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꽃은 무슨 꽃일까요

어느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

작은 아기 얼굴 만큼 크고, 여린 꽃잎이 유난히 화려하게 보이던 이 꽃에

카메라 앞에서 피었습니다.

 

바림아 몹시 불던 봄 날

계단 옆에 곱게 피었던 붉은 철쭉이

뚝뚝 떨어져

회색빛 바닥에 흩어졌습니다.

 

얼마 전

장미가 아주 작은 봉오리를 찍으면서 5월이 오겠구나 했는데 ..

벌써 5월이 중순에 접어듭니다.

어린이날 ..

일도 손에 안잡히고 해서 시내에서 어슬렁  거리며 찍은 사진 입니다.

소년 소녀 상이 있는데 .. 왠지 느낌이 .. 비슷하지요?

부평 문화의 거리는

나무와 상점 간판과 사람들이 뒤엉켜있습니다.

익숙하지만 좀 아쉽습니다.

쉴 공간이 거의 없다시피 한 다운타운에서 겨우 쉴 곳이지만

상업공간 속의 쉼터는 더 지치게 합니다.

어린이 날이라고 

오랜만에 아빠가 아기와 함께하고 있네요 

눈이 똑 닮았네요 ㅎㅎ

 

  

철지난 색전구가 어지러이 널려있고,

온갖 간판이 가로등 마냥 거리를 뒤덮습니다.

밤이면 이 거리는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밝습니다.

 

오랜만에 본 짱구도 귀엽고

아이의 넋 빠진듯 무언가 쳐다보난 눈도 귀엽습니다. 

 

이 호화찬란한 거리는

벌서 40년이 되어가는 부평시장과 이어집니다.

많은 노점상들이 이 거리가 만들어지기위해 �겨났습니다.

예전 .. 문화의 거리가 생길때 .. 이 거리에서 수십년 장사하시던 분들과

나눴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날이 좋아서

어르신들의 작은 쉼터가 되어주네요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한 껏 꾸미고 나와 앉았습니다.

작은 무대가 앞에 있는 데 그곳에서는 한 미술학원에서 나온 사람들이 페애스 페인팅을 해줍니다.

한 가족의 표정입니다. 잠시 쉬는 모양입니다.

이 거리에서는 돈을 쓰지 않으면 달리 즐길 꺼리가 없습니다.

어디나 다 그렇지만 말입니다.

가족의 제각각 모습이 묘한 느낌을 주어서 한 컷!

 

한 소녀의 미소가 고왔습니다.

 

여자들 조끼는 유행이 아니라 거의 팔지 않아서 구제가게에 드를려고 갔는데

부모닙은 가계에서 신발과 옷가지를 사는데 형편이 어려운 모양인지 몇 천원 짜리 구제품을 사느라 주인과 흥정을 하고 있습니다.

유난히 커다란 눈과 까만 피부가 예뻐서 한 컷 ..

뒤돌아 오는 길에 가족 사진을 찍어줄 껄 .. 하는 아쉬움이 있어서 되돌아 갔는데 가족은 사라졌습니다.

쩝 .. 날이 어두워지는 시각이라 .. 좀 멀리서 찍었더니 .. 포커스도 나갔넹 ㅡ.ㅡ;;

 

우리 동네 손바닥 공원 풍경 ..  

 

 

[속깊은 얘기-KTX 오미선] 

"우리 아직 안 죽었어요, 독하죠?“ - "일하고 싶다…전태일이 이해돼요"

800일이란다. 숨이 턱 막힌다. 오는 5월 9일 KTX 여승무원들은 투쟁 800일 문화제를 광화문에서 연다. 처음 <레디앙>에 이런 인터뷰를 하자고 말하면서, 민세원 지부장과 얘기한 게 2006년 11월 이었다. 세월은 잔인하게 흘렀다.

 

고립된 섬

 

오미선 KTX 철도노조 승무지부 새 직무대행을 메이데이 집회가 열리는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만났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방에서 커피숍으로 이름이 바뀐 입구에는 '첨단 소비문화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고립된 섬처럼 느껴진다'라는 문구가 써져 있다.

고립된 섬! 어째 KTX의 현재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교선실장을 해 온 그녀에게 언제 직무대행이라는 명칭을 떼고 지부장이 될 것인지를 먼저 물었다.

- 선거를 해서 뽑아야 하는 데 선거 이전에 끝내야죠. 하고 싶지 않아요. 왜 짐을 지우려고 하세요? 부담스러워요.

곱게 흘긴다. 아주 가까이 앉아서 눈을 보며 얘기한다. 오늘 보니 눈이 정말 예쁘다. 언젠가 우리 딸이 다니는 학교 학생들을 모아 놓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중3이었던 딸은 덕분에 아빠를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다방 안에는 경찰들이 잔뜩 있다. 집회를 감시 중이다. “경찰 아니에요?” 한 눈에 그들을 알아본다. “얼굴에 쓰여 있어요. 경찰이라고..” 모두 투쟁이 가르쳐 준 감각이다. 2년 넘게 활동을 함께 했던 간부들이 모두 떠난 자리에서 힘들지 않을까?

   
  ▲인터뷰 중인 오미선 직무대행. 왼쪽이 이근원 현장기자.
 

일했던 시간보다 투쟁한 기간이 더 길다

-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여기까지 왔어요. 그런데 며칠 전에 알았어요. ‘아, 다 나가고 혼자 남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정말 기분이 묘했어요. 380명이 투쟁을 시작했는데....잘 표현하질 못하겠어요. 지금은 활동하는 간부가 저 포함 3명이에요. 총무, 상황실장. 지부장인 제가 뭐 교선실장도 됐다가, 대협실도 했다가, 대변인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하고 있어요, 지금.(웃음)

간부였던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세원도, 도경, 효미, 지선, 해인, 혜주도 없다. 함께 울고 웃던 그 발랄하고 싱그럽던 웃음들은 기억만 남겨둔 채 과거가 되었다. 그녀가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런 거 같아요. 잘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과 소신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정말 승무원이 하고 싶어요. 조금만 더 버티면 승무원을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다 나갔는데도 남아 있는 이유는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마무리는 같이 해야 되지 않겠나”’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어떻게 끝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무리를 잘 하고 싶어요. 지금 와서 그만 두면 나중에 나이를 더 먹어 되돌아 볼 때 조금 더 버티지 못해서 마지막 마무리를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할 것 같아요. 정도 많이 들었어요.

 

제가 성질이 있거나, 주장이 강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둥글둥글하게 지내다 보니까 정말 친하게 지낸 사람들이 많아요. 오늘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800일이 되었어요. 처음 3기와 4기 후배들이 일했던 시간보다 파업했던 시간이 더 많다고 했는데 이제 1기인 우리도 그렇게 되었어요.

 

2004년 4월에 입사해서 2006년 2월 28일까지 일하고 3월 1일부터 파업을 시작했어요. 결국 우리도 일했던 시간보다 투쟁했던 시간이 더 많아진 거죠. 오늘 문득 그 생각을 하는 데 점점 KTX 승무원이라는 이름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했어요.

 

9일에 열리는 8백일 투쟁문화제에 많이 와주세요

운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나눈 동지들이 떠났을 때의 고독함을 느껴 본 적이 있는지? 83년 공주교도소에서의 어느 날 새벽, 많은 동지들이 내 방 앞에 왔었다. 그리고 나를 제외하곤 모두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었다.

 

92년 울산, 같이 조직운동을 하던 동지들이 하나 둘 떠났다. 만세대 뒷산엔 그 때 혼자 먹은 소주병이 많다. 그런 기억은 오래 남는다. 오미선은 그 고독을 가슴에 안고서도 여전히 조분조분하다. 나는 그녀 특유의 ‘착함’이 투쟁을 계속하면서 남게 했을 것이라 내심 짐작한다.

 

동료들은 농담 삼아 그녀를 ‘오미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맛, 단맛, 짠맛, 쓴맛, 매운맛을 모두 가졌다는 얘기일까? 솔직히 최근 투쟁에서 KTX 동지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 사실 두세 달 정도 공백기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그만 둘 거냐?” “똑바로 안 하냐?”’라고 말들 하는 데 나쁜 시각으로 보지 마시고, 그저 “얘들이 그동안 많이 힘들었구나”하고 봐 주셨으면 해요. 지금도 1인 시위를 계속 하고 있어요. 한 2주 됐어요.

5월 9일 다시 열심히 투쟁하겠다는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하려고 해요. 저녁에는 우리가 이전에 매주 금요 촛불 집회를 하던 광화문에서 투쟁 800일 문화제를 하려고 해요. 마침 9일도 금요일이에요. 그리고 21일하고 22일에는 그동안 투쟁했던 영상도 틀고, ‘아직 우리가 죽지 않았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연대의 밤 행사도 할 거에요. 많이 오셨으면 해요.

기자회견은 서울역에서, 문화제는 저녁 8시 광화문 동화 면세점 앞에서 열린다. 연대의 밤 행사는 철도 웨딩홀에서 열린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꼭 와주면 좋겠다. 철도공사에는 아직 사장이 없다. 5월말 정도에나 임명된다고 한다. 이철 사장은 아주 힘들고, 어렵게 만든 합의문에 서명을 거부하고, 그냥 떠나 버렸다.


인간적으로 문제를 풀 수는 없을까?

- 이철 사장이 합의서에 조인 안 한 것에 대해 화가 나죠. 그런데 사장으로서는 제대로 못했다는 것에 감정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감정 없어요. 화를 내고 원망을 한들 이철 사장이 다시 와서 문제를 해결할 것도 아니잖아요. 어차피 나간 사람이니까.

그런데 다음 사장이 왔을 때 이게 정말 그렇게 풀기 어려운 문제라면 그냥 인간적으로 풀어 주었으면 해요. 신임사장이 오면 그러시겠죠. “나는 지금 왔기 때문에 업무파악도 해야 하고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라고 할 것 같아요.

사장이 왔다고 해도 취임하자마자 문제를 풀려고 할 것 같지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냥... 800일 싸웠잖아요. 어찌 보면 정말 젊은 청춘을 여기다 바친 거예요. 나쁜 것 때문에 이렇게 길게 싸운 것도 아니고.

어찌 보면 공사에서도 공식적으로는 “얘들은 합법 도급이다”라고 말들 하지만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마 그 사람들도 알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지방법원, 고등법원의 판결도 난 거구요. 이런 사례들을 봤을 때 그냥 인간적으로 풀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역시 착하다. 그런데 이런 소박하고, 착한 소망을 들어 줄 그런 인간이 과연 철도공사의 사장으로 올 수 있을까?

자본의 이익만을 위한 탐욕과 야만의 시대에. 더 나아가 공기업을 매각하고, 기관사도 줄이면서 오로지 ‘수익성과 효율’에 무게를 두고 있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 최근 판결 얘기를 더 들어보자.


투쟁은 이겼는데 직업은 없다

- 저희가 서울역하고, 용산역에서 농성하고 그랬잖아요. 그 농성에 대해 가처분 신청이 떨어졌고, 전체 간부에 대한 판결이었어요.

주문은 “불법적으로 손해를 입혔기 때문에 벌금은 내야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전체적인 판결문 내용은 실질적인 사용자가 철도공사라는 판결이었고, 그걸로 인해 파업을 한 것은 정당하다는 걸로 나왔어요,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지방법원에 이어 고등법원의 판결이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죠. 그런데 법원 판결이라는 게 일종의 권고 성격이지 실질적으로 공사에게 가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공사도 권한 밖의 판결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우리 KTX 승무원들에게는 희망이 있는 거죠. 2년 동안 이렇게 해 온 것이 헛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저만 해도 그래요. 패배의식이랄까? 그렇게 투쟁해도 안되는 걸 보면서 ‘괜히 한 거 같다’는 생각도 드는 데 저를 위로하는 차원에서라도(웃음) 법원에서 이렇게 판결도 내려진 거잖아요.

인권위 권고도 그렇고, 많은 여론들이 우리 편인 거고, 그 담에 교수들이나 변호사 등 지식인들도 “우리가 옳다”라는 판결을 내려준 거잖아요. 그래서 “졌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겼어요. 저희가 이겼는데 직업을 얻지 못한 거예요. 다 이긴 거지만 직업이 없는 거죠. 공사에선 이게 자존심 상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우리가 이겼기 때문에

투쟁에서 이겼는데 직업이 없다? 휴.. 고향이 충청도냐고 물었다. “왜요? 느려요?” 반짝 눈이 빛난다. 다 떠난 자리에 진득하니 그녀는 남아 있다.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못 살 거 같아요

- 파업을 3년 가까이 하면서 정말 얻은 게 하나도 없고, 다 잃어버렸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못 살 것 같아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는 정말 많이 힘들고 어려움이 있었죠. 그런데 얻은 게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배가 항구에 있으면 안전해요. 그런데 항구에만 있게 하려고 배를 만든 게 아니잖아요. 항해를 해야 잖아요. 사람도 그런 것 같아요. 그냥 안주해버리고, 이 생활이 편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도 없이 그렇게 사는 것 보다는 모험과 변화를 통해서 삶의 의미가 더 커진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투쟁을 통해서 그런 걸 많이 느껴요. 지금까지 30년을 살면서 저는 정말 승무원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모든 과정이 다 승무원이 되기 위한 준비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2년이라는 투쟁을 통해서 바뀌었잖아요.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거죠.

