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역 앞

 도원역 옆에 남구 숭의동이자 우각리 동구 송림동인 언덕동네 입구

 도원역의 겨울풍경

 히말라야 시타에 쌓인 눈이 .. 그야말로  .. 환상적이다.

 동네는 소박하지만 .. 그 낮은 집들에 낮게 쌓인 눈들이 눈부시다.

 공동텃밭에도 눈이 가득 쌓였다.

 노랑집에도 눈이 내리니 .. 집이 꽃같다.

 꼬맹이 할머니께서 눈을 치우고 계신다.

 반바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한 달 반 .. 그 하늘 벽에 기댄 풍경

 창영공원 소나무에도 눈이 함박눈이 쌓이고 또 쌓이고 ...

 시타의 가지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느러진다.

 

부평 .. 그 도시에도 눈은 내린다. 나무 대신에 길과 건물에 .. 차에 ..

아랫집 색색깔 자전거에도 눈이 쌓이고 ...

14개월된 울 조카 수빈 아가의 발끝에도 ...

 조심스레 아가 쉬를 쫒는 엄마 - 내동생 발끝에도 ...

조심조심 .. 눈길을 지나 일터로 가는 어느 엄마의 발끝에도 ..

계속계속 눈이 쌓인다.

춥고 추운 날 ..

 사진전이 막바지 .. 눈에 뭍혔다.

 

 

 

 

 

드디어 .. 초대장을 보냈다 ...  

참 망설이다가 사진전이 중반을 넘어서고야 .. 보낼까 말까 하던 .. 초대장을 .. 보냈다.

그렇게 긴 글을 쓰려했던 건 아닌데 .. 말이 흘러나와 글이 되었다.

다양한 느낌과 생각들, 기억들과 정리된 어떤 말들이 교차하면서 .. 친구와의 약속도 잊고 글을 마무리지어 보냈다.

존경하는 .. 이춘상 아저씨가 젤 먼저 전화를 주셨다. 여전히 대우차 비정규직 투쟁과 활동속에 바쁘신 분이 .. 꼬박꼬박 존대를 하시면서 .. 언제나 모든 이들에게 그렇게 하신다 .. 축하의 전화를 주셨다.

사진전이 축하 받을 일인가? 그걸 잘 모르겠다. 그 축하를 나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 걸까?  ..............

이럴때 쓰는 말인거 같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 뭔지를 ...  

 

가장 먼저 내 사진전의 관객은 해물탕골목에 바닥공사를 하시는 아저씨들과 주유소에서 일하는 분들이었다.

사진을 뽑아두고도 어떻게 걸어야 할 지 결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두어군데 걸어두고는 좀 헤맸는데 ..

카페에 들어서지 않을 꺼 같은 분들 ... 이 전시작업 내내 그 밖에서 일하고 계셨기 때문에 .. 부러 사진을 바깥 유리에도 걸었다. 

밥, 노동, 희망, 꿈, 함께살기 .. 우리 서민들 삶의 모습이 참 좋다고 .. 맘에 든다고 .. 

첫 평론을 해 주신 주유소 아저씨의 말씀에 속으로는 좋아서 찢어질 뻔 했다.  내가 나눌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 전해져서 맘이 너무 좋았다.

'공감' .. 그 말씀을 들은 다음엔 사진전이 어떻게 되더라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 바꿔걸고, 이야기를 담고, 한장씩 한장씩 붙히고 ...

 

 

너무 아깝다는 말 .. 책을 내보자는 말, .. 배다리에서도 전시를 하자고 하셨고, 카드나 엽서를 만드는 건 어떠냐 하기도 하고

따듯한 차 마시며 앉아서 볼 수 있으니 참 좋다고도 하시고,

일상의 칙칙한 사진(나름 따듯하게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 ) 보다는 화사한 꽃이나 풍경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거 얼마 담지 않았는데 .. 사람들은 그런 사진 앞에 주로 서 있다. 아직 일상의 삶을 고찰하거나 바라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닌가보다.

시골의 낡고 오래된 풍경은 지긋지긋하다는 분도 계셨고, 도시의 뻔한 일상, 뻔한 풍경이 뭐 좋냐는 분도 있었고,

그것들이 일상이다보니 일상을 벗어난 .. 아름다운 풍경을 선호하게 된다고 했다.

일부러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삶은 포장되어 있지 않으니까 ..

