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을 꾸리는 이야기

 

마을엽서를 모아주는 지연 ..

 

 격려의 글을 담아주는 꽃길이

 

 조명을 봐주시는 이상봉 쌤

 

흰 벽 귀퉁이에 하늘을 걸어봤다.

 

<사름벼리가 있는 아벨서점>과 <공원슈퍼 평상에 겨울 손님>

 

물고기가 열어준 이야기

 

늦은 저녁 찾아와준 친구

끝나고 용화반점서 맛난 식사를 했다. 아, 홍합 가득한 짬뽕을 빼먹었넹 ^^ 먹느라 바빠서

 

 

 

 

'강's 사진이야기 展'  - 두번째 이야기>

배다리 사진책 <배다리 사진 이야기, 창영동 사는 이야기>를 내면서 사진전도 하게 됐습니다.  사진 공간 배다리 이상봉 선생님이 작년에 초대해 주셨는데 이제야 열게 되었습니다.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저, 사는 이야기입니다.

 

인천 동구는 일제때 조선인들이 조계지에서 밀려나 자리잡은 곳의 하나로, 그 이후 노동자 서민들의 팍팍한 삶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재개발이네 산업도로네 하며 황폐해져가는 마을을 살리려는 주민들과 배다리에 추억을 가진 많은 이들이 함께 노력해서 간신히 마을 빛깔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우리 소박한 삶의 조각을 담아 사진책을 내고, 사진전도 하게 되었습니다. 문화예술 운동으로 시작한 것이 이제 마을살이운동이 되는 걸까요? 6년의 활동속에서 담은 사진전을 도원역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철로변 갤러리와 사진공간 배다리에 담아봤습니다. 

 

 

이 전시는 매일 똑같아보여도 하루하루 조금씩 달라지는 우리들의 일상처렴 조금씩 더하고 빠집니다. 옛 이야기들과 지금의 이야기들이 가득해져서 사진벽이 될껍니다. 하얗고 단정한, 다소 썰렁한 갤러리 공간을 헝크리고, 채워갑니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팍팍하고 빡빡한 도시의모습이지만 나와 내이웃의 모습이고 우리 마을 풍경 전시입니다.

 

  

 첫 관객에게  첫 사진을 붙히도록 했습니다. 조명 한 가운데 턱!  .. 2월에 다시 한 번 오기로 하셨습니다. 변한 모습이 궁금하다면서 .. 꼭 오ㅅ히기 바랍니다. ^^

 

 이상봉 선생님이 전시하셨던 액자도 그대로 얻어썼습니다.

 출판사 하는 분이 책 보호하는 껍데기로 내 놓은 것을 활용해봤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마을살이를 생각하며 마을 여러분, 관객 몇 분께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 원하는 곳에 붙히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마을사진전은 함께 더해가는 우리 모습이기를 바랍니다.

 

 

 나비날다 문화인턴으로 활동하는 친구도 하나 붙히고 ..

 꽃길이도 .. 불려와서 방명록을 적고 사진을 붙혔습니다.

 

 

 

오랜만에 나선 새벽길 ..

 

 

 

 친구가 준비한 하루여행의 첫 코스는 .. 담양 메타세콰이어 길 ...  입장료가 생겨서 말이 많았던 거기에 가는 줄 몰랐다. ㅋ~

 굴다리 갤러리라 ......

 그 안에 사진인지 그림인지 ..... 봄, 여름 가을 겨울

 

 

 뻘쭘한 긴 회색벽에 가끔 낙서같은 장난스런  짓꺼리가 재미있다.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 그러나 이런게 난 좋다.

볼사람은 보고 말사람은 말아도 좋은 .. 억지로 볼 수 밖에 없는 건 참 끔찍한 일이다.

 한참동안 내 흥미를 끓었던 의자

 소원양과 낙서군에게는 많은 낙서와 소원들이 가득하다.

 거대한 장승들은 ... 휑한 곳에 어설프고 낯설게 .. 엉거주춤 서있다.

