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요약 민간신앙에서 믿어지고 있는 초자연적 존재 중의 하나.

도채비·독각귀(獨脚鬼)·독갑이[狐魅]·허주(虛主)·허체(虛體)·망량(魍魎)·영감(제주도)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삼국유사≫ 등 여러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삼국시대도 이미 도깨비신앙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추측된다. 인간에게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의 양면성을 보이고 있으나 인간을 살해할 만큼 악독하지 않고, 인간의 꾀에 넘어가 초자연적 힘을 이용당하는 미련함을 보이는 것이 특징적이다.

불도깨비·거인도깨비 등과 같이 가시적인 도깨비와 형체는 보이지 않고 사발 깨지는 소리, 말발굽소리, 기왓장 깨지는 소리와 같이 비가시적인 도깨비가 있다. 형체가 있는 도깨비의 모습은 머리를 산발하고 다닌다든지, 다리가 하나밖에 없어서 껑충껑충 뛰어다닌다든지, 키가 커서 하늘까지 닿고 머리가 구름 위에 솟아 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하나밖에 없는 다리는 옻칠한 것같이 검으며, 키가 너무 커서 옷을 못 해 입고 백지로 가릴 곳만 가리고 있다고도 한다. ≪포박자 抱朴子≫에도 도깨비는 발이 하나밖에 없다고 기록된 것을 볼 때 도깨비의 발이 하나라는 이야기는 고대부터 동양에 널리 퍼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도깨비가 발이 하나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민담이 전한다.

옛날 한 젊은이가 장에 갔다오는 길에 도깨비를 만났다. 도깨비는 젊은이에게 씨름을 하자고 청하였고 젊은이는 도깨비와 여러 번 씨름을 해서 이겼다. 도깨비는 계속해서 대들었지만 다리가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젊은이는 다리를 감아 쉽게 넘어뜨릴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도깨비의 성(性)은 구분되지 않으나 제주도의 도깨비신의 신화인 <영감본풀이>에 의하면 서울 허정승의 일곱째 아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머리를 산발한 도깨비는 남성도깨비로서, 성질이 거친 경우가 많으며 대개 산길이나 들길에서 마주치게 된다. 또한, 민간에서는 음력 정월 14일 밤과 상원날 밤에 도깨비불을 보아 그해 농사의 흉년과 풍년을 점치기도 한다.

도깨비들이 불을 켜고 왕래한다는 그날 밤에 도깨비불이 동에서 서로 가면 풍년이고 서에서 동으로 가면 흉년의 징조라고 해석한다. 이때 도깨비는 정체를 잘 드러내지 않으나 걸음이 빨라서 넓은 들을 순식간에 건너간다. 도깨비는 변화무쌍하고 신출귀몰해서 형체가 일정하지 않고 다양하다. 어린이·거인·노인·총각·처녀 등의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며, 차일(遮日)도깨비는 차일처럼 넓게 생겼는데, 하늘에서 사람의 머리 위를 덮어씌운다고 한다.

불을 켜고 다니는 등불도깨비, 굴러다니는 달걀도깨비, 멍석도깨비, 홑이불도깨비 등과 같이 그 모양과 생김새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사람이 죽은 다음 그 영혼이 변해서 되는 귀신과는 달리, 도깨비는 나무·돌 등의 자연물이 변해서 되고 산과 들에서 흔히 나타난다. 또한, 도깨비를 만나는 사람에 따라 도깨비의 종류도 달라지게 된다.
도깨비는 자연물이나 사람이 쓰던 물건이 변하여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밤길을 가다가 도깨비가 나타나 심술을 부리기에 칡덩굴로 묶어놓고 다음날 가보았더니 헌 빗자루 하나가 묶여 있었다는 이야기나, 나그네가 밤길을 가다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깨어보니 부지깽이 하나를 안고 누워 있었다는 이야기가 그러한 예화이다.

장계이(張繼弛)의 ≪해동잡록 海東雜錄≫에 의하면 도깨비는 산과 바다의 음령(陰靈)한 기운이며, 풀·나무·흙·돌의 정기가 변해서 된 것이라 한다. 옛 문헌에 망량은 물도깨비·산도깨비·목석괴(木石怪)를 가리킨 것이고, 양매(魎魅)는 다리가 하나인 도깨비, 이매(魑魅)는 산속의 이기(異氣)에서 생긴 도깨비를 가리킨 것이다.

이와 같이, 도깨비는 한편으로는 자연물이 변해서 되는 경우와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이 사용하던 것이 변해서 되는 경우가 있는데, 후자의 예는 빗자루와 부지깽이 이외에도 짚신·절굿공이·체·키·솥, 깨어진 그릇, 방석 등과 같이 사람의 손때가 묻은 것과 여성의 혈액이 묻었던 것이 대부분이어서, 시골에서는 그러한 물건은 불에 태우는 일이 많다.

도깨비가 사는 곳은 일정하지가 않으나, 들판·산길·계곡·절간이나 헌 집 등에 흔히 나타나고 있으므로 거처도 그러한 곳이라고 여겨진다. 도깨비는 음기(陰氣)의 영이고 음귀라고 불리고 있는 만큼, 음침하고 그늘진 곳에 거처하고 있다가 사람이 좀처럼 내왕하지 않는 곳이나 야음에 나타난다. 어쩌다 장날 장터 복판에 나타나는 수도 있으나 그러한 일은 매우 드물다.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온 영감 이야기는 산 속에 있는 헌 집에서 발생한 사건이며, 골짜기가 깊고 숲이 우거져 있으며 개울물이 흐르는 곳에서 나타난 도깨비 이야기와 수백 년 묵은 고목이나 거대한 바위, 절벽 아래에서 나타난 도깨비 이야기가 많다.

특히, 큰 나무는 귀중(鬼衆)이 모이는 곳으로 되어 있어, 거목의 죽은 가지는 베지도 않고 아궁이에 때지도 않는다. 사용하지 않는 우물에도 흔히 도깨비가 모이며,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 광야나 덤불 숲도 도깨비의 거처가 된다.

도깨비는 음귀인 까닭에 어두운 때나 밤에 주로 나타난다. 낮이라 하여도 궂은비가 부슬부슬 내려 어두컴컴한 때 나타나기 때문에, 속담에 ‘도깨비 놀기 좋은 날이다.’, ‘김서방 올 것 같은 날이다.’라는 뜻은 궂은 날을 가리킨다. 도깨비가 아는 사람의 성은 김서방 밖에 없기 때문에 도깨비를 ‘김서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처럼 비오거나 안개낀 날과 같이 궂은 날과 야음에 주로 활동하다가 새벽이 되어 닭이 울면 활동을 멈추고 사라진다. 닭의 울음은 날이 밝아온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도깨비뿐만 아니라 모든 음귀들이 밝은 것을 피하는 것이다.

도깨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심술궂은 장난을 매우 즐긴다는 점이다. 예컨대, 장에 갔다오는 사람에게 씨름을 청하여 하나뿐인 다리 때문에 자꾸 져도 끈질기게 덤비는 이야기라든지, 잔치가 벌어진 어느 집에 나타나 솥뚜껑을 솥 안에 우그러뜨리고 황소를 지붕 위에 올려놓았다는 이야기는 도깨비의 심술됨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 꾀가 없고 미련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도깨비의 미련함을 이용하여 재물을 얻거나 이득을 보기도 한다. 혹 때문에 노래를 잘 한다 하여 보물방망이를 혹과 바꾼 이야기, 도토리를 깨물어 나는 소리를 집 무너지는 소리인 줄 알고 도망친 도깨비 이야기, 한번 돈을 꾸어주었더니 매일 저녁 꾼 돈을 가져와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예화이다.

셋째, 꾼 돈 갚은 도깨비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비록 미련함과 건망증이 심한 도깨비이지만 빌린 돈을 갚을 줄 아는 윤리성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도깨비가 실수를 깨닫고 화가 나서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함으로써 심술을 부리려고 하였지만, 영악한 인간에게 또 속아넘어가는 순진함을 지니고 있다.

넷째, 노래와 춤을 즐기고 놀이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인 영감 이야기’에서처럼 흥겨운 가무를 즐기며, 씨름과 놀이에 끈질기게 몰두한다. 이밖에도 제주도의 경우, 도깨비신인 영감은 돼지고기나 수수범벅, 그리고 소주 등을 즐겨 먹으며, 또한 해녀나 과부 등 미녀를 좋아하여 같이 살자고 따라붙어 병을 주거나 밤에 몰래 여자방을 드나들기도 한다.

이 신의 범접으로 병이 났을 때 치료를 위한 굿으로 ‘영감놀이’를 행하는데, 이때 제상에는 영감이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놓는다. 이와 같이, 도깨비도 인간과 같은 성정을 지니고 있어 희로애락을 모두 느끼며, 특히 기쁘고 즐거운 일에 몰두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도깨비는 변화무쌍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체가 될 수도 있고, 신통력을 가지고 있어서 초인간적인 괴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기도 하고 청상과부로 변하여 소복을 입고 나타나는 등 여러 형체로 변한다. 그래서 도깨비는 한가지 모습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일정한 형태로 묘사할 수가 없다.

때로는 투명체가 되어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하는데, 도깨비감투나 등거리를 얻어 착용하면 사람도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고 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도깨비의 등거리를 얻어 입고 시장에 드나들면서 물건을 집어가고 돈도 가져오는 등 재미를 보았는데, 사람들은 물건이 저절로 없어지고 돈이 없어진다고 야단법석이었지만, 등거리를 얻어 입은 사람은 계속 심술궂은 장난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인파 속을 지나치면서 그만 등거리를 태우게 되어 빨간 헝겊으로 기운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은 잡히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러한 예화이다. 또한, ‘도깨비방망이 이야기’에서처럼 도깨비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마련해줄 수 있는 신통력이나 그러한 물건을 지니고 있다.

≪삼국유사≫의 <비형설화 鼻荊說話>는 도깨비의 초인간적 능력을 잘 나타내어주는 것으로 문헌에 기록된 최초의 도깨비 이야기이다. 신라 진평왕 때 비형은 도깨비의 두목으로 하룻밤 사이에 신원사(神元寺) 북쪽 도랑에 큰 다리를 놓아 다리이름을 귀교(鬼橋)라고 붙였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연못을 평지로 만들고 육지를 바다로 만드는 능력도 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도깨비 대동강 건너듯’이라는 속담도 있는 것처럼 큰 바다 위를 걸어서 건너간다고도 한다. 경상북도 청송군에서는 도깨비다리라고 하는 돌다리가 냇가에 걸려 있는데, 물이 넘치기만 하면 무너질 듯이 보이지만 홍수가 나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도깨비들이 나타나 떠내려가고 있는 다리를 밤새 제자리로 원상복구해 놓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이러한 초인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는 도깨비는 제주도의 경우 신격화되어 집안의 수호신인 ‘일월조상’, 어선의 선신(船神), 대장간의 신, 그리고 마을의 당신(堂神)으로 모셔져 수호신으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도깨비는 한국인의 의식 속에 살아 있어서 물질적 욕구충족의 영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러 다른 민족이 제각기 설정하고 있는 초자연적 존재와 유사하면서도 나름대로의 독특한 성격을 지닌 도깨비를 산출한 것은 한국인 사유의 특징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도깨비는 귀신처럼 악독하게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결국에는 원만한 해결과 권선징악이 보장된 바탕 아래서 밉지 않은 심술을 부릴 뿐이다.

도깨비가 지닌 초자연적 신통력은 결국 인간에게 유익하게 이용된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루고 있지 못한 소원을 성취하고 싶은 생각, 가령 돈을 벌고 싶고 큰 권력을 잡고 싶고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 좋은 집에서 호의호식하고 싶은 생각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의하지 않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도깨비를 믿음으로써 부분적으로 그러한 욕망과 소원을 충족시키게 된 것으로 보인다. 도깨비신앙은 이러한 일반적 기능 이외 한민족의 사고방식과 인생관·우주관을 살펴볼 수 있게 하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의 도깨비」(임석재·진홍섭·임동권·이부영, 『국립민속박물관총서』 1, 열화당, 1981)
  • 「한국의 도깨비 연구」(김종대, 국학자료원, 1994)
  • 『朝鮮の鬼神』(村山智順, 朝鮮總督府, 1929)
  • 「도깨비고」(임동권, 『한국민속학논고』, 집문당, 1971)
  • 「한국도깨비담의 형성·변화와 구조에 관한 연구」(강은해, 서강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85)

출처  encykorea.aks.ac.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비폭력이란 평화 상태가 아니라

분노를 명확하고도 효과적으로 만드는 사회·정치투쟁,
즉 세심하게 세공된 ‘엿 먹어라’다.
– 주디스 버틀러

 

 

 

 

1.

 

처음에는 촛불집회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촛불집회에 요구되는 비폭력, 질서, 평화라는 가치에 대해, 온건하게 변한 시위가 우리에게 남겨준 건 뭔가에 대해 회의적인 전망을 말할 생각이었다. 나는 1983년생으로 촛불세대라(는 것이 있다면) 부를 만한 위치에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스무살이었고 그해 효순이, 미선이를 위한 최초의 촛불집회가 있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광장에 나갔고 2008년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차벽이 설치되었을 때도 광장에 있었다. 그날 나와 친구들은 광화문에서 종로로 행진했고 길바닥에 앉아 술을 마셨으며 먹고 마신 술과 안주는 깨끗하게 치웠다. 그리고 몇해 지나 대통령으로 박근혜가 뽑혔다. 함께 시위를 했던 친구들은 하려고 했던 일을 포기하고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었고 대부분 취업에 성공해 돈을 벌지만 시간은 없고 스트레스는 많아 번 돈의 대부분을 해외여행이나 취미, 쇼핑에 탕진하는 삶을 사는 중이다.