이걸 통해서 더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할 수 있었고, 많은 걸 느낄 수 있었고, 많이 배웠다고 생각해요. 이게 저만의 생각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데, 조합원들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어려움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가 80평생을 산다고 봤을 때 고작 2년밖에 안되잖아요. 지금이야 이게 가장 큰 어려움이고 생각하겠지만 지나보면 2년이잖아요. 이것 때문에 그냥 안주하며 살았으면 얻지 못할 많은 것들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투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나이와 무관하게 다들 뚜렷한 철학이 있음을 느낀다. 커피숍 바깥으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들린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노래 가사가 문득 새롭다. 아주 힘든 시기가 왔을 때 저들 중에 몇 명이나 앞서서 나갈 수 있을까? 조합원들은 지금 어떤지를 물었다.


정말 일하고 싶다

- 380명이 시작해서 이제 60명 정도 남았어요. 전부 다 힘들어 하죠. 많이 울어요. 진짜로 많이 울어요. 책임감을 느껴요.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고작 경력을 인정받고, 역 계약직 하려고 그동안 버텼나하는 생각도 들어요.

 

안 싸웠으면 벌써 과장급이 되어 있었을 텐데.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거는 “일하고 싶다”라는 거예요. 역 계약직 받는 것도 정말 속상해요. 기분 나빠요. 내가 원하는 직업도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조합원들의 다 생각이 다르지만 통일된 거는 일하고 싶다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는 좋은 추억이 되고, 경험이 될 거라고 해요. 그런데 지금 저희에게는 그게 귀에 안 들어와요. 짜증나요.

   
 
 

일하고 싶단다. 118년전 미국노동자들이 “햇빛을 보고, 꽃 내음도 맡으면서 8시간 일하고 싶다”던 노래를 불렀던 메이데이에 KTX 승무원들이 일하고 싶단다.

오미선은 불어 공부를 한다. 시험도 보았다. 한 단계를 통과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못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 철도의 SUD 노동자들이 공공연맹 초청으로 왔을 때 봉고차 안에서 아주 부끄러운 모습으로 불어를 하던 기억이 새롭다.

단식할 때 프랑스 배낭 여행기를 건네 준 기억도 난다. 민주노동당에 있던 목수정이 프랑스로 돌아간다는데 나중에라도 연결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게 많고, 꿈이 많은 처녀가 이제는 800일에 달하는 투쟁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에 버거워 하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가고 있다.

- 너무 슬퍼요. 힘들어하니까 정말 저도 슬퍼요. 얼마 전에 정말 친했던 승무원들이 또 나갔어요. 옛날에는 “조금만 참아라” “끝이 보인다” 그렇게 얘기를 해 줄 수 있었잖아요? 이제는 나가게 되면 뭐라고 말 할 수가 없어요.

 

아빠가 막 우셨어요

 

그 친구들이 정말 잘 돼서 나가면 저도 좋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다만 여기 있는 게 힘들고, 전망이 안보여서 나간다고 하면 정말 가슴이 아파요.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가족들도 너무 힘들어요.

 

얼마 전에 아빠가 막 우셨어요. 아빠가 우는 데 정말 살 수가 없는 거예요. 제 동생이 곧 결혼을 하는데 저는 이러고 있고, 저도 서른이 넘었으니까 결혼을 해야 할 텐데 거의 3년 가까이를 집에서 사는 게 아니라 밖에서 사는 거잖아요.

이러다 결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되게 허전하시겠죠. 집에서는 저를 손님으로 봐요. 주말마다 집에 가면 방을 치워놓고, 저를 위해서 맛있는 거를 해 놓고, 과일 사다 놓고 하는 모습을 보면 그러지 말라고 하는 데 “네가 밖에서 힘드니까 집에 와서라도 잘 먹어라”라고 엄마는 말을 해요.

 

근데 아빠는 그만두라는 말씀은 안 하지만 당신께서도 당신을 어쩌지 못하시는 거예요. 잘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그러면서도 이러다가 시집가면 마음이 아플 거라는 생각,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시니까 가슴이 아프셨겠죠. 그래서 막 우시는 데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우리 아빠는 저를 지지해 주시거든요. 그런데 다른 부모님들은 오죽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부산이나 광주 등 지방에서 올라온 경우는 더 하잖아요. 정말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빨리 끝내야 할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 해주는 동지들이 정말 대견해요.

마침내 “잘 울지 않는다”라고 말하던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어린다. 그 마음이 전해 진다. 남아 있는 소중한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을까?

 

내 속에 있는 두 명의 나

- 조합원들에게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많은 승무원들이 패배의식이 심할 거 같아요. 아무리 열심히 싸우고, 연대를 하더라도 이길 수 없다, 자본과 권력 앞에는 아무리 노동자들이 투쟁을 해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많아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하고, 단정해 버리면 앞으로 더 힘들어 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야 후회하지 않잖아요. 1년 더 싸우자 이렇게 얘기하지 않아요. 금방 끝난다, 끝난다 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막연한 긍정적인 생각이 항상 좋은 건 아니에요. 그래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버텨보자”고 얘기하고 싶어요. 저는 마음을 추스리려고 생각해요. 마음 속에는 오미선이라는 사람이 두 명이 있는 거예요. 빨간색 유니폼 입고 서울역을 왔다 갔다 하는 승무원들을 보면 울화가 치밀고 부러워요.

 

“저 자리는 내 자린데” 하는 생각도 들고, “나 때문에 네가 잘 되고 있는거야” 라는 생각도 들어요. “정말 어리석다. 그 때 파업할 때 참여하지 말았어야지” “나를 희생하면서 이럴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도 들고, 당시 나를 등 떠밀던 사람들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리고 “노동운동 이런 거 굳이 겪지 않아도 된다” 이런 생각도 있어요.

 

이런 마음도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면 내 정신건강에 안 좋으니까(웃음) 이런 운동을 통해서 정말 많은 사람을 얻었잖아요. 그리고 제가 ‘성숙해졌다’라는, ‘인간적으로 컸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조합원들도 그럴 거예요. 투쟁을 다시 시작하면서 많은 분들에게 도와달라고 연락하고 싶지만 혹시 폐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어요.

끝까지 착하다. 오늘 인터뷰의 목적이 다시 시작하는 투쟁에 많은 사람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것 일 텐데 “혹시 폐가 되지 않을까”라니.

 

분해서 잠 못 드는 밤들

- 외부에서는 여자들이 그렇게 모여 있는 게 참 대단하다고 했는데 그거를 실감 못했거든요. ‘그냥 있으니까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하나하나를 봤을 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요, 실장님?

갑자기 내게 질문을 던진다. 뭐라고 할 수 있을까? 518일을 싸웠던 한국통신계약직 동지들, 408일을 싸우고도 결국 전원 퇴사의 길을 선택한 도우엔지니어스 동지들. 그 외 경찰청 비정규직, 만영. 광주시청비정규직...

 

투쟁은 무엇을 남기는가? 도대체 이겼다는 게 뭘까? 비정규직의 문제를 사회의 쟁점으로 만드는 얘기, 그래서 다음 세대에 대한 얘기 등을 하지만 말이 꼬인다. 언젠가 KTX, 이랜드, 코스콤의 투쟁을 통해서 비정규직의 문제를 사회화했고, 그래서 전 사회적으로 비정규직의 아픔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아니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기록될 날이 올 수 있을까? 투쟁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일까?

- 음, 나빴을 때는 내가 지부장 되었을 때. (웃음) 사실 좋았을 때가 나빴을 때고, 나빴을 때가 좋았을 때예요. 금방금방 지나가요. 정말 잠 못 자겠고, 분했던 거는 합의서죠. 합의서 다 써 놓고 조인하자고 했는데 “대통령 선거가 있으니까 지나고 하자”고 해서 지나고 하려고 했더니 이철 사장이 돌연 사퇴해버렸잖아요.

그래서 이걸 어떡할 거냐고 여객본부장에게 물어봤더니 “1월 24일 이사회 때 보자”고 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또 기다렸잖아요. 그러더니 “책임질 사람이 없다. 다음 사장이 올 때까지 기다려라”고 얘기했어요.

 

그 전에 과정을 보면요, 어느 역으로 가는 게 좋을지 다 조정하고, 연봉도 각 지부별로 팩스가 갔어요. 그래서 지방사는 동기들은 방까지 얻은 경우도 있어요. 집을 구한 2명은 집을 빼버려서 그냥 용산 철해투에서 생활해요.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다 얘기도 했구요. 근데 그게 겨우 보름 사이에 안된 거잖아요.

그 분함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전태일 열사가 왜 분신을 했는지, 얼마나 답답했으면, 억울했으면, 분했으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을까? ‘누구 하나가 죽어야만 우리 문제가 풀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해봐요.

 

전태일의 분신이 이해가 됩니다

 

불법파견이 합법도급으로 나오고, 합의서 조인하기로 해 놓고 하지 못하게 되니까 이런 억울함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 지, 이런 분함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다가도 정말 이 생각만 하면 눈이 번쩍 떠진다니까요.

 

곡기를 끊고 삭발을 하고, 공권력에 맞서 싸우다가 유치장에 들어가고, 이렇게 했는데도 자본과 권력은, 정부는 우리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안잖아요. 이런 일들이 저희 KTX승무원 문제만이겠어요? 더 억울한 사람들도 많겠죠.

 

그래도 좋았을 때는 연대의 따뜻함과 우리 승무원들의 따뜻함을 느꼈을 때예요. 이 싸움이 끝나고 나면 정말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함께 갔으면 해요. 그냥 우리 얘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7명이 일본 JR 동노조의 초청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국제적 연대를 한 셈이다. 일본에서 와서 릴레이 단식에 동참한 적도 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오랜만에 승무원끼리 말도 많이 하고, 말만이 아니라 진짜 ‘정이 오고가는’ 노동자의 국제연대를 깊이 느꼈다고 한다. 그녀가 보기에 노동운동이 제대로 가고 있을까?

- 절실히 느낀 것은 노동자들이 자본과 권력과 투쟁하고 있지만 노동자 역시 ‘자본’과 ‘권력’이 없이는 투쟁할 수 없다는 거예요. 투쟁하려면 돈이 필요해요. 그리고 권력도 필요해요. 국회나 그런데 찾아가잖아요. 영세사업장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을 해요.

KTX 승무원들은 솔직히 이미지가 좋아서 많은 언론들이 동감해주고, 이슈화 시켜주었다고 봐요. 그런데 우리보다 열악한 데가 얼마나 많겠어요. 사실 여기 있는 경찰들도 다 노동자예요. 그런데 본인들이 그걸 모르고 있어요. 자본이 세련된 방법으로 각인시키는 거 같아요.

 

 

노동자에게도 자본과 권력이 필요하다

 

예전엔 직접적으로 ‘사회주의’라든지, ‘공산주의’ ‘노동운동’ 뭐 이런 것들을 직접적으로 얘기해서 거부감을 갖게 하고, 그런 걸 하면 빨갱이가 되고, 사회 이단아가 되어 버리게끔 했잖아요. 요즘에는 좀 더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자본을 우상시 할 수밖에 없게 사회가 만드는 것 같아요.

 

회사에 들어가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당연히 경쟁을 해야 된다거나 상위 1%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잖아요. 엘리트 중심의 모든 경험들이 나도 모르게 나를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사회는 그렇게 변화해가고 있는 데 우리는 그것을 거슬러 가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힘든 거 같아요.

 

그래서 노동자들이 정말 단결하지 않으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이런 것에 맞서서 싸우기에는 힘들 것 같아요. 단적으로 보면 우리 KTX 투쟁 때문에 철도공사구조조정이 늦춰졌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없어요. 우리가 수긍하고, 순종해서 간다면 더 빨라질 수도 있어요.

 

노동자들이 이런 집회를 하거나 투쟁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정말 자본이 원하는 대로 가겠죠. 저항하고 있기 때문에 늦춰지는 거죠. 하지만 투쟁하고 있는 개인들은 “달라졌다” "변한다“라는 것을 못 느껴요.

