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이민숙 교사 “답안지 제출 거부 후회 없어요”
출처: 경향신문 2008.03.10 06:31
출처 :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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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

느낌이,

이미지가,

잡힐 듯 잡힐 듯 .. 잡히지가 않습니다.

 

만들려고 했던 영상의 시놉을 정리해보니

2004년 총선후보 선출대회용 영상과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영상일 것이라는 

 

새로운 진보정치를 생각하면서

새로운 진보신당을 건설하면서

과거는 떼어놓을 것이 아니라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미지를 그릴 것인가?

사실 좀 암담합니다.

지난 해 만든 영상들을 훑어 보았습니다.

제가 2~3년 당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더군요

 

얼마만큼의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까요?

얼마만큼의 새로움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다시 눈덮힌 광야에 발자국을 내고 있는 건가요?

 

제가 .. 느끼는 것이 .. 

새로움이 아니라 .. 

하지 못했던 것을 하기 위한 시작이고 ..

하려고 했던 것을 계속 하기 위한 시작일 뿐이라는 거죠.

 

진보신당의 시뮬레이션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 이전의 이미지에서 .. 더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허공에 발을 딪고 있다 생각하지 않았지만

왜일까요? 이 막연함은 ..

제 이해가, 제 절망이, 제 활동이 .. 절실하지 않은걸까요?

간절히 원하고 있지 않은 걸까요?

 

사진들을 골라놓고도 .. 편집기 위에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방과 자유당시절, 4.19혁명과 5,16쿠데타, 박통정권아래서의 갖은 시련,

여성노동자들의 투쟁과 전태일의 죽음, 박통의 죽음과 5,18광주항쟁, 전두환의 폭압

이어지는 투쟁들 5.3항쟁과 박종철군 고문치사, 이한열의 죽음,  6월항쟁과 이어지는 노동자대투쟁

6.29선언과 3당야합, 전노협과 민주노총 건설, 전교조 출범 등으로 이어지는 와중의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IMF, 대우차 정리해고로 시작된 2000년대의 시작과 함께 창당한 민주노동당의 출현, 2004년 총선의 거대한 소수 ..

 

언제나 저의 영상은 어줍잖은 실력으로 현대사를 훑어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인천 5.3 민주항쟁이나 열사희생자영상도 그랬고, 인천에서의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 그랬습니다.

시민연대 10주년 영상도 그랬고 총선후보영상도 그랬습니다.

다시 그 영상을 바탕으로 "임을위한행진곡"을

TV가 끝날때 애국가와 함께 흐르는 영상처럼 만들어 보려던 욕심이었습니다.

그런데 ..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지난해 프랑스 투쟁을 넣고 싶어졌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승리의 환희를 .. 우리의 승리는 어디에 있나요?

승리의 기억을 떠올리고 싶은데 ..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없는 것인지 .. 기억나지 않는 것인지 ..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콜트악기와 대우자판 최열사와 계양산투쟁

우각리 공동체 미술작업과 배다리 산업도로 투쟁, ..

이런 영상들 속에서 ..

지금 우리의 길은 ..

애초에 우리가 원했던 그 길 앞에 다시 섰다 .. 는 느낌 뿐

그 이상의 새로운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가슴이 많이 무거워져서 .. 편집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컴을 켜둔 채 ..

신영복 선생의 <강의> ... 를 읽었습니다.

주역편에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주역편 끝 부분에 박궤와 미제궤를 풀어냈는데 .. 그 속에서 한 구절이 썩 맘에 듭니다.

그 이야기를 풀어볼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상으로 만드는 건 또다른 문제지요 ..

시간이 너무 없다는 게 .. 가슴이 답답합니다.

어쩔 수 없이 처음 고민했던데로 가야 해야하는데 ..

그게 또 싫어서 ....... 시작하기가 힘듭니다. 

 

새로움이 없는 이미지의 반복이 너무 .. 너무 싫습니다.