 

아무튼 나와 친구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한국은 가망 없다’ ‘다시 태어나야 해’ 같은 것으로 소위 ‘헬조선’이라는 거다. 헬조선인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이 글의 주제에 국한해 다시 말하면, 우리는 2002년 월드컵 때 광장에 나갔고(나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으며(나는 다른 사람을 지지했다), 촛불집회라는 감동적인 시위문화를 만들었고(나는 물대포도 맞을 뻔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을 증오하게 됐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왜 우리는 일관되게 희망을 찾지 못할까. 왜 우리는 만성적인 피로감과 패배감을 느낄까. 물론 이러한 희망 없음에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이러한 과장은 ‘88만원세대’라는 말과 비슷한데, 나는 이 용어가 유행할 당시 정말 다들 88만원만 벌고 살 줄 알았다. 그러나 친구들은 생각보다 돈을 잘 벌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능력이 있나? 딱히 그런 것 같진 않다. 중요한 건 88만원보다 잘 번다고 조금이라도 행복에 가까워지거나 하지 않는다는 거다. 큐브 세대라는 말도 그렇다. 나는 비록 큐브에 살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다들 집을 얻었다. 은행에서 갖은 굴욕을 당하고 전세에 교통이 불편한 곳이긴 하지만 어쨌든 집을 얻었다. 희망 없음을 상징하는 ‘3포세대’인 우리가 집도 얻고 결혼도 하고 매년 해외여행도 간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망한 느낌이고 한국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만 해도 이십대에는 상상도 못할 가격의 옷을 사고(지난주에는 무려 19만원짜리 바지를 샀다) 도서관에 가기 귀찮아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주문할 정도로 믿지 못할 부를 누리며 그럭저럭 삶을 꾸려가고 있는데, 왜 이렇게 뭔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하기 힘든 걸까. 특히 이런 경향은 사회, 정치 문제에서 더 심한데 우리는 변화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포기한 채 해외여행과 각종 취미, 소비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튼, 어쨌든 그렇다고 마냥 우울하게 살 순 없지 않나. 친구는 플레이스테이션4를 샀고 ‘MLB더쇼’라는 게임에 빠졌다. 그는 말했다. 내 캐릭터 이름은 테리 이글턴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얘기는 새로운 문화를 만든 촛불세대라는 이들이 만성적인 패배감에 시달린다는 소리고 촛불은 우리 내면에 결국 안 된다, 박근혜를 우리가 안 뽑아도 윗분들이 뽑으니 되더라 따위의 생각만 남겼다는 소리다. 흔히 하는 얘기처럼 4·19세대나 6월 민주항쟁을 경험한 사람들은 승리의 경험을 갖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패배의 경험만을 갖고 있다는 거. 우리는 촛불을 손에 들고 용산참사와 세월호사건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다는 거. 그런데 4·19세대는 박정희 다음에 전두환이 집권했는데 어떻게 승리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6월 민주항쟁이 끝나고 노태우가 집권했는데 승리?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런 역사의 흐름과 전체적인 무의식에 대해선 그만 얘기하자. 한 세대가 패배감을 갖는다, 승리감을 갖는다는 얘기는 흥미롭지만 추상적이고 별 소득이 없다. 그것보다 우리의 에너지는 어디로 분산되는가, 우리가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우리가 만들어낸 변화가 ‘개망함’으로 귀결되는 모습만이 정말 우리에게 남은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나는 촛불시위를 함께 만든 세대지만 패배감만 느꼈고 결국 이런 평화시위가 무력감만을 남긴다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는데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전 세대의 시위문화에 대해 알지 못했고 우리가 만들어낸 시위는 다른 것이었으며 그것이 실패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새로운 형태의 시위가 시작된 지 겨우 10년이 조금 넘은 상황에서의 생각일 뿐이다. 바뀐 시위문화, 바뀐 시위의 언어와 방식이 그냥 사라져버린 게 아니라 연장되고 지속되고 변화하면서 뭔가를 이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앞으로 또 반기문이 뽑히고 은행에 빚독촉을 당하고 삼성이 권력승계를 하는 등 망함의 순간이 계속될지도 모르지만, 시위에 대해, 패배감이라는 세대감에 대해 비관하는 게 정말 옳은 것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언론에서 과장하는 ‘세계를 놀라게 한 평화시위’ 프레임도 아니고 역시 언론에서 과장하는 ‘3포세대’, ‘헬조선’ 프레임도 아닌 저편에 우리가 만들고 움직이는 어떤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2.

 

평화시위, 비폭력 시민불복종, 간디, 마틴 루서 킹, 오큐파이(occupy), 오트포르(otpor), 사빠띠스따(Zapatistas), 에보 모랄레스, 아르헨티나 민중봉기, 우산혁명, 오렌지혁명, 튤립혁명, 장미혁명 등등…… 나는 일종의 혁명 마니아로 친구들에게 늘 시위나 혁명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친구들은 무슨 시위대가 쓰레기를 줍고 있냐, 차벽에 붙은 스티커는 왜 떼냐, 감정이입을 시위대에게 안 하고 경찰에게 하다니! 청와대로 돌격!! 따위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친구는 촛불 헌팅을 당했다고 했다. 종로3가에서 걸어가는데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같이 시위하실래요?라고 말했다고 했다. 시위가 이래서 되겠어? 친구가 따지듯 물었다. 시위가 문제가 아니라 ‘한남’이 문제야. 다른 친구가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10월말부터 12월까지 광화문 일대를 어슬렁거렸다.

 

이 과정에서 이화여대 시위는 하나의 상징이 됐는데, 그건 그들이 소녀시대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 아니다. 이화여대는 폭력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운동권을 배제했고 이화여대 내부 사안과 떨어진 정치·사회 현안을 발언하지 못하게 했다. 느린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지도부 없는 만민공동회를 만들어 이화이언 같은 웹 커뮤니티나 카톡 단체창에서 의견을 공유하고 논의하고 결정했다. 오마이뉴스나 한겨레에서는 이화여대 시위가 한창이던 때에 이화여대의 시위 방식에 대한 비판 기사를 여러번 실었다. 논지는 정치성이 표백된 시위에는 한계가 있다, 소수의 운동권을 배제하는 것은 비민주적이다 등이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운동권이 배제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운동권의 언어와 방식은 묘하게도 이 정권과 닮아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언어가 가진 뉘앙스와 메커니즘이 과거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말이다. 이화여대에서 운동권을 배제한 것은 운동권이 정권의 반대편에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들의 언어와 방식이 사실은 구체제에 속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 아닐까. 운동권의 언어와 정권의 언어는 같은 체제에 복속한다. 그에 반해 이화여대의 언어는 이전에는 없던 것이다. 이 새로운 방식에 권력은 대응할 방법을 잃었다.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수십만건 조회를 기록하며 퍼져나가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물리적 폭력 없이 본관에 앉아 회의하고 공부하고 토론하는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점거가 지속되는 동안 이만건이 넘는 제보가 쏟아졌고 그 과정에서 박근혜정권의 치부가 드러났다. 어쩌면 우리는 200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우리가 느끼고 체감하고 사용하는 언어와 매체로 우리의 이야기를 말하는 방법을 찾아낸 건지도 모른다.

 

쉬운 예로 경찰이 이화여대 시위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동자를 찾는 일이었다. 그런데 주동자가 없다면? 위계가 없으며, 주요한 의제를 설정하고 그것을 현실정치와 연계해서 주장하는 단체가 없다면? 이 시위가 정말 직접민주주의의 방식으로 참여자들의 주장을 일일이 모은 것이라면 권력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천명, 만명, 십만명을 모두 잡아갈 것인가.

 

물론 지금의 시위 방식이나 시위를 호명하는 방식이 모두 옳다는 건 아니다. 언론이 호들갑스럽게 좋아하는 ‘평화시위’는 시위의 힘에 제약을 가하고 시위에 대해 그릇된 인상을 심어준다. 시위는 혼란과 무질서에 기반을 둔 행위다. 시위는 폭력을 쓰지 않을 때조차 폭력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권의 폭력과 다르다. 다시 말해 비폭력시위의 폭력은 정권의 폭력과 대비됨으로서 힘을 획득한다. 비폭력시위의 폭력은 혼란과 무질서를 만들어낸다. 반면 정권의 폭력은 억압적인 질서와 안정을 도모한다. 질서와 안정은 권력의 언어다. 흥미로운 건 질서와 안정을 주장하는 정권은 내부적으로 완전한 혼란 상태, 아노미 상태로 오직 권력에 의한 위계로만 지탱되는 데 반해 무질서와 혼란을 통해 의견을 관철하는 시위대는 내부에 조금의 권력이나 위계 없이도 놀라울 정도로 질서정연하다는 점이다. 단순히 평화시위를 찬양하거나 비판하는 문제를 넘어선 곳에 질서와 무질서의 교차가 놓여 있다.

 

비폭력시위는 내부의 질서를 통해 외부의 무질서를 만들어낸다(교통을 마비시키고 통행을 방해하고 노동을 중단한다). 외부로 표출된 무질서는 억압적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권력을 지탱하는 정권을 무너뜨린다. 그렇게 무너진 정권 위에 시민들의 새로운 질서가 유입되는 것이 혁명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경계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폭력/비폭력의 문제가 아니라, 촛불집회나 시민들에게 요구되는 안정과 질서, 평화에 대한 말들이다. 문제는 비폭력을 질서와 안정으로 연결시키는 태도이며 이를 평화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비폭력시위는 평화를 위해 나아가는 행위지 평화로운 행위가 아니다. ‘정국이 혼란스러워서는 안 된다’ ‘정해진 절차를 따르라’ 같은 말은 거짓된 질서를 강요하는 말에 불과하다. 시위를 구성하는 시민들은 지금까지 늘 절차를 따라왔다. 오직 정권과 권력자들만이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지금 여기 혼란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만든 것이지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다. 촛불집회와 이화여대 시위는 새로운 질서를 보여줬다. 위계 없이 작동하고 구시대의 언어 없이 작동하는 새로운 언어. 이 언어가 언제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언어는 바뀌었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건 우리다. 우리가 우리의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그러니 정국 안정이나 평화시위 같은 말은 믿지 말자. 우리는 이미 충분히 질서정연하고 안정되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무질서로 무너지는 것이다.

 

3.

 

나는 2016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이 글을 쓰고 있다. 탄핵은 가결됐고 헌재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광화문에서는 9차 촛불시위가 한창이고(사람들은 무려 9주째 주말을 반납하고 있다. 정부는 나중에 이를 보상해야 할 것이다) 덕수궁에서는 맞불 시위를 한다고 한다. 청문회는 5차까지 열렸고 보는 내내 인간의 지적 수준과 도덕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무한히 거듭되는 두가지 아포리즘. 1. “이 세상에 온갖 악행이 존재하고 있다는 데 매번 놀라는 사람, 인간이 얼마나 섬뜩한 방식으로 타인에게 잔인한 해코지를 손수 저지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를 볼 때마다 끊임없이 환멸을 느끼는 사람은 도덕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인물이다.”(수전 손택) 2.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놀라고 분노하라. 그렇지 않으면 거기에 익숙해지고 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게 된다.”(칼 맑스)

 

오늘 시위를 가야 할까. 박근혜정권 뒤에는 어떤 정권이 올까. 사람들이 주장하는 건 별게 아니다. 무상교육이나 기본소득, 검찰개혁이나 재벌해체 같은 구체적인 사안이나 큰 변화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냥 상식적인 절차를 밟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박근혜나 최순실 등이 처벌을 받아도 한국은 나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살림살이가 피게 될 거라는 기대도 들지 않고 서울의 교통체증이 나아지거나 택시를 잡을 때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될 거라는 기대도 들지 않고 국민연금을 받는 노년이 올 거라는 기대도 들지 않고 남녀평등이 실현될 거라는 기대도 들지 않고 국회의원들이 똑똑해질 거라는 기대도 들지 않고 내 책이 많이 팔릴 거라는 기대도 들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지난주에 산 19만원짜리 바지를 입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깜빡하고 말 안 했는데 세일해서 19만원인 바지다). 광화문에서 책을 사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전시를 구경하고 싶다. 크리스마스이브인데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파주에 사는 선배는 가족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가했고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잤다고 했다. 밤에는 온수풀에서 아이와 함께 놀았는데 실수로 바지에 핸드폰을 넣고 들어가는 바람에 손해가 막심하다고 말했다(정부는 이것도 보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호명하기 시작했지만 우리도 모르게 헬조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일은 크리스마스고 엄마의 생일이기도 하다. 시위 가는 길에 선물을 사야겠다. 아니, 선물 사러 가는 김에 시위도 갈까. 어쨌든 내가 원하는 건 둘 모두다.

 

정지돈 / 소설가

2017.1.4. ⓒ 창비주간논평  *이 글의 전재 및 복제를 금합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서천석(마음연구소)


책임감이란 무엇일까?

내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다. 이 답변은 얼핏 보면 쉬워 보인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적잖은 사람들이 싫든 좋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지금 박근혜 정권의 장관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일을 한다. 청와대에 머무는 공무원들 역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면서 맡겨진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부터 제대로 해내야지, 그건 방기하고 엉뚱한 짓을 하면서 다녀서야 되겠냐고. 일단은 할 일은 하고 자기 할 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그런데 자기에게 지금 주어진 일을 하면 그것이 책임을 다 하는 것일까? 여기서 묻게 된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과연 무엇인가?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아마도 위에서 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하면 우리는 책임을 다하는 것일까? 공무원이라면 국민에게 봉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신의 일이 유일한 권력자인 국민에게 봉사를 하는 것이어야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만약 위에서 시킨 일이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는 일이 아니라면, 오히려 국민을 배신하는 일이라면 그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셈이다. 스스로는 책임감을 다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떤 책임도 다 하지 않으면서 그저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순응을 책임감으로 생각한다. 또 반항을 무책임이라고 여긴다. 분명 책임감있는 순응도 있고 무책임한 반항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책임감 없는 순응도 있고 책임감에 기반한 반항도 있다. 책임감 있는 삶이란 스스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자신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지 묻고 그에 맞춰 진실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저 주어진 일을 하고, 상황에 순응하면서 사는 것이 책임감 있는 삶의 태도는 아니다.


부모의 책임감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약하다.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기 쉽다. 어른이 되었고, 아이를 낳아 키운다고 해도 어떤 것이 올바른 삶인지 생각하지 못할 수 있다. '인생이 별 것 있겠나?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적당히 상황에 맞춰서 살며 편안하면 그만인 거지.'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아이에게 나름 책임을 다한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같이 놀고, 공부도 시키고, 못 하면 야단도 친다. 힘들어 할 때는 도와주고 마음 아픈 일이 아이에게 생기면 같이 마음아파 한다. 어쩌면 이만해도 충분히 좋은 부모다.


