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에 대한 민중 '대반격' 시작
한미 FTA 저지 총궐기대회…28일 대규모 촛불문화제 열려
미 대사관 앞 광화문 사거리가 한미 FTA 저지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26일 한미 양국이 FTA 타결을 위한 최종 고위급 협상에 나서는 가운데,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는 25일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총궐기' 대회를 열고 FTA 중단을 촉구했다.

이 날 대회에 참여한 2만여명의 참석자들은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온 국민이 함께 나서서 한미 FTA 협상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외쳤다.

  ▲ 시청앞에서 3만여명의 참석자들의 힘찬 함성으로 당원사전대회가 열렸다.

 

한미 FTA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든 가운데, 범국본 등을 중심으로 한 반대쪽의 움직임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범국본은 25일 대회 이후 28일 대규모 범국민 촛불 문화제를 벌일 예정이다.

범국본은 이날 대회에서도 호소문을 통해 "2002년 어린 두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고 후안무치한 미국의 오만을 질타하며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에 넘쳐흘렀던 바로 그 촛불과 같은 거대한 촛불의 물결로 광화문 네거리를 장식하자"면서 오는 28일 광화문에서 열릴 범국민 촛불 문화제의 동참을 호소했다

   
  ▲ 뜨거운 환호를 보내고 있는 참가자
 

범국본은 “현 상황이 3월 말 협상 마감 시한을 앞두고 한국 정부의 '묻지마 타결' 의사와 미국 정부의 강도적인 개방 압력이 맞물려있다"면서 "국민 주권과 서민 생존권이 뿌리째 뽑혀 나가느냐, 아니면 막무가내 식 협상을 국민의 힘으로 중단시킬 수 있느냐를 가름하는 중차대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범국본은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다수의 반대 의사와 함께 정부의 '묻지마 협상 타결'을 막아낼 국민들의 적극적인 행동과 실천"이라며 "부시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밀실 야합을 막아 내고 국민 주권과 서민 생존권, 농업과 문화 산업의 보호, 사회적 공공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지켜내자"고 강조했다.

이날 대회엔 김근태를 지지하는 온라인 모임인 '김근태와 친구들'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김근태와 친구들' 관계자는 “FTA가 앞으로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재 점화 될 것”이라며 “김근태 의원은 그간 꾸준히 FTA의 절차적 문제에 이의를 제기해 왔다.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만큼 국회 차원에서도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다양한 연대 흐름이 생겨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210여개의 중대를 도심 곳곳에 배치했다. 또 지난 번 사진 기자들의 폭행 사건으로 인해 여론이 악화된 것을 의식해 '취재 지원부' 를 별도 신설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대회는 경찰에 의해 불허된 집회였으나, 국가 인권위 소속 감시단이 현장에 대거 투입되고 경찰과 시위대 모두 자극하는 행위를 자제해 큰 마찰은 없었다. 시위대는 시청 앞 광장 대회 후 종각역, 광화문역, 독립문역 등으로 나눠 각각 한미 FTA 거리 행진을 하며 골목 어귀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후 시위대는 오후 6시 무렵 경찰의 저지를 뚫고 미 대사관 앞 광화문 사거리를 점거하고 정리 집회를 가졌다.

 

 

민주노동당 “FTA 체결시 노무현 타도 투쟁 벌일 것”

범국본 대회에 앞서 민주노동당은 같은 장소에서 민주노동당 당원 총궐기 대회를 열고 한미 FTA 중단과 이에 대한 국민 투표 실시를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의원단 및 최고위원 등을 포함해 당원 3만여명이 운집한 총궐기 대회는 단식 18일째를 맞이해 눈에 뛰게 수척해진 문성현 당 대표가 무대에 올랐다.

   
  ▲ 단식 18일차를 맞고 있는 문성현 당대표가 단상에 오르자 당원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이 시청을 메웠다. 
 
문 대표는 "FTA가 타결되는 순간 한국 행정부의 역할은 끝난 것"이라며 "우리 민중 투쟁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3월 30일에 FTA를 타결하면 민주노동당은 노무현 대통령을 우리의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민중의 배반자로 규정하고 타도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권영길 의원은 "민주노동당 대표가 청와대 앞 단식 농성을 하면서 한미FTA가 졸속, 밀실협상이 아닌지 국민 앞에서 떳떳이 토론하자고 제안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체결 이후에 하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며 "한미FTA 협상의 즉각 중단을 8만 당원들의 이름을 걸고 마지막으로 경고 한다"고 밝혔다.