 

기륭이나 이랜드나 코스콤 등의 투쟁 때문에 비정규직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 것을 막고 있지만 본인들은 느끼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이 상태로만 간다면 세를 더 불리지 못하고 정체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노동조합에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20~30대를 조합원으로 받아야 발전할 텐데 그렇지 않잖아요. 세대의 변화를 위해서는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회는 21세기 최첨단을 달리는데, 하루가 다르게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는데 노동운동의 흐름은 70~80년대에서 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급단체는 너무 관료적

민주노총이나 연맹을 보면서 그런 희망을 볼 수 있을까?  

- 요즘 너무 관료적이라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구조, 체계 이런 걸 너무 얘기하다 보니까 ‘가장 진보적인 운동을 한다’라는 사람들조차 몸에 그게 배어 있어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뭘 얘기하는 거 자체가 우스워요.

 

KTX 승무원 투쟁 등 한창 여론을 탔을 때는 쫙 달라붙었다가 여론이 식으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모습이 언론매체만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민주노총이나 연맹 등 상급단체도 마찬가지거든요. 이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는 잘 모르겠어요.

분명히 문제가 있는 거고, 만약 이런 흐름대로 노동운동이 간다면 머지않아 일본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에요. 우리도 70~80년대 학생운동 많이 했지만 지금 그렇지 않잖아요. 심지어 등록금 인상에 관한 투쟁조차 학생들이 하지 않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마지막으로 정말 일하고 싶어요. 여성들이 이렇게 오래 싸운 게 정말 헛된 싸움이 아니었고, 이 사람들이 정당하게 싸웠고, 이 사람들의 투쟁을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겨주려고 한다면 같이 책임을 져야 해요.

지금 여성이 많은 사업장에서 싸우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델이 되거나 모범이 되려면 이 투쟁이 정말 시시하게 마무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런데 그것들이 정말 KTX 승무원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인 책임인 것 같고, 전체 노동운동이 함께 책임을 져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일하고 싶다

 

저는 조합원들이 조금이라도 웃음을 찾을 수 있는 걸 찾으려고 노력해요. 투쟁하면서 처음으로 청바지를 많이 입고, 이제 운동화가 더 편해지게 되었어요. 어찌 보면 파업투쟁이 아니었다면 거만했을 수도 있어요. 겸손해졌어요, 물론 겸손의 도가 지나쳐 초라해 졌지만.. (웃음)

마무리를 진짜 잘 해야 하는 데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모르겠어요,. 다 뿔뿔이 집에 가면 안 되잖아요. 마지막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얘기의 말미에야 결론이 나왔다. 연맹도 투쟁 초기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투쟁의 꽃”처럼 말하다가 투쟁이 길어지자 손을 놓았다. 투쟁은 고스란히 KTX의 몫으로 되어 버렸다. 내 책임이고, 우리의 책임이다.

800일을 버텨 온 KTX 조합원들이 ‘고립된 섬’처럼 느끼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투쟁기금을 위해 양말을 팔면서 ‘아름다운 연대’라고 썼었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저항’을 보고 싶다.

2008년 05월 06일 (화) 15:42:34 이근원 / 현장기자

 

 

[이명박 vs 노동자 ④] 도시철도·서울메트로 기습 인사, 퇴직 종용

공공부문 구조조정, 이미 시작됐다

지난 4월 10일 밤. 도시철도공사(사장 음성직)는 대대적인 인사발령을 냈다. 전체 5,000여명에 이르는 조합원 중 700여명을 ‘창의업무지원센터’와 ‘서비스지원단’이라는 새로운 직제에 배치시켰다. 특히, 역사에서 표를 직접 팔고 고객을 상대하는 역무본부의 경우 1,800여명 중 무려 309명이 ‘창의업무지원센터’와 ‘서비스지원단’에 발령받았다.

 

노동조합과는 사전에 아무런 협의없는 일방적이고 기습적인 인사발령이었다. 이는 지난 해 서울시에서 퇴출제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현장시정지원단’과 같은 의미로 통하고 있다. ‘창의업무지원센터’와 ‘서비스지원단’에 배치받은 조합원들은 당장 특별한 업무가 없어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희망퇴직을 종용당하고 있는 셈이다.

 

   
 ▲ 서울지하철노조
 

이런 ‘서비스 지원단’ 발령은 곧 바로 서울시 산하 동종업계인 서울메트로에도 이어졌다. 지하철 1,2,3,4호선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메트로 역시 서울지하철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2일 전격적으로 서비스지원단을 신설하고 314명을 이곳에 발령냈다.

 

 

공기업 강제 인력조정 시작됐다

 

서울지하철노조 이호영 선전홍보부장은 “'서비스 지원단'은 사실상 인력 구조조정의 다른 말이다”라며 “숫자가 얼마이건 강제적인 인력 구조조정이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의 공기업 구조조정이 지하철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것이다.

당초 한나라당 이명박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을 구호로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마저도 ‘좌파적’이라며 보수 정권 세우기에 나섰던 이명박 정부가 가장 손 쉽게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의 차별성을 두기 쉬운 것은 재벌, 노동, 교육 정책이다.

 

특히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이명박 정권의 핵심 공약사항으로 우리 사회에 가장 밀접한 영향을 주면서 이른바 이명박식 실용 정치를 꾸며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크게 세 가지 분야로 나뉘어 진행하고 있다.

 

첫째, 국책은행의 민영화다. 산업은행 민영화는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토지공사와 도로공사와의 민영화로 이어진다. 둘째. 공기업의 단계적 민영화다. 이명박 정권은 민영화 효과가 큰 공기업부터 단계적으로 민영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공기업에는 발전, 가스, 철도 등 국가기간산업이 포함된다.

셋째. 유사 공공기관의 통폐합, 연기금기관의 통합 관리를 통한 공기업 구조조정을 들 수 있다. 정부는 공기업 298개 공공기관 전체를 대상으로 민영화, 통폐합 등과 관련한 재점검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넷째. 의료보험, 가스 산업 등 정부의 독점적 지위를 포기하고 재벌에 길을 내주는 것도 있다.

 

정부는 이미 민영 의료보험 도입과 함께 가스산업구조개편을 통해 가스공사의 독점적 지위를 빼앗고 재벌기업에 가스산업을 내줄 태세다. 여기에는 물도 포함된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은 이렇듯 단순히 공기업을 내다 파는 민영화만이 아니다.

 

민영화 외 공공기관 통폐합 및 기능조정을 통해 공기업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된다. 경제인문계 출연연구기관 통폐합, 유사 위탁기관(환경관리, 방송영상, 정보통신, 과학재단 등)의 통합, 통합 징수공단 설립 등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지방공기업 및 지자체 산하기관의 대폭적인 통폐합 역시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공기업에 대해 강도 높은 경영혁신을 요구하며 공기업의 시장화를 재촉할 것이다.


문제는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단순히 공공부문 노동자의 일자리만을 빼앗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공서비스 기반을 축소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민간의료보험 도입 추진은 의료시장의 양극화를 불러온다. 비록 ‘식코’라는 암초에 걸리고 여론에 밀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유지하기로 했지만 말이다.

 

또 수돗물을 비롯해 가스, 발전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국가 기간산업이 민영화 내지는 재벌기업의 사업 참여로 인해 공공서비스부문은 크게 약화될 것이다. 당초 수익성 및 경쟁원리보다는 공공성이 키워드인 공공서비스부문을 시장화 시키겠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청소 아줌마 자르기

또 하나는 이명박 정권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의 화살은 결국 공공부문 비정규직과 88만원세대에 향하고 있는 점이다. 지난 1일 청와대에서 일하고 있는 50대 환경미화 여성 노동자 등 68명의 하위 기능직 노동자가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 청와대가 직접 아줌마 자르기에 나섰다. 청와대뿐만이 아니다. 각 지방자치단체와 산하 기관에서는 먼저 자르기 쉬운 시설관리 등 하위직 비정규직을 손대기에 여념이 없다.

 

공공운수연맹 공공노조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공공부문 하위직 비정규직의 계약해지와 노조 설립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또한 1만명에 이르는 공무원 감축과 공기업 구조조정은 이른 바 ‘공시족’을 낙담에 빠뜨리기 충분하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수년 째 공무원과 공기업을 준비중인 취업준비생들이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으로 결국 시험을 포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정부 스스로 청년 실업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지난 5월 1일 서울에서 열린 메이데이 집회 당시 서울지하철노조 이상현 승무지부장이 방송차에 올라 연설을 했다. 서울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서울지하철의 구조조정은 반드시 저지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거리 시민들의 반응은 예상과 다르게 너무나 호의적이었다.

 

서울지하철노조의 선전물은 서로 가져가려고 아우성이었고 시민들이 자발적인 박수로 연설에 공감을 표시했다. 이명박 정부의 최근 실정과 아울러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불러오는 사회양극화에 대해 시민들이 조금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공공부문 구조조정 투쟁은 결국 여론과의 싸움이다. 여론을 어느쪽으로 돌리느냐가 승패의 관건이다. 그 동안 ‘신의 직장’, ‘철밥통’이라는 보수언론과 정부의 논리를 ‘공공성’과 ‘질좋은 일자리’로 바꿔내 여론을 선점해야 한다. 그것이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막아내기 위한 첫걸음이다.

2008년 05월 06일 (화) 10:43:28 윤춘호 현장기자
[투고] 이명박 역주행이 되살려낸 구호 "독재냐 탄핵이냐"
"더 큰 사고 치기 전에 '리콜'하자"

이 글은 선동하기 위한 글이다. 이 글에서는 미국산 쇠고기가 정말 위험한지를 분석하지 않는다. 이처럼 많은 정보가 주어졌는데도 아직 검증이 필요하다면, 그 검증은 앞으로 10년이나 20년 후, 광우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나올 때에나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이미 검증의 의미를 잃는다. 따라서 지금 현시점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한지를 따져 묻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니다. 이만큼의 상황이 밝혀졌다면, 이제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은 국민들이 증명할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해명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증거는 나올 리 없다.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며 말끝을 흐리는 관료형 발언에 일일이 시시비비를 가릴 때가 아니다. 그 공방에서 논리의 우세를 점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논거를 다 찾아두고 행동에 나설 만큼 여유 있는 시기가 아니다.

상황을 쫓아가고 앞질러야 할 시기다. 지금 가지고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근거로 행동의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논리는 행동이 보강한다. 그리고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청계천을 태우는 촛불이 어디까지 번져나갈 수 있을까.(사진=뉴시스)

 

탄핵은 공동의 언어다

첫째, 공동의 언어는 ‘탄핵’이다. 지금 끓고 있는 감정들을 하나의 에너지로 모아내려면 공동의 언어가 필요하다. ‘재협상 요구’는 그 언어가 될 수 없다. 그 언어는 상황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사태는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기능을 잃고 만다.

‘수입 반대’도 아니다. ‘반대’가 아니라 마음에 진 응어리를 풀어주면서도 상황을 아우를 수 있는 적극적인 말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힘을 복돋우면서 서로가 한 데 섞일 수 있는 말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동의 언어는 탄핵이다.

둘째, 관건은 ‘독재냐 탄핵이냐’이다. 독재는 시대에 뒤처진 말로 들린다. 그래서 현상황을 담아내기에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낡은 말이다. 그만큼 현상황은 낡았다. 독재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나라를 사유물 다루듯 한다면 그게 독재일 것이다. 내용보다는 형식에서 드러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이외에도 대운하 건설, 의료보험 민영화, 과거사위원회 폐지. 내용은 다르지만 모두 닮아있지 않은가.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닮았고 반대 여론이 등장하면 묵살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한 가지 단면일 뿐이다.

저 항목들이 늘어갈수록 외쳐야 하는 소리도 통일되어 간다. ‘독재 타도’다. 그리고 이상의 문제들은 해결하기 위한 문턱의 높이가 같다. ‘탄핵’이다. 관건이 ‘독재냐 탄핵이냐’라는 점은 탄핵을 외치면 현실로 등장할 것이다.

 

 

리콜은 소비자로서의 권리일 뿐

셋째, 탄핵을 말하는 데에 심리적 장벽이 높을 필요는 없다. 이명박 정권은 역주행은 기본이고 에어백도 장착되지 않은 채 브레이크도 먹히지 않는다. 이런 차는 바꿔야 한다. 탄핵이라는 말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탄핵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리콜을 요구하는 만큼의 소비자로서의 권리가 필요할 뿐이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것인지 먹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 소비자의 권리는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그것을 먹는 일은 알게 모르게 선택사항이라기보다 준의무사항이 되어버린다. 진정한 소비자의 권리는 그 전에 발휘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이명박 정권을 버리지 않으면, 이명박 정권이 우리 머리 꼭대기에서 우리를 운전할 것이다. 탄핵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앞으로 일어날 치유할 수 없는 상처에 비하건대 대단하지 않다.