다만 우리들이 스스로의 삶과 그 삶이 이어진 공간과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이 참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며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인데 .. 그랬으면 좋겠는데 ..

흠 ...

 

 

사람전을 하고 싶었다.

내 생에서 만난 사람들 .. 삶의 시간속에

같은 시대와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담고 싶었다.

그것이 내 첫번째 사진전(개인전)될꺼라고 생각했었는데 ...

아직 내가 덜 컷는지 .. 시간이 필요하다.

 

어쨌든 우연히 하게 된 사진전이긴 하지만 이래저래 일이 많았던 올 한 해를 정리하는 느낌도 들고

새로운 것들에 대한 고민도 하게되고, 뭔가 나눌 수 있게 된 것도 좋다.

 

이후 .. 전시된 사진은 어떻게 나누는 게 좋을까? 고민이다.

 

 

 

 

 

 

[초대장 전문]

 

<강's 사진이야기 展> 12월 .. 따뜻한 커피와 함께 작은 사진전에 초대합니다.  

 

며칠 많이 추웠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눈이 펑펑내렸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깊어갑니다. 삶이 깊어지는 계절입니다.

가을이 살이 찐다지만 정작 몸도 마음도 살이 찌는 계절은 겨울이란 생각이 듭니다.

가난하면 가난한데로 부유하면 부유한데로 .. 그렇습니다.

 

저, 강영희가 사진전을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갈때 사진관에 학생증을 맡기고 빌렸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전부였는데 이렇게 사진전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대학시절 흑백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며 사진을 배웠지만  .. 동아리 출사에서 친구가 둘이나 죽은 후 .. 더 이상 카메라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세로운 세상은 영화와 함께 다가왔습니다. 

대학 친구가 소개해준 영화가 .. <퐁네프의 연인들>이었는데 .. 영화라는 것에 매혹되어벼렸죠. 그렇게 영화에 대한 흠모가 시작되었고 ..

학교 졸업하던 해 .. 석달 간의 배낭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보게 된게 첫번째 인권영화제는 .. 영화에 실제의 삶을 더하며 다가왔습니다.

1995년이네요 .. 그해 겨울 11월 30일 부터 12월 5일가까지 .. 약 일주일 동안 하던 .. 그 영화제에서 지금껏 알지 못했던 세상을 보았습니다.

다른 세상을 본거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에서 같은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는 .. 그렇게 .. 저는 성실하지만 가난한 이웃들과 살면서

세상에 관심도 없었고, 그렇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도 없었습니다.

'세상을 본다는 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아는 것이다' ...

인권영화제는 그렇게 제게 또 다른눈을 선물했습니다.

 

유난히 눈물이 많은 저를 기억하실껍니다. 그건 누구를 위한 눈물이 아니라 .. 저를 위한 것입니다.  

저는 제가 아픈 게 싫습니다. 속상한게 싫고, 화나는 게 싫고, 무엇보다 인간답지 못한 ... 세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인권영호제를 통해 본 .. 세상은 그렇게 아프고, 말도 안되고 .. 인간답지 못하고 .. 인간이 .. 존중받지 못하고 ... (^^;; 너무 길어서 중략)

그래서 .. 제 속이 편할라고 시작한 활동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는 해봐야겠기에 .. 주위 사람들이 편해야 .. 저도 편하니까 ...

세상이, 사람들이 덜 아파야 저도 않아프니까 .. 아주 이기적인 이유로 저는 그럿습니다.

 

그렇게 인천인권영화제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시작해서, 인천영상집단이라는 걸 만들어서 활동도 해보고,

노선문에서 만난 대우자동차 이춘상(저에게 이분은 영화뿐 아니라 사진까지 .. 그것을 다루고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 정신적 스승 ..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씨의 영상을 편집하면 정말 많이 배우고 성숙해졌습니다. 조금 더 영화를 알고 싶고 해서 .. 영화아카데미도 다녀보고 영화연출학교도 다니면서 영화를 꿈꾸는 사람들과도 함께 했지만 ..