다음에는 .. 다음에는 

더 다양한 사람들과 더 다양한 과정과 실천을 통해 더 풍부한 이미지로 채워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 ..

정말 .. 돌아버리겠다 .. ㅠ.ㅠ

 

 

 

 

 

 

 

 

출처 :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인천모임
글쓴이 : 강 ... 원글보기
메모 :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

나에게 그것은 분명 가슴 두근거리는

흥분과 아름다움이 있다.

다양한 의미에서 긍정적이고 바람직하리라는 희망이 있다.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는 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가?

국가 차원의, 이데올로기 차원의,

심지여 진보정당이라는 내부에서조차

왜 그 멋지고 아름다운 것이 여전히 이상이고 꿈이어야 하는가?

왜 여전히 현실이 되지 못하는가?

왜 기득권자와 권력자들은 여전히 기득권자이고 권력자인가?

 

나에게 민주주의는 다양성의 소통과 조화다. 

다양성 .. 위라고 불리우는 영역보다 아래라 불리우는 영역이 훨씬 다양하다.

위와 아래로 불리우는 역할들이 있는 것 같다.

 

위는 소수小數다. 

심지어 최고위원회나 공동대표라는 여러명이 있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그렇다. 

조율도 쉽고, 소통도 쉽고, 추진도 쉽다.

권리도 의무도, 자격도, 책임도 분명히 하기 쉽다. 

 

그 소수는 일종의 개인이다.

아주 특별한 사명과 신념과 .. 뭐 그런것들이 있다해도 거의 그렇다.

자신들이 누구의 대표이며 누구의 대의자라는 것을 얼마나 기억하는 지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다.

개인의 사리사욕과 부패, 가족의 안녕, 권력과 기득권 향유의 경험

그 모든 것이 아니라 해도

개인인 인간의 본성은 민주주의라는 대의에 가까이 가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할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대한 믿음이 어디까지 일까?

 

이것을 평당원이라는 집단 아닌 집단에게,

평당원이라는 나에게,

대표라 불리우는 이들에게,

물어본다.

 

대선후보선출과정과 대선, 그리고 그 이후 지금에까지 이르는 각종 논의, 논쟁들 속에서

'평당원의 이름으로 '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

라는 중요한 의미들의 투영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권리와 자격의 주체는 역으로

책임질 주체, 행동할 주체, 지속할 주체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건 자들에 대한 믿음이 있다.

거기에는 희생이라는 헌신이라는 개인이라는 인간에 대한 포기도 포함된다.

좌파라 불리우는 진보라 불리우는 이들이

꼴통 엔앨이네 머리나쁜 엔앨이네 욕을 하고, 비꼬고, 비판하면서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실천하는 자주파라 불리우는 이들에 대한 경의가 있는 것도 아마 이때문인 것을 많이 봐왔다.

 

20세기 말부터 보편화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영향이 가장 많이 미친 부분 중에 하나는

'나'다.

개인을 억압하는 군사독재와 그 사회의 분위기

경직된 유교의 전통과 형식들 ..

심지어 운동권의 권위와 억압이 숨막히도록 싫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비판하는 '군대'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사회가 끔찍이 싫었다.

 

개인적으로도

'운동'이라는 것은 스포츠라는 '몸'운동과 우리들이 말하는 '정신문화'운동 모두 쉽지 않다.

'운동'+' 선수' 아닌 다음에야 ..

일상적으로 습관적으로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 또 다른 데로 새는 것 같아 중략 ^^;;

 

여하튼 우리 대부분은(?.. 아마도 거의)

위로부터의 하사下賜(?)된 민주주의에 익숙한 것이 아닐까?

아니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스스로 획득하는 방법을 .. 나는 잘 모르겠다.

다른 이들은 아는가?

스스로 권력화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아닌가?

권리와 책임을 동시에 지닌 개인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책임지지 않는 대중 .. 그 '아래'는 결국 수 많은 개인이다.

로마 경기장의 관중들이 그러한 대중이었고, 황우석 사태에서 드러났던 대중들이 그러하다.