하지만 이 부모들은 갈등 상황에 놓일 때 혼란을 느낀다. 아이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존중해야 할지, 공부에 대해 얼마나 강요해야 할지, 아이의 삶의 태도에 대해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이런 복잡한 고민 앞에 서면 무력감을 느끼고 그저 사회의 일반적 기대에 순응하고, 아이에게도 순응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렇게 순응하며 아이에게도 순응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책임있는 부모의 모습일까? 아이를 제대로 돕고 제대로 키운다는 부모의 책임을 다하는 것일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나름 생각을 가진 부모라도 막상 육아를 하다 보면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기란 쉽지 않다. 현실을 제대로 모른 채 가졌던 생각이라면 현실에 부딪히는 순간 무너진다. 또 자신과 아이가 부딪혀나갈 현실이 너무나 강고해 보여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는 것이 두려울 수 있다. 그래서 잠시 반항하고 저항하지만 그저 순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아이 인생은 아이 인생이라며 내버려 두는 것이 책임감 있는 태도는 아니다. 깊은 고민없이 무조건적인 저항적 태도를 선택한다고 책임감 있는 부모도 아니다.


책임감이란 이처럼 만만치 않다. 책임감 있는 태도를 꾸준히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책임감을 유지하려면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때론 어려움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을 망치지 않고 상황을 무리없이 처리하려면 지혜도 필요하다. 아이를 키워가는 과정에서도 끊임없는 고민과 결단, 그리고 정성이 들어간다.


지금의 부모 세대는 성장 환경 자체가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책임감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자율성을 존중하는 환경에서 성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기성 세대 중 상당수는 그저 순응을 책임감으로 착각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무엇인가? 그 일의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내가 놓인 상황은 어떠한가? 주어진 상황을 망치지 않으면서도 본질적인 가치에 충실하기 위해 나는 어떤 실천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참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이런 삶의 태도가 오랫동안 몸에 배어있다면 그리 힘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삶의 태도를 만들어주기 위해 우리는 아이들을 존중하고, 선택하게 해야 한다. 선택을 책임지게 하고, 책임진다면 존중해야 한다. 실패에서 배우고 격려하며 앞으로 나가게 해야 한다. 스스로 선택할 힘이 있음을 알고, 지금의 자기 모습도 자신이 선택하였음을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은 진정한 책임감을 갖는다.


쉽지 않다. 나도 배워보지 못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가치있다. 이것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부모로서 나의 책임이다.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시민이 개헌 주도한 아이슬란드…이런 게 ‘주권자 권리’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ㆍ시민 통치는 가능한가


‘11·12 박근혜 퇴진 촉구 시민대행진 추진위원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국정농단 책임자로 지목하고 스스로 퇴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11·12 박근혜 퇴진 촉구 시민대행진 추진위원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국정농단 책임자로 지목하고 스스로 퇴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질문을 받은 하승수 변호사(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는 “우리의 삶과 일상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결정되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어떤 나라가 민주공화국인지를 분석하는 틀 중 하나는 ‘누가 지배하는가’이다.


“민주공화국은 다수의 국민들이 참여해서 공동체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인데 지금 과연 누가 결정하고 누가 지배하고 있죠?” 그에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과두제이다. 재벌, 기득권 정치세력, 행정·사법관료, 기득권 언론이라는 소수가 다수의 시민을 지배하는 사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최악의 소수 지배를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60)는 청와대를 비롯한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사익을 추구했다. 재벌들은 800억원이 넘는 돈을 갖다 바쳤다. 그 대가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혐의가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꼭두각시 역할에 충실했다.



■왜 주권자인 시민은 결정 못하나 


민주공화국이라면 중요한 사회적 의제나 국가 정책 결정은 주권자의 뜻에 따라야 한다. 박 대통령 집권 기간 이뤄진 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 과정은 대부분 비민주적이고 독점적이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개성공단 폐쇄, 한·일 위안부 졸속 합의가 그랬다.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이명박 정부 때 불거진 밀양 송전탑 건설도 강행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위안부 합의는 3년 정도 비교적 잘 지켜오다가 국민이나 이해당사자들의 의사를 듣지 않고 마치 군주의 의사 결정처럼 급전환했죠. 사드 배치도 한·중관계와 남북관계를 고려해 잘 지켜오다가 밀실 결정으로 급변침하는 식이었고요. 개성공단 역시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입주기업들의 권리나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전면 폐쇄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결정 과정은 전혀 민주적 절차를 따르지 않았고, 국민의 이익을 국가가 보장하는 공화주의도 찾아볼 수 없었죠.”


자신의 생명과 재산이 걸린 문제에서조차 직접 이해당사자인 주민들은 들러리 신세였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을 반대하면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됐다. 소수 지배 권력은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나머지 국민과 분리시킨 뒤 ‘외부세력’ ‘불순세력’으로 몰아 공격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지난 10월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와 고 백남기 농민 관련 농성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국가 공권력 추락이 빚어낸 부끄러운 자화상”이라고 공격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경북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자는 결정이 누가 어떻게 논의해 이뤄진 것인지 시민들은 알 방법이 없다”며 “이런 식의 밀실 합의와 일방적 통보에 대해 시민들이 항의하면 경찰력을 투입해 찍어누르고 공안정국을 조성해 돌파하는 것이 정부의 반복된 행태였는데, 이런 권위적 통치는 공화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생명·재산 보호 못하는 국가 


박근혜 정부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국가의 기본 책무에서부터 무능하고 소홀했다. 304명의 생명이 죽어가는 걸 온 나라가 눈 뜨고 지켜봐야만 했던 세월호 참사가 불과 2년 전이다.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그냥 국가의 부재를 보여주는 사건”(한상희 건국대 교수)이었다. 해경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했지만 지난 9월 경주 강진 때도 ‘정부의 부재’가 드러났다. 재난 대응 컨트롤타워가 없고 각 부처가 따로 노는 난맥상은 되풀이됐다. 시민들은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나 공영방송의 재난특별방송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지진 관련 정보를 더 많이 얻었다.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우려하는 여론이 비등할 때도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과 기상청은 “안전하다” “그럴 일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진앙에서 반경 50㎞ 안의 고리·월성 원전 인근에 활성단층이 존재하고, 이 단층에서 최대 규모 8.3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비공개 정부 보고서 내용이 경향신문 보도로 공개됐다. 시민들에겐 ‘위험의 자기결정권’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저마다 SNS에서 ‘생존 배낭’ 꾸리는 방법을 검색해가며 각자도생을 꾀할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개성공단 전면 폐쇄는 헌법의 ‘재산 보호’ 의무(23조)를 저버린 사건이기도 했다. 북한 핵 도발 제재를 명분으로 공단을 폐쇄하면서 입주기업들은 하루아침에 사업 근거를 잃었다. 이들은 정부의 갑작스러운 공단 폐쇄가 적법 절차를 위반하고 재산권을 침해한 위헌 행위라며 지난 5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들이 추산하는 손해액은 1조5000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북한은 이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포함해 20발이 넘는 미사일을 발사했고 5차 핵실험도 강행했다. 안보 대치가 격화되는 속에서 개성공단만 희생양이 된 꼴이다. 


지배와 통치의 도구 ‘안보 상업주의’도 다시 봐야 한다. 1972년은 “정치적으로는 유신, 경제적으로는 중화학공업정책, 조세 및 복지정책에서는 소득세와 기업 부담을 줄이고 간접세에 의존하는 저부담, 저복지 체제가 도입된”(장덕진 서울대 교수) 해였다. 독재 체제를 옹호할 때도,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제한할 때도 ‘72년 체제’가 내세운 핵심 가치가 안보였다. 


정권의 안보는 ‘민주공화국’의 그것과는 다르다. ‘안전보장’의 줄임말인 안보는 사전을 보면 ‘외부의 위협이나 침략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뜻이다. 혁명사를 전공한 최갑수 서울대 교수는 근대 이후 모든 국가의 최우선 목표는 구성원의 안전보장이었다고 설명한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다. 기본권은 결국 사람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고 그와 관련된 자유와 안전을 포괄한다. 프랑스대혁명 이래 모든 혁명의 인권선언과 근대국가의 헌법에 안전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국가로서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최 교수는 “헌법 전문에 ‘우리들과 우리들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고 돼 있다”며 “한국은 헌법 선언과는 달리 내부로부터 국가의 기본 가치를 허물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한국이 근대국가로서 최소한의 공적 시스템도 갖추지 못했다는 걸 드러냈다. 통치와 지배 문제에다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한계를 보여준다. 시민의 지배와 통치는 불가능한가. 주권자인 시민은 거리로 나가 촛불을 드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일까.



■권력 분산과 직접민주주의 확대로 가야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관에 맞서는 민의 대항체로 전국적 차원의 시민의회를 구성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며 아이슬란드의 예를 들었다. 아이슬란드는 2010년 무작위로 선발한 시민 1000여명이 헌법 개정을 주도한 경험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책임을 규명하고 대안을 마련하라는 요구가 커질 때였다. 이 실험은 기성 정치세력에 대항하는 ‘해적당’의 약진으로 이어졌다. 


국민투표 활성화와 국민발의제, 사법부 수장 직선제, 검찰총장 직선제 같은 대안도 나왔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만 해도 국민이 직접투표 등으로 결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면 결과에 관계없이 민주주의 학습의 기회가 됐을 것”이라며 “대법원장과 검찰총장 등 사법부 고위직도 평판사·평검사들이 투표로 뽑은 ‘최고사법위원’들이 임명하는 식으로 바꾼다면 사법부의 불신이 지금보다는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지방자치의 급진적 강화를 대안으로 내놨다. 김 교수는 “중앙정부가 독점한 국가 권력과 예산을 인구 비례에 따라 다 나눠야 한다”며 “지방자치단체들이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기본소득 등 다양한 복지·사회 정책을 두고 선의의 경쟁을 하게 만들면 자연스럽게 권력이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민주공화국의 정신이 구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지식인들은 주권재민을 현실화할 방안으로 한결같이 기존 권력의 분산을 꼽았다. 문자 그대로 공화국을 ‘모두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이다. 시민의 자기 통치가 가능하려면 정치·경제 권력을 보다 평등하게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박명림 교수는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게 주권재민 원칙”이라며 “이걸 실현하려면 대통령 권력과 행정부 권한이 입법부를 압도하는 지금의 권력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위임받은 의회가 우위에 서서 대통령 권력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의회 강화를 위해선 의원 숫자를 지금보다 배 이상 늘리고, 현재 행정부가 독점한 인사·예산·정책·감사권 중 최소한 절반 이상은 의회가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권력의 구성과 감독·감시와 관련된 업무를 행정부로부터 독립시켜 입법-사법-행정부에 이은 제4부로서 ‘감독부’를 설치하자는 제안도 했다.


■특별취재팀 

김종목 이주영 장은교 황경상 김형규 심진용 박광연 이유진 최미랑 최민지 허진무 기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152211005&code=940100#csidx8ad82514cec1bf9821cc2d28e695988

[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6)여자라서 안되고, 덜 받고…남녀, 같은 국민 맞습니까

이주영·김형규·심진용·이유진·허진무 기자 young78@kyunghyang.com

ㆍ남성의 나라에 산다


지난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화제 때 여고생 2명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지난 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화제 때 여고생 2명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여대를 나와 로스쿨에 들어간 정소영씨(28·가명)는 모든 게 낯설고 불편하다. “여성이란 걸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있다가 갑자기 남성이 더 많은 집단에 들어오니 목소리를 마음껏 내지 못한다. 여권이 많이 신장됐다고 해도 소수라고 느낀다”고 했다. 그는 ‘검사 힘든데 왜 하려고 해?’ ‘변호사 하기 힘들지 않겠냐’는 말을 듣곤 한다. “남자들에겐 하지 않을 질문이죠. 자기 검열에 빠지곤 해요.”


강은진씨(24·가명)는 대기업 3년차 직장인이다. 강씨는 일상에서 차별을 느낀다. “여자들에겐 중요한 일을 안 시킨다. 같은 팀 남자 후배가 더 인정받는 느낌이다. 그 후배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 회식 때에도 마지막까지 남는다. 퇴사율은 남자들이 더 높은데도 ‘여자들은 뭐라고 하면 운다’느니, ‘그만두면 된다’느니 얘기한다.” 직간접적인 성희롱도 흔하다고 했다.


 정부는 기업들에 연 1회 60분 이상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화하는 법을 뒀다. “교육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교육 자료는 성희롱 예방보다는 대처에 집중돼 있다. ‘짧은 치마 입으면 타깃이 될 수 있다’ ‘남자 상사와 개인적 시간을 갖지 말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내용이다. 성희롱을 당하면 선배 여직원에게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성차별·불평등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과거보다 많아졌다. 하지만 의식과 무의식에, 문화와 제도 전반에 공고히 박힌 가부장적·성차별적 사고는 여전히 여성들을 소수자, 비주류, 아웃사이더로 내몬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인터넷이나 각종 재현물에는 여성들을 조롱하고 멸시하며 비하하는 내용이 많다. 그래서 여자들은 늘 위축돼 있고 눈치 보고, 그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고민한다. 실질적·감정적으로 소수자”라고 말한다.


여성이라서 겪는 문제는 공공과 공정, 공평이라는 공화국 핵심 요건에도 어긋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받지 않는다’는 헌법 제11조 속 ‘국민’ 범주에 여성은 온전히 들어 있지 않다. 여성들에게 ‘2016년 대한민국’은 위협과 착취, 투쟁의 공간이다.

[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6)여자라서 안되고, 덜 받고…남녀, 같은 국민 맞습니까


■“권력이 모두에게 동등하지 않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캐나다 총리 저스틴 트뤼도는 캐나다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가 15명씩 동수인 내각을 출범시켰다. 성별 균형이 화제에 오르자 트뤼도는 “지금은 2015년이니까”라는 말을 남겼다.