아직 충분히 영화 보는 눈이 없었던 나로서는 .. 아니 돈없이는 그런 .. 영화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나마 혼자 영화제작을 해 나갈 수 있는 캠코더를 들어 - 민정련 시절에 그분들이 돈을 모아 마련해두셨던 프로젝터로 일주일에 한 번씩 보았던 영화와 디지털 캠코더는 저에게 정말 의미있고 중요한 자원이었으며, 그런 자원을 나눠쓰게 해 주신 여러 분들게 여전히 감사하게 생각하며 .. 제가 가진 자원을 그렇게 세상과 나눠쓰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담아왔습니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낯설은 익숙하지 않은 영화- 독립영화, 다큐멘터리(노동영화, 집회나 투쟁영상 등등)들을 만들고, 영상의 힘을 공유하기 위한 퍼블릭 엑세스 운동, 진보적인 정치운동과 노동시민사회 운동에 참여를 하며, 문화예술단체들과 소통하며, 다양한 시선들과 활동들과 의미들을 만나며 ..  그렇게  당신들에게  세상을 배웠습니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 많은 분들을 만났고 .. 당신들은 모르더라도 저는 영상을 통해 아는 사람들이 된 분들도 계시고 .. 저에게는 ..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 다들 TV나 신문에서보는 유명인들이나 스타들과 다를 바 없는 스타랍니다. .... ^&^;; ... 안믿으시려나 ..? .. 그렇게 당신들을 통해 ..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부당함을 알게 되면서 세상을 배웠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도 배웠고 ..

 

지금 저는 많이 상해있습니다.

당신들에게 너무많은 기대를 한 탓입니다. 당신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내가 제가 머리가 나빠서 .. 

당신들이 말하고 당신들이 가르친 것들을 당신들이 지켜가지 못한다고 ...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

사람에 대해,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 나름의 통찰을 갖을 나이가 된 지금에도 .. 그렇게 살지 않는 당신들에게 화가 나 있습니다.

물론 가족들이나 대학때, 영화학교때 만난 친구들은 빼고 ^^;; .. 미안 .. 내 스물 다섯살 이후, 그리고 인권영화제를 통한 또 하나의 삶에 집중하다보니 .. 당신들의 이야기가 빠져있습니다. 이해해주시리리 믿습니다. 이해못하면 .. 사진전 꼭 와요 ... 맘에 드는 사진 하나 줄께 ^^

 

올 해 작은 사진관을 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은 건 .. 그러니까 사진이 필요하고, 사진으로 기록이란 걸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2003-4년에 쯤 부터니까

그 전에는 비디오 캠포더를 가지고 주로 활동을 했고 - 2003년~2005년은 교차시기가 되네요 .. 영상의 한계- 나눌 수 있는 한계를 느끼며서 .. 영상보다 사진을 많이 찍기 시작했던거 같아요.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 정말 많은 사진을 보았습니다.

무엇을 해왔고, 무엇에 관심이 있었으며, 무엇을 하려고 했고, 무엇을 할 것인가 ..

지금 나를 여기에 있게 한 역사는 무엇이었고, 나는 무엇을 했나 ..

저는 .. 당신들에 의해 있었고, 당신들의 관심에 관심이 있었고, 당신들이 하려고 했던 일을 했고 .. 당신들이 하려고 하는 것을 하고 싶었고 ...그것이 내 꿈이라 믿었고 ..  당신들이 ..

인권영화제가 희망터가 인천영상집단이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이 반지하가 나의 역사였습니다.

 

제가 불혹이라는 마흔이 되었습니다.

내가 20-30대를 믿고 맡겼던 사람들-나를 만들어 준-에 대한 실망으로 더 이상 해볼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실망감을 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엔 .. 저는 당신들께 좀 .. 잘 배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당신들에게 배웠지만 이제는 그 껍질을 깨고 이제야 ..스스로 .. 살아볼 생각을 합니다.

남희아저씨 말씀처럼 .. 상처받고 상처받아도 ..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은 여전히 사람에 대한 믿음, 세상이 좀 더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

그것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여야 한다는 ..  좀 더 감싸고 좀 더 이해하지만 그 안의 신념은 보다 선명하게 ..

아저씨가 꼭 그렇게 말씀하셨다기보다 아저씨 말씀속에서 제가 느낀 ..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못만나고 있는 당신을 .. 낼 부터 웃으며 만날 수 없습니다.

너무 많은 기대와 믿음이 있었기에 .. 그 만큼 실망했고, 아팠고, 슬펐습니다. 그것이 컷던 사람들 일수록 .. 만나기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만큼의 이해와 소통이 있었던 분들과는 이미 만나고 있으니까요 ...  