넷째, 탄핵은 ‘방법’이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수세에 몰려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아리라 우리 쪽이다. 5월 30일이면 18대 국회가 시작된다. 한나라당이 과반의석을 점유한 국회다. 그리고 2/3의 국회의원이 몰표를 행사할 수 있는 국회다. 독재의 요건이 충족되는 셈이다. 법과 제도를 원하는 대로 뜯어고칠 수 있는 시기가 온다.

물론 우리는 경우에 따라서 반대할 것이고 미디어도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꿈쩍하지 않는 정부가 그 때라고 거만한 태도를 바꿀 리 없다. 그래서 탄핵 요구는 시간을 아껴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분노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우리 자신도 자신할 수 없다.

우리는 6월이 오기 전에 너무나 많은 사안에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뉘는 만큼 각각 세부사항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동력은 떨어진다. 그래서 탄핵 요구는 방법이다. 여러 사안들을 한꺼번에 끌어안을 수 있는 방법이다.

 

 

탄핵, 실패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뜻

 

다섯째, 탄핵은 ‘효과’다. 지금의 정치적인 환경 속에서 탄핵이 이루어지리라는 기대를 갖기는 힘들다. 시간은 너무 짧고 밟아야 할 절차는 복잡하다. 그래서 탄핵은 요원하게 느껴지고 탄핵을 요구하자니 현실의 사정을 감안하건대 맥이 풀린다.

하지만 탄핵은 결과가 아니라 효과로서라도 요구해야 한다. 탄핵은 지금 얽혀 있는 여러 사안들이 응결되어 있는 한 점이다. 그것을 말하지 못한다면 어떤 사안이건 그것을 막아내기 위한 힘이 비축되지 않는다. 소고기 안정성 공방도 탄핵 요구의 국면으로 넘어가야 비로소 힘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탄핵 요구가 실패하더라도 6월이 오기 전에 거대하게 일어나 실패하여 그것을 하나의 ‘상징’으로 만들어야 한다. 누가 어떻게 실패시켰는지를 기억하고, 앞으로 그들이 보여줄 망동을 제어하기 위한 ‘상징’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두고두고 써먹어야 한다.

그래서 탄핵은 결과가 아니라 효과로서도 필요하다. 현상황에서 ‘탄핵 요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요건의 최대치이자 최소치이다.

2008년 05월 06일 (화) 08:34:18 윤여일 / 동경외국어대

다음의 마구마구 지우기에 대항하여 자신의 서명을 스캔해두시는 데 쓰시기 바랍니다.

물론 다른 정부나 조중동이나 포털사이트의 폭력적 행동을 스캔하셔도 됩니다.

경향신문에서 옛날옛날에 서비스로 풀어준 것입니다.

제가 잘 갖고 있었지요 흐흐흐 .. 무료입니다.

PhoSnapInstall.e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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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작가 박경리 씨 타계...금관문화훈장 추서

YTN | 기사입력 2008.05.05 17:11

[앵커멘트]
'
토지', '김약국의 딸들'로 유명한 원로 작가 박경리 씨가 오늘 오후 타계했습니다.
우리 문단의 거목이셨는데 끝내 숨을 거두셨군요?
[리포트]
'토지'의 작가 박경리 씨가 오늘 오후 2시 45분 타계했습니다. 사인은 폐암입니다.
고 박경리 씨는 지난해 7월 폐암 선고를 받았으나 고령을 이유로 항암 치료를 거부한 채 투병해 오다 지난 달 4일
뇌졸중으로 쓰러져 서울아산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이후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왔는데 오늘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됐고 5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입니다.
[질문] 문화체육관광부가 고 박경리 씨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어왔군요.
[답변] 조금 전 결정이 됐는데요.
문화체육관광부가 고 박경리 씨에게 한국 현대문학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해 문화예술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문화부는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가족들에게 훈장을 수여한다는 방침입니다.
[질문] 고 박경리 씨, 투병 중에도 작품들을 발표해 오셨다죠?
[답변] 최근 현대문학 4월호에 8년여 만에 신작시 3편을 발표하는 등 문학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을 보여 왔습니다.
앞서 시집 세 권을 낸 박 씨는 "몸이 좋아지면 그간 쓴 시들을 정리해 시집을 낼 것"이라고 계획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박경리 씨는 1955년 8월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이 추천돼 오르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해 '
시장과 전장', '파시' 등 문제작들을 잇따라 발표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6년에 걸쳐 5부로 집필한 장편 대하소설 '토지' 전 20권은 한국 현대문학을 빛낸 역작으로 꼽힙니다.
이 가운데 마지막 4부와 5부는 1980년 서울을 떠난 뒤 박경리 씨가 강원도 원주로 터전을 옮겨 10년 넘게 집필에 힘을 쏟은 부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토지'는 영어와 일본어, 프랑스어로도 번역됐으며 드라마로도 제작돼 국민적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국 문단의 별이 지다' 소설가 박경리 별세

노컷뉴스 | 기사입력 2008.05.05 15:39[CBS문화부 정재훈 기자]

한국 문단의 큰 별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하소설 '
토지'로 한국 문학의 새 지평을 연 소설가 박경리씨가 5일 오후 서울 아산병원에서 향년 82세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26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한 박경리씨는 1955년 8월
김동리씨가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을 추천하면서 등단해 '김약국의 딸들', '파시' 등을 발표했다.
1969년부터는 '현대문학'에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해 1994년 8월 '토지' 5부를 탈고하기까지 무려 25년에 걸쳐 '토지'를 집필하면서 한국 문학의 새 장을 열었다.
대표작 '토지'는 1897년에서 1945년까지 50여 년의 한국 근대사를 관통하면서 700여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 전통을 총체적으로 그린 대하소설이다.
전 21권에, 원고지 분량만 3만여 장에 이르는 '토지'는 광복 이후 한국 문단이 거둔 최고의 수확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TV 드라마와 영화, 가극 등으로도 제작됐다.
박경리씨는 지난해 폐암 선고를 받았으나 고령을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고 강원도 원주에 머물다 지난달 4일 뇌졸중 증세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박씨는 보관문화훈장(1992)을 비롯해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1965), 올해의 여성상(1994), 제3회 용재석좌교수상(1997) 등을 수상했으며, 1996년에는 칠레정부로부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기념메달을 받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
현대아산병원으로 5일 문인장으로 치러지며 장지는 고향인 경남 통영이다. 유족으로는 딸 김영주(토지문학관 관장)씨와 사위 김지하(시인)씨가 있다.
floyd@cbs.co.kr

'토지'의 작가 박경리, 흙으로 돌아가다

중앙일보 | 기사입력 2008.05.05 15:04 | 최종수정 2008.05.05 17:11

[중앙일보 손민호.이에스더] 『토지』의 작가 박경리씨가 5일 오후 3시쯤 뇌졸중 등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한 고인은 55년
소설가 김동리의 추천으로 월간문예지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토지』 『파시』 『김약국의 딸들』등을 내놓으며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무엇보다 고인이 69년부터 94년까지 26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는 '광복 이후 한국 문단이 거둔 최고의 수확'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전 21권에, 원고지 분량만 3만여 장에 이른다. 『토지』는 TV 드라마 뿐 아니라 영화ㆍ가극ㆍ창극 등으로도 제작됐다. 99년 강원도 원주에 토지문화관을 세운 뒤 지금까지 후배작가들에게 창작실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고혈압ㆍ당뇨 등 지병으로 고생하던 그는 지난해 7월 폐암에 걸렸고 지난달 4일 뇌졸중 증세를 일으켜 서울 아산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96년 호암상 예술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보관문화훈장ㆍ
월탄문학상ㆍ현대문학 신인문학상 등을 받았다. 유족은 딸 김영주(62)씨와 사위 김지하(67ㆍ시인)씨. 빈소는 서울 현대아산병원이며 5일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9일, 장지는 경남 통영 미륵산 기슭. ☎02-3010-2631.

 

 

-박경리가 마지막으로 남긴 시편(2008년 4월 '현대문학' 발표).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란 마지막 행이 턱, 걸린다. 손민호 기자

옛날의 그 집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한국문학사에 우뚝선 대하소설 '토지'>25년만에 완성한 박경리 대표작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8.05.05 15:16 | 최종수정 2008.05.05 17:58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한국 대하소설의 뿌리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장 높은 봉우리로 평가받는 '토지'(나남출판.전21권)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서희는 딸 양현으로부터 일본의 패망소식을 전해듣고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삶을 무겁게 조여왔던 고통스러운 쇠사슬에서 벗어난 기분을 맛본다.

 
고(故) 박경리 씨가 1969년 9월 '현대문학'에 첫 회 연재를 시작한 뒤 1994년 8월 15일 '문화일보'에 연재할 마지막 원고를 탈고하기까지 '토지' 전체 5부가 완성되는 데는 무려 25년의 세월이 걸렸다.

소설은 1897년 하동 평사리에서 시작해 서울, 만주, 일본을 거쳐 다시 평사리 섬진강 가에 이른 서희가 해방소식을 듣는 것으로 끝난다. 작가가 원고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날을 소설이 끝나는 8월 15일로 잡은 것은 우연이었을까?

6.25때 남편과 사별하고, 외동딸을 기르며 힘들게 창작활동을 해온 작가는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방암 선고까지 받았다. 이로 인해 작가는 가슴에 붕대를 동여매고 '토지'를 집필했다고 한다. 게다가
유신정권에 저항하던 김지하 시인을 사위로 둔 탓에 작가의 삶은 언제나 무거운 쇠사슬을 휘감은 듯 고통의 나날일 수밖에 없었다.

원고지 4만장 분량의 대작 '토지'를 마무리한 날은 그래서 작가 개인에게는 창작의 고통스런 족쇄에서 풀려난 날이었을 것이다.

'토지'는 구한말에서 시작해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기까지 민족수난기를 다루고 있다. 최참판댁 손녀 서희가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 하동에서 하얼빈까지 유전하다가 고향땅으로 돌아와 해방을 맞는 것이 소설의 큰 줄거리를 이룬다.

작품에는 동학농민전쟁,
을사보호조약, 청일전쟁, 1902년 7월 전국에 번졌던 콜레라, 1909년 간도협약,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관동대지진,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인 1923년 형평사 운동, 1937년 만주사변 등 역사적 사건이 무수히 등장한다.

'토지'에는 이런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삼아 이름없는 민초를 포함해 700여 명의 인물들이 명멸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허구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실존인물을 소재로 삼아온 기존 역사소설과는 성격이 다르다. '토지'는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으로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역사소설 시대를 열었다.

'토지'가 역사책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낸 것을 두고 역사학자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역사보다 더 역사적인 소설"이라고 평한 바 있다. 문학평론가 이재선 서강대 명예교수는 '창안적 역사소설'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토지'에 부여하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토지'는 인물이나 사건을 하나의 주제에 종속시키는 서구 소설의 이론을 따르지 않는 새로운 창작실험을 시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문학평론가 정현기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는 판소리처럼 이야기의 중간에 이런저런 작은 이야기들이 마디처럼 삽입한 것을 놓고 '토지'의 창작방식을 '마디 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이상진 방송통신대 국문학과 교수는 "이름을 가진 인물만 해도 578명이나 등장하는 '토지'에 주인공이 따로 없다는 것에 많은 연구자들이 공감한다"면서 "작품의 주인공은 서희만이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등장인물 모두이며, 이 때문에 이야기가 하나의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핏줄처럼 퍼져나가는 독특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어느 학자는 '토지'를 '대하(大河)소설'이 아니라 '다하(多河)소설'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야기가 하나의 줄기로 흘러가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루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토지'는 탈(脫)중심적 소설이기도 하다.

이상진 교수는 "이야기 전개와 창작방식에서 '토지'의 탈중심적 성격은 작가의 생명사상과 연결된다"면서 "어느 것도 중심이 아니며, 인물마다 제 몫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생명을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작가의 사상이 여기에 깃들어 있다"고 분석했다.

작가의 생명사상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인 한(恨)과 연결된다. 작가는 모든 생명에는 한이 있다고 자주 말해왔다. 그 한은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만 유지된다는 본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작가의 지론이었다. 이 때문인지 '토지'에 등장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불행한 사람들 뿐이다. 인간은 모두 한을 가진 존재라는 작가의 사상이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과 사랑, 일본 제국주의 등 물신주의에 대한 올곧은 저항, 생명사상 등 '토지'가 가진 풍부한 내용 때문에 이를 원작으로 삼아 KBS와 SBS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TV드라마로 제작했고, 1974년
김수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김지미와 이순재 등이 출연한 영화로도 제작됐다.

또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 서사음악극으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려졌으며, 청소년판과 만화로도 출간되는 등 다른 장르로 끊임없이 변용돼 왔다. 또한 하동 평사리 드라마 촬영 세트장은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으며, 작품 속의 공간인 평사리에서는 해마다 문학제가 열리고 있다. 이는 '토지'의 가치가 그만큼 널리 인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토지'는 서구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
근대문학을 절정기에 올려놓은 대작이다. 이후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최명희의 '혼불' 등 대하소설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한국소설은 전성기를 누렸다.