프랑스는 4년 전 내각 절반을 여성으로 임명했고, 이탈리아도 2014년 16명의 장관 중 8명을 여성으로 채웠다. 외무·국방·경제개발·교육·보건 등 요직에 포진했다. 스웨덴(43.6%), 핀란드(42.5%), 아이슬란드(41.3%)도 여성 의원 비율이 절반을 향해 간다. 여성 정치인 비율이 높은 나라는 전반적으로 행복지수와 청렴도, 사회복지 수준이 높다. 


대한민국 20대 국회 여성 의원 비율은 17%(300명 중 51명)다. 17개 부처 장관 중 여성은 2명(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5’를 보면 한국의 성평등지수는 145개국 중 115위다. 중국(91위)과 인도(108위)는 물론 가나(63위)보다 낮다. 한국 여성이 남성과 같은 일을 할 때 받는 임금은 남성의 55%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34개국 조사에서도 남녀 임금 격차가 36.7%(2014년 기준)로 가장 높다. OECD 평균은 15.6%다. 한국 남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45분(2009년 기준)으로 조사 대상 OECD 회원국 26곳 중 가장 짧았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227분으로 남성보다 5배 길다. 남녀는 같은 ‘국민’인가? 


이나영 교수의 얘기다. “헌법 1조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데 그 국민 안에 여성은 한 번도 제대로 들어간 적이 없다. 국민은 항상 ‘중산층 이성애자 남성’이다. 더 좁히면 명문 학교를 나온 특정 집단이다. 여성은 늘 소수자, 약자, 주변인으로 존재했다.” 이 교수는 권력관계가 어떻게 차별적 관계를 생산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문단 내 성폭력’ 폭로로 알려진 유명 소설가의 성추행도 권력관계에서 나온 ‘갑질’이었다. 그가 추행한 여성들은 출판사 직원, 방송작가 등 업무 관계에서 약자 위치에 놓인 사람들이다. 그는 “다정함을 표현하고 분위기를 즐겁게 하느라”고 그랬다고 항변한다. 성적 위협은 일상에 퍼져 있다.


 가해자들의 욕구는 사회적 지위나 학력과도 무관하다. 여러 ‘명문대’ 남학생들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동료 여학생을 대상화해 성희롱 발언을 주고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남성 국회의원은 국정감사장에서 자신의 발언에 웃는 여성 의원에게 “내가 그렇게 좋아?”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던진다.


“여성은 공적 영역에서 어떠한 일을 하든 ‘어쨌든 생물학적 여자’라는 시선은 이미 여성혐오사상에 근거한 성차별주의적 의식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이며,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여성혐오사상은 여성차별로 이어진다. 이러한 여성혐오나 여성차별은 노골적인 방식으로만이 아니라 매우 은밀하고 친절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도 행사되는 것이다.”(강남순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브라이트신학대학원 교수의 페이스북 글)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민주공화국인가 


헌법의 민주공화국은 모든 구성원이 동등한 위치에서 차별받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다 같이 행복하게 살자는 뜻을 담고 있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 서로를 혐오하며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지난 5월17일 오전 1시20분, 서울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3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을 거뒀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가해자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경찰은 가해자가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입원한 사실을 들어 ‘묻지마 살인’이라고 규정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여성혐오 범죄’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강남역 일대에 붙은 피해자 추모 포스트잇 중 일부가 남성혐오 시각을 드러내면서 남녀 간 성대결로 비화됐다. 온라인 게임에 등장하는 성우가 ‘여성혐오에 대한 혐오’를 표방한 페미니즘 사이트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은 사진으로 항의를 받아 교체된 사건은 혐오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김경희 성신여대 교수의 얘기다. “갈등 해소 방법을 가르치는 게 민주공화국의 핵심이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들면 바로 행동으로 들어간다. 집단행동은 상명하복, 권력지향적 문화에서 나온다. 나와 다르면 내 말을 듣도록 하겠다며 강제적으로 내 의사를 상대방에게 관철하도록 만드는 것이 권력이다.”



■최고지도자가 만든 여성혐오의 낙수효과 


사상 첫 여성 대통령 재임 기간 민주공화국은 더 나락으로 떨어졌고, 페미니즘도 위협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비판에는 ‘수첩 공주’ ‘여왕 패션’ 같은 생물학적 성을 부각시키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전임 대통령들을 비판할 때 남성성을 강조하지 않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런 현상은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실태가 드러난 후 극대화됐다.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고 최태민 목사에게 의존했고, 정치 입문 후에 최순실씨의 사실상 꼭두각시 노릇을 해왔다는 사실은 “여성은 주술에 의존하는 나약한 존재” “여성 대통령은 시기상조”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어도 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민주공화국’을 기치 중 하나로 내건 민중총궐기(2차) 연단에서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강남 아줌마” “병신년” 같은 말이 나왔다. 한국여성민우회는 트위터에 “왜 최순실, 박근혜는 다른 모든 잘못보다 여성이란 점을 부각해 비난받나. 연단 위 여성·청소년·장애인 비하 발언과 그에 박수 치는 이들을 보며 참담함을 느꼈다”는 남슬아씨 발언을 올렸다. 


최근 결성한 박하여행(박근혜 하야를 만드는 여성주의자 행동)은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과거의 대통령들은 남자라서 독재를 하고, 남자라서 4대강을 판 것입니까? 박근혜 대통령 역시 하야해야 하는 이유는 여자라서가 아니라 국정을 농단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았기 때문입니다.”


 여성민우회는 12일 3차 민중총궐기에 ‘박근혜 퇴진! 여성혐오 퇴장!’을 슬로건으로 걸었다.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집회’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나갔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제공

한국여성단체연합 제공


“박근혜 정부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면서 젠더적인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박 대통령을 여왕으로 만들어 조롱하고 풍자하는 과정에서 공화국의 내용을 채워야 할 구체적인 내용들은 사라지고 있다.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미래에 대한 내용은 사라지고 풍자의 쾌락만 남는 것이다. 여성의 권력화에 대한 기대들은 박 대통령에 의해 다 죽고, 오히려 여성 리더십을 정당하게 조롱할 권리가 생겨버렸다. 여성혐오의 낙수효과다.”(권명아 동아대 교수) 

■특별취재팀 

김종목 이주영 장은교 황경상 김형규 심진용 박광연 이유진 최미랑 최민지 허진무 기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152206005&code=940100&s_code=as166#csidxaaf0bb1f5963708ba960fa9e6bcfdf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serial_list.html?s_code=as166

[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5) 지배할 뿐 책임지지 않는 권력…여기 시민의 자리는 없다

심진용·장은교·김형규 기자 sim@kyunghyang.com


ㆍ다수에 휩쓸리고 ‘영웅’ 찾는 개인들…거기 공화국은 없다
ㆍ국민을 지켜야 할 국가의 부재

구의역 사고 현장에 ‘민주공화국’은 없었다.<br />사람들은 어쩌다 이런 나라에 살게 되었는가를 묻는다.<br />민주화 이후 30년, 민주공화국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다.<br />지금,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할지 다시 생각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근 기자

구의역 사고 현장에 ‘민주공화국’은 없었다. 사람들은 어쩌다 이런 나라에 살게 되었는가를 묻는다. 민주화 이후 30년, 민주공화국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다. 지금,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할지 다시 생각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근 기자



‘비선 실세’가 대통령 연설문을 건드렸다. 공직 인사와 국정 전반에 관여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던 그 일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가. 지금 이 질문은 사치스럽게 들린다. 


그럼에도 ‘민주공화국’을 말하는 것은 중요하다. 폐허 위에서 민주공화국이라는 집을 새로 지어야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원초적 물음을 던져야 할 때다.


홍세화씨(장발장은행장)는 “이번 사태같이 전근대적인 ‘국가의 사유화’가 가능했던 원인과 배경을 살펴야 한다”며 “정부·국회·사법부·검찰·경찰·국정원 등 국가 공적 기관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발판으로 기능했다는 점을 놓치면 안될 것”이라고 짚었다. ‘공적인 것(res publica)’에서 출발하는 민주공화국의 모토와 기반 자체가 무너졌다는 이야기다.


김경희 성신여대 교수는 “민주공화국의 핵심가치라 할 수 있는 법치와 공적 질서는 완전히 부정됐다”며 “한국 사회가 껍데기만 민주공화국일 뿐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 지금이야말로 민주공화국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지난 5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살 김모군이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열차에 치여 죽었다. 비정규직 청년의 외롭고 궁한 죽음이었다. 그의 곁에 나라는 없었다. 위험마저 외주화하는 사회에서 사고는 예견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슬퍼하고 분노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엔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빼곡히 달렸다. 


“누가 포스트잇에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썼지요. 영화 <굿윌헌팅>의 한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천재소년 헌팅(맷 데이먼 역)이 삐뚤게 나갈 때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 역)가 몇번이고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고 말하죠.

다들 알아요. 개인 잘못이 아니라 사회구조 문제라는 걸요. 뭐가 문제인지 다 아는데 어떤 대안도, 해결책도 찾지 못하는 게 지금 상황입니다. 밥 먹을 시간도 없는 열악한 근로환경에 19살짜리 아이를 몰아넣고도, 그 상황을 탈출할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는 걸 드러냈죠.”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민주공화국의 붕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구의역 청년 노동자의 죽음을 꼽았다. 


국민을 ‘개·돼지’라 부른 교육부 고위 관료는 김군의 죽음이 내 자식 죽음처럼 가슴 아프다는 말에 공감하지 못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이 되나”라고 반문했고, “내 자식처럼 가슴 아프다는 얘기는 위선”이라고도 했다.


민주공화국을 위협하는 가장 큰 도전으로 ‘경제불평등’을 꼽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평등의 고원’이란 개념을 꺼냈다. “자기 자식은 이미 평등의 고원 위로 올라갔다는 겁니다. 고원 위에 있는 자기들 고위 공무원 사이에서 불평등은 문제가 될 수 있어도, 고원 아래 ‘개·돼지’들과의 평등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한국 사회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죠.”


박찬승 한양대 교수도 “‘한국 사회가 일종의 신분제 사회로 변한 지 오래 아니냐. 그게 현실인데 뭐가 문제냐’는 인식이 사람들 머릿속에 들어와 있다는 얘기”라고 짚었다. 


비정규직 임금은 지난해 기준 정규직 임금의 43%다. 300인 미만 중소규모 사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체 노동자의 임금 차이는 월 250만원 이상이다. 돈이 신분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동일노동인데도 직군별로 그렇게 임금 격차가 큰 나라는 한국 말고 없다”며 “인간을 직군과 직업으로 보는 세상에서 차별도 당연시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금은 가진 사람이 오만하게 될 수밖에 없는 시대”라며 “아이들까지 무슨 집에 사느냐로 사람을 차등하고, 인간을 위계로 이해한다”고 했다. 

경제불평등과 양극화 국면에서 국가는 제 역할을 방기했다. 무한경쟁을 부추겼다. 그 결과로 나온 불평등을 정당화했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그 연원을 1972년에서 찾는다.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을 내놓은 해다. “정치적으로는 유신, 경제적으로는 중화학공업 정책이 시작됐죠. 조세·복지에서는 소득세·법인세를 줄이고 간접세에 의존하는 저부담·저복지 정책이 도입됐죠. (유신, 중화학공업, 저부담·저복지) 3가지 요소의 조합이 만들어진 시기죠. 세금 줄여줄 테니 월급 조금 더 받아서 당신 힘으로 먹고살라는 거였죠. 사람들에게 공화나 공생공영 가치를 부정하는 데 인센티브를 주는 시스템이 이 시기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이택광 교수는 “민주공화국의 핵심은 공론이며, 공론은 곧 시민의 목소리를 말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 나라는 당신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 가진 몇몇이 정책결정 과정을 독점한다. 여론은 수렴하지 않는다. 결과에 책임지지도 않는다.


최장집 교수는 ‘책임성의 실종’을 지적했다. “산업은행 몇 명이 밀실에 둘러앉아 수백조원 규모의 조선산업을 평가하고, 결과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권위주의 시절의 일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걸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최 교수는 “권력의 선출은 민주적이었을지라도, 운영 방식은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며 “그 핵심은 ‘책임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사드 배치, 개성공단 철수, 위안부 합의가 그랬다. 세월호 참사 이후 특조위 활동이나 이전 정권 시절의 4대강 사업도 다르지 않다. 권력자의 결정만 있었고, 소통과 책임은 없었다.


박명림 교수는 지난해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두고 “군주의 의사결정처럼 방향을 급전환했다”고 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사드 배치를 가리켜 “민주주의의 본질을 부정하는 사례”라고 했다. 비선 실세 파문에 덮인 현실에서 사람들은 선출된 자의 권력남용뿐 아니라 선출되지 않은 자의 국정농단까지 견뎌야 하느냐고 묻는다.



■분노조절 장애 사회, 집단화병의 나라 


민주공화국은 시민들의 참여와 헌신을 필요로 한다. 달리 말해, 한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려면 먼저 시민들에게 그것을 요구할 자격을 갖춰야 한다. 세월호와 구의역, 최순실을 목격한 시민들에게 한국은 무엇으로 그걸 요구할 수 있을까. 


이제껏 나라는 역사와 민족·혈연에 기대어 시민을 동원했다.


곽준혁 중국 중산대 교수는 “민족을 하나의 ‘신화적 운명 공동체’로 강조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에 맹목적 헌신을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전 로마는 달랐다”며 “시민 각자가 로마 공화정이라는 정치체제를 통해 자신의 시민적 자유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경험적·구체적 확신을 가졌기에, 로마를 위해 헌신했다”고 덧붙였다. 민족과 혈연에 기댄 호소에 젊은이들은 ‘헬조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으로 답하고 있다.


김경희 교수는 “유구한 역사에 단군의 후예가 뭐 어쨌다는 거냐. 공화주의 측면에서 애국심이라고 할 때 한 핏줄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며 “지금 우리가 사는 나라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곽준혁 교수는 “공동체에서 시민 각자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자기 자유가 지켜지고,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받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면, 시민들이 그 공동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공화국에 대한 신뢰가 ‘아모레 델라 파트리아(amore della patria)’, 곧 ‘나라를 사랑하는 것’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은 어떤가. 나라는 시민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 안전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시민의 목소리는 수렴되지 않은 채 그저 흩어질 뿐이다. 권력자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 또한 무너졌다. 곽 교수는 “로마 공화정 시민들은 명예를 차지해선 안될 사람이 명예를 차지하고, 능력 없는 이가 자신들을 다스릴 때 불쾌해했다”고 전했다. 지금 한국 시민들도 불쾌하다. 불만스럽다. 절망과 분노가 사회 전반에 감돈다. 