물론 혁명을 이끌어내고, 민란을 이끌어낸 민중도 있다.

 

언제나 이 모든 논의에는 '나'라는 개인이 포함되어야 한다.

권리도 책임도 의무도 자격도 ..

당연한가? 그런데 왜 그것들은 드러나지 않는가?

왜 들끓지 않는가?

우리는 진정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실현을 얼마만큼 간절히 원하는가?

간절히 원한다면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가?

얼마나 희생할 수 있는가?

얼마나 헌신할 수 있는가?

 

우리 마음속에 심상정 노회찬 단병호 권영길 ... 등에 가졌던 희망과 좌절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노신평전을 읽는데 ..

'생각이 그 지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이치라고 말하고 있는데 ..

계속 그 말이 머리를 맴돈다.

그런걸까?

과연 그렇다면 우리의 지위에서 가능한 것은 무엇일까?

지위를 만든 것은 무얼까?

 

이런저런 고민들과 생각들 속에서

문득 .. '평당원'도 .. 하나의 패권이라는 말이 떠 올랐고

요즘의 이런저런 상황들에 머리에 그려지면서

스스로에게 다시 물음을 던진다.

 

난잡한 글을 올려 죄송하지만

함께 .. 그러나 부디 .. 우리 스스로에게, 개인인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 아닌가 해서

올려봅니다.

 

무지 혼란스러운 정황속에서

무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헤매며 .. 드립니다.

 

 

붉은별님 .. 점점 길이기 길어지고 있어요

넘 힘들어요 흐흑 .. 이렇게 하는 지 걱정도 되고 ..

언능언능 컴 복구를 ..


출처 : 새로운 진보정당운동 인천모임
글쓴이 : 강 ... 원글보기
메모 : 강이 만든 거^^

 

집에서 나갈 때 장독에는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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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전 아랫집 아저씨가 산에서 옮겨심은 절쭉은 눈이 내리면 이렇게 눈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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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하고, 맥주 한 잔을 하고  나온 부평 다운타운은 여전한 네온사인 위로 눈발이 더 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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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이 다녀서일까? 아스팔트로 덮힌 다운타운 거리는 눈이 녹아있지만

문화의 거리로 오자 소복히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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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상은 .. 익숙한 듯 낯설다.

반팔 티셔츠를 보니 여름에 만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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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의자위에 쌓인 눈은 묘한 감흥이있다.

부평 거리에서 유일하게 맘에 드는 변화 중에 하나는 거리에 이런 의자들이 꽤 많이 놓여져 있다는 거 ..

가게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쉴 곳이 있다는 건

공원이 없는 대신에 ..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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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시장로터리 ..

예선에 저 한가운데엔 높은 시계탑이 있었다.

다들 핸드폰이 없고, 시계를 갖고 있는 이들도 적을 때 ... 꽤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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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탕거리 입구다.

익숙한 듯 .. 점 점 커져가는 가계들은 부담스럽고, 정감도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말끔하게 옷갈아 입기를 반복하고 있다.

여기도 빈익빈 부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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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탕 거리에 조성된 화분은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기본적으로 봄이면 무슨 꽃 가을이면 국화 등 .. 겨울이면 꽃배추가 심어지는데 ..

꽃배추에 쌓인 눈이 잔뜩 쌓인 전나무의 미니어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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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해물탕집들 건너편에는 오래되고 낡은 해물탕집과 선술집이 있다.

이 선술집은 또 다른 멋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탄을 때고, 화분에 배추를 길러 김장을 담그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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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골목 ..

잔뜩 둘러쌓인 다세대 주택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 차들이 골목을 갑갑하게 한다.

하지만 3~4년 되어가는 시간동안 나름 익숙해진 걸까?

빌라나 차 대신 .. 그 너머에 있는 공원과 사람들을 보며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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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위의 발자국은 언제나 동화같은 느낌을 같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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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인데 ..