 난 낡은 의자가 좋다. 엉덩이의 곡선을 고려해 굴린 의자 모양도 맘에 들고, 낡은 느낌의 의자도 좋다.

 세개의 가지로 갈라진 이 나무가 너무 놀라웠다.

 쌀쌀하다고 잔뜩 챙겨입고 갔는데 .. 남쪽은 남쪽이라고 .. 종종 더웠다.

 이 길은 참 길다. 왕복 1시간은 걸릴 듯 .. 가벼운 산책 삼아 천천히 걷다가 중간에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종종 있는 쉼터도 맘에 들고, 그리 튀지 않는 조형물들도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

 그 다음은 죽녹원 .. 아름다운 대나무 숲 .. 죽녹원. 바람소리 들으며 대나무 숲 이길저길을 걸었다.

사철 푸른 대나무라는 걸 거기에서 느꼈다. 여름이라 우겨도 모를 것 없는 ..

 어디나 이런 낙서 ..

 이 아저씨 .. 왜 여기 있을까?

 대나무 숲길을 무작정 걸었다.

 이 노란 대나무는 무슨 조화인가?

 

 나무를 활용한 가로등도 참 멋지고 ..

 대나무 숲 길, 의자에 앉아 쉬면서 ... 찍은 몇 장 

 

 

 참 단아하다.

그리고 종종 쏴아아.....

 파도소리처럼 퍼지는 대나무 숲에 부는 바람 .. 참 좋았다.

몇 번 시도하다가 성공한 ..  

 바람이 불어서 대나무를 흔들면 카메라를 드는 사이 멈춰버린다. 

대나무숲에 바람은 대나무 탓인지 바람 탓인지 길게 불지 않는 거 같다.

따닥따닥 서로 부딪기도 하는 이 바람 .. 바람이, 대나무를 흔들때 대나무는 파도소리와 함께 아프다.  

 켜 두었다가 녹화만 누른다는 것도 사진을 찍다보면 놓치고..

 

 

사진공간 배다리에서 사진가 성남훈의 <집시의 시간> 이 전시되고 있다.
집시의 시간'은 파리 외곽의 낭테르라는 난민촌에 모여사는 루마니아 집시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당시 유학중이던 성남훈씨가 파리에서 멀지 않은 허허벌판 난민촌에서 야생마처럼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아이들에 매혹되어 1년여 동안 만나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낭만의 시대를 지나 고통스런 삶의 여정에 있다.

유럽에서 집시는 유랑집단, 방랑자이면서 소매치기나 소소한 문제의 근원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그래서 테러도 많이 당하고, 차별도 많이 받는다. 사진속 모습이 옛날옛적 .. 70년대 쯤의 우리나라 어디 같지만 사실 90년대 초반의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집시의 나날>이라는 낭만의 시대가 있기는 했지만 .. 그래서 이제는 집시의 DNA가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 그들은 이제 유럽 모든 이들에 손가락 끝에서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지난 번 김석배 할아버지의 사진전과 다르면서 같은 느낌,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이 있다.
차렸하고 찍은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재미 있었지만 그래도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뛰노는 모습이 좋았다.


가지지 않아서 자유로운 영혼의 풍경

가진 것 없이 가난하고 더롭고 초라하게 남루하게 사는 모습은 핍박과 차별의 모습이겠지만 .. 그것에 다른 이름은 자유다. 나는 가진 것이 없기에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진 것이 많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에 '집시의 시간'은 나에게 '자유'의 다른 말이 된다. 물론 이런 규정은 나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지금 그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시의 방랑이나 유랑이 자유의 다른 이름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집시들의 역사를 훑어보는 것도 좋겠고, 다양한 영화를 보는 것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메모나 직접 찍은 사진을 끼워넣거나 붙일 수 있으면 좋겠다. 