‘분노조절 장애 사회’ ‘집단화병 사태’ ‘원한 사회’…. 경향신문이 기획을 준비하며 만난 이들에게서 나온 표현들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한국 사회를 가리켜 거대한 ‘르상티망(resentiment)’의 사회라고 했다. “시기, 질투, 원한 이런 부정적인 감정의 집합을 가리켜 르상티망이라고 하는데, 지금 한국 사회는 그런 억울함이라든가 분노, 불만이 임계점까지 치솟은 것 같다”는 것이다.



■어쩌다 이런 나라에 살게 되었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았다. 나라와 사회가 공통으로 지향할 가치를 숙의·합의하는 과정도 없었다. 그래서 헌법 제1조는 수사에 그칠 뿐이다. 산업화·근대화 목표 아래 경제성장 외에 다른 가치는 없었다.

 

“정부 수립 이후 70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잘 먹고 잘사는 것, 소위 ‘먹고사니즘’ 말고 다른 가치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공동체란 게 무색해질 수밖에 없죠. 지배집단이 사익이나 사적 목적을 가지고 정치공동체를 사유화하기에 딱 좋은 환경입니다.”(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1987년 6월항쟁 당시 성직자와 시민들이 ‘민주화와 인권 회복을 위하여’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7년 6월항쟁 당시 성직자와 시민들이 ‘민주화와 인권 회복을 위하여’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진 교수는 1987년 민주화의 한계도 지적했다.

박찬승 교수도 “1987년 이전까지는 민주공화국이라 말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었다”며 “1987년 이후로도 민주공화국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단 한번도 민주공화국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최갑수 서울대 교수는 “(1987년에) 단순히 권력구조를 바꾸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권리와 가치가 무엇인지, 이걸 먼저 합의했어야 한다”고 했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빼곡히 매달린 진도 팽목항에서 2014년 5월 한 자원봉사자가 리본에 적힌 사연들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빼곡히 매달린 진도 팽목항에서 2014년 5월 한 자원봉사자가 리본에 적힌 사연들을 읽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민주공화국에 대한 신뢰는 사실상 무너졌다.


김상조 교수는 “민주공화국의 내용과 형식을 새로 만들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1987년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지금 한국 사회 논의는 그때와는 달라져야 한다.


경향신문이 만난 이들은 지향점과 제도를 궁리하는 과정이 몇몇 정치인이나 엘리트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데 생각을 같이했다. 우려는 남는다. 시민들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나라를 만드는 것은 시민 각 개인의 몫이다. 개인이 각자 가치를 이야기하고 토론·합의하는 과정에서 민주공화국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한국은 개인성이 약하다. 개인의 자유나 존엄에 대한 전통이 없는 나라”라며 “우리는 사상적으로든 역사적으로든 단 한번도 개인 자율의 존엄함을 다룬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개인이 약하니 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진영 논리가 득세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는 “공화는 결국 서로 모여서 조화롭게 간다는 뜻 아니냐. 그런 게 전혀 안된다. 상대 얘기는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세월호 참사나 국정원 댓글 사건 같은 경우 진보·보수를 떠나서 국가 기능·역할에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진영 문제로 치환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여론에 편승하는 경향도 엿보인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한국 사회를 보면 대화나 담론이 다수나 평균의 생각에 맞춰 형성돼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한국엔 선거 때마다 메시아가 등장한다. 약한 개인은 늘 영웅만 찾는다. “각자도생하다 힘센 영웅이 나타나 상황을 정리해주길 바라는”(이병천 교수) 이들이 민주공화국을 만들 수는 없다.


민주공화국은 각자도생도 아니고, 영웅의 카리스마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이 교수는 “구성원 각자가 자유로운 존재로 삶을 살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공화국은 시민으로부터 


시민 없이 민주공화국도 없다.

 “토머스 제퍼슨 말처럼 정치하는 사람들이 백날 공화주의 얘기해도 시민 사이에 공화주의 기반이 없으면 그저 신기루일 뿐”이라고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지적한다. 여럿이 ‘국가의 부재’뿐 아니라 ‘시민의 부재’까지 아울러 살펴야 한다고 했다.


장덕진 교수는 “민주공화국을 이야기하면서 보통 정치권과 정부에 책임을 묻는데, 과연 시민들은 민주·공화적 가치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윤평중 교수는 “직접적인 권력을 가진 이들이 국가 운영에 가장 큰 책임을 지는 것이 맞지만, 일반 시민들도 분명히 책임이 있다”고 했다.


“국가뿐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도 민주시민으로, 공화국 국민으로 요구되는 태도와 책임을 내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시민은 만들어진다. ‘문제는 결국 교육’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병진 교수는 “유치원부터 고교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민주공화적 훈련을 시키지 않는다면, 민주공화국을 만들 수 없다”며 “민주공화국이 무엇인가를 두고 끊임없이 비판하고 질문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희 교수는 민주공화국의 기본 요건을 ‘말할 수 있는 능력’에서 찾는다.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말할 수 있다는 건 사회 전반에 수평적인 문화가 형성돼 있다는 이야기고, 이건 어릴 때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 배우고 체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교육 내용과 제도도 변해야 한다.


박명림 교수는 “공공성을 회복하고, 민주공화국이 되려면 ‘반값등록금’ 같은 정책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돈 안 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왜 그런가. 박 교수는 “시민을 길러내려면 먼저 내가 공화국에서 교육받았다는 사실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내 돈 내고 좋은 학교 나와서 교수도 되고, 관료도 되고, CEO도 됐는데, 왜 내가 나라에 헌신해야 하느냐는 말이 나온다면 시민성도 길러질 수 없다”는 것이고, “국가가 아닌 개인의 돈으로 교육하는 건 시민이 아니라 돈 버는 사람, 다시 말해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를 양성하는 것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민주공화국의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교육”이라며 “그 핵심은 국가가 교육비를 부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선 실세 게이트가 터지면서 나라 전체가 ‘패닉’이다. 허탈과 절망, 분노와 함께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일거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공화국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애초 민주공화국의 완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박명림 교수는 ‘민주공화국은 헌법정신의 선언인 동시에 구체적인 구현 과제’라고 했고, 김경희 교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하는 헌법 조항 또한 늘 현실을 살피고 느슨한 부분이 보이면 조이고 발전시켜나가는 개념’이라고 짚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있나, 어쩌다 이런 나라에 살게 되었나, 이제 어떤 나라를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 위기의 시대, 민주공화국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주어진 물음이다.

특별취재팀 
김종목 이주영 장은교 황경상 김형규 심진용 박광연 이유진
최미랑 최민지 허진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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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각자도생’ 대한민국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ㆍ국가의 공공성도 ‘힘들 때 기댈 사람 있다’ 응답 비율도 OECD 꼴찌

[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각자도생’ 대한민국

“한국 사회 생존원리는 각자도생이다.”(장덕진 서울대 교수), “한국인들이 유지할 수 있는 공동체가 없다 보니 각자도생만 생각하게 된다.”(박찬승 한양대 교수) 

여러 지식인들이 민주공화국을 내건 한국 사회의 위기를 표현하는 말로 ‘제각기 살 길을 도모한다’는 뜻의 각자도생(各自圖生)을 꼽았다. 각자도생은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 능력 상실과 공동체 붕괴로 이어진다. 대표적 사례는 세월호 참사다. 300명이 넘게 죽은 참사를 두고 사고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지겹다’ ‘그만하라’는 말이 나왔다. 한 여행객은 심장 발작으로 기절한 택시기사를 버려둔 채 골프여행길을 재촉했다.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나라에서, 보수세력이 정부수립 70년 중 60년을 집권한 나라에서 각자도생이 만연하고 공동체 유지라는 보수 가치는 땅에 떨어졌다.

민주공화국의 척박하고 형해화된 현실은 구체적 수치로도 나온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014년 발표한 ‘이중위험사회의 재난과 공공성’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공공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중에서 꼴찌다. 

보고서는 공공성을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로 나눠 살폈다. 공화주의는 공익성(사회·교육·의료 지출 현황과 시민의 공익활동)과 공정성(임금격차와 성별 고용률, 세금의 소득재분배 효과), 민주주의는 공민성(선거절차와 투표율, 법치)과 공개성(언론자유, 정보접근성)으로 구분해 점수를 매겼다. OECD와 유엔, 각국 통계청 자료로 분석한 보고서에서 한국은 칠레를 제외한 33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공화주의(공익성·공정성) 지표가 33위로 꼴찌다. 민주주의 지표에선 공민성 31위, 공개성 29위로 최하위권이다. 4개 항목을 합산한 공공성 지표 평가도 맨 끝에 위치해 있다.

‘국가별 가치관 특성’ 분석에서도 한국은 강한 물질주의 성향과 차이에 대한 낮은 관용도를 보였다. 통상 교육수준이 높거나 소득수준이 올라갈수록 탈물질주의 성향과 사회적 관용도가 상승하는 대다수 ‘선진국’들과 반대다. 한국은 고소득·고등교육 수혜 계층에서 물질주의 추구가 더 강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OECD 사회통합지표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는 각자도생의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은 2015년 OECD 사회통합지표 중 ‘사회적 관계’(사회적 지원망) 부문에서 10점에 0.2점을 받았다.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하거나 기댈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사람이 전체의 72.4%로, 조사대상 36개국(OECD 회원국 + 브라질·러시아) 중 가장 낮았다. 전체 평균은 88%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위기가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전환점이 됐잖아요. 돈과 내 가족 말고는 날 지켜주는 게 없구나 생각하게 됐죠.‘부자 되세요’가 모두의 인사말이 됐어요. 공화주의나 민주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있겠어요.”(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본부장)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1022234005&code=940100&s_code=as166#csidxf43a77c4d8fc1109a93267217d20ed2

[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4)무능한 정치·비겁한 판결…법 위에 군림하는 ‘피고 대한민국’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ㆍ법정 위에 선 ‘법치국가’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 비친 태극기(왼쪽 사진). 오른쪽은 같은 날 대법원 앞. ‘2015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1심 형사합의부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한 비율은 66.8%로 200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 비친 태극기(왼쪽 사진). 오른쪽은 같은 날 대법원 앞. ‘2015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1심 형사합의부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한 비율은 66.8%로 200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국가를 법정에 세울 수 있을까. 법을 어겼다면 가능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이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法治)국가란 뜻이다. 법은 왜 만들었을까. 민주공화국을 위해서다. 질문이 돌고 도는 것 같지만 그게 핵심이다. 실은 다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다 같이 행복해지려고 ‘민주공화국’을 선택했고 법을 만들었다. 법은 국가가 ‘국민 행복’을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법을 지키지 않은 국가는 피고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피고 대한민국’에게 묻는다.

■책임지지 않는 나라 

지난 9월 한국수자원공사와 농어촌공사의 내부자료가 공개됐다. 이 자료에는 4대강 수질개선에 8000억원, 농업용수공급에 2조원을 투입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내세운 명분은 수질개선이었다. 최소 22조원을 삼킨 4대강은 괴생물체를 토해내는 폐강이 되어가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9월12일 “금강과 낙동강에 이어 한강 상류에서도 ‘4급수’에서 서식하는 실지렁이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한강도 더러운 물이 됐다는 징표다. 금강에선 시궁창 깔따구가 나왔다. 낙동강에서 발견된 죽은 물고기 배 속에 기생충이 득실거렸다. 4대강사업 이듬해부터 강물에서 ‘녹조라떼’를 퍼올린 인증샷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궜다. 올해 4대강 16개 보 운영비는 311억원, 유지보수비용은 151억원이 편성됐다. 4대강사업을 떠맡은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해 5조6000억원, 올해 1615억원의 손실을 떠안았다. 실패한 사업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비용을 쏟아부어야 할지 추산하기도 힘들다. 

[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4)무능한 정치·비겁한 판결…법 위에 군림하는 ‘피고 대한민국’

4대강사업에서 법치의 실종도 목격한다. 나쁜 정책이 무능한 정치와 비겁한 판결을 만나면 어떤 귀결이 나는지를 4대강사업은 잘 보여준다. 이 사업은 크게 4단계의 과정으로 진행됐다. 1단계, 정부는 정책을 강행한다. 2단계, 다수당이던 여당은 찬성, 야당은 막지 못한다. 3단계, 반대하는 국민은 소송을 제기하지만 법원은 판결을 미루거나 정부 손을 든다. 4단계, 결과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는 반대여론이 높은 정책과 국가가 피고인 거의 모든 소송에서 반복된다.

정부 정책 추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민주공화국’다운 방법은 야당이 국회 안에서 설득과 토론으로 정책추진을 무산시키는 것이다. 야당은 그러지 못했다. 두번째는 국민투표로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법적으로 국민투표를 발의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뿐이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명시한다. 반대여론이 높을 때 대통령이 자신이 추진하고 싶은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국민들은 소송을 했다. 정부가 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가재정법상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예비타당성조사를 하지 않았다. 환경영향평가는 부실하게 진행했다. 2009년 11월10일 영산강에서 4대강 공사가 시작되자 보름 뒤 국민소송인단이 소송을 제기했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관할 4개 법원에 ‘하천공사시행계획 취소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피고는 한국수자원공사 등 대한민국. 8945명이 원고로 참여했다. 

본안 판단이 나올 때까지 공사를 중지해달라는 가처분 소송도 냈다. 법원은 기각했다. 공사는 소송과 별개로 속도를 내며 진행됐다. 첫 판결은 서울행정법원에서 나왔다. 소송이 시작된 지 1년 후다. 피고 대한민국의 승리였다. 재판부는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일부 부실하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은 정도는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당시 소송인단을 변론한 김남주 변호사는 “평가가 제대로 됐는지 봐달라고 소송을 냈는데 재판부는 ‘평가서가 있으니 됐다’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이 논리는 다른 3개 법원 1심 판결에서도 거의 인용됐다. 