눈에 반사된 빛 덕분에 공원이 환하다.

아이들의 썰매와 낙서 가득한 공동운동기구들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늦은 밤 운동하러 가면

빌라촌 사람들이 나와 있거나, 중고생들이 모여 수다를 떨거나

거리를 순찰하던 경찰들이 쉬는 곳 ..

여름이면 노숙자들이 잠을 청하는 곳이기도 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쉬기도 하지만 빌라들 때문에 그늘이 져서 이쪽에는 잘 앉지 않으신다.

나는 저기에 앉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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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이 리어커가 이 자리에 있다.

공원 한 켠에 있는 의자에는 어르신들이 햇빛을 쬐시며 앉아계신 경우가 많다.

이젠 리어카도 신기하다.

 

다음날 .. 그러니까 오늘 아침 ..

눈이 많이 쌓인 채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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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불편한 걸음이 보이는 계단.

유난히 높은 계단이 엄마의 최대 난관이다.

가슴이 아프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장독 위에 주저앉을 듯 쌓인 눈의 높이가 힘들어 보인다.

눈이 가벼운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맘은 무지 무겁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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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나갈 때 장독에는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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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전 아랫집 아저씨가 산에서 옮겨심은 절쭉은 눈이 내리면 이렇게 눈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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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하고, 맥주 한 잔을 하고  나온 부평 다운타운은 여전한 네온사인 위로 눈발이 더 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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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많이 다녀서일까? 아스팔트로 덮힌 다운타운 거리는 눈이 녹아있지만

문화의 거리로 오자 소복히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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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소녀상은 .. 익숙한 듯 낯설다.

반팔 티셔츠를 보니 여름에 만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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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의자위에 쌓인 눈은 묘한 감흥이있다.

부평 거리에서 유일하게 맘에 드는 변화 중에 하나는 거리에 이런 의자들이 꽤 많이 놓여져 있다는 거 ..

가게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쉴 곳이 있다는 건

공원이 없는 대신에 ..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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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시장로터리 ..

예선에 저 한가운데엔 높은 시계탑이 있었다.

다들 핸드폰이 없고, 시계를 갖고 있는 이들도 적을 때 ... 꽤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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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탕거리 입구다.

익숙한 듯 .. 점 점 커져가는 가계들은 부담스럽고, 정감도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말끔하게 옷갈아 입기를 반복하고 있다.

여기도 빈익빈 부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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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탕 거리에 조성된 화분은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기본적으로 봄이면 무슨 꽃 가을이면 국화 등 .. 겨울이면 꽃배추가 심어지는데 ..

꽃배추에 쌓인 눈이 잔뜩 쌓인 전나무의 미니어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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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해물탕집들 건너편에는 오래되고 낡은 해물탕집과 선술집이 있다.

이 선술집은 또 다른 멋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탄을 때고, 화분에 배추를 길러 김장을 담그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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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골목 ..

잔뜩 둘러쌓인 다세대 주택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 차들이 골목을 갑갑하게 한다.

하지만 3~4년 되어가는 시간동안 나름 익숙해진 걸까?

빌라나 차 대신 .. 그 너머에 있는 공원과 사람들을 보며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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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위의 발자국은 언제나 동화같은 느낌을 같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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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인데 ..

눈에 반사된 빛 덕분에 공원이 환하다.

아이들의 썰매와 낙서 가득한 공동운동기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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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운동하러 가면

빌라촌 사람들이 나와 있거나, 중고생들이 모여 수다를 떨거나

거리를 순찰하던 경찰들이 쉬는 곳 ..

여름이면 노숙자들이 잠을 청하는 곳이기도 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쉬기도 하지만 빌라들 때문에 그늘이 져서 이쪽에는 잘 앉지 않으신다.

나는 저기에 앉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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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이 리어커가 이 자리에 있다.

공원 한 켠에 있는 의자에는 어르신들이 햇빛을 쬐시며 앉아계신 경우가 많다.

이젠 리어카도 신기하다.