-여백이 있는 사진, 시간과 공간의 변화와 지속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아보자

-키워드 - 동인천, 배다리, 창영동, 금곡동, 반지하, 아벨, 빔, 인천의 문화지형, 배다리의 이방인들, 정주와 유목의 공간들, 아트인 시티, 우각로 스페셜, 산업도로투쟁심정적 주민과 거주민의 차이, 지속가능한 도시속의 공동체, 가난한 이웃들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

-여행하듯 마을 길을 걷고 사람들을 만나고 같은 곳에 이틀만 있어도 단골이 생기고 알아보는 주민이 생긴다.

-우리가 그렇게 익숙해지고 낯설어지고 그런데 가만 있어도 원하지 않는 재개발로 집 소유주의 의사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떠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은 문제다. 하지만 하수도와 정화조가 구분되어있지 않고 ...

-도시 문화예술활동 재개발에 대항하는 또는 새로운 삶의 지속을 위한 재개발, 그리고 사라져가는우리 일상에의 무모한 기록, 또는 조금은간적이었다고 기억되는 것들에 대한 추억이거나 이 시대 인간답게 살아가는 공동체의 새로운 가치창출 또는 회복

-내 사진은 때로 존경이거나 때로는 연민, 프레임속 그림이거나 색깔놀이 호기심의 시선 오버센스이거나 무엇보다 세상의 무수한 것들이 이야기기들이 던져낸 것중 나를 붙잡은 손길이거나 시선

 

2012년이니까 얼추 이곳을 집처럼 드나들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 6년차다. 종종 드르기 시작했던 건 운봉공고 아이들과 다큐멘터리 <직업>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역아동센터 중학생들 대상으로 했던 대안적인 문화예술교욱 활동을 아벨전시관에서 할때니까 2005년이다. 주1회 이상은 왔었다. 아벨전시관은 양조장 건물에 있었는데 곽현숙 사장님이 고치고 다듬던 곳으로 지금은 스페이스빔이 수리하고 보수해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지금 사무실로 쓰고 있는 공간에서 수업도 하고, 전시도 했다.

이듬해 청소년 대상 대안적 학교인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을 도원역 근처에 조성할때 함께 작업하며 오갔던 일이 생각난다. 2006년은 인천지역민중민주열사희생자 단체에서 그 기록을 만들기로 햇었고, 여름인가 초가을까지 안동근 열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종종 드르다가

 

2007년 아트인시티 우각로프로젝트를 제안받고 동인천 창영동에 자리잡으면서 일상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샌드위치판넬로 지어진 건물을 둘러보고, 함께 공간을 만들어가며, 마을에 벽화를 만들고, 동구관동산업도로 반대투쟁이라는 주민운동을 함께 참여하면서 주민들과의 친화도 넓어졌다. 그 속에서 산업도로반대투쟁 영상을 만들고, 우각로 스페셜- 기억과새로움의 풍경이라는 영상을 만들어 그해 활동을 마무리했고, 컴펙트카메라 익서스750으로 찍어오던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고자  D50중고를 구입했다. D50과 표준줌 번들렌즈와 70-210망원렌즈로 다양한 생사-뚝딱뚝딱 재활용 목공, 산업도로 흙을 이용한 황토축제 등 지역활동을 영상보다 적극적으로 찍기 시작했다. 그 사진은영상에서 유용하게 쓰였고, 이젠 영상보다 사진을 더 많이 찍게 되었다.

2008년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을 준비하면서 간간히 오가며 활동을 공유하다가 2009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준비해 진행해보는 게 어떻겠나는 제안을 받고, 문화예술활동가 조합이라는 상과 지향을 가지고  지역공동체 창작공방 <다행多行_하다>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봄부터는 지역생활에서 예술하기-동구편을 기획 진행했고, 마을이 되어가는 사진전을 공동기획 진행하면서 내 사진들을 함께 활용했다.