노회찬 의원은 "FTA 협상이 도대체 ‘독’이 되는지 ‘약’이 되는지를 모르면서 추진하고 있다"면서 "노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이 추진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하겠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이 할 수 없는 중도 사퇴를 먼저 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심상정 의원은 "노무현 정권이 개방 대세론에 취해 과속 페달을 밟고 사고를 낸 후 뺑소니치려 하는데, 우리 국민의 검문에 불응한다면 대통령의 면허부터 취소해야 할 것"이라며 “한미FTA 투쟁으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한 민중의 대반격이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한편, 향후 범국본은 26일부터 광화문 단식 농성단을 대규모로 확대해 가고, 오는 28일에는 범국민촛불문화제를 가질 예정이다.

 인천시사일정

시사일정 : 3월 13일 (화)

                  =>10시30분, 2시, 5시, 8시

시사장소 : 부평 대한극장(부평역에서 파출소방향)
시사인원 : 100명 (1인 2석 총 200석)
응모기간 : 3월 6일 ~ 3월 15일
당첨발표 : 3월 15일
시사일정 : 3월 16일 저녁 9시
시사장소 : 드림시네마(서울)
시사인원 : 100명 (1인 2석 총 200석)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가 탄생하기까지 [2] 



한 시간짜리 테입 500개, 녹취와 분류에만 1년



더디나마 변화는 있었다. 별도의 자격 시험을 거치면 이들도 일반 사립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공립대 역시 총장의 재량에 따라 가능하다. 예전엔 불가능했던 일본의 각종 선수권대회에도 공식참가가 가능해졌다. 이 학교 역기부가 처음 전국대회 진출했을 때 우리 학생이 세운 전국 신기록은 공인기록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러나 당연한 걸 좋아졌다 말하려니 역시나 민망하다. 여전히 전국대회에 참가하더라도 다른 일본학교와 달리 숙박, 교통비는 지원받지 못한다. 외국인의 공립대 입학을 금지하는 법률에 대해 외국인학교가 항의했을 때 일본 정부는 미국 및 유럽계 학교에 대해서만 이를 허용했고, 이후 중국 및 대만계까지 입학을 허락할 때까지 전체 외국인학교의 60%에 달하는 조선학교는 여전히 노골적인 배제의 대상이었다고 김명준 감독은 말한다. 미움은, 우리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김명준 감독의 카메라가 담은 아이들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맑은 모습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그들은 카메라가 아닌, ‘명준 형님’에게 말을 건넨다. 카메라가 있는 교실에서 일본 노래를 부르는 학생에게 담임선생님은 일본 노래를 불러서 되겠냐고 묻고, 아이는 “자연 태를 찍고 싶습니다, 명준 형님은”이라고 말한다. “(카메라를) 의식 안 하는 쪽이 좋습니까?”라고 묻기도 한다. <우리 학교> 속 아이들이 그처럼 예쁜 것은 김명준 감독이 촬영감독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정말 그러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우리는 학년 초 담임 발표 시간에 선생님 이름이 불릴 때마다 환호하고 비명을 지르는 그들의 얼굴, 유성매직으로 얼굴에 낙서를 한 뒤 지워지지 않는다는 아이의 울상에 미소짓는다. 운동회 대깃발의 이름을 ‘비빔밥’으로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겠냐는 진지한 토론이나 수업시간에 깜빡깜빡 졸다가 자리를 바꾸자는 말에 벌떡 일어나는 아이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다. 합창대회를 앞두고 벌어지는 선생님들의 묘한 신경전, 아이가 생겼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대한 아이들의 요란한 반응 등은 그저 친근하고 귀엽다.



“지나온 길 되짚어가면 힘겨운 눈물도 흐르지만/ 그대로 기쁘게 웃을 수 있는 눈물 젖은 추억들./ 잊지 말자 너와 내가 맺은 약속을 통일되는 날까지./ 승리의 노래 함께 부를 사랑의 길에 우리 다시 만나리.”-졸업식장에서 졸업생들이 부르는 노래