이러한 작가적 사명을 예감했던지 박씨는 1966년 수필집 'Q씨에게'에 실린 '창작의 주변'이라는 글에서 "이제부터 나는 써야 할 작품이 있다.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의 것을 모두 습작이라 한다. 그것을 쓰기 위해 나는 이삼년을 기다려야 할까보다"라며 대작을 집필하겠다는 의욕을 내비친 뒤 실제로 3년 후 '토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후 그가 펼쳐낸 '토지'의 작품세계는 평사리 들판처럼 드넓고, 지리산처럼 웅장한 모습으로 한국문학사에 자리 잡았다.


<박경리 선생 별세..원주 애도 분위기>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8.05.05 15:24

원주=연합뉴스) 김영인 기자

= 한국 문단의 거목인 박경리 선생이 어린이날인 5일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제2의 고향인 강원 원주시민들은 "문학계는 물론 지역으로서도 너무 큰 손실"이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들은 비록 원주가 선생이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30년 가까이 거주하면서 지역의 든든한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았고 이를 큰 자부심으로 삼고 함께 살아왔다며 애통해 했다. 시민들은 선생이 위중하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난 달 26일부터 옛 집인 단구동 토지문학공원에서 매일 저녁 촛불기도 모임을 갖고 쾌유를 간절히 빌어왔다.
시민들은 특히 선생이 원주에 정착한 뒤 대하소설 '토지'를 완간하고 옛 집을 토지문학공원으로 조성하도록 선뜻 내준데다 흥업면 매지리에 토지문화관을 만들어 창작의 산실로 삼는 등 지역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며 선생의 뜻을 기리는 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기열 원주시장은 "지난 1980년 내려오신 뒤 활발한 작품활동은 물론 원주에 많은 애착과 관심을 가져 주셔서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자부심을 갖게 하신 분인데 황망히 떠나시게 돼 섭섭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조의를 표했다. 이어 "지역에는 고인이 남기신 많은 발자취가 있는 만큼 선생의 문향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기념사업 등을 추진해 원주를 토지의 고장으로 만들어 전 국민에게 훌륭한 문화자산으로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지역 출신의 이계진 국회의원은 "선생이 원주에 사시는 것 만으로도 원주인들은 행복했으며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며 흙과 함께 한 문학.생명정신은 영원히 우리들 가슴에 살아있을 것"이라며 "선생의 문학혼과 사상을 더욱 빛내고 원주의 영원한 상징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 시민들의 뜻을 모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선생을 곁에서 보필해 온 고창영 토지문학공원 소장은 "병상에서 털고 일어나셔서 돌아 오시기를 그토록 간절히 기원했는데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선생님을 가까이서 모셨던 시간과 모든 추억을 영원히 잊지 못 할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시민 김성희씨(44.여)는 "토지문학 강좌를 통해 선생님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게 된 뒤 원주에 너무 훌륭한 분을 모시고 사는 것 같아 늘 자랑으로 삼았다"며 "도시를 정서적으로 순화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셨다"고 높이 평가했다.
원주시는 토지문학공원 내 선생의 옛 집필실 1층에 시민들이 조문을 할 수 있도록 분향소를 설치하기로 했다.

故박경리 선생 "시련 없었다면 토지도 없어"중앙일보 | 기사입력 2008.05.05 15:28 | 최종수정 2008.05.05 18:49

[중앙일보 손민호] 박경리가 끝내 흙으로 돌아갔다.
영정 앞에서 외람된 언사일 수 있겠지만, 마냥 슬퍼할 일은 아닐는지 모른다. 기억 속에서 박경리는 목숨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건강은, 나이가 있으니까…. 원래 먹어야 하는 약이 많아요. 하지만 혈압약만 먹어. 병원에도 1년에 두 번 정도만 가고. 살아보겠다고 날마다 약 먹고 병원 가고 하는 거, 내 생명을 저울질하며 사는 거 같아서 싫어."

박경리는 흙의 작가요 생명의 작가였다. 굳이 『토지』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생전의 그는 텃밭에서 일군 채소를 손수 무치고 담가 토지문화관을 찾은 후배작가들에게 먹이곤 했다. 농약 한 번 쓰지 않은, 이른바 유기농 야채였다. 자신의 텃밭에 농약을 치지 않았던 것처럼 그는 자신의 육신에도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 폐에 종양이 슬었어도 담배를 끊지 않았고, 한 달 가까이 병실에 누워있으면서는 치료진의 손길을 뿌리쳤다.
그렇게 박경리는 갔다. 흙으로 돌아갔다.
#모진 팔자 드센 인생
박경리는 1926년 10월 28일(음력) 초저녁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여기서 '초저녁'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생전의 작가가 들려준 사주 얘기다.
"초저녁에 나왔어요. 그러니까 초저녁 범띠 생이지. 초저녁은 배고픈 호랑이가 막 먹잇감을 찾으러 다니기 시작할 때잖아. 여자 사주치곤 기가 아주 센 거지.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팔자대로 산 거 같아요."
그는 한국전쟁 통에 남편을 여의었고 뒤이어 아들도 잃었다.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딸(62)은 남편 옥바라지로 호된 고역을 치렀다. 딸의 남편, 즉 선생의 사위는
김지하(67) 시인이다. 생전의 그는 "나에게 이런 시련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20년 넘게 『토지』에 매달릴 수 있었겠어"라고 되물었다. 1973년에 쓴 『토지』 서문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사람들은 수월하게 행과 불행을 얘기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불행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행복하다 한다. 전자의 경우는 여자의 운명을 두고 한 말이겠고 후자의 경우는 명리(名利)를 두고 한 말이 아니었나 싶다.'

다음의 일화도 있다. 박경리가 평생의 스승으로 모신 어른이
소설가 김동리(1913∼95) 선생이다. 한데 박경리가 김동리에게 맨 처음 보여준 원고는 소설이 아니라 시였다. 54년 박경리의 습작시를 일독한 김동리는 "상은 좋은데 형체가 갖춰지지 않았다"고 냉정하게 평한다. 상심한 그에게 김동리는 대신 "소설을 써봐라" 권한다. 그래서 쓴 소설이 이듬해 '현대문학'에 발표된 '계산'이다. 박경리의 등단작 말이다. 박경리에게도 인생지사는 새옹지마였나 보다.

#『토지』 그리고 박경리
『토지』 1부의 배경인 경남 하동의 평사리 악양 들판. 박경리는 거기 땅 한 번도 안 밟아보고서 『토지』를 썼다. 2부의 주무대가 되는 만주땅 용정도 마찬가지다. 책이 다 나온 뒤에야 그는 소설 속 현장을 둘러봤다. 그러면 『토지』는 어떻게 나올 수 있었을까. 오롯이 작가의 상상에 기댄 것일까.
"『토지』는 6ㆍ25사변 이전부터 내 마음 언저리에 자리 잡았던 이야기예요. 외할머니가 어린 나에게 들려주던 얘기가 그렇게 선명하게 나를 졸라대고 있었거든요. 그것은 빛깔로 남아있어요. 외가는 거제도에 있었어요. 거제도 어느 곳에, 끝도 없는 넓은 땅에 누렇게 익은 벼가 그냥 땅으로 떨어져 내릴 때까지 거둘 사람을 기다렸는데, 이미 호열자(콜레라)가 그들을 죽음으로 데리고 갔지요. … 이 얘기가 후에 어떤 선명한 빛깔로 다가왔지요. 삶과 생명을 나타내는 벼의 노란색과 호열자가 번져오는 죽음의 핏빛이 젊은 시절 내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가설을 위한 망상』, 320쪽)
그 빛깔처럼 선명한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 박경리는 지도를 샅샅이 뒤졌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곳이 평사리의 악양 들판이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평사리의 풍경이 소설에 묘사해 놓은 모습과 너무 똑같아 놀랐다고 털어놨다. 몇 해 전 세트를 짓고 TV 드라마를 촬영한 뒤로 평사리는 『토지』의 무대를 방문하는 관광객으로 연중 부산하다.

누가 뭐래도 박경리는 『토지』의 작가다. 그러나 『토지』는 단순히 한 작가의 대표작에 머물지 않는다. 『토지』는 한국의 현대문학이 거둔 최고의 수확이자 하나의 극점이다. 프랑스 문학이 19세기 국민소설의 시대를 겪었던 것처럼 한국 문학은 『토지』로 인하여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었다.

『토지』가 세운 몇 가지 기록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집필 기간 26년. 69년 시작해 94년 8월 15일 완결했다. 권수로 21권이고, 원고지 분량으로 3만1200장에 이른다. 등장인물은 700명을 웃돈다. 『토지』는 또 한국형 문화 콘텐츠의 전형이 되는 작품이다. 수차례 TV 드라마로 방영됐고, 영화ㆍ가극ㆍ창극도 제작됐다. 만화 『토지』와 청소년판 『토지』도 출간됐다. 『토지』의 두 주인공 '길상이'와 '서희'는 한국소설에서 가장 알려진 캐릭터 중 하나다.

#토지문화관과 청계천

박경리는 1999년 강원도 원주
오봉산 자락에 토지문화관(www.togicul.or.kr)을 지었다. 원주 시내에 있던 작가의 집이 개발되자 보상비와 지자체 지원금 등을 모아 세운 문화창작 공간이자 작가 자신의 처소다. 박경리는 여기에 작가 창작실을 마련해 후배 작가들이 공짜로 들어와 서너 달씩 살게끔 했다. 은희경ㆍ김선우ㆍ천운영ㆍ윤성희ㆍ천명관ㆍ백가흠 등이 토지문화관 단골 손님이다.

강원도 인제의 만해마을과 함께 한국에서 두 군데뿐인 작가 창작실을 두고 있지만 토지문화관의 살림은 넉넉하지 못하다. 현재 15개인 작가 창작실을 더 넓히고 싶은 생각도 간절했지만 생전의 박경리는 기업의 후원 따위를 한사코 거절했다. 여기저기에 얼굴 비치며 아쉬운 소리 꺼내는 걸 끔찍이 싫어했던 까닭이다. 박경리는 손수 고추밭과 배추밭을 일궜고, 손수 반찬을 만들어 후배 작가들의 밥상에 올렸다. 생태계 복원이란 큰 뜻 말고도 부식비라도 아껴 보려는 속사정이 담긴 밥상이었다.
토지문화관은 가끔 토론회와 세미나도 주최한다. 몇 해 전 열린 토지문화관 세미나에서 청계천을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초로 제기됐다. 그 제안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후보가 자신의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니까 토지문화관은,
청계천 복원의 꿈이 맨 처음 여문 고향인 셈이다.
그 토지문화관이 주인을 잃었다. 딸 김영주씨가 관장으로 있고, 문화예술 단체의 지원이 당장 끊기진 않겠지만 박경리 없는 토지문화관은 생각만 해도 휑하다. 박경리의 빈자리가 벌써 걱정된다.


<박경리의 환경사랑과 토지문화관>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8.05.05 15:24 | 최종수정 2008.05.05 17:57

 "사고(思考)하는 것은 능동성의 근원이며 창조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능동성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입니다. 하여 능동적인 생명을 생명으로 있게 하기 위하여 작은 불씨, 작은 씨앗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이 토지문화재단 설립의 뜻입니다. 이 뜻을 위하여 마련된 토지문화관에서는 숲 속의 맑은 공간에서 일과성이 아닌 지속되는 토론으로 문제를 다루려 합니다. 우리와 이웃 나라의 석학, 예술인이 모여 환경을 위하여 여러 방면의 현안 문제를 고민하고 토의함으로써 우리들 삶을 추구하고 미래를 모색해 보는 것입니다."

고(故) 박경리씨가 밝힌 토지문화관 설립 취지다.
5일 타계한 '토지'의
작가 박경리 씨는 문학적인 성과 외에도 환경과 생태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활동으로도 의미 있는 자취를 남겼다.

생명 하나하나의 존엄성이 존중돼야 한다는 생명사상은 '토지'를 비롯한 박씨의 여러 작품 속에서 엿보이며 이러한 그의 생명사상은 환경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좀처럼 단체의 대표 직책을 맡지 않았던 그였지만 1993년
환경운동연합 출범 당시 공동대표를 맡기도 할 정도였다.

청계천 복원 문제가 처음 제기될 때에도 박씨가 관여했다.
2000년 청계천 복원을 꿈꾸던 학자들로 구성된 '청계천살리기연구회'가 토지문화관에서 청계천 복원 구상과 관련한 세미나를 개최했고 구상 단계에만 머물던 이 계획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걸면서 구체화됐다.