하반기 다행하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지역주민들이 활동하는 문화예술공방을 만들기로 하고 2010년초부터 준비하여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하여 작업하고 2월 지역공동체 창작공방 <다행多行_하다>라는 다수가 운영하는 공방을 마련하여 운영을 시작했다. 나는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으로 마을사진신문을 만들었고, 꽃길이는 뜨개와 바느질을 했고, 해진은 자기 공간의 일을 만들어내려고 고민했고, 우민은 청개구리사장님과 작업실을 공유하기위해 노력하면서 공간을 구성해 나갔다.

하지만 같은 사람을 통해 만났으나 사람들의 상은 다 달랐고 이것을 맞춰가는 와중에 태생을 제공했던 사람과 공방구성원들간의 갈등이 생기면서 거의 해체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공황상태의 위태로움 속에 한 사람은 새로운 공간으로, 한 사람은 공간을 정리했고, 또 한사람은 의미를 찾지 못해서 공간을 접었다. 2010년은 위태위태하게 공황의 상태 또는 멘붕의 상태에서 흐르고 있었다. 

<강's 마을사진이야기 전>이라는 사진전을 카페에서 열기로 하고 준비하면서 이전의 적지 않은 활동속에서의 개인적, 정치적, 사상적, 생활적, 경제적 모든 문제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집중했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사진전의 머릿말을 정리하면서 이해와 한계, 함께 하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 달라지는 것들과 그것들에 대한 나와 남의 태도, 다양한 활동들에서 형성된 나의 모습을 되새김 하는 과정이었다. 되새김질 하고 되새김질하면서 .. 조금은 성숙해진 나를 토해내며 다시 아프락사스가 떠 올랐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다른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의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너무나 유명한 문구가 언제나 절체절명의 순간에 떠 오른다. 쉽게 정반합이거나 하는 말로 정리될 수도 있지만 정반에 익숙해져 있는 내가 합으로 가는 과정은 참 어려웠다. 그때가 딱 마흔 직전이었거나 마흔이었다. 그렇게 나는 좀 어른이 되었다.

 

2010년 가을 이 마을을 떠나 새로운 공간을 알아보다가 그만두었다. 형편도 좋지 않았고, 당당한데 피해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였고, 그것을 풀어야 할 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이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시 긴 겨울을 견뎠다. 단절된 아랫동내도 구경가고, 이야기를 트면서 겨울을 지났고, 마을의 또 한명의 사진쟁이 최종규가 아픈 아내와 아이를 위해 시골로 이사를 준비하면서 나비를 소개시켜줬고, 2011년 초 아랫동네의 고양이를 키우는 북카페 나비와 인사를 나누고 그의 유기농가게 준비하는 일을 도와주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묵인했던 단절의 공간과 시간과 사람에게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다. 정신이 나가있는 사이 가까이 사각공간이라는 헌책방이 문을 열었고, 새로운 이웃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을 했다. 

2011년 다시 다행을 정비하고, 나비와의 소통을 지속하며 아무런 프로젝트 없이 한 해를 보내며 참 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으로 못내고 있었던 마을사진신문도 간간히 내고, 벼룩시장도 열고, 마을이야기를 인터넷 신문에 올리면서 나를 좀 쉬어주는 시간을 가졌다. 마을의 골목청년 세원과도 알게 되고 .. 여름 즈음 그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렇게 관계가 늘어나고, 한점갤러리도 오픈하고, 다인과 친해지고, 그 즈음 돈벌이가 요원했던 사각공간은 문을 닫고 떠났으며, 그해 가을 띠갤러리와 작은도서관 아침햇살도 문을 열고, 다인이 진행하는 일들을 간간히 도우며 갤러리를 운영하며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렇게 한 해가 갔다.

 

2012년은 홀로 선 2년차, ............

그래, 비가 오는 날이었어.

물론 요즘은 장마철이니 당연히 비가 오는 거지만 ..

두 달 만에 손에 쥔 카메라를 테스트 하느라  이런저런 조작을 해 가며 사진놀이를 하고 있었지.