김명준 감독은 <우리 학교>라는 지금의 제목을 촬영을 종료하기 3, 4달쯤 전에 정했다. “동포들은 조선학교를 우리 학교라고 불러요. ‘나고야 우리 학교는 재정이 어떻습니까’라는 식으로 말을 건네면 뭔가 다르다는 걸 인정해주죠. 남한의 우리도 남의 학교, 북의 학교, 재일동포의 학교가 아니라, 우리 학교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체의 단락 구분없이 진행되는 영화는 아이들이나 선생님의 인터뷰 도중 그 말에 신기할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는 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가까이서 찍어놓은 화면이 풍부하지 않으면, 혹은 인터뷰이가 진심만을 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내레이션과 인터뷰, 생활 속 자연스러운 장면으로만 가려고 처음부터 생각했어요. 무엇보다도 그렇게 예쁜 애들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부산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고 수상하는 동안, 감독과의 대화에서 관객은 영화의 형식에 대해서가 아니라 극중 인물의 안부를 묻는 일이 더 많았다. 김명준 감독은 그것은 좋은 현상이라며 기뻐한다.


'우리학교'친구들은 '나의 아이들'이 되었다


적어도 ‘우리 학교’ 친구들은 ‘나의 아이들’이 되었다‘우리 학교’ 친구들은 ‘나의 아이들’이 되었다


적어도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그곳은 ‘우리 학교’가 되었고, 김명준 감독은 결국 자신과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이 옳은 


선택을 해왔음을 영화로 증명했다. 그것은 또한 그가 4년 동안 잊고 살았던 촬영감독의 꿈을 기억해내야 할 시간이 왔음을 의미한다. 실은 “영화현장의 조명이 그리워서 상사병이 날 정도”였다는 그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89학번이다. 대학 시절과 학생회장 선배였던 이문식, 인문대 학생회장 선배 김광수 청년필름 대표 등과 자취하며 “4년 동안 데모만” 했다. 고등학교 시절 가고 싶었던 미대를 “굶어죽을까봐 포기”하고, <기쁜 우리 젊은 날>을 보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면서 “영화를 하면 굶어죽지 않겠다”는 생각에 재수 끝에 들어온 학교였지만 별수없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옥살이도 했고, 군대에 다녀온 뒤에는 턱없이 부족한 학점, 그만큼 모자라는 학비로 졸업을 포기할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복학한 그는 5년 후배들로부터 귀동냥으로 영화를 배웠다. 연출할 돈은 없었지만 영화가 하고 싶어서, 뷰파인더 속 은밀한 공간이 마음에 들어서 촬영전공을 지망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C카메라로 일하는 동안 김우형 촬영감독에게 촬영의 자세를 배우면서 확신도 얻었다.





기꺼이 만들었던 4년간의 공백이지만, 이제 다시 육중한 필름카메라 옆에 서려니 설렘과 함께 두려움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꽃섬>을 촬영한 직후 곧잘 찾아주던 사람들 중 누가 다시 나를 찾아줄까” 싶은 불안감도 있다. 그러나 존경하는 촬영감독으로 “특별한 현상이나 테크닉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매번 다른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의 세계에 맞춤한 영화를 찍는” 존 톨(<씬 레드 라인> 등)을 꼽는 그는 다큐멘터리 연출 경험이 촬영감독의 또 다른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이 영화를 통해 연출의 마음을 알게 됐죠. 내가 왜 그때 그렇게 고집을 부렸던가, 그렇지 않았다면 그 감독이 행복하게 영화를 찍었을 텐데.” 이제는 숙명이 되어버린 조선학교와 재일동포들을 틈틈이 다큐멘터리에 담아야겠지만, 단편과 장편, 디지털과 필름을 가리지 않고 천천히 다가서다보면, 또 다른 우연이 그를 촬영으로 이끌지 않을까, 그는 그렇게 믿고 있다.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우리는 학교로 가요./통학길이 멀다고 어머니는 걱정하지만/ 괜찮아요 괜찮아요. 우리는 조선사람/ 우리의 학교가 기다립니다/(중략) 학교로 가는 이 길은 그 어디에 잇닿아 있을까.” -노래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중



설레는 마음으로 고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들을 맞이하던 일본의 우익 시위대들은 여전할까. 미사일 사태 때도 상황이 험악하여 교대로 선생님들이 기숙사 불침번을 서야 했다는데 요즘처럼 수상한 시절에 아이들은 괜찮을까. 선생님이 되어 학교를 지키고 싶다던 아이의 꿈은 여전할까. 편집을 마무리할 무렵 첫돌이 지났다는 고급부 3학년 담임선생님의 딸은 우리 학교를 다닐 수 있을까. 엔딩 크레딧에 오른 전교생의 이름을 바라보며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가족처럼 느껴져 온갖 질문이 꼬리를 문다. “어서 빨리 우리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 선생님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김명준 감독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그대로 우리의 바람이 된다. 영화 혹은 다큐멘터리로 가능한, 어쩌면 최고의 마법. 김명준 감독이 오로지 카메라로 선보일 진심어린 화면, 그리고 그만이 담을 수 있는 우리 학교 사람들의 후일담이 벌써부터 그립다.