4대강사업의 법적 문제점을 유일하게 인정한 곳은 2심인 부산고법이다. 재판부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은 것은 국가재정법 위반”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대규모 국책사업인 이 사업은 대부분의 공정이 90% 이상 완료돼 이를 원상회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며 “뒤늦게 이를 취소한다면 기존에 형성된 법률관계에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공사가 이미 너무 많이 진행돼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공사가 90%나 진행될 때까지 판결을 내리지 않은 것도, 판결이 다 나올 때까지 공사를 일단 멈춰달라고 낸 가처분 소송을 기각한 것도 법원이다. 논리적으로 해괴하게 보이는 이 판결은 ‘사정판결(事情判決)’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 사정판결은 원고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사정을 이유로 들어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말한다. 이 판결을 내린 부장판사는 후에 대법관이 됐다.

대법원이 최종판결을 내린 것은 공사가 끝난 지 2년 가까이 지난 후였다. 사건번호 ‘2009구합50909(서울행정법원)’는 6년이 지난 2015년 12월10일에서야 마무리됐다. 피고 대한민국의 승리다. 단 한 줄의 소수의견도 남기지 않았다. 당시 대법원 내부사정을 잘 아는 한 법조인은 “한 대법관이 이 정도로 중요한 국책사업에 대한 판단은 전원합의체에 넘겨 소수의견을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그 대법관이 퇴임할 때까지 시간을 끌다가 소부(소재판부)에서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대법원은 4대강사업의 정당성 논란에 가장 진한 마침표를 찍은 행위자가 됐다.

대법원이 사건을 뭉개던 2013년 1월 감사원이 “4대강사업은 총체적 부실”이라고 발표했다. 사업 효과와 경제성을 충분히 검토하지도 않았고 사업 이후 수질은 더욱 나빠졌다고 했다. 국민들은 형사소송에 기댔다. 이명박 대통령과 4대강사업을 추진한 공무원 57명을 배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2년 동안 쥐고 있다가 지난해 11월에서야 무혐의 처리했다.

시민들은 나쁜 정책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막지 못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야당 위원들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4대강사업의 책임을 묻겠다고 했지만, 최순실 등 ‘비선 실세’의 경악스러운 행위가 국감 이슈를 집어삼켰다. 환경단체들은 4대강 청문회를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www.4river.or.kr)을 벌이고 있다. 

■사법정치시대 

정부와 사법부가 손발을 맞춘 ‘사법정치’는 지금도 목격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 4대강사업이 있다면, 박근혜 정부에선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이 있다. 두 정책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역사학계와 교육학계의 극렬한 반대에도 정부는 지난해 11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교육부 장관 명의로 발표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지난 14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교육부가 2014년 1월 역사교육지원팀을 구성해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마다 청와대비서관들과 회의했다”며 내부문건을 공개했다. 집권 2년차부터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준비했다는 뜻이다. 

정부는 강행했고 야당은 막지 못했다. 시민들은 다시 법에 기댔다.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도 헌법재판소도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법은 소 접수 후 180일 안에 사건을 선고하도록 돼 있지만, 헌재는 245일이 지나서야 교육부로부터 답변서를 받았을 뿐이다. 교육부는 다음달 국정역사교과서 최종본을 공개하고 내년 3월부터 현장에 적용한다. 교육부는 2016년에만 역사교과서 개발·홍보 비용으로 44억원의 예비비를 책정했다. 시민과 학계가 반대하는 사업을 추진하다보니 홍보비로만 25억원을 지출했다. 

정부정책의 든든한 조력자가 된 사법부는 국민에겐 위험한 무기이자 대통령에겐 더없이 잘 드는 칼이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은정 교수는 저서 <왜 법의 지배인가>에서 “우리나라 법공직자들은 어느 나라의 법관이나 검사들보다도 재량의 범위가 넓다”고 썼다. 박 교수는 “오늘날 사법개입의 확대는 사회생활의 전 영역에서 일어난다”고 진단했다. 

대법원은 2013년 12월 통상임금 범위를 결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을 도입했다. 이 판결은 통상임금을 넓게 보아 노동자들의 권리를 넓혀주는 것처럼 보였으나, ‘기업의 경영상 어려움’을 고려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 사실상 사측 재량권을 넓혔다. 대법원 판결 전 박근혜 대통령은 임금문제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GM 회장에게 “해법을 찾겠다”고 했다. 한 중견 법조인은 “사법부가 판결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비판이 법조계 내부에서 돈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사법부는 논리와 시간을 무기로 뒷받침하면서 행정부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한 부장판사는 “정치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자꾸 법원으로 넘어오는데, 법원에선 정책 타당성이나 결과를 평가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 오직 법적 절차를 지켰느냐만 판단한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2010년 국회에서 미디어법이 날치기로 통과됐을 때 헌재는 “투표절차에 문제가 있었지만 결과를 무효로 할 만큼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 ‘결과를 무효로 할 만큼’은 대체 어느 정도일까.

■무력화된 삼권분립 

경제평론가 이원재씨는 ‘민주공화국의 위기’를 보여준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단독사면을 꼽는다. 2009년 12월 사면심사위는 평창올림픽유치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수천억원대 경제범죄를 저지른 이 회장에 대한 ‘원포인트’ 사면을 단행했다. 이씨는 “법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너무나 명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원포인트 사면’은 사법정치 문제와 함께 삼권분립의 실종을 드러낸다. 

지난 21일 경찰은 ‘백남기 농민 추모집회’ 참가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방패를 세워 이동로를 차단했다. ‘공권력’이라 부르는 국가의 행위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 의미와 곧잘 부딪친다.   정지윤 기자

지난 21일 경찰은 ‘백남기 농민 추모집회’ 참가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방패를 세워 이동로를 차단했다. ‘공권력’이라 부르는 국가의 행위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 의미와 곧잘 부딪친다. 정지윤 기자

한양대 사학과 박찬승 교수는 한국의 삼권분립이 상당히 취약하다고 진단한다. 박 교수는 “말만 삼권분립이지 정부의 힘이 제일 막강하고, 대통령이 정당을 통해 국회까지 움직이려고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민주공화국의 핵심 운영원리는 입법권과 행정권, 사법권 삼권을 철저하게 분리하고, 서로 견제하는 것에 있다. 대한민국의 삼권은 분립된 것일까, 통일되어가는 것일까. 한국은 세계에서 드물게 정부도 입법권을 갖고 있다. 대법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해 입법로비 활동을 하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국회에는 판검사가 ‘대관업무’를 위해 공식적으로 상주한다. 대법관에 재직 중이거나 대법관이 안된 고위 법관들은 국무총리, 감사원장 등 정무직으로 쉽게 자리를 옮긴다. 20대 국회의원 300명 중 49명(16.3%)이 법조인 출신이다. 법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법 제정자가 되고, 정부 일원이 된다.

[70창간기획-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4)무능한 정치·비겁한 판결…법 위에 군림하는 ‘피고 대한민국’

서강대 법대 임지봉 교수는 인사권에 주목한다. 임 교수는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고 대법원장이 대법관 13명,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한 제청권을 갖고 있다. 대법원장만 대통령의 의중을 잘 헤아리는 사람으로 앉혀놓으면 전체 사법부가 따라오게 돼 있다. 이런 구조가 사법부의 관료화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사법부의 ‘나라 걱정’은 통계로도 증명된다. 국가의 위법행위에 배상을 구하는 국가배상사건 추이를 보면 2015년 국민이 승소한 비율은 34.7%에 불과하다. 국민이 패소한 비율은 2010년 36.6%에서 2015년 62.2%로 올랐다.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 ‘피고 대한민국’을 법정에 세워도 사법부가 스스로 국가의 일부라는 속성을 버리지 않으면 국가와의 싸움이라는 심판을 또 다른 이름의 국가에 맡기는 셈이다.

■‘원고 대한민국’이 하는 일 

추석을 앞둔 지난 9월7일 경기도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김수경씨(54)를 만났다. 그는 2009년 쌍용자동차가 발표한 정리해고자 2646명 중 한 명이다. 1989년 입사한 김씨는 근속 20년 되던 해, 해고통보를 받았다. 1억4000만원을 대출받아 아들과 함께 살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한 지 한 달 만에 들은 소식이었다. 매달 81만6000원의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그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 후 7년, 김씨는 보험회사와 상조회사 영업사원, 공사장 일용직, 버섯농장 일 등 투잡, 스리잡을 거치며 버텼다. 빚은 더 늘었지만, 지난해 11월 노사가 복직안에 합의하면서 살길이 열린다고 믿었다. 노사는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복직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고, 지난 2월 18명이 회사로 돌아갔다.

대량 정리해고, 77일간의 옥쇄파업과 경찰의 대규모 진압작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병사한 해직자 28명…. 쌍용차의 상처는 6년 만에 타결된 복직협상으로 치유되고 있을까. 복직합의 후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추가로 복직된 사람은 없다. 148명이 기약 없이 다음 복직을 기다린다. 김씨는 “다들 복직되리라 믿지만 점점 불안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노사합의서엔 “복직시킨다”가 아니라 “복직을 위해 노력한다”고 돼 있다. 

무급휴직 후 복직한 ㄱ씨는 “회사에서 두 달 교육 받았는데 어떤 간부들도 ‘고생했다’는 위로 한마디 하지 않았다”며 “남아 있던 사람들이 회사를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 더 열심히 하라”는 말만 했다고 전했다. ㄱ씨는 “회사가 우리 앞에서 ‘산 자들’ 얘기만 하는 것을 보니 속에서 울분이 터졌다”고 말했다. ㄱ씨가 말하는 ‘산 자’란 정리해고를 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산 자와 죽은 자, 쌍용차 사람들은 서로를 그렇게 불렀다. 김수경씨가 말했다. “직원들이 거의 같은 아파트에 모여 살았는데 한 엘리베이터에서 윗집 아이가 아랫집 아이한테 ‘너희 아빠 죽었다며(너희 아빠 해고됐다며)?’라고 말한 거예요.” ㄱ씨가 실제 죽은 28명을 떠올리며 이어 말했다. “28명이나 죽은 건 돈 때문이 아니에요.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받아서…. 마을이 그렇게 초토화가 된 거죠. ” 

국가는 무엇을 했을까. 국가는 소송을 걸었다. 경찰은 노조의 저항으로 헬기와 기중기가 파손된 것을 두고 노조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복직합의를 선언하면서 노사는 상대에게 제기했던 소송을 모두 취하하기로 했지만, 경찰은 소송을 계속하고 있다. ‘원고 대한민국’은 1·2심에서 이겼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해직자들은 경찰에 15억원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 지연 이자는 하루하루 61만8000원씩 쌓여간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복직될 날만을 기다리는데.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돈을 경찰이 내놓으라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민간기업의 노사 문제에는 우선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 원칙이다. 그러나 ‘재산권 보호’ ‘시민 안전’ 등을 이유로 국가는 곧잘 노조 시위 현장에 개입한다. 노조 시위를 툭하면 불법파업으로 매도한다. 파업이 장기화되거나 다른 노조와 연대하면 ‘외부세력 개입’ 또는 ‘종북 세력 난입’으로 낙인찍는다. 노사 합의 뒤에도 파업에 따른 배상을 청구한다. 2009년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에 반대하는 촛불시위 후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했지만, 경찰은 이후 시위 참가자와 주최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것이 ‘원고 대한민국’이 잊지 않고 하는 일이다. 

원고 대한민국의 또 다른 얼굴은 검찰이다. 검찰은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을 법정에 세우고 대척점에 서는 당사자다. 검찰은 2014년 탈북 화교 출신인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를 간첩혐의로 기소했다. 항소심 도중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가 조작된 문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공소를 취하하지 않고 상고했다. 이 사건은 결국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의 끈질긴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간첩사건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검찰은 유씨를 불법대북송금을 도왔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2010년 같은 사실을 두고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혐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소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4년 만에 유씨를 기소했다. 누가 보아도 ‘보복기소’였다.

지난 9월 항소심(서울고법)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며 검찰이 공소권을 남용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현재 사건을 기소한 것은 통상적이거나 적정한 소추재량권 행사라고 보기 어려운바, 어떠한 의도가 있다고 보여지므로 공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평가함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어떻게 했을까. 상고했다. 느닷없이 간첩으로 몰려 구금됐고, 어렵게 조작된 증거라는 사실이 밝혀져 겨우 간첩혐의를 벗은 유우성씨는 여전히 검찰이 친 거미줄에 얽혀 고통받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군의날 기념식 때 “북한 주민들은 자유로운 남한으로 오라”고 했다. 유우성씨 사건을 기록한 영화 <자백>을 본 또 다른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홍강철씨는 “지금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선 간첩만들기가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피해자들은 권리구제도 스스로 해야 한다. 헌법 28조는 “형사피의자 또는 형사피고인으로서 구금되었던 자가 법률이 정하는 불기소처분을 받거나 무죄판결을 받은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에 정당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무죄판결을 받은 지 6개월 이내에 형사보상금을 청구하지 않으면 어떤 보상금도 받을 수 없다. 2015년에만 509억원의 형사보상금이 지급됐다. 검찰이 기소를 잘못해 발생한 최소한의 재판비용이다. 모두 세금이다. 원고 대한민국은 이런 일을 한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의심케 했던 사건의 주인공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백재현 의원은 “4대강사업과 관련해 1152명이 훈·포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역대 토목공사 관련 최대 규모다. 4대강사업의 진짜 목적으로 의심했던 대형건설사들의 담합비리는 사실로 드러났다. 관련자들은 뒤늦게 징역형과 벌금형을 받았다. 건설사들이 이미 이익을 챙긴 뒤다. 이익과 벌 중 어느 것이 더 남는 장사일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과정에서 외압 사실을 밝히고 국정원의 범죄행위를 찾아내 기소한 수사팀 검사들은 좌천되거나 검찰을 떠났다. 반면 국정원간첩조작사건을 담당한 검사들은 경징계만 받고 여전히 검사로 근무한다. 검사들이 증거를 조작했다면 ‘범죄자’이고, 조작된 증거라는 것을 모르고 재판부에 제출했다면 ‘무능한 바보’일 것이다. 검사들은 최소한 후자로 보인다. 대선개입사건과 간첩조작사건의 중심인 국정원은 개혁안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세월호 참사가 터지며 대선개입사건이 여론 관심에서 사라진 뒤 아직까지 아무런 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2009년 용산참사 당시 경찰이 상황파악을 잘못해 과잉진압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수사기록을 공개하지도 않고 버틴 검경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현장에 특공대를 투입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은 20대 국회의원이 됐다. 쌍용차 파업 당시 진압을 지휘한 김정훈 경기청 정보과장은 신임 서울경찰청장이다. 삼성이 검찰 고위관료들에게 뇌물을 상납한 사실을 담은 ‘삼성 X-파일’을 공개·폭로한 노회찬 전 의원은 2013년 불법녹음 파일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정치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녹음파일에 등장한 당사자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이 더욱 책임 있는 자리에서 더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으로서 KBS 보도에 적극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이정현 의원은 여당 대표가 됐다. 총선에서 ‘VIP의 심기’를 운운하며 공천에 개입한 여당 의원들도 의정활동을 계속한다. 검찰은 이들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법도 정의도 무시당하는 시대, 1%들의 생존전략은 ‘버티는 놈이 이긴다’이다.