 

다음날 .. 그러니까 오늘 아침 ..

눈이 많이 쌓인 채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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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불편한 걸음이 보이는 계단.

유난히 높은 계단이 엄마의 최대 난관이다.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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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 위에 주저앉을 듯 쌓인 눈의 높이가 힘들어 보인다.

눈이 가벼운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맘은 무지 무겁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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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물과 비교해도 모양이 손색 없는 엔틱카메라 소품~~~

 

요즘 개인 사정으로 리폼 DIY를 마음껏하지 못하는 아쉬움울

 

소품으로 달래고 있어요^^

 

 

카메라의 세계3-"카메라에 쓴 40억, 아깝지 않다" | 카메라 이야기 2007/10/22 22:37 
  http://blog.hani.co.kr/bonbon/6422  

대한민국에서 카메라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은?

공식 집계는 아니지만 김종세(56) 한국카메라박물관 관장이 챔피언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모은 카메라는 자그마치 3000개다. 정확히 말하면 카메라 바디만 3000개다. 보통 고급인 수동 카메라는 본체 값 못잖게 아니 그 이상으로  렌즈값이 들어간다. 렌즈는 무려 6000개. 여기에 각종 카메라 관련 장비들만 또 6000개. 모두 합쳐 1만5000개다.

 

그는 평생 모은 카메라들을 공개하는 박물관까지 만들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한국카메라박물관(02-502-4123)을 최근 신축 개관했다.

이 한국카메라박물관 이전에 생긴 국내의 대표적인 카메라 박물관으로는 전남 나주 동신대 안에 있는 카메라박물관이 있다. 평생 카메라를 모은 이경모 선생이 동신대에 소장품을 증해 만들어진 박물관으로, 1500개 정도의 카메라를 소장했다. 그런데 한국카메라박물관은 일단 소장품 규모에서 이를 뛰어넘는다.

 

 

한국카메라박물관은 건물부터 카메라 렌즈 모양을 본떠 지었다. 경기도 과천 지하철 4호선 대공원으로 나오면 바로 박물관 건물이다.

건물 가운데 부분에 설치한 세 개의 판 조형물이 바로 렌즈의 단면도다. 렌즈 판이 3개니 3군 4매 구조의 렌즈다. 1930년대 독일 카를 자이스가 생산했던 헥토르 렌즈 단면도를 형상화한 것이다.

 

원래 이 박물관이 문을 연 것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물관은 2004년 서울 신림동에 처음 개관했다. 그러나 전용 건물이 아니고 일반 상가건물에다가 지하에 위치하는 바람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그 뒤 김 관장이 다시 사재를 털어 아예 전용건물을 지어 지난달 드디어 제대로 문을 열었다. 

 

▲ 카메라 수집가로 박물관까지 세운 김종세 관장. 카메라 수집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건물은 아주 넓지는 않다. 1층과 2층이 전시장이고 3층은 사무실이다. 입장료는 어른 4000원, 어린이 2000원. 1층에서는 기획전을, 2층에서는 상설전시회를 열고 있다.

주 전시장은 카메라의 초기부터 199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주요 카메라를 전시한 2층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박물관들이 그렇듯 전시공간이 부족해 소장품의 일부만 전시하면서 조금씩 전시품을 바꾸는데, 카메라박물관도 현재 소장품의 10% 정도인 1500여점 정도를 전시중이다. 나머지 소장품들은 기획전 등으로 차차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장은 1층과 2층이다. 1층에선 신축 개관 기념으로 올해 연말까지 이색 카메라인 `스파이 카메라' 전시회를 열고 있다. 2층은 카메라를 발달 순서대로 10년 단위로 정리했다. 이 곳을 훑어보면 대충 카메라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알 수 있다.

 

▲ 2층 전시장. 카메라를 10년 단위로 정리해 카메라 발달과정을 순서대-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김 관장은 어떻게 카메라를 모으게 됐고, 박물관까지 만들게 되었을까. 카메라에 대한 애정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이 놀라운 수집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소장 규모가 놀랍습니다.