김명준 감독이 꼽은 영화 속 인물들

우리 학교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리호미 선생님


“괜찮아. 하루아침 사이에 몽땅 되지 않아요.”


학생과의 의사소통 문제로 상담해온 앳된 여교원에게 교원 30년차 리호미 선생님이 설명한다. 선생님들의 선생님, ‘어머니 교원’으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한글능력검정 1급 시험 준비에 골몰한 모습 등이 영화에 담겼다. 지난 2005년 5월, 남쪽의 고향 땅을 끝내 밟지 못하고, 그러나 소원하던 한글능력검정 1급 자격을 딴 직후 암으로 돌아가셨다. “마지막으로 병실에서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영화에 넣었다가, ‘자신의 마지막이 저렇게 기억되길 원치 않으실 것’이라는 스탭의 만류로 학생들에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넣었어요. 투병으로 많이 변한 모습이 훨씬 극적이겠지만, 영화를 보신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그러시더라고요. 그 장면을 넣었다면 아이들에게는 보여주지 못했을 거라고. 참 다행이에요.” 감독의 말이다.


신경화 선생님

“영화제작도 이제 마감단계겠지만,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진척되기를 바랍니다. 부디부디 몸 건강에는 조심해서 귀한 몸 잃지만 마세요.”


영화의 마지막, 김명준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소개되는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듯, 속정 깊은 그 모습은 참교육자의 그것이다. 리호미 선생님과 함께 홋카이도 우리 학교 유일의 한글능력검정 1급 자격자. 부엌을 정리하거나, 남들이 단체사진 찍을 때 밖으로 떨어져 나와 줄을 잘 섰나 체크하는 등 온갖 궂은일을 도맡는 모습이 계속해서 보여지지만, 한번 본 관객은 존재감을 잘 느끼지 못한다고. 그러나 영화의 프롤로그, 폭설로 등교를 금한다는 전화를 돌리는 모습이 나오는 등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분이다. 섭섭한 걸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성격 탓에 종종 술먹고 김명준 감독의 기숙사 방에 쳐들어오셨지만, 정작 힘든 일은 이야기하지 못하고 돌아가신다고. 영화 속에서는 교무부장이었지만, 현재는 교장선생님이시다.


오려실 학생


“많이 먹고 자는 것은 행복이 아니죠. 돈을 가지고 있는 것도 행복이 아니죠. 그런데 인민들은, 정말의 행복을 알고 있죠.”


일본학교를 다니다가 고급부 1학년으로 편입하여, 처음엔 자신이 조선 사람인 것이 싫었다는 려실이가 고국 방문 뒤 상기된 표정으로 북에서 만난 동포를 향한 애정을 고백한다. 인터뷰에서는 항상 야무진 대답을 하는 까닭에 “관객은 려실이를 똑 부러지는 아이로 생각하지만, 사실 마음이 곱고 말도 없는 애”라고 김명준 감독은 설명한다. 같은 반의 정신지체 학우를 돌보며 지내다가 보육교사의 꿈을 키우게 된,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너무 좋은, 따뜻하고 예쁜 아이”다. 현재 조선대학교 교육학부에서 보육을 전공 중이다. 만일 <우리 학교>의 후속편을 만든다면 계속해서 지켜보고픈 주인공이라고.


후지시로 류스케 선생님

“내가 여기에서 지도한다면 일본말이면 역시 안 되지 않겠습니까. (중략) 우리 학교 와서 제일 변한 것이 타인을 위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거, 그리고 그것이 아주 행복한 일이구나.”