그렇습니다.

나였고, 나의 꿈이었고, 나의 역사였던 .. 그것을 조금 더 겨우 인정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사진을 보고, 사진을 뽑고, 사진을 찍으면서 ..

다시 살아낼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잘 살아낼 방법을요 .. 

스스로 잘 살아낼 방법을 요 ..

 

사진전 초대장 치고는 너무 길지요?

초대장이라는 거 잘 모르겠어요 .. 그저 .. 당신과의 인연속에 살아온 제가 당신을 잠시나마 기억하며 .. 사진전을 열고 있다는 것 만이라도

알리는 게 ... 나와 내 꿈과 내 역사였던 .. 또는 여전히 그러한 당신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

바쁜 연말 .. 그런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수준이 116개국의 나라 중 114위라는 말에 .. 참담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날 경제수준 10위니 12위이 14위니 외치던 나라가 왜 정치수준은 언급하지 않았는지 말 안해도 알겠습니다.

저는 그런 나라의 가난한 .. 그리고 다른 세상은 ... 가능하다고 믿는 ..  한 사람입니다. .

2010년 12월 ..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붉은 깃발이 다시 차가운 겨울하늘 위헤 휘날리고 있습니다.

참담한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 그 깃발과 함께 있습니다.

저는 눈이 오는 게, 비가 오는 게 참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 미소가 지워집니다.

그냥 좀 .. 행복해도 되는 ..웃고 싶을 때 웃는 것이 죄스럽지 않은  ..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그렇기를 ..

 

어떻게 살아야 할 지 .. 다시 거울 앞에 서 봅니다.

 

건강하십시오 .. 술 조금만 드시고, 배터지도록 먹고 살찐다고 후회하지 말고 ..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 맘이 더 살찌는 계졀이 되면 좋겠습니다.

부디 그렇기를 ...

 

 


연평도에 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무엇을 해야하나'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전화로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전화를 걸었죠. 엄마는 받지 않으셨고, 동생은 전호를 받았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동생이 웃었습니다. 왠지 나는 눈물이 났습니다.

강‘s 사진 이야기 전

사진과 함께 나누는 우리 삶의 이야기

 

삶이 언제나 극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 떠올린 건 나를 낳고 키워준 가족과 이웃들, 내가 자랐던 시간, TV가 말해주지 않은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해준 것들, 그리고 내가 해야할 일과 꿈꿔야할 것들이었습니다.

 

이제는 부개주공 아파트로 덮혀진 신상리 가는 길에 작은 우리동네, 논밭을 지나 등교하던 부흥국교, 약산 아래 부일여중, 부평여고, 인천대, 부평시장, 천상변 시인의 귀천, fp 미제라블과 토지, 퐁네프의 연인들 같은 수 많은 시와 글, 영화와 노래,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아는 것이 세상을 아는 것’이란 걸 가르쳐준 인권영화와 인권영화제, 인천영상집단, 이춘상, 양승은, 다른 꿈을 구는 사람들이 많든 희망터와 민주노동당_‘인간을 인간답게, 사회가 평등하게, 노동이 아름답게’, 새로운 세상은 가능하다_착한 사람들의 진보신당, 2008년 촛불민중, 사진동호회_진상 眞象과 만든 아름다운 노점전, 반자보주의+공존 共存을 위한 문화예술활동_퍼포먼스 반짛, 송림동 언덕과 동구 차영동 할머니들, 지역공동체창작공방 다행多行_하다...

 

여럿이 함께... 영화공부도 하고, 학습지 교사도 하고, 다큐멘터리 영화도 만들고, 영화제도 열고, 벽화도 그리고, 노래도 만들고, 그러면서 사진도 찍고 .. 딱히 돈을 벌거나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건강하고 아름답게 즐겁고 행복하게 해준 많은 것, 이제는 그것을 조금 더 나누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게도 나눌 수 있는 것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추운 겨울, 잠시 따뜻한 차 한 잔과 작은 사진들과 함께 쉬어가세요

 

2010년 12월 1일

 

 

 

 

봄에 새로생긴 카페가 너무 반갑고, 그집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이야기 나누다가  ..