=개인 차원 박물관으로 이 정도 규모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이스트만코닥의 창업주 저택을 카메라 박물관으로 운영한다고 하는데 가보지는 못했어요. 남들이 말하기를 개인 차원으로는 아마 세계 최고 콜렉터일 것이라고들 합니다.

 

-외국에는 이런 카메라박물관이 많은가요.

=정확히는 모르는데, 많지는 않습니다. 박물관을 만들기전 6곳 정도를 방문해봤습니다. 보통 개인차원 박물관이어서 소장품이 400~600점 정도에요. 일본에는 카메라 박물관이 2곳이 있는데 하나는 아사히펜탁스 박물관이고 또 하나가 일본카메라박물관이죠. 그러나 그 규모는 아주 크지 않아요.

 

-어떻게 이렇게 카메라를 모으게 되었습니까.

=대부분의 카메라 수집가들이 라이카를 모아요. 저도 처음에는 라이카를 모았습니다. 그러다가 차이스-이콘 카메라로 바뀌었어요. 

 박물관을 만들어보자고 개인적으로 생각한 것은 지금부터 14년전인 1993년께였습니다. 그 뒤로는 박물관을 만들어야 하니까 종류를 한정하지 않고 고루 모았죠. 카메라 발달사에 기여한 모델, 기술적 변화를 보여주는 모델 위주로 정리하고 희귀모델들을 구했습니다.

 

-카메라 사랑이 정말 놀랍습니다..

=군을 제대한 뒤 처음을 내 카메라를 마련 한 뒤로 계속 사면 모으는 거죠. 수집을 위해 바꾼 적은 있어도 돈 받고 판 적은 없어요. 개인적으로 사진 작가활동을 했고, 카메라란 물건 자체를 사랑하니까. 카메라는 '공업예술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카메라는 가지고 계십니까.

=아사히펜탁스 K2였는데, 아쉽게도 잃어버렸어요. 처음에는 일본카메라를 모았는데 모으다보니 그 이전에 기술적 완성도가 높아 고전 반열에 오른 독일카메라들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옮겨가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당시 차이스-이콘의 콘타플렉스 슈퍼 중고를 거금을 주고 샀어요. 그 뒤로 외국 나갈 때마다 독특한 카메라를 사오는 거죠.

 

-사재를 상당히 많이 들인 것 같은데, 가족들이 반대는 안했나요.

=설득했죠. 먹고 살 수 있는 정도 외의 것은 사회환원 의미도 있으니 박물관을 짓자고 했어요.  

 

-지금까지 카메라 수집과 박물관 건립에 들인 비용은 얼마나 됩니까.

=제가 원래 광고관련 회사를 운영했어요. 지금은 그만 두고 모든 것을 박물관 일만 전념하고 있지요. 총 들어간 돈은...밝혀도 될지 모르겠는데 한 40억원 정도 들어간 것 같아요.

 우선 박물관에 10억 정도의 예산을 들일 각오를 했어요. 그리고 5억원은 앞으로 계속 카메라를 구입할 예비비로 뒀습니다. 건물 신축에 15억여원이 들었고, 나머지 10억원 정도를 내가 죽어도 박물관이 운영되도록 종잣돈으로 배정했어요.

 

-카메라 외의 취미는 없으십니까.

=97년부터는 골프도 끊었어요. 골프 한번 안치면 카메라 한 대를 살 수 있으니까.(웃음)

 

-국내에는 마니아들이 적어 희귀 카메라 구입이 쉽지 않아보입니다.

=기획으로 특별전시회를 하게 되면 주제에 맞는 카메라를 구해야 되요. 외국에서 저를 대신해서 카메라를 사줄 지인들을 활용합니다. 그리고 크리스티 등 주요 경매사를 자주 이용하구요.

 

-그렇게 숨어 있는 옛날 카메라를 구하는 요령이라도 있습니까.