전국에 있는 일본 조선학교 유일의 일본인 교원. 도쿄 축구명문 고등학교 졸업 뒤 축구지도자 학교에서 만난 재일조선인을 통해 우리 학교를 알게 됐고, 축구코치를 맡아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급기야 정식 체육교사로 부임하게 된 것. 김명준 감독이 학교 교무실에 자리를 배정(!)받았을 때 마침 옆자리에 있었던 관계로 서로 한국어와 일본어를 가르쳐주며 친해졌다. 두 남자가 일본과 한국의 동화책을 펼쳐놓고 각자의 말을 공부하는 모습은 교무실의 흐뭇한 광경 중 하나였다고. 노래방 애창곡은 <독도는 우리 땅>, 일본인 아내와의 사이에 둔 자식을 우리 학교에 입학시키고 싶어하는 것을 “그래도 그건 좀 이상하지 않겠냐”는 교장선생님의 만류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글) 오정연


"삼성의 설 선물은 비정규직 대량해고"
15일 삼성SDI 부산공장 3백명 계약해지 … 항의시위 잇따라

한국 최대 재벌 삼성이 민족 최대 명절인 설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대량해고를 선물해 분노를 사고 있다.

울산시 울주군에 위치한 삼성SDI는 올해 5월 PDP 공장 준공을 앞두고 브라운관을 만드는 사내 하청업체인 영성전자, 명운전자, 새창테크, 대현 PDC 등 4개 업체에 15일자로 계약 만료를 통보했다.

브라운관 라인이 중단되기 전까지 4개 업체에는 300여명의 하청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삼성SDI의 계약 만료로 이 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설 연휴 하루 전날인 15일 십년 넘게 일했던 이 공장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업체들은 계약만료를 앞두고 위로금을 지급하면서 사직서를 받았고, 일부 노동자들은 기숙사 관리, PDP 청소대형업체 등으로 옮겼다. 새창테크 노동자들은 3월 말까지 일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아무 일도 없이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는 상태다.

 

   
▲ 울산 울주군에 있는 삼성SDI 공장에서 쫓겨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십 년이 넘게 일하던 공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된 노동자들은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지난 달 15일 우체국 내용증명으로 계약만료를 통보받은 노동자들은 20일 사내 식당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삼성SDI는 은 2월 15일까지 계약기간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성전자, 명운전자 소속 노동자 6명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노동자들이 반발하자 경찰과 경비업체를 동원해 공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노동자들을 막았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은 공장 문 앞에서 1인 시위를 계속하는 한편, 14일 울주군 경찰서를 찾아 공장 앞에 집회신고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삼성은 역시 치밀했다. 이미 공장 주변 모든 곳에 집회신고를 해 놓았고, 매일 밤 12시 직원을 보내 매일 집회신고를 연장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공장 주변과 언양터미널 등 번화가를 중심으로 집회신고를 냈다. 이들은 15일 삼성SDI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의 모임을 만들기 위해 공장 앞에 사무실을 냈다. 그린전자에서 쫓겨난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이들은 삼성SDI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싸움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삼성SDI 공장에서 20년을 일하다 15일자로 계약만료 통보를 받은 영성전자 함선주 씨(45)는 "삼성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너무 억울하다"며 "PDP 공장으로 고용승계를 보장받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청노동자 수천명 소리 없는 정리해고

 

하청노동자들의 소리 없는 집단해고는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삼성SDI는 수익성이 없는 브라운관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벽걸이TV를 만드는 PDP 공장을 신축하면서 브라운관 공장에서 일하는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해 초 2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300여명이 하청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삼성SDI는 지난 해 9월부터 1공장도 문을 닫았고, 15일자로 계약만료를 통보한 것이었다. 3공장도 조만간 가동을 멈출 예정이다.

 

삼성SDI 해고자인 송수근 씨는 "브라운관 사업부 중에서 사내하청으로 일하는 사람이 1천명이 넘게 남아있는데 앞으로 정리될 대상자"라며 "PDP에 고용승계가 되지 않으면 이 사람들도 이와 같은 절차를 밟아 전부 정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걸 한꺼번에 문을 닫고 구조조정을 하면 문제가 생기니까 한 공장씩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존 노동자의 고용을 승계하면 근무연수도 높으니까 PDP 사업부에는 새로운 사람을 뽑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울산지부 김영균 부지부장은 "삼성SDI는 겉으로는 지역에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하면서 안으로는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하는 양의 탈을 쓴 늑대나 다름없다"며 "결국 정규직 비정규직 대량 구조조정이 예상되기 때문에 우리 조직은 아니지만 삼성SDI에 파열구를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02월 15일 (목) 15:36:38 박점규 현장기자 bada9957@hanmail.net

날이 많이 따뜻했던 1월 말

햇볕을 쬐며 .. 이름하여 썬텐하며 .. 졸고 있는데

왕 귀여워서 찍었다.