그러나 박씨는 사업 과정에서 복원이 아닌 개발 위주로 흘러가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하며 "지금의 형편을 바라보면서 미력이나마 보태게 된 내 처지가 한탄스럽다. 발등을 찧고 싶을 만치 후회와 분노를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박씨는 2003년에 문학과 환경문제를 다루는 계간지 '숨소리'를 창간하기도 했으며 2004년에는 1995년부터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로 엮은 환경 에세이집 '
생명의 아픔'(이룸)도 출간했다.

박씨의 환경사랑의 연장선상에서 1999년 설립된 토지문화관도 '토지' 이후 박씨의 활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오봉산 기슭에 위치한 토지문화관은 환경과 생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터전 역할을 해왔다.

여러개의 집필실을 갖추고 작가들에게 공짜로 창작공간도 제공해 소설가 박완서,
박범신, 은희경, 천명관, 고진하 영화감독 이광모 등이 토지문화관 창작실에서 작품을 탄생시켰다.

"목에 힘주다 보면 / 문틀에 머리 부딪쳐 혹이 생긴다 / 우리는 아픈 생각만 하지 / 혹생긴 연유를 모르고 / 인생을 깨닫지 못한다 // 낮추어도 낮추어도 / 우리는 죄가 많다 / 뽐내어본들 우리는 도로무익(徒勞無益) / 시간이 너무 아깝구나"('
우리들의 시간')

토지문화관 1층에서 읽을 수 있는 이 시구절은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포용하려는 박씨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소설가 故 박경리 연보>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8.05.05 15:14

▲1926년 = 10월28일 경남 통영시 명정리서 박수영(朴壽永)씨 장녀로 출생. 본명 박금이(朴今伊).
▲1945년 = 진주고등여학교 졸업
▲1946년 = 1월30일 김행도씨와 결혼. 딸 김영주씨 출생
▲1950년 = 12월25일 남편과 사별
▲1955년 = 8월 '현대문학'에 김동리에 의해 단편 '계산' 추천
▲1956년 = 8월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 추천돼 본격적인 문단활동 시작
▲1957년 = 단편 '불신시대'로 제3회 '현대문학' 신인문학상 수상
▲1958년 = 첫 장편 '연가'를 '민주신보'에 연재, 단편 '벽지', '암흑시대' 등 발표
▲1959년 = 장편 '표류도' 발표, 이 작품으로 제3회 내성문학상 수상
▲1962년 = 전작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 발표
▲1963년 = 장편 '파시' 연재
▲1965년 = 장편 '시장과 전장'으로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 수상. 장편 '녹지대' 연재
▲1966년 = 단편 '집', '인간', '평면도', 연작 '환상의 시기'발표, 수필집 'Q씨에게'간행
▲1968년 = 단편 '우화', '약으로도 못 고치는 병' 발표
▲1969년 = '토지' 1부를 '현대문학'에 연재. 1969년 9월부터 1972년 9월까지
▲1970년 = 단편 '밀고자' 발표, 장편 '창' 연재
▲1972년 = '토지' 1부로 제7회 월탄문학상 수상. '토지' 2부를 '문학사상'에 연재. 1972년 10월부터 1975년 10월까지
▲1973년 = 4월 딸 영주씨, 시인 김지하와 결혼
▲1974년 = 장편 '단층' 발표
▲1977년 = '토지' 3부를 '독서생활'(1977년 1-5월), '한국문학'(1977년 6월-1978년 1월)에 연재 수필집 '호수', '거리의 악사'(민음사) 간행
▲1979년 = 박경리 문학전집 전16권(지식산업사) 간행
▲1980년 = 원주시 단구동 742번지, 지금의 토지문학공원에 정착
▲1983년 = '토지' 4부를 '정경문화'에 연재. 1983년 7-12월
▲1985년 = 수필집 '원주통신'(지식산업사) 간행
▲1987년 = '토지' 4부'를 '월간경향'에 연재. 1987년8월-1988년 5월
▲1988년 = 시집 '못 떠나는 배'(지식산업사) 간행
▲1990년 = 제4회 인촌상 수상 중국기행문 '만리장성의 나라', 시집 '도시의 고양이들'(동광출판사) 간행
▲1991 = 8월 연세대학교 원주 캠퍼스에서 강의 시작
▲1992년 = 9월1일부터 '토지' 5부를 '문화일보'에 연재 시작
▲1993년 = 장편 '김약국의 딸들', '파시', '시장과 전장'(나남출판) 간행
▲1994년 = '박경리의 원주통신 -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문학선 '환상의 시기', '가을에 온 여인' (나남출판)간행. 8월15일 집필 26년만에 '토지' 탈고. 이화여대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 10월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올해의 여성상' 수상. 12월 유네스코 서울위원회 '올해의 인물'로 선정
▲1995년 = 3월 연세대 원주캠퍼스 객원 교수로 임용.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현대문학사) 간행
▲1996년 = 3월 제6회 '호암상 예술상' 수상. 4월 칠레 정부로부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문학기념 메달' 받음. 5월 토지문화재단 창립 발기인 대회
▲1997년 = 연세대학교 용재 석좌교수로 임용. 사단법인 토지문화관 이사장
▲1998년 = 토지문화관 착공, 1999년 6월 9일 개관
▲1999년 = 장편 '표류도'(나남출판) 간행
▲2000년 = 시집 '우리들의 시간'(나남출판) 간행
▲2002년 = 1월 '토지' 재발간(전 21권. 나남출판)
▲2003년 = 1월 '만리장성의 나라' 재출간(나남출판). 1월 9년만의 신작소설 '나비야 청산가자' 현대문학 4월호에 연재 시작.(3차례 연재 후 중단. 원고지 440매 규모). 4월 문화와 환경전문 계간지 '숨소리' 창간(2004년 말 폐간). 7월 청소년용 '토지' 12권으로 완간(이룸). 7월 첫 장편동화 '은하수' 출간(이룸). 1960년에 쓴 장편 연애소설 '성녀와 마녀'출간(인디북)
▲2005년 = 11월 팔순잔치
▲2007년 = 5월 만화가 오세영 작 만화 '토지'7권 출간(마로니에북스) 5월 13년만의 신작 산문ㆍ소설집 '가설과 망상'출간
▲2008년 = 3월 '현대문학' 4월호에 '까치설' 등 신작시 3편 발표. = 5월5일 타계 (서울=연합뉴스)

 

"박경리 선생, 노년에 '토지' 한편 더 쓰신 것"

머니투데이 | 기사입력 2008.05.05 17:42


 

 
최민수씨의 최근 사건에서 기이한 감정의 변화를 느꼈다.
사실 너무 마초적 이미지인 그에 대해 별로 좋은느낌이 아니었다.
인간적 감정에 대한 실수, 그리고 그 잘못에 대한 인정과 사과 ..
어떻게 정리 됐는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소위 '터프'를 생명처럼 여기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다는 것이다.
과격하게 비춰지기도 하지만 흔히들 공인이 그럴 수 있느냐는 말도 있지만
의미조차 퇴색해진 '정의'를 위해서 또는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주먹을 휘두르고
그러나 그 주먹(폭력)에 대해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절제하게 되고, 조심하게 되는 모습을 본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잘못할 수 있다. 인간인 이상 ..
그것이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순간부터 반성은 시작되고, 더 이상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설령 그것이 먹고 살기위한 문제였더라도 말이다. 
 
아까전 11시가 넘은 시간에 동네 골목에서 시끄러운 경적소리에 집들 구석구석을 파고들었고, 잠깐이 아니라 지속되어 짜증스러웠다. 그런데도 그 소리는 계속 울렸고, 드디어는 이곳저곳 사람들의 짜증섞이 목소리와 화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나도 무슨 일이 났나 싶어서 나가봤더니 주차된 차 사이를 비껴들어오려던 차가 반대편으로 돌아 들어와도 될텐데 클락션을 계속 울리고 있고 사방에서 사람들이 나와 항의했다. 마침 약주를 좀 하신 어르신이 나오셔서 시끄럽다고 운전자측 문을 열어 운전자의 멱살을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운전자가 길에 쓰러졌다. 술 취한 아저씨도 같이 쓰러졌다. 그리고 큰 목소리가 오가더니 운전자가 벌떡 일어나 주소를 대며 술 취한 사람이 자신을 쳤다며 신고를 해버렸다. 사람들은 어이없어 했다. 잘못은 누가 했는데 .. 하며 ..
자신이 잘못한 것은 생각도 않은 채 .. 사람들의 항의에도 계속 클락션을 울려대서 좀처럼 동네 일에 나서지 않는 본인도 화가 났는데 약주를 하신 분이야 두말할 나위가 있나 ..
자신의 부끄러움은 생각도 않고, 멀쩡하게 일어나 맞았다며 신고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러고 PD수첩 끝 부분을 보게 됐는데 친일인명발표와 관련해 판단이 어떤지를 묻는데
방금전 그 사건이 떠 올랐다.
 
자신의 잘못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신고하는 사람... 
부산의 어느 장애인은 600원을 훔쳤다고 속죄와 속죄를 감수하고도 300만원의 벌금을 받았다고 하는데
부정부패로 쌓은 재산이 많을수록 절대 벌금 받지 않는 사회 ... 그 저질 자본 형성의 근간, 잘잘못을 판단할 수 없는 ..아니 그야말로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되는 사회가 된 슬픈 21세기의 뿌리가 거기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분명 친일파들이 청산되지 않고, 오히려 반민족특위가 테러를 당한 그 순간부터
독립운동가들과 그 가족들, 일제의 수탈을 견디지 못하고 고국을 떠났던 동포들은 .. 21세기 돈이나 벌러오는 천대받는 동포가 되어버렸다.
친일파들은 대를 이어 재산을 축적하고 축적하고 축적하고 .. 대통령도 되지 않았던가
일제시대 최상의 권력과 돈을 쥔 자들이 거의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졌으며 ..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읽던 위인전과 ... 대학수능의 역사에 까지 (올 해는 없어졌지요? 그래도 얼마전까지..) 온갖 과목에서 듣던 위대한 인물들의 치욕적 행동이 들어나도
기껏 듣는 것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라니 ...
 
문제는 잘못에 대한 반성이 제대로 있어보지 못한 역사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은 국민들은 .. 그저 낮게 누워 살 수 밖에 없는 역사는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건희 이재용 일가와 삼성은 일벌 백계를 해도 모자른 판에 .. 그럴수도 있지 않냐는 검찰 ..
현대 정몽구 회장의 사회봉사 명령이라니 ..
결국 광우병 고기가 들어간 줄도 모르고 먹도록 하는 대통령에다가
광주를 피로 물들인 인물들도 떵떵거리며 단 위에 오르는 시대
부끄러운 강부자 내각은 집값, 땅값 오르면서 '더'부자 내각이 되고,
투기와 불법으로 부자가 된 것에 아무 부끄럼도 모르는 사람들 ..
 
이런 낯부끄러운 역사의 흐름속에서도 살아온 내 어머니가 어리석은 것인지 대단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착한 사람이 어리석다고 손가락지 받는 시대 ..
그것은 무엇이 옳은지 바른지 가르쳐줘도 믿을 수 없는 시대,
그리고 그것을 그렇다고 말할 수 조자 없는 시대 라는 거 ..
오로지 부자만을 위한 경제대국 ..
70~80% 서민들은 자기가 수십년 살던 동네 조차, 부자들이 기업들이 80%이상 땅을 사들이면 무조건 빼앗겨야 하는 시대라니 .. 그것도 법이라니 ..
 
법, 그거 최소라던데 ...
힘없고 돈없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던데
어째 ..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을 지켜주는 법이 되었군요 ..
그들은 다 피해가지요 .. 
 
이야기가 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 이 이상하고 괴상한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잘못한 것 모르고,
떵떵거리며 돈과 명예와 권력을 손에 쥐고 흔드는 그 사람들의 근간이
어디서 부터 왔을까를 생각합니다.
 
성실하고 열심히 일해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는 시대,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 없이는
갑자기 개발이 되서 없던 돈이 왕창  생기게 되는 횡재(이제는 더이상 가능하지 않겠지만) 없이는
공부 잘 해서도 올라갈 수 없는  부자들의 나라 .. (물론 요즘의 교육의 기회도 박탈되거나 .. 거기부터 끝장났지만 .. ㅜ.ㅜ)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는 것이 잘못인건가요?
널 죽이겠다. 송장을 파 내어 갈아버리겠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잘못했으니 반성하고 사죄하고 .. 거기에 대한 댓가를 치뤄라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는 시대였더라도,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잘못이었다고 ...
 