=고급 카메라는 그 카메라가 나올 당시 잘 살았던 나라들에 많이 남아 있어요. 옛날 부자나라들이죠. 20세기 초반 잘 살았던 나라인 영국, 그리고 아르헨티나 등에 많아요. 그런 나라들을 잘 뒤져야 합니다.

 

-아직도 모을 것이 많이 남았습니까.

=가격이 억대를 넘거나 정말 희귀해서 돈이 있어도 매물이 안나와 못사는 일부를 빼면 누구나 인정하는 주요모델은 거의 90% 정도 모았다고 자부합니다.

 

-현재 박물관이 소장한 카메라 가운데 가장 비싼 것은 뭡니까.

=1850년대 카메라에요. 한 5000만원 정도로 예상합니다.

 

-디지털 카메라는 수집하지 않으십니까.

=고민이긴 한데, 앞으로는 주요 모델별로 수집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디카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오히려 필름카메라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카와 필카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필카는 앞서 말했듯 공업예술품입니다. 디자인과 만듦새가 아름답죠. 그리고 누구나 말하듯 어른들을 위한 최고의 장난감입니다. 요즘 디카가 편하지만 필카처럼 은근하고 지속적인 매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그 원리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디지털은 사람으로 하여금 기계의 시킴을 당하는 느낌을 줘요. 필름 카메라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 기계를 부리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필카를 다루는 맛에 빠져드는 거죠.

 

[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

 

▲ 카메라의 원조 카메라 옵스큐라. 왼쪽 막대기 모양은 카메라 루시다. 1800년대 독일서 만든 교재다.

 

▲ 1850년대 다게레오타입 카메라

 

▲ 1900년대 프랑스 시그리스테 카메라. 나무통을 앞뒤로 조절해 찍는다. 놀랍게도 2500분의 1초까지 조절 가능하다.

 

▲ 1925년 나온 라이카 1A. 위에 막대기 처럼 달린 레인지파인더로 거리를 측정한 뒤 렌즈를 조절해 찍는 목측식이다. 작고 휴대하기 좋아 당시 인기가 좋았다.

 

▲ 라이카 1C 금도금 복제품. 1930년대 제품.

 

▲ 라이카 3A. 1938년부터 1950년까지 생산된 인기 모델.

 

▲ 라이카 3C. 1940~45년 생산.

 

▲ 희귀모델 라이카 250 리포터. 1933~55년 9백여대만 생산.

 

▲ 라이카 M4. 1967~1975년.

 

▲ 라이카 M4-2. 1955년.

 

▲ 라이카 M6. 1995년 타이 푸미폰 국왕 즉위 기념 모델로 500대 한정생산품.

 

▲ 니콘 FA 금장모델. 1984년.

 

▲ 니콘 F 마지막 모델. 이탈리아 수집가가 금도금한 것.

 

▲ 롤라이 35. 75주년 기념 금장모델.

 

▲ 롤라이 35 TQZ. 포르쉐 디자인, 1997년. 삼성항공이 롤라이를 인수해 생산한 모델.

 

▲ 롤라이 A110. 1974~80년.

 

▲ 차이스-이콘 콘타플렉스, 1935년.

 

▲ 1930년대 콤파스. 독일에 주도권을 빼앗긴 영국이 최고의 카메라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개발했으나 사용이 불편한 이유로 성공 못했다. 수집가들의 인기 품목.

 

▲ 스웨덴의 자존심이 된 카메라 회사 핫셀블라드의 1600F. 1948년.

 

▲ 1935년 독일.

 

▲ 귀여운 카메라 펜탁스 오토110. 1970년대 히트작.

 

▲ 1937년, 독일.

 

▲ 콘탁스3. 1936~1942년.

 

▲ 코닥의 대표 브랜드 레티나 118타입. 작고 가벼워 인기가 좋아 대량 생산한 모델.

  원문 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45021.html

 

 

출처 : 햇살 밝은집
글쓴이 : 호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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