요즘은 점점 고양이가 이뻐진다.

 

 

 

 

 

 

 

 

[반역의 레코드] 데드 프레즈의 혁명적 힙합

 

미국 역사상 가장 과격하고 근본적인...

얼마 전 중국 창춘에서 열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시상대위에 올라선 한국 선수들이 '백두산은 우리 땅'이라는 내용의 손글씨를 들고 올라가 화제가 됐다. 주장이 옳고 그른가를 떠나 두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시아인들의 화합과 단결이라는 아시안게임의 목적에 비추어 행사의 주최자인 중국인들의 면전에서 중국을 비난하는 행동이 과연 현명했는가와 함께, 스포츠가 자본의 포로가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이고 이제는 민족의 충돌이라는 또 다른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족이라는 틀에 갇힌 채 미래를 향해 한발자국 앞으로 가기는커녕 끊임없이 뒤로 가는 동아시아의 현실이 스포츠에도 짙게 깔려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비슷하지만 전혀 맥락이 다른 광경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1968년 메히코(멕시코)에서 열린 하계올림픽 남자200m 경주의 시상식이다. 10월 17일 미국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1위와 3위로 결승을 통과했다.

이어 열린 시상식에서 두 선수는 신발을 신지 않고 검은 양말채로 시상대위에 올랐다. 미국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두 선수는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높이 쳐들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자긍심과 함께 미국에 대한 거부를 시상대 위에서 표현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국제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 다른 이들에게는 자긍심을 되살리는 계기가 된다

은메달을 딴 오스트레일리아 선수는 연대의 의미로 흑인인권에 관한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이 광경을 보고 야유를 보내는 관중과 박수를 치는 관중들이 섞여 있었지만 야유의 함성이 압도적이었다.

 

중국의 우리 선수들이 국내 언론에게 칭송에 가까운 호평을 받은데 비해, 백인들의 미국은 두 선수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 놨다. 심지어는 손을 치켜드는 방식이 나치식이라는 근거 없는 비판까지 나왔다.

귀국하면 죽여버리겠다는 극단적인 협박전화도 두 선수의 집에 끊이지 않았다. 일부 흑인 지도자들도 이들의 과격함에 실망과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나 당사자인 토미 스미스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만약 내가 경주에서 이긴다면 언론은 나를 미국선수라고 부른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도 아니다. 그냥 미국인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사소한 잘못이라도 저지르면 금방 깜둥이로 바뀐다. 나는 흑인이고 흑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두 선수가 보여준 행동과 복장은 60년대 ‘블랙파워’라는 이름으로 대두된 흑인 급진주의 운동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급진주의가 가장 최고조로 표현된 운동은 누가 뭐라 해도 ‘블랙팬더당’이었다.

 

블랙팬더당은 당원들을 무장시키고 훈련을 하는 이유가 흑인공동체의 ‘정당방위’와 자치, 치안을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이들이 마오주의의 영향을 받아 흑인 공동체의 봉기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비밀도 아니었다.

 

그러나 블랙팬더당의 급진성은 그들이 들고 있는 총기나 검은색 일색으로 치장한 복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흑인들의 해방은 미국 백인들까지도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다는 이들의 사상이 기존의 흑인민권운동과 블랙팬더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였다.

 

미국의 흑인들이 투표권을 얻거나 연금을 받게 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흑인사회의 빈곤과 저개발은 자본주의와의 작별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블랙팬더당은 FBI의 오랜 공작과 내부분열 등으로 붕괴됐지만 그 영향은 흑인급진좌파운동으로 이어져 기독교에 기반한 온건주의, 백인사회와의 물리적 단절을 주장하는 미국이슬람교단과 함께 아프리카계 미국인 운동의 3축을 이루고 있다.