냉전시대 소련 스파이를 변호하게 된 미국 변호사의 실화를 다룬 영화 <스파이 브릿지>에서 제임스 도노반 변호사(톰 행크스 역)는 피고인의 정보를 건네라는 정보기관 직원의 협박을 거부하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독일계고 나는 아일랜드계인데 우리가 어떻게 같은 미국인이 될 수 있었을까. 그건 규정 때문이야. 우리가 같은 헌법을 지키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같은 미국인으로 살 수 있는 거라고.”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패닉’의 한가운데서 개헌을 주장하고 나섰다. 2016년 시민들은 ‘원고 대한민국’, ‘피고 대한민국’과 같은 민주공화국의 헌법을 지키며 사는 걸까. 

▶특별취재팀 
김종목 이주영 장은교 황경상 김형규 심진용 박광연 이유진
최미랑 최민지 허진무 기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272100005&code=940100&s_code=as166#csidx3ad6d48fb77f5cfbb0af5196693c58c

[공화국을 묻다-홍세화]"최순실게이트는 대한민국이 사적소유물이라는 점을 오롯이 드러낸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0월26일자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0월26일자

경향신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기획 특별취재팀은 지난 7~9월 지식인 40여명과 기획 자문을 겸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도움 주신 분들의 양해를 얻어 전문을 싣습니다. 게재 전 보완 과정을 거쳤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은민주공화국인가 특집페이지 바로가기

홍세화(장발장 은행장)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에 관한 여러 질문을 두고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건 ‘공적인 것’ ‘공공’ ‘공익’이다. 홍세화는 “한국은 민주공화국인 적이 없다. 그러니 공화국을 건설해야 한다”며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우려는 차원에서도 공화주의 의미가 있어야 하고, 그 핵심은 공공성”이라고 했다. ‘공적인 것’이고 붕괴하고, 부재하는 한국 상황에서 홍세화는 알베르 카뮈가 공화국 시민을 두고 표현한 “우리는 사회 불의보다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는 말도 인용했다. 그는 유약한 야권의 문제도 지적했다. 홍세화를 만난 건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7월 22일이다. 당시 그는 민주공화국의 요건을 설명하며 우병우 청와대 수석 문제 등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씨 ‘게이트’가 불거진 후 그것에 관한 생각을 추가로 들어 전한다.

-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는 ‘민주공화국’과도 직결되는 듯합니다. 이 사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공화국의 어원이 ‘공적인 것(res publica)’임을 강조한 바 있는데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대한민국이 ‘사적 소유물’이라는 점을 오롯이 드러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근대국가에서 ‘국가의 사유화’는 박정희 독재체제가 그렇듯이 국가의 물리력과 국민 다수의 동의가 결합되어 이뤄지는데, 이번 사태는 전근대적인 신정국가의 양상이 담겨 있다는 특이점이 있습니다. 민주화가 이뤄진 만큼 국가의 물리력과 국민 다수의 동의에 의한 국가의 사유화는 어려워졌는데, 민주화로 약해졌거나 빈 자리를 신정국가의 요소로 채웠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렇게 전근대적인 ‘국가의 사유화’가 가능했던 원인과 배경에 정부, 국회, 사법부, 검경찰, 국정원 등 국가의 ‘공적’ 기관들이 거의 모두 사적 이익 추구의 발판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될 것입니다. 가령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까지 또 그 이후의 과정에서도 국가공공성에 의한 견제나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배경에 공당이라기보다 사당에 가까운 새누리당을 비롯하여 강력한 사익추구 집단의 당파성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듯이, 이번 ‘최순실 건’이 오늘 불거지기까지 견제와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도 ‘국가공공성 부재’라는 마찬가지의 원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앞으로도 국가의 공적 기관들(그래서 국민이 위탁한 권력을 갖고 있는)이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그만큼, 양태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겠지만 국가의 사유화는 계속 상수로 남을 것입니다. 비판의식과 주체적 의식을 가진 시민들에 의한 민주주의의 성숙만이 그들에게 공공성을 갖게 한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민주공화국의 핵심 요소를 무엇이라 보시는지요? 

“사회 구성원들이 민주공화국의 내용을 어떻게 같이 담아내는냐가 중요합니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대립 개념이 아니죠. 공화주의는 민주주의를 충실히 하려는 것입니다. 공화주의란 구성원들이 공공의 가치를 공유하는 내용을 담은 것인데, 어떤 점에서 민주주의보다 구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리퍼블릭(republic)은 로마공화정에서 나온 라틴어인데, 그 어원인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의 뜻이 ‘공적인 것들’(public things)입니다. 로마공화정 시기에 국가의 가장 중요한 소명이 공공성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 공공의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게 물 공급이었어요. 로마 시대의 유적 중 곳곳에 남아 있는 유적 중에 수도교가 있는데, 먼 산에서 맑은 물을 끌어와 시민들에게 공급해야 했기 때문이었지요. 제 기억이 맞다면 그 물은 세 통로로 가게 되는데, 각각 로마 인민과 귀족 수도관, 대중목욕탕 쪽으로 갔죠. 가뭄이 오면 제일 먼저 귀족한테 가는 물을 끊었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가 리퍼블릭에 담겨 있죠. 공 개념을 핵심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는 거죠.”

- 민주공화국 기획 준비를 하다 보니, 공화국 개념이 다양하던데요.

“유럽에 있는 동안, 학자들마다 공화국이나 근대공화국 개념을 어떻게 규정하나 살펴본 적이 있어요. 학자마다 다르게 이야기하지만 보편적인 게 있어요. 첫째 근대 공화국의 주체는 자유로운 시민들이라는 거고요. 둘째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애매하지만 공익을 목표로 하죠. 그리고 수단이 있는데, 바로 법의 권위가 지배하는 국가에요. 이게 근대 공화국에 대한 보편적 개념 규정이죠.”

- 한국은 어떻습니까? 헌법 1조 1항에 그런 보편적 개념·규정이 얼마나 들어있는지요?

“한국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의 의식 속에는 ‘왕 대신 대통령을 뽑는 제도’라는 것밖에 없습니다. 이게 현실이죠. 자유로운 시민들이라는 주체 개념도 비어 있고, 공익이라는 목표도 실종됐고요. 그렇다고 ‘법의 권위가 지배하는 것’도 아니죠. 한국은 그야말로 크로포트킨의 ‘법은 힘센 자의 권리다.’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국가 아닌가요? 전쟁과 분단 때문에 일제 부역 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후과가 지금까지 지속되는 겁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정도가 아니라, 옷을 뒤집어 입은 꼴이죠. 일제 부역세력을 일컬어 ‘사적인 안위와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반한 세력’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res privata(사적인 것들)이 res publica(공적인 것들)을 배반했다는 뜻인데, 그런 배반 세력이 이른바 민주공화국의 실제 지배세력으로 자리 잡은 겁니다. 공공성, 공익의 가치가 설 자리가 애당초 없었던 것이지요.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그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였고 그 뒤 계속하여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됩니다. 저는 한국의 이른바 메인스트림(주류)을 관통하는 보편적 성질을 ‘오로지 사익추구’라고 봅니다. 행정부 관료들이나 법조계가 그렇듯이, 국방부문도 일제 만주군이든 일본군이든 일제에 부역한 자들이 국군 장성의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죠. 재벌도,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주름잡고 있죠. 사학, 종교계 등 다른 부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 부역세력이 기득권을 계속 창출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구조입니다. 이런 양상이(제헌헌법에서) 민주공화국을 선언한 지 70년 이후에도 지속됩니다. 공화국과 전혀 어울리지 않죠.”

철도노조 조합원 및 KTX민영화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7월 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서 박근혜 정부 ‘또 민영화 추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철도노조와 KTX민영화 저지 범대위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철도망 구축에 향후 10년간 19.8조원 민간자본 유치’라는 계획은 대국민 약속 위반이자, 재벌특혜라고 했다. 김정근기자

철도노조 조합원 및 KTX민영화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7월 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 앞에서 박근혜 정부 ‘또 민영화 추진’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철도노조와 KTX민영화 저지 범대위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철도망 구축에 향후 10년간 19.8조원 민간자본 유치’라는 계획은 대국민 약속 위반이자, 재벌특혜라고 했다. 김정근기자

- 이런 현실에선 민주공화국에 무엇을 품어야 할지요? 

“제일 중요한 건 공공성이죠. 유럽의 무상의료, 무상교육 같은 것은 사회안전망과 연결되지만, 애당초 공화주의라는 가치와 무관하지 않았죠. 공공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공화주의 틀 속에서 어떤 구체적 공공적 가치를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가 몰려올 때 유럽에서도 ‘작은 정부론’이 떠올랐죠. 그 핵심과 목적은 공공적인 가치를 공격하려는 거였습니다. 자본이 교육, 사회복지, 건강, 철도 등의 공적 부분을 ‘사적인 것으로 만들려고(사유화하려고)’ ‘정부를 축소하라’는 논리·주장을 폈죠. 한국의 경우는 공공 부분이 워낙 취약합니다. 교육 부분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이미 레스 푸블리카도 지극히 취약한데 그마저 레스 프리바타로 만들려는 겁니다. 민영화란 말을 많이들 쓰죠. 하지만 민영화는 지배이념이 담긴 언어입니다. ‘공기업’의 반대말이 ‘민기업’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영화, 사유화라고 말해야 옳죠. 인천공항도, KTX도 사유화하고 싶어 하잖아요. 공유, 공공적인 것, 공공성, 공익은 그 개념 자체가 애매한 점이 없지 않지만, 한국에선 그 토대 자체가 비어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일제 부역 세력 말씀하시면서 언론 문제도 지적하셨는데요. 

“언론은 공기(公器)입니다. 공익과 진실을 담아야 하죠. 그런데 철저히 기득권의 무기가 되어버렸어요. 기득권세력들이 사적 이익을 확대 창출하려는 무기로 만든 겁니다.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치경제사회 환경을 만들려고 무기화한 거죠. 가령 한국에서 조중동 신문을 유럽에서 볼 수 있을까요? 우파 신문이라고 하는 르 피가로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유럽에선 공공성·공익 개념에 의거해 좌우가 그것을 공유하고 있어요. 공익이라는 부분을 공유하기에 토론도 하곤 하죠. 한국은 완전히 찢어져서 토론도 안돼요. 한쪽은 철저히 사익을 추구하고, 한쪽은 공익을 담으려고 하죠. 이 사이 공유 지점, 겹치는 지점이 없어요. 족벌 언론은 공기 즉 공적 그릇이라는 탈을 쓴 철저한 사익추구집단입니다. 공적 그릇인 신문을 그들이 사적으로 누리는 언론 권력과 족벌 자본을 극대화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는 그런 집단인 거죠. 언론이라는 공기가 한국의 주류 언론에겐 철저하게 사적인 그릇이 된 것입니다. 사학도, 종교도 국방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 공동체의 핵심 고갱이로서 공익을 같이 보듬고 할 게 애당초 없는 상황이죠.” 

- 시민사회 부문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결국은 시민의 부재, 시민성의 부재가 문제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대중 쪽을 바라보면, 사유(思惟)하지 않는 교육 문제가 크죠. 주체성·비판성도 부재하죠. 사유하지 않는 교육은 평등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존재를 배반한 의식이 계속 형성되는 것이어서요. 프랑스에선 공화국이나 공화주의를 강조하는 이야기가 많아요. 예컨대, 알베르 카뮈는 정통 좌파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가 공화국 시민을 두고 표현한 말이 있어요. “우리는 사회 불의보다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인데요. 프랑스의 고등학생과 대학생, 노동자·농민의 거친 시위를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 말의 연원은 두말할 것도 없이 프랑스 대혁명이죠. 프랑스에서 근대공화국이 선 게 1792년입니다. 제1공화국 성립 의미로 부각되는 게, 앙시앙레짐이란 신분 질서를 무너뜨린 자유와 평등 이념이고요. 자유와 평등이 질서의 가치 위에 있다는 걸 강조하는 거죠. 또 사회정의가 질서 이념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명제는 논리적 정합성도 갖고 있습니다. 사회정의가 이루어진 곳에서는 기존 질서에 도전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 

홍세화는 “우리는 사회 불의보다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는 말의 연원은 두말할 것도 없이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말한다. 그림은 장 피에르 위엘의 ‘시민들에게 공격받는 바스티유’

홍세화는 “우리는 사회 불의보다 차라리 무질서를 택한다”는 말의 연원은 두말할 것도 없이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말한다. 그림은 장 피에르 위엘의 ‘시민들에게 공격받는 바스티유’

- 카뮈의 말은 한국에도 대입할 수 있을 듯 한데요. 

