이야기와 모습들이 재현되어 있으며 지금도 서민들의 평범했지만 끈질긴 삶의 기억을 보존하고 전시하며 교육하고 있다. 또한 아직 더디지만 남구의 토지금고 마을박물관도 눈여겨 볼 곳이다.



                                                  <사진05> 2013 ⓒ유광식

동인천역 남방향 철로변에도 쪽방촌이 한 곳 있다. 작년 이곳의 절반 정도가 철거되고 올해 반듯한 고층(14층) 아파트가 단숨에 솟구쳤다. 당시 중·동구 지역의 전봇대, 가로등에 걸려 나부끼는 현수막 돛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 아파트 광고인 줄은 미처 몰랐다. 동인천역 부근 가장 높은 이 아파트명은 OO행복마을이다. 병들고 가난한 어르신들과 일용노동자들의 작은 삶터가 논의와 대안적 활용의 부재 속에 민간사업자를 끌어들인 나머지 비싼 오피스텔이 들어설 계획에 주민들은 재정착은커녕 힘없이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1/2 지역도 말은 못하지만 부들부들 떨고 있을 터이다. 애석하게도 괭이부리말 경우와는 철길을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쪽방의 사후 운명이 너무 다르다. 생각해 보면 마을도 행복도 시멘트로 빚어 만드는 시대라는 점이 무척 안타깝고 분노에 피곤하기까지 하다.



                                                    <사진06> 인현동, 2015 ⓒ유광식


우리가 걷는 길은 좁고도 길다고 한다. 가는 도중에 동무 아닌 동무를 만나고 함께 이야기하는 사이 꿈으로 기획된다. 만석동은 누가 봐도 인천의 변두리다. 자주 이슈거리도 되지만 버려짐도 상당하다. 그러나 주민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내왔던 것처럼 끈끈한 공동체 의식으로 무더운 여름 날씨와 혹독한 겨울 기온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지혜를 나눈다. 지켜 본 7년여의 기간 동안 처음 모습은 반쪽이 되었고 이후 남은 반쪽이 어떻게 될런지는 모르겠다. 지난 5월에 잠시 서울의 청계천박물관(기획전시)에 다녀온 적이 있다. 과거 청계천변의 모습과 빈민활동가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박물관 맞은편 청계천 판잣집체험관이 아슬아슬하게 세워져 있었다. 처음 겉에서 보기에도 때깔 좋은 상품논리로밖에 보이지 않았음에 괜스레 더운 날씨 탓만 하곤 했다. 굳이 그렇게 조악한 복원격으로 꾸미어 판매상점으로 덧씌우고 있는 상황에 고운 시선을 차마 꺼내 들 수는 없었다. 행여 만석동 괭이부리말도 이런 형태가 되었더라면? 하고 상상하니 참으로 슬픈 일이겠지 싶었다.

기찻길옆 작은학교의 정기공연을 2016년 4월에 다시 한 번 찾았다. 공연 장소가 가까운 곳이 아닌 멀리 부평이었지만 뭐 어떠랴. 여전히 삶의 공동체의식을 강조하는 공부방의 운영취지를 아이들 스스로 습득할 수 있게끔 준비된 모습이야말로 감동이었다. 아이들은 공부방에서 삶의 단맛만 맛보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 이면을 살피고 어렵고 고통이 따르는 현장에 직접 찾아가 공부하는 활동이 당분간은 모를지언정 언제인가 자신의 힘겨움을 떠받쳐 위로해주는 시간으로 되돌려질 것이다. 여전히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사건과 백남기 농민 사건의 경우처럼 이면사회의 인식과 사고는 자의식을 형성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동네도 튼튼해진다.



< 사진07> 2016 ⓒ유광식

<사진08> 2014 ⓒ유광식

언덕배기 따라 사람이 살며 관계를 이루고 협동이 이루어지는 공동체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분명 갈등도 있었겠고 협력을 약속하며 지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복잡할 것 같은데도 거닐다 보면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어느 정도 마을문화의 무게가 있기에 느껴지는 것일 터이고, 아이들 목소리가 뛰어 다니니 모두가 밝게 살아가는 듯싶다. 만석동은 1950년 인천상륙작전시 상륙지점(Red Beach) 중 한 곳이기도 했다. 그 후 60년도 넘은 오랜 시간동안 대신 어려운 삶들이 진입·정착했고 지금은 그 맛에 웃고 울고 일하는 터전이 되었다. 이웃면 만석비치타운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만석동 괭이부리말이 과거 그리고 지금 우리 삶을 고스란히 비치는 아련하지만 행복한 Beach 로 가꾸어지길 바래어 본다.



                                                      <사진09> 2012 ⓒ유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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