창영초 아이가 예쁜 우산을 쓰고 사진관 앞을 지나가길래 후다닥 달려나갔는데 .. 마침 옆 골목에서 아저씨가 나왔던 모양이야

의도치 않가 ..그들의 풍경은 부자가 걷는 모습이 됐어.

나는 그래 ... 시간의 순간을 잡는 사진속 프레임은 그래서 모두 결정적 순간이기도 하다고 ..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만 있는 건 아니란 말이지.

흐려서인지 .. 오랜만에 드는 무거운 카메라가 낯설어서인지 흔들렸지.

지난 봄, 잔뜩 사들고 다녔던 미니장미를 다 나눠주고 남은 것은 말렸는데 .. 그 녀석을 찍었어.

뜨거운 기름이 튀어 얼룩진 내 손, 붉은 벽이 매혹적인 마을사진관 벽은 그냥 회색빛으로 생기를 잃었다.

색깔을 덜어내니 색의 현란한 유희에 빠져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날은 그러니까 .. 옆집 띠갤러리 써니와 그 친구분이 맥주와 아이들용 과자를 안주삼아 사왔던 날이다.

해직 기념으로 자유인이 된 것을 축하한다며 나누기 시작한 맥주는 학교앞 문구점 할머니께서 부업으로 파시는 맥주를 다 사와서 더이상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나와는 좀 거리가 있었다.

 내 눈에는 다른 것이 그렇게 들어왔다.

사진관 문들 닫았는데 물방울이 빛났다.

함께 살기 ..

 사진책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책 저런책을 들춰보는 중이다.

 내가 이 곳에서 지나온 시간속에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 그리고 그 시간동안 변한 나를 담기로 한다.

 누군가에게는 액자가 되고, 일기장이나 메모책이 되는 ..

 잘 보지 않았던 사진관 내부도 오랜만에 든 카메라로 막 달려들어온다.

어쩌면 하울의 성으로 가는 입구일지도 모른다.

100년이 넘은 학교로 가는 길 .. 야구부가 있어 높이 철망담을 쳐 놓았지만 우리 사진관까지 굴러온 공만 수십개는 되는 듯하다.

 

 

 

 

봄이라서 새삼스레 더 경의로운 풍경

아스팔트며 보도블럭에, 갈라진 틈에 자라는 풀들이나 꽃들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야말로 새삼스럽게 그렇다.
그 돌틈에서 참 어여쁘게 핀 제비꽃 ... 
제비가 돌아올때 즈음 피어난다고 해서 제비꽃이라는데 ,... 제비꽃이 피면 제비가 오는 건지, 제비가 와서 제비꽃이 피는 건지 ㅋㅋ

 



오래된 골목집 옆 갈라진 시멘트 바닥에서 이렇게 ...


산업도로가 될 뻔 했던 그 곳에 피어난 이 녀석은 아마도 냉이꽃? .. ^^;;


석죽이 돌 옆에 피었습니다.


돌 옆에는 아니지만 이 제비꽃은 제가 사진을 찍은 잠시 후 .. 그 귀여움과 어여쁨에 못 이겨 누군가가 모두 .. 가져가버려서 많이 아쉽습니다.


참, 신기하지요 ...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돌 틈에서 자라는 것들을 보면 ... 봄이면 더더욱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그 집 옆 시멘트 바닥에서 솟아나는 녀석들 ..


이래저래 따져보면 야 .. 뭐 그리 경의로울 것도 없지만 ... 반갑고 고맙고 신기한 풍경이 됩니다. 봄이면 ...


비오는 날 .. 저 돌틈에서 ..

이제는 ... 돌들을 좀 걷어내야 하지 않을까?
땅을 좀 만나야 하지 않을까?
이 도시에서 흙을 밟는 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진데 .. 차들을 위해서, 약간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서
모든 길들에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시멘트가 덮힌다.
저 생명들이 저렇게 간곡히 살고자 한다면 ... 인공의 돌들은 이제 좀 걷어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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