“그렇죠. 사회 불의를 극복하려는 약자들의 요구를 법질서 이름으로 억압하죠. 프랑스에서 이야기하는 무질서를 택한다는 게 한국에선 뒤집어져 있습니다. 근대공화국의 시민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자유와 평등 이념으로 인간에게 강요된 가장 무서운 신분 질서를 무너뜨리고 태어난 게 근대공화국입니다. 당연히 질서에 비해서 사회정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거죠. 어원적 의미도 중요합니다. 중세 신분 질서에선 왕, 귀족, 노예가 뱃속부터 규정됐죠. 이걸 복종시키려면, 당연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지배이념 있어야 하죠. 그게 바로 ‘신의 명령’이라는 이념이었죠. 영어로 오더(order)라는 게 명령이면서 또 질서라고도 이야기합니다. 불어도 마찬가지죠. 사물의 질서이면서 명령이란 뜻입니다. 중세의 신분 질서는 신의 명령에 따라 규정됐다는 거죠. 이게 무너지면서 근대공화국이 탄생한 겁니다. 근대공화국이라면 자유·평등과 사회정의가 질서에 우선되어야 합니다. 한국은 분단 상황 등 현실적 이유를 대겠지만, 법질서가 심할 정도로 시민의 자유와 평등의 가치보다 우위에 있죠. 안타까운 건 학교 교육을 통해서도 공공성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자유, 평등, 사회정의 이념이 시민들의 의식 속에서 공유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학교 다녔을 때를 돌아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학교에서 주로 강조 받은 것은 공공성, 자유, 평등, 사회정의가 아니라 안보, 질서, 국가경쟁력 이념입니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이다.’ 마르크스의 말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면 대한민국 공교육의 일차적 소명은 대한민국 국민을 민주공화국의 주체적 시민으로 형성하는 데 있습니다. 이 점에서 한국의 학교는 지금까지 민주공화국의 학교인 적이 없습니다.”

- 한국 정치권에서 공화국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유승민 의원이 민주공화국을 강조하기도 했고요.

“유승민씨가 말 뿐이라도 민주공화국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는 건 긍정적으로 봅니다. (정치권의 공화국 담론은) 우선 한국의 보수가 보수인가라는 질문이 가능하게 하죠. 한국의 보수는 보수를 참칭하며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세력이 주류죠. 그 나마 보수의 가치를 인식하는, 보수에 근접한 유승민 같은 이들조차도 사익추구집단에 같이 어울려 있어요. 그들의 입장, 포지션이 다 연결되죠. 극우적 수구세력 속에 소수의 보수가 끼어있는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사익추구집단과 보수가 분리되어야 하는데, 분단상황이나 진보세력이 취약한 등의 문제 때문에 분리가 잘 안 됩니다. 친박이니 진박이니 하는 허접한 현실 자체가 새누리당이 애당초 보수하곤 인연이 없다는 걸 스스로 드러내고 있지요.

유럽의 보수세력을 보면 그 뿌리는 프랑스에서 보듯이 공화주의자입니다. 그걸 놓치면 안 됩니다. 이들이 신분제를 무너뜨린 세력이니까요. 시민계급이고요. 프롤레타리아를 견인하고, 연합해 앙시앙레짐을 무너뜨리죠. 결국 부르주와 민주주의 형태로 프롤레타리아를 배반하지만 오늘의 드골주의도 그들의 공화주의 전통과 직접 연결됩니다. 보수세력이라면 보수할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민족·국가·가족·전통의 가치이고 보수세력이 보수하겠다고 하는 것인데요, 한국의 보수를 참칭하는 세력은 철저한 사익 추구세력이라 (내세우는 가치를 두고도) 어떠한 논리도 없어요. 미국을 업고 힘도 막강하죠. 유승민 같은 사람이 공화국에 관해 발언하는 건 반가운 일인데, 왜 그 품속에서 하고 있나요. 그들의 힘을 이용하면서요. 결국 그 품에서 일종의 숙주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나마 그런 이야기하는 것이….(웃음)” 

- 한국정치 이야기를 꺼내셨는데, 야권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유시민씨도 강조했지만 야성이 없습니다. 사드배치도 그렇고, 세월호참사도 그렇고요. 지금 엉망 아닌가요. 말도 아닌 상황인데, 도대체 싸우는 모습은 안 보이고, 이게 뭔가 싶을 만큼요. 이들이 여당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왜 이렇게 유약할까. 유약함이 내면화되어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죠. 야성이 보이지 않는 게 일상 세계의 함정에 갇혀서인지, 서로 끼리끼리 만나 허허 하는 상황 때문인 건지…. 총선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 쪼개졌다 해도 다수가 야 3당인데, 우병우 등 어지러울 정도로 나라가 정말 형편 아닌데, ‘이게 아니다’ 하고 총대 메고 제대로 뭔가 하는 걸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들 역시 기득권 세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죠. 그만큼 한국 민중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공감의식도 없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지나면서, 여당을 경험해본 뒤에 굉장히 물러져 버린 듯합니다. 민중의 현실이 어떤지에 대해 절박함 같은 걸 발견할 수 없습니다. 몇몇 사람을 빼면, (의원 간에) 엄청난 비대칭성을 보여줍니다. 그 비대칭은 민중의 구체적 현실과 정치 현실 사이의 비대칭이기도 하죠. 3김 시절 만 해도 자본권력이 국가권력과 평행했거나, 국가권력이 우위에 있던 시절 김대중·김영삼이 보여줬던 야성에 비교되죠. 지금은 그때보다 자본권력은 엄청 더 커졌고, 그런 자본권력에 야권도 깊숙이 포섭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민중의 고통, 절박한 현실을 드러내는 사건을 꼽으신다면요. 

“가령 용산참사를 볼까요. 축출과 배제의 정치잖아요. IMF 이후 일방통행 밖에 없었죠. 약자들을 몰아내기만 했죠. ‘축출자본주의’라는 말도 있는데, 축출시켜놓고 계산에 넣지 않는 거죠. 일방적인 현실이 문제입니다. 당연히 노동문제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노동현장의 실상은 잘 보이지도 않아요. 이미 축출되어버린 거지요. 노동자들의 구체적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건 민주노총인데, 이들조차도 대기업, 남성 중심이란 한계가 있죠. 재정이 주로 거기서 나오니까…. 취약합니다. 앞으로 더욱 취약해질 위험이 있고요. 

세월호 참사는 또 어떤가요. 근대국가를 낳은 사회계약론이라는 게 가령 토마스 홉스의 ‘만인은 만인의 이리’의 관계에서 서로 불안을 느끼니까 국가에 권력을 위탁하고 그 국가로부터 생명과 안전을 보호받는다는 것 아닙니까. 세월호는 참사 그 자체부터 특조위 등 그 이후의 대응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강력한 사익추구집단의 당파성이 근대국가 성립 정신을 부정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용산참사는 민중의 고통, 절박한 현실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축출과 배제의 정치가 작동했다. 사진은 2014년  I서울 한강로2가 용산참사 현장 담벼락에 꽂힌 희생자 추모 국화꽃. 이상훈 기자

용산참사는 민중의 고통, 절박한 현실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축출과 배제의 정치가 작동했다. 사진은 2014년 I서울 한강로2가 용산참사 현장 담벼락에 꽂힌 희생자 추모 국화꽃. 이상훈 기자

- 최근 프랑스에선 난민 사태를 두고 ‘공화주의’ 논쟁이 다시 나왔습니다.

“유럽 전반의 문제인데요. 프랑스는 공화주의 가치 속에 이민자들을 통합시키려 해왔습니다. 지금 (이민자나 난민 문제는) 이것이 실패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요. 공화주의 가치는 공교육을 중심으로, 같이 교육 받으면서 공공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죠. 지금 유럽의 이민자 2·3세 문제는 공화주의적 가치를 토대에 둔 사회통합에 실패했다는 걸 보여줍니다. 왜 실패했냐? 저도 동의하는 지점인데, 이민자나 사회 하층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대변해야 하는 좌파정당들이 우경화한 걸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아요. 사회 중하층 노동자계급이 좌파정당이 아닌 극우 정당에 표를 주는 건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버림받았거나 배반당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 프랑스 사회당은 중하급노동자들보다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상황이죠. 신자유주의 영향이기도 하고요. 현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유럽의 전통적인 좌파정당들이 우경화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현실 사회주의권이 있을 때는 이념적이거나 현실적이거나 왼쪽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지요. 현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각 나라 좌파정당은 집권 전략상 오른쪽으로 갔는데, 그래야 표밭이 늘어나니까요, 이런 흐름에 이념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왼쪽으로 견인할 힘이 없었습니다. 영국 노동당이 ‘제3의 길’이니 ‘신노동당’ 노선을 취했고, 독일의 사민당도 신중도로 우경화되었고, 프랑스 사회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두 집권은 했으나 과거의 좌파정당은 이미 아니었지요. 유럽의 나라들도 거의 비슷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예산이 줄어들고 이민자 2·3세에 대해 사회적으로 통합을 시도한 각 지역 활동이나 도서관 같은 이민자 청소년들이 함께 어울리는 공적 장소를 위한 예산을 삭감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버려지는 상황이었죠. 전반적으로 유럽 극우세력의 준동과 궤를 같이 합니다. 좌파 정당들이 자기 노선을 지키지 않고, 집권 전략에 따라 우경화한 결과죠. 좌파 정당의 전망 부재, 이념 토대 부재 문제도 있고요.”

- 한국 좌파도 세가 많이 준 듯합니다. 

“새로 시작해야죠. 정치적으로 보면 2004년 민주노동당 득표율 13%로 10석을 했고, 그 뒤로 계속 지리멸렬해가는 과정이죠. 제가 볼 때, 가장 치명적 문제는 지적·윤리적 우월감에 의한 공부 부족입니다. 한국 진보·좌파 세력은 자신의 계급적 처지로 진보·좌파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선배를 잘못 만나 거기로 들어가는데요.(웃음) 자기가 진보다, 좌파다 하는 지적 우월감에다 ‘내가 노동이나 진보 정치 진영의 열악한 조건에서도 희생적으로 운동하고, 참여한다. 자본주의사회에 포섭되지 않는다’는 윤리적 우월감까지 갖고 있어요. 오만한 사람에게는 회의가 없고 회의가 없으면 성숙하지 않지요. 사람 되는 공부를 멈추니까요. 사람 공부도 멈춘데다 지적 우월감 때문에 세상공부도 안 해요. 그게 핵심적 문제에요. 사람 되는 공부도, 세상 공부도 멈춘 진보...자기모순, 자기배반이지요. 한국이 처한 모순이 얼마나 복잡한가요? 세계에서 유례를 볼 수 없는 모순의 덩어리죠. 분단·민족·젠더·계급·생태·지역 모순 다 있어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영남패권주의 문제도 있죠. 이걸 총체적으로 인식하려면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신의 활동 영역과 전공이 이 모순의 중심이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활동가든 전공자든 자신 활동의 분야가 모든 모순의 정점이고, 이것만 해결하면 다른 게 해결된다는 아전인수가 심해요. 아전인수이다 보니 어떤 경우 근본주의자가 되죠. 예를 들어 사드배치가 문제가 되면, 민족모순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은 모든 게 미국 문제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모든 게 재벌 문제다, 또 어떤 사람은 영남패권주의 때문이다 식으로 하죠. 겸손하지 않아요. 진보가 겸손할 줄 모르니까, 지금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 영남패권주의 주장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글도 쓰셨는데. 

“그 칼럼 쓰고 (저자) 김욱씨한테 또 비판받았네요. (웃음). 각자가 자기 성채 쌓고 있고,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이 답답합니다.” 

- 좀전 말씀하신 ‘사람되는 공부’란 무엇인지요? 

“‘사람된다’는 의미는 자기 전공이나 활동 분야만이 중심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부터 출발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없으면 각자 만들어낸 성채, 진영을 만들어낸 성채를 허물 수 없어요. (진보·좌파가) 얼마 안 되는데 다 찢어져있는 것도 자기 전공·활동이 중심이란 데서 비롯된 거죠. 보수는 이권이 있으면 모입니다. 진보는 이념으로 모이고요. 경향신문도 한겨레도 어려움 많잖아요. 조중동 보는 사람은 ‘나 이제 안 봐!’ 하는 사람 거의 없어요. 경향과 한겨레를 구독하는 사람은 소수인데, 이들은 신문을 통하여 자기 생각을 확인하는 즐거움 때문에 봅니다. 그런데 10개 꼭지 중 1~2개 만 자기 생각과 안 맞아도 ‘나 안 봐!’ 이러는 거에요. 창간 주주 중 한겨레 보는 사람 많지 않습니다. 신문 논조가 자신의 생각과 60% 정도만 맞아도 계속 구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지요. 시민성이 성숙하지 못한 면도 있고요. 진보적이라면 이념에는 투철해도 사람들에게는 유연해야 하는데, 이게 반대로 되어 있어요. ‘가까우니까 부딪힌다.’는 말이 있어요. 우리가 먼 사람은 우리 일상에서 만날 일이 없고 실제로 만나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부딪힐 일도 없고요. 그래서인지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거칠고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워요. 극복대상보다 경쟁대상에게 더 적대성을 보이고 있는 게 진보의 자화상 아닌가요?”

- 정리 차원에서 다시 묻자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요. 

“워낙 막강하죠. 검찰, 경찰, 사법부, 언론, 국방, 종교, 사학까지. 다 반민주공화국적이죠. 반공공적이고요. 이 세력들이 철저하게 사익 추구를 위해 막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정치적 지형 자체가 변화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제가 볼 때, 정치 지형이 바뀌려면, 일단 변혁적 국면이 필요한 것 같아요. 에밀 뒤르켐이 이야기한, 소위 변혁적 국면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런 국면이 빨리 오면 좋겠네요. 야당엔 야성이 없고 진보 진영 이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민중의 힘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고 각자 자리에서 가능한 실천을 해나가야겠지요.”

- 필요한 구체적인 정책·제도 변화는 무엇일까요. 


“너무 많죠. 예컨대, 독일식 비레대표제부터요. 그리고 기본소득제가 실현되길 바랍니다. 제가 특히 강조하고 싶은 건 교육 문제에요. 생각하는 교육, 사유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한국사회구성원들을 민주공화국의 시민이 아닌 신민으로 옭아매고 있는 핵심이 주입식 암기교육에 있습니다. 생각하는 교육을 하지 않으면 안 되죠. 그러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대학평준화를 해야 하고요. 하나 더 뽑자면 검찰총장 추첨선출제. 한국은 민주공화국인 적이 없어요. 그러니 공화국을 건설해야 합니다. 공화주의는 민주주의와 길항 관계가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우려는 차원에서도 공화주의 의미가 있어야 하고요. 그 핵심은 공공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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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271703001&code=940100&s_code=as166#csidx1e851014ad6f7fabc1eed94a439f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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