최민수씨의 자기 비판과 반성이 기억에 남는 이유입니다.
소란을 피우고도 자기 잘못은 생각도 안한 채 항의하는 아저씨를 신고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 이유입니다.
촌스러운 중국 역사 드라마의 한물 간 교훈들이 새삼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숭례문을 태운 70대 할아버지의 10년형이 왠지 부당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제가 날로 욕이 느는 이유입니다.
이 나라가 부끄러운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에선 힘과 권력과 대기업을 가진 자들이 오래사는 이유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서겠죠? 제발 그들이 일찍 죽어도 명예롭게 죽는 것을 보고 싶네요 ..
 
[현장] 3일 곳곳 ‘쇠고기 집회'…경찰 "불법집회 강제해산" 경고도
분노한 2만 대중 "이명박 OUT"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디어 다음> 아고라에 마련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서명란에는 동참한 네티즌들은 1백만명을 육박하고 있다. 2일에 이어 주말인 3일에도 도심 곳곳에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행사가 연이어 열렸다.

장면 #1 -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서명운동

오후 3시부터 청계천 광교 근처에서는 ‘정책반대시위연대’와 ‘민노당 서울시당 학생위원회’ 주최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대국민 서명운동이 열렸다. 서명운동이 진행되던 집회장 주변에는 재미있는 문구의 현수막들이 많이 걸려 있었다.

 

그중 ‘우리의 머슴, 대통령께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현수막에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싶은 3가지 가 적혀 있었다. △공약을 절대 지키지 말아주세요 △2MB짜리 초심은 제발 좀 잊어주세요 △임기 5년 내내 여행을 가셔도 됩니다. 절대 뭐라고 안 할 겁니다. 푹 쉬다 5년 후에 오세요.

 

   
청계천 광교 주변에서 오후 3시부터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서명운동 현장의 모습. (사진=손기영 기자)
 

또 광우병의 위험성을 알리는 홍보물들도 거리를 따라 전시되어 있었고, 지나가는 시민들은 홍보물의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는 모습이다. 이날 서명운동에는 많은 수의 시민들이 동참했는데, 특히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들은 광우병 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인 이승철 군은 “처음에는 광우병이 사람에도 전염된다는 말이 사실이 아닌 줄 알았는데, 최근 광우병이 사람에게도 옮겨지는 위험한 병인 걸 알게 되었다”며 “앞으로 학교급식에서 쇠고기가 나오는 날은 밥을 안 먹겠다”고 말했다.


동방신기 오빠들 광우병 쇠고기 먹을까봐 서명

역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인 정혜민 양은 “제가 좋아하는 동방신기 오빠들이 광우병에 걸린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까봐 걱정이 돼서 서명운동에 동참했다”며 “얼마 전 TV 뉴스에서 광우병이 걸린 소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앞으로 그런 소를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인 정진희 양은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광우병이 사람에게도 위험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며 “단지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안 먹으면 그만이 아니라, 생리대·화장품 등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고 들었다”며 걱정했다. 

서명운동 집회장 한 편에서는 중학교 3학년인 홍승본 군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홍군은 “형이 군대에 있는데, 앞으로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군대가 그 위험에 가장 먼저 노출될 것 같다”며 “어쩔 수 없이 광우병 쇠고기를 먹어야 될지 모르는 우리 형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서 여기까지 나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홍군은 “저도 라면을 무지 좋아하는데, 이제 큰 일”이라며 “앞으로 시민들이 매일 매일 광우병 집회를 해서, 미국산 쇠고기를 못 들어오게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장면 #2 - ‘광우병 잡는 날’ 범국민 문화제

 

이어 오후 5시 보신각 앞에서는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등 1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국민감시단’의 주최로 ‘광우병 잡는 날’ 범국민 문화제가 열렸다. 집회장 주변에선 얼룩 소 복장을 하고 광우병의 위험성이 적힌 홍보전단을 돌리는 진보신당 당원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짜라빠빠’에 맞춰 대학생들의 흥겨운 율동으로 시작된 이날 범국민 문화제는 전반적으로 편안하고 가벼운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우선 첫 순서는 ‘길거리 골든벨’이었다. 이 코너는 광우병에 관련된 상식 3문제를 내고, 정답을 맞추는 사람들에게 티셔츠를 선물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보신각 앞에서 오후 5시부터 시작된 '광우병 잡는 날' 범국민문화제 현장의 모습. (사진=손기영 기자)
 

‘광우병을 일으키는 물질은?’, ‘영국에서 광우병이 최초로 발병된 해는?’, ‘미국에서 아직 시행되고 있지 않은 사료정책은?’ 등 결코 쉽지 않은 난해한 문제들이 나오기도 했다.

이날 범국민 문화제에는 오종렬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와 진보신당 심상정 상임공동대표, 민노당 이정희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인,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도 참석했다.

오종렬 상임대표는 “미국산 쇠고기가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는데도 우리가 왜 미치고 있는지 아냐”며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놈들이 미국놈보다 더 미국놈처럼 ‘광우병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홍보하고 다니깐 국민들이 미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상정 "정운천 장관 즉각 파면시켜야"

 

진보신당 심상정 상임공동대표는 “광우병은 700도에서도 끄떡없고 후추알갱이 크기의 1/1000만 먹어도 위험하다”며 “이러한 위험에 아직도 할 말이 많은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즉각 파면시키자”고 말했다. 

심 대표는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만 용감한 대통령, 부시하고만 친한 대통령”이라며 “쇠고기 수입 전면개방을 철회하지 않고, 국민의 이러한 뜻까지 외면한다면, 이명박 정부를 미국에 수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일반시민들의 자유발언대 시간이 진행되었다. 중학교 교사인 황호영 씨는 무대에 오르며, SBS <웃찾사>의 인기코너인 ‘웅이 아버지’의 흉내를 내며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황씨는 “정말 학교급식에 미친 소가 나올지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황씨는 “이와 더불어 요즘 학생들은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똥 좀 싸자’란 말을 밥 먹듯이 한다”며 “미친 소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미친 교육’도 같이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부인 조현희 씨는 초등학생 딸과 함께 무대에 올라, “국민들에게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 문제를 설명하는 ‘정부식 논리’는 우리 아이가 여자 아이인데, 자꾸 남자 아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김성호 할아버지 역시 “개도 안 먹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 우리 국민들을 ‘지랄병’에 걸리게 할 작정이나”며 따져 묻기도 했다.

이어서 한 통신사의 CM송으로 유명한 ‘되고 송’ 패러디 경연대회도 열렸다. 청소년들이 주축을 이룬 경연대회 참가자들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생각을 개사해, 노래로 불렀다. 1등을 차지한 학생은 부상으로 5kg 짜리 우리 쌀을 받았다.

 


장면 #3 -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

 

저녁 7시 청계광장 주변에서는 ‘미친소닷넷’의 주최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하지만 청계광장에서는 한 소주업체의 판촉공연이 진행되고 있던 중이라, 참석자들은 청계광장을 제외한 주변부근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화가 난 참석자들은 “XXX 소주 안 먹어”, “어서 음악 꺼라”를 외치며 항의하기도 했다.

이날 촛불문화제에는 미친소닷넷 회원들을 비롯해, 오후에 관련행사를 벌인 ‘정책반대시위연대’, ‘의료보험민영화저지연대’,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국민감시단’ 회원들도 동참했다. 또 많은 시민들도 자발적으로 문화제에 참여했다.

   
청계광장 주변에서 저녁 7시부터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 현장의 모습. (사진=손기영 기자)
 

촛불을 든 참석자들의 물결은 무대를 바라본 방향에서 왼쪽으로 서울파이낸스 빌딩, 오른쪽으로는 일민미술관까지 그리고 뒤로는 광교부근까지 이어졌다 주최 측인 미친소닷넷은 약 2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행사에 참석했다고 밝혔다.(경찰 추산 7천명) 

2일 저녁 촛불문화제와 같이 이날 촛불문화제도 주부·교사·할아버지·여고생 등 다양한 일반시민들에게 자유발언이 허락되었다. 하지만 2일에 비해 훨씬 많은 수의 시민들이 자유발언을 할 수 있었고, 행사의 중심을 이루었다.

 

 

참석자들 자유발언이 행산 중심 이뤄

시민들은 자유발언에서 광우병 쇠고기 문제뿐만 아니라, 등록금·장바구니 물가·군복무·학교수업 문제 등 일상적인 주제의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뿜어냈다.

또 문화공연으로 ‘미친 소를 때려잡는 후레시 맨’의 율동공연, ‘광우병 송’ 따라 부르기, 이명박 정부를 풍자하는 가사 내용을 담은 힙합공연 등 다양하고 신선한 프로그램이 진행돼 참석자들의 흥을 돋웠다.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강민준씨(31)는 “예전에 집회 현장에 가면 과격한 구호나 투쟁가요 때문에 왠지 거부감이 느껴졌다”며 “또 특정한 사람의 연설만 듣고 있는 게 아니라, 의사가 있는 시민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게 된 점도 집회문화의 새로워진 모습 같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문화공연보다 일반시민들의 자유발언이 길어지면서, 경찰은 이날 촛불문화제가 집회 성격이 더 강하다고 판단해, ‘불법 집회’로 규정했다. 이어 행사를 진행하는 주최 측에 총 3차례의 해산경고까지 내렸다. 

저녁 7시 25분 관할 종로경찰서는 현장에 있는 집회통제차의 마이크를 통해 “여러분은 촛불문화제가 아닌 불법집회를 하고 있다”며 “1차로 해산명령을 내리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평화시위~ 평화시위”를 외쳤다.

 

 

경찰 세차례 해산 경고도

이어 저녁 7시 40분 2차 해산경고가 내려졌고, 저녁 8시 10분에는 “이제 3차 해산경고를 내리겠다”며 “그래도 해산하지 않으면, 관련자들을 사법처리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오히려 “경찰들도 우리와 함께 하자”며 되받아쳤다. 

이날 촛불문화제는 밤 9시 15분 경 모든 일정을 소화하며 마무리됐다. 이날 촛불문화제를 주최한 미친소닷넷은 5월 6일 저녁 7시에도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다시 열기로 했다.

2008년 05월 04일 (일) 02:37:20 손기영

똑똑한 찌꺼기

 

대단한 요리를 매일 하는 것도 아닌데 음식물 쓰레기의 양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버리는 것도 고역이어서 고가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가 인기라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하면 버릴 것이 전혀 없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로 고민하다 절반 이하로 줄이는 노하우를 쌓게 된 가정요리 연구가 박연경씨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자투리 채소와 음식물 찌꺼기 활용법을 알아본다.

 

기름때 벗겨낼 때=차 찌꺼기가 효과적이다. 싱크대나 조리대를 청소할 때 활용하면 좋다. 차의 사포닌 성분은 세균 감염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 원두커피 찌꺼기, 녹차·홍차 찌꺼기, 먹다 남은 소주, 김빠진 맥주, 쌀뜨물, 국수 삶은 물, 쓰다 남은 밀가루 모두 기름때 제거에 효과적. 자투리 무나 감자껍질로 싱크대 주변을 문질러 닦으면 반짝반짝 윤이 난다. 야채나 과일을 씻을 때 찻잎 우린 물로 헹구면 농약 걱정을 덜 수 있다.

표백·염색=말린 귤껍질, 말린 레몬껍질, 달걀껍데기 등을 넣고 흰옷이나 행주를 삶으면 더욱 하얗게 된다. 염색도 가능하다. 소재는 좋아 오래 입고 싶은 면 티셔츠가 있다면 깨끗이 빨아서 물기가 남지 않게 꼭 짠 뒤 주름을 편다. 홍차 티백을 물에 넣고 푹 끓이다가 색이 우러나오면 티백을 건져낸 다음, 소금과 식초를 각각 두 티스푼씩 넣고 다시 끓인다. 소금과 식초는 물이 잘 들도록 촉매제 노릇을 하며 한 번 든 물이 잘 빠지지 않게 해준다. 끓는 찻물에 손질한 천을 넣고 20분 가량 삶는다. 은은한 베이지 색으로 물들면 꺼내어 물기를 짠 후 그늘에 말린다.

탈취=커피 찌꺼기, 각종 차 찌꺼기, 식빵 자투리 등을 냉장고나 전자레인지처럼 냄새가 배기 쉬운 곳에 넣어두면 좋다. 특히 전자레인지에 홍차 또는 블랙커피를 한 잔 넣고 1~2분간 가열하면 악취 제거에 효과적.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주전자나 플라스틱 밀폐 용기 등에도 홍차나 녹차 찌꺼기 한 스푼을 넣어 두면 냄새가 없어지고, 생선을 구운 프라이팬을 마시다 남은 찻물로 닦아 내도 냄새가 쉽게 없어진다.