우연히 .. 가볍게 경쾌하게 .. 작은 사진을 안팎으로 걸어두고 오가는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며 사진전을 하면 좋겠다고 했더니

쥔장 아저씨가 덥석 .. 그렇게 하라고 너무 쉽게 허락하는 바람에 .. 엉겁결에 개인전을 하게 됐어요 ^^;; 

 

그 전에 왜 그리 일이 많았던지 .. 포기할라다가 .. 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는 인간이라 ..

그 와중에 .. 첫 날이 아버지 기일인것도 까먹고 ..

또 사진은 왜 그리 많은 지 ... 어찌어찌 사진을 겨우 고르고 뽑고 .. 겨우 걸고 ..

현수막과 포스터도 겨우 만들어 걸고 붙이고( .. 오타가 네개나 있어요 ㅜ.ㅜ)  ..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데 .. 이제야 좀 이야기가 나오네요..

 

제가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사진전- 사람들-은 '아직' 담지 못했어요 ..

아직은 사람들에게 베인 상처로 인해 ..

그게 가장 맘이 안좋아요 .. 아직 그것을 끄집어 낼 도가 트지 못한 듯 해요 ..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거지요 .. 아직 덜 커서 .. 싫은 걸 감당하거나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런거다'라던가 하는 게 잘 안되요.

친구는 .. 조금 더 둥글게 사는 게 어떠냐고 .. 타협하며 사는 게 어떠냐고 ..

그게 좋은 거는 아닌데 .. 내가 너무 아파하고 힘들어하니까 .. 그게 자기 맘에 않좋다고 ..

그런데 .. 아직 .. 아직 .. 그런 것들이 감당이 안되네요 ..

사람을 보면 .. 저도 생긴것에 비해 그리 모질지는 못해서 ..

눈앞에 사람 두고는 .. 그런 거-싫거나 좋은게 좋은 거 거나, 타협이나 그런 등등  눈 녹듯이 사라지는데 ..

사람들이 안보이는 거죠 ..

 

그래서 .. 아직 '개인전'을 할 시간이 아닌데 ..

그렇게 .. 엉겁결에 시작이 됐네요.

카페가 주유소 건물과 해물탕거리 끄트머리에 있는데 .. 오가는 사람들, 일하는 분들이 보라고 밖에 많이 걸었어요.

오후부터 주유소에서 일하시는 아저씨가 .. 참 좋다고 .. 벌써부터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하시며 ..

노동, 밥, 함께살기, 꿈 .. 이런 것들이 참 좋다고 .. 서민들에 삶이 담겨서 참 좋다고 ..

그 말을 듣고는 참 행복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눌 수 있겠다고 .. 내게도 나눌 것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당신들이 내게 .. 행복을 나눠주시더군요 ..

 

그렇게 조금씩 ..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조금 더 천천히 .. 전하기 시작합니다.

시간 되시면 .. 잠시 들러서 따뜻한 차 한 잔 , 작은 사진 한 장 보시고 가세요 ..

 

 

 

 

 

 

 

언제나 참 신기했던 건 .. 저 작은 가계가 왜 슈퍼마켓 SUPER_MARKET이 되었을까요?

아마 그 전에는 쌀가계였던 모양입니다. 이제는 거의 멀티가 되었습니다.

이런 작은 가계는 어느 한 집의 생계가 걸려있지만 .. 큰 가계가 하나 들어서도 망하기 쉽상입니다.

아직 살아내고 있습니다. 옆으로 20미터만 가면 맥주 하나에 1300원 하는 슈퍼가 있지만 그나마 1500원 짜리 맥주를 사는 것이 나의 소심한 투쟁입니다.

 

우리 골목 어귀에는 이렇게 작은 문구점도 하나 있습니다.

주택가가 그렇듯이 작은 상점들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일상은 언제나 대형마트를 끼고살기는 좀 어렵습니다. 아이들도 그렇고요 ..

그런 틈새에서 겨우 살아남을 뿐입니다.

그 삶은 좀 남겨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2007년 나의 프로필

 

살아도 되는 걸까요?

 

손가락 사이로 빛나는 햇살처럼,

손으로 잡은 물 한줌 처럼

모든 것들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스스로 살아내는 법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상상하는 법도,

꿈꾸는 법도,

사랑하는 법도,

용기내는 법도,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고,

가르쳐준다고  해도 그답이 내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어서 ..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어서 ..

 

가슴에서 열이나고 .. 가깝하고 숨막히고

미칠것 같습니다.

자꾸 삶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 합니다.