냄새=돼지고기, 쇠고기나 생선을 요리하기 전 홍차나 녹찻잎을 넣어 두면, 차 속의
폴리페놀 성분이 좋지 않은 냄새를 없애고 육질도 부드럽게 만든다. 양파 껍질과 뿌리도 돼지고기를 삶을 때 넣으면 누린내를 없애준다. 생선을 만지는 등 요리를 하다 손에 밴 냄새 역시 찻잎으로 닦으면 말끔하게 없어진다. 간고등어나 비린내 나는 생선을 쌀뜨물에 담가놓으면 짠물과 비린내도 빠지고 육질이 훨씬 부드러워진다. 쌀뜨물에 죽순, 토란대 등을 넣고 삶으면 아린 맛을 확실하게 제거한다.

얼룩=찻잔이나 티포트에 생긴 얼룩 역시 녹차찌꺼기, 감자껍질 등을 물에 잠시 담가놓은 후 문지른다. 그을린 스테인리스 냄비는 먹다 남은 피클 국물, 레몬처럼 신맛 나는 과일 껍질을 넣어 끓여 수세미로 닦는다.

화초비료=쌀뜨물을 화초에 주면 영양제가 필요 없다. 커피 찌꺼기도 도움이 된다. 마시고 난 홍차 티백에는 여전히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 등 많은 양분이 남아 있으므로 차 찌꺼기를 꺼내 화분에 뿌려준다.

천연방향제=말려 둔 찻잎을 망사 주머니에 넣어 옷장, 냉장고, 신발장 속에 걸어 두면 좋다. 홍차의 타닌성분과 엽록소의 강력한 흡수력이 곰팡이 냄새를 없애주고, 은은한 향기가 옷에 배어 기분이 상쾌해진다.

가구·마루 닦기=목재 가구나 나무를 닦을 때는 물 한 컵에 홍차 두 봉지를 넣고 끓인 뒤 식혀 헌 수건에 묻혀 닦으면 좋다. 홍차 속 타닌 성분 덕에 가구에 윤도 내고, 마루도 선명하고 깨끗하게 닦아 낼 수 있다.

감기=진피(귤 껍질 말린 것), 사과껍질 등 과일껍질과 물, 자투리생강, 파뿌리 등을 모아 물 5컵을 붓고 3컵 정도로 줄어들 때까지 약한 불에 끓여 차처럼 마시면 환절기 감기 예방에 도움을 준다. 곶감 꼭지도 버리지 말고 모아 두자. 꼭지 20개에 물 300ml를 붓고 30분 정도 끓여 뜨거울 때 마시면 효과가 있다.

속 쓰림=버리기 쉬운 양배추 심을 즙으로 내어 먹으면 속 쓰림에 효과적이다. 감자를 껍질째 갈아 1큰술 공복에 먹어도 효과가 있다.

입안이 헐 때=그늘에서 말린 가지 꼭지 5~6개에 물 4컵을 부어 절반으로 졸 때까지 달인 다음 굵은 소금을 한 줌 넣어 몇 번 목안을 헹궈낸다.

족욕=마시고 남은 녹차 티백 몇 개를 모아 세숫대야에 40℃ 정도의 따뜻한 물을 붓고 티백을 넣은 다음 발을 담가 족욕을 즐기면 발 냄새 제거에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반신욕=먹다 남은 청주나 와인을 욕조에 넣고 목욕을 하면 피로 회복에 좋다. 술은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도록 도와주므로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뭉친 근육이나 피로를 빨리 풀 수 있다. 욕조에 40℃ 정도의 따뜻한 물을 절반 이상 채우고 청주나 와인 반 병 이상을 부은 다음 10분 정도 몸을 담그기를 2~3회 반복한다.

부기=아침에 유난히 잘 붓는 사람이라면 녹차나 홍차 티백을 활용한다. 한 번 우려낸 티백을 차갑게 해서 눈두덩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된다. 책을 읽다가 눈의 피로를 느낄 때도 이 방법이 좋다.

벌레=우려 마신 찻잎을 말려 두었다가 모깃불처럼 태우면 벌레를 쫓는 데 도움이 된다. 인공 모기약과는 달리 사람에게 자극이 적다.


네티즌이 중심이 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 부근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유성호


네티즌이 중심이 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에 참가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특별취재팀
글 : 이경태 송주민
사진 : 권우성 유성호
동영상 : 김호중
[4신 : 2일 밤 9시 20분]
"미친 소를 청와대로"... 13000명 시민들 한목소리


네티즌이 중심이 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에 참가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너나 먹어 미친 소"
"미친 소를 청와대로"
"반성하라 조중동"
"이명박은 물러가라"
저녁 8시30분, 청계천 소라공원 앞은 그야말로 용광로다. 촛불을 든 1만3000여명의 시민들이 발디딜틈 하나 없이 광장 옆 인도까지 가득 메웠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탄핵"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특히 바로 옆쪽에 위치한 < 동아일보 > 를 향해서도 "니네가 신문이냐, 물러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집회에는 10대, 20대 젊은 이들이 많이 나왔다. ㅅ중학교 3학년인 이아무개(16)양은 "이런 곳에 처음 나와보는 데 많은 시민들이 함께 모여 있으니 정말 신난다"며 "선생님과 부모님께서
광우병은 정말 위험한 것이라고 말해줬다, 꼭 수입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에 있던 같은 학교 친구 박아무개 양도 "학교 급식에 쇠고기가 나온다면 차라리 도시락을 싸서 먹을 것"이라며 "이렇게 열심히 외치다보면 미국에서 미친 소가 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동국대에 재학 중이라는 김아무개(22)씨도 "이렇게 우리 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와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감동적"이라며 "정부 여당은 우리를 보고 특정 세력이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고 폄훼하는 데 이렇게 어린 학생들과 우리 젊은이들도 정치 선동에 가세한 사람들인가"라고 반문했다

연세대 재학중이라는 박아무개(23)씨도 "정말 깜짝 놀랐다"고 운을 뗀 뒤 "그냥 뉴스보고 조금 열받은 상태였는데, 이렇게 나와보니 국민적인 분노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나쁜 쪽으로만 말하지 말라고 하는데 실제로 정부는 국민들이 걱정하는 부분을 전혀 말을 해주지 않고 있다"면서 "우리가 나설 수 밖에 없지 않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네티즌이 중심이 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 부근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네티즌이 중심이 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에 참가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3신 : 2일 저녁 8시 40분]
"내신 8등급도 미친 소 못먹는다"... 곳곳에서 '자유발언'
저녁 8시 20분 현재 집회 참가자 수는 1만3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집회 장소 곳곳에서는 자유발언과 함성이 이어지고 있다. 행사 주최측이 마련한 무대 뿐만 아니라 즉석에서 시민들이 군데군데 모여 자유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코리아나 호텔 앞에 모인 집회 참가자들은 마이크를 돌려가면서 30분째 자유발언을 이어 가고 있다.

고려대 학생이라고 밝힌 한 대학생은 "이명박 대통령이 고려대 출신이라는 것이 부끄럽다"며 "하지만 이 거리에 나온 대학생 중 많은 사람들이 또한 고려대 학생이다"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21살의 대학생이라고 밝힌 한 집회 참가자는 "지금 정부가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려는 것은 국민의 건강권을 무시한 처사다"라며 "이 정부는 반대하는 시민들을 향해 '빨갱이, 좌파'라고 몰아붙이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빨갱이 좌파입니까?"라고 반문한 뒤 "지금 우리 앞에는 조선일보, 맞은 편에는 동아일보가 있는 데 이들도 우리를 빨갱이 좌파라고 한다. 이들에게 한마디 해주자. 미친 소 너나 처먹어"라고 말했다.

망원동에 사는 40대 주부라고 밝힌 한 참가자는 "이 대통령이 텔레비전에서 나와 쇠고기 수입이 결정됐다며 박수를 치는 것을 봤다"면서 "어떻게 일국의 대통령이 그럴 수 있나, 이번에야 말로 국민의 힘을 보여줄 때다"라고 밝혔다.

20세 비정규직이라고 밝힌 한 여성 참가자는 "국민 건강 하나 못챙기는 대통령이 무슨 경제를 살리냐"며 "더이상 이 꼴을 못보겠다"고 성토했다.

'내신 8등급'이라고 밝힌 고교 2년생은 "내신 8등급도 미친 소 못먹는다"며 "수입이 철회될 때까지 다음 집회에도, 그 다음 집회에도 '고고싱'"이라고 외쳤다.

밤 8시450분 현재도 자유발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은 자유발언 중간중간에 "미친 소 너나 먹어라" "미국산 쇠고기 반대한다"를 외치며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2신 : 2일 저녁 8시 5분]
"무책임한 정치인에게 경종을"... 촛불시위 참여자 계속 늘어나


네티즌이 중심이 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에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 유성호


네티즌이 중심이 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에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 유성호
현재 집회에 참여한 인원은 7000여명을 훌쩍 넘어섰다. 집회 참가자는 파이낸셜센터 앞 인도부터 프레스센터 앞까지 인도를 모두 차지한 채 촛불을 들고 있다. 또 다른 한쪽은 애초 집회장소였던 청계 광장부터 한국정보사회원까지 발디딜틈 없이 꽉 들어차 있다.

현재 주최측이 마련한 무대는 파이낸셜센터 앞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집회 참가자들은 주최측의 진행과는 무관하게 들려오는 노래소리에 맞춰 촛불을 흔들며 각자 산발적으로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정하영(38·노원구)씨는 "지난 주 토요일에도 집회에 참석했지만 오늘은 정말 많이 모였다"며 "얼핏 보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이 많던데 이날 집회를 통해 정치적 의식을 한 차원 높이고 무책임한 정치인에게 경종을 울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5살난 아이가 어린이 집을 다니고 있는 데 단체 급식을 통해 광우병에 걸릴까 걱정"이라며 "정부가 아직 스스로 선택할 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죽음에 이를지도 모르는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재 집회 참가자들은 촛불을 치켜 올려세우며 '이명박 탄핵'을 외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중구 관할만 약 5개 중대가 나와있다"며 "사람들이 계속 몰려와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강기갑 의원 "울어야 될 일인데... 정말 든든하다"
"강기갑... 강기갑... 강기갑"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연한 갈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집회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강기갑'을 연호했다. 강 의원은 저녁 7시30분께 이정희 당선자와 함께 집회장을 찾았다.

강 의원은 "정말 마음이 든든하다"면서 "울어야 될 일인데 학생과 시민여러분을 보니까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이어 "국민이 나서야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지금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국민들이 직접 자신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나왔는 데 우리들은 한 것이 없어 부끄러운 생각"이라고 겸연쩍어했다.

캐쥬얼 차림으로 옆에 서 있던 이정희 변호사는 "특히 '젊은놈들'이 너무 많이 보여서 정말 든든하다"며 흐뭇해했다.

강 의원과 이 당선자는 현재
촛불집회 장소 맨 앞쪽에 앉아 시민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네티즌이 중심이 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수백명의 시민들이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권우성
[1신 : 2일 저녁 7시 45분]
"미국 쇠고기 반대!" 광화문 5000여명 운집


네티즌이 중심이 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한 시민이 미국산쇠고기 수입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온라인 상의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이 오프라인으로 확산되고 있다.
포털 다음의 '
안티 이명박' 카페는 2일 저녁 7시 청계천에서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문화제를 열고 있다. 오후 7시 40분 현재, 청계천의 청계광장 인근 파이낸셜센터 옆 인도에는 500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있다.

애초 청계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이명박 탄핵 집회는 청계천 시설관리공단의 요청으로 자리를 옮겨 진행중이다. 이들은 '안티 이명박' 카페와 태극기, '민족반역자 처벌 연대' 등의 깃발을 들고 있다.

모여든 사람도 다양하다 30~40대 직장인에서부터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도 눈에 띈다. 집회 참가자들의 뒤쪽에는
유모차를 끈 아주머니들도 있다.

'안티 이명박' 인터넷 카페 대표인 백은종씨는 "1만개 정도 되는 양초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백 대표는 "사실 평범한 우리가 칼바람을 맞으면서 탄핵을 외쳤을 때 어떤 언론도, 저명인사도 우리에게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며 그간의 섭섭함을 토로했다. 백 대표는 "우리는 단지 불이 났으니까 '불이야'라고 외친 것이고, 도둑을 봤으니까 '도둑이야'라고 외친 것"이라며 "이명박의 부도덕성을 한 줄이라도 역사책에 기록하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 대표는 "산이 높으면 골이 깊기 때문에 앞으로 막강한 정부 권력으로부터의 시련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다음 주에는 카페 운영 집행부와 앞으로의 투쟁 계획을 세우기 위한 워크숍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티 이명박 카페의 회원수는 MBC < PD수첩 > 이 지난 4월 29일 수입 소 관련 내용을 방영한 이후 급속히 늘어나 2일 오전 5만명의 회원을 돌파했다.



네티즌이 중심이 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수백명의 시민들이 행사 시작 몇시간 전부터 모여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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