허망함인지 열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친구는 열정이라 하는데

저는 허망하게만 느껴집니다.

 

지독한 egoist ...

그게 어쩌면 제 참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에게 빠져 죽어버린 나르시스처럼

 

사람들이 힘들게 사는 게 싫어서

다른 이들이 똑같은 다른이들에 삶을 유린하는게 보기 싫어서

내가 그게 싫으니까 이제껏 살았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 누군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가 싫으니까 ..

 

아픈 사람들이 치료받지 못하는 거,

전쟁에서 아이와 여자들의 삶이, 목숨이 유린당하는 거, 

가진 것들이 못가진 이들꺼 뺏는 거,  

억울한거, 죽임당하는 거, 속는 거,   

그런거 보는 게 싫으니까 ...

불편하고 화나 나니까 ..

언제나 그랬듯이 ... 누군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가 싫으니까 ...

내가 싫으니까 ...

 

지금 그 모든 것들이 허무할 수 있는 이유가 ..

그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 없이 다가오는 이유가 ..

어쩌면 스스로의 연민에 빠진 나르시스처럼

한 번도 누군가를 진정 사랑해본 적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스스로의 열정을,

스스로의 삶을 너무 사랑하느라

다른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 본 적이 없어서

사랑해본 적 없어서 .. 사랑할 줄을 모르는지도 ...

 

나는 너무 나를 사랑하다가

남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으로 ..

그래서 처음 배우니까 너무 ..

어려운 거.. 힘든 거 .. 그런지도 ...

그런지도 ...

 

 

2007. 4. 27.

 

눈부신 봄날이 슬픈 오후에 ..

삶을 묻다.

 

강 ...

 

 

 

생각보다 오래 .. 가을빛이 머물러줬다.

해물탕골목의 은행나무들은 마지막 가릉의 축제를 즐기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어쩌면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 속에 남아있는 것, 살아있는 것이 정말 이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 꼭 이겨야 해?

 

 한 밤에 많은 비바람이 불었다.

다음날 보도블럭 아래 은행잎과 빗물이 고여있었고

 

부흥로터리로 가는 길의 풍경 .. 

부평시장으로 가는 길 하나..

전에는 가을이면 파란 배추가 커다랗게 자랐는데 .. 

실내포장마차집에서 열심히 키웠는데 ..

올해는 보이지 않는다.

 

비가 내린 후 차갑지만 아름다운 가을하늘이 도시의 하늘을 채워주웠다

감사하게도 ..

도시의 일상은 남루하다.

심지어 .. 한 밤의 네온불빛 아래서도 그렇다.

왜 자꾸 도시들이 빈곤해보일까 

 

일요일이었던거 같다.

쉬는 배달 오토바이가 줄지어 쉬고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친적은 없었을까? 어쩌면 이 남루한 도시속에서 가장자유롭고 힘든 직업이겠다.

잘 살아내고 있는 이들의 쉼에 키스를 ..

 

빼빼로 데이 풍경이겠군 .. 그 전날이던가 그 다음날이던가

뭔뭔날 .. 같은 건 아마도 .. 도시인이 살아내는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즐거운 척, 사랑하는 척, 행복한 척 하기위한 ...

 

네온이 진 다운타운의 바닥은 지난 네온들의 흔적에 거지꼴이다.

하늘만이 .. 지난 밤 아무도 올려다 보지 않았을 하늘만

고이 남아

슬프게도 아름답다.

 

이제는 사라진 진선미 예식장 자리는 .. 정거장 이름으로만 남아있다.

사라지고 나타나고 사라지고 나타나고

다 그런거겠지 .. 이 소비의 도시속에서는 .. 실패하고 돈벌이를 꿈꾸고 실패하고 또 꿈꾸고..

 

이 도시의 뒷편이 궁금하다

 

무슨 '회의' 좀 한다고 온 국민들이 시달리던 참이다.

손님들이 빨리좀 갔으면 좋겠다는 말에 동감이 되어 한 컷!

 

그렇게 밤이 흐르는 시간...

 

그런 부평을 지나면

하늘이 넓어지는 창영동이 나온다.

나는 저 길을 따라 일터로 간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 선교원 기숙사라고 했던 거 같다.

  

 

정면을 찍고 싶었는데 그건 허락하지 않으셔서 ^^

 

 

 영화초등학교를 지나 ..

 

일터 동네에 창영초 입구에 동네책방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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