 

                                                       * * *

   
"Lets Get Free"
2000년
1  Wolves
2  I'm a African
3  They Schools
4  Hip-Hop
5  Police State
6  Behind Enemy Lines
7  Assassination
8  Mind Sex
9  We Want Freedom
10  Be Healthy
11  Discipline
12  Psychology
13  Happiness
14  Propaganda
15  The Pistol
 
   
"RBG: Revolutionary But Gangsta"
2004년
1. Don't Forget Where U Came From
2. Walk Like a Warrior
3. I Have a Dream, Too
4. D.O.W.N.
5. Hell Yeah (Pimp the System)
6. W-4
7. Radio Freq
8. F***ed Up
9. 50 in the Clip
10. Way of Life
11. Don't Forget Where U Goin'
12. Hell Yeah (Pimp the System)[Remix]
 

데드 프레즈Dead Prez는 M-1과 스틱맨stic.man으로 이루어진 힙합듀오다. 2000년에 데뷔한 이 팀은 21세기의 힙합 씬에서는 보기 드문 급진적인 주장과 가사를 보여줬다. 이들은 공공연하게 자신들의 음악과 정신은 블랙팬더당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한다.

 

물론 두 청년은 블랙팬더당이 붕괴한 이후인 70년대 중반에 태어났지만 확실히 이미지로서의 블랙팬더운동이 아니라 흑인급진주의 운동의 사상적 핵심을 이해하고 힙합의 리듬에 담아 전파하고 있다.

 

첫 앨범인 “자유를 위해Let's Get Free”는 발표되자마자 주류/비주류 가릴 것 엇이 모든 매체의 주목을 받았다. 이제는 미국 민주당의 기관지로 전락한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조차도 퍼블릭 에네미 이후 사라졌던 힙합의 반역성을 되살린 시도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유는 음반을 들어보면 확실해 진다.

“자유를 위해”는 아프리카민중사회당(African People's Socialist Party)의 의장인 오말리 이쉬텔라의 연설로 시작한다. ‘우후루 운동’이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아프리카인 국제주의 운동’은 흑인의 해방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양쪽에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며 그 방법은 사회주의라고 주장한다.

 

데드 프레즈의 멤버들은 아프리카민중사회당의 대중조직인 ‘국제인민민주우후루운동(The International People's Democratic Uhuru Movement)’에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

 

앨범의 실질적인 첫 곡인 ‘나는 아프리카인이다I'm a African’는 우후루운동의 사상을 요약하고 듀오의 음악적인 방향을 설정하는 성명서와 같은 곡이다. 이 곡은 ‘나는 아프리카인이지, 단 하루도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American으로 살지 않았다’는 자기 정체성의 선언과 함께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라’는 선전선동으로 가득하다.

 

두곡의 히든트랙을 포함해 앨범의 18곡은 백인중심의 교육체계 속에서 흑인이 어떻게 배제되는지를 다룬 ‘그들의 가르침They Schools’처럼 흑인사회의 현실과 억압의 질서와 구조를 설명한다.

 

나머지 곡들을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앨범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블랙팬더당의 지도자였던 프레드 햄튼을 노래한 ‘적진의 한가운데Behind Enemy Lines’처럼 블랙팬더운동의 정신이다.

 

블랙팬더당의 정신적 지주였던 휴이 뉴튼의 이름은 앨범의 이곳저곳에서 계속 등장한다. 그만큼 이 운동이 이 힙합듀오에게 미친 영향은 너무 명백하다.

데드 프레즈의 또 다른 특징은 흑인공동체의 분노를 원시적으로 드러낼 뿐 대안이 없는 다른 힙합 아티스트들과 달리 매우 지적인 가사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인용하는 ‘인간성의 동물성Animal in Man’이나 사회주의 경제의 원리를 기본단어만을 이용해 설명하는 가사(‘경찰국가Police State’)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앨범인 “혁명적인 갱스터Revolutionary But Gangsta”는 2004년에 발표됐다.

다소 황당해 보이는 제목은 사실 이 듀오의 음악적인 방향을 상징한다. 혁명운동가와 갱단의 단원이 어떻게 공통분모를 지닐 수 있는지 의아할 수 있지만, 앞서 소개한 데뷔앨범의 수록곡 ‘나는 아프리카인이다’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N.W.A.와 퍼블릭 에너미의 중간 그 어디쯤에 우리가 있다.’

 

미국 서해안에 기반한 갱스터 랩의 대부N.W.A.와 미국 동부 급진적인 힙합의 원조인 퍼블릭 에너미의 중간지대에서 정치와 음악의 양쪽 끈을 놓치 않는 것이 자신들의 노선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단순히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욕심의 표현이 아니다.

 

한때 새로운 저항음악의 원천이라고 일컬어졌던 힙합이 어느새 갱스터와 대형음반사의 노예가 되어 자본의 음악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저항의 복원과 함께 자신들의 목소리가 흑인사회 안에서도 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으로 끝나는 것을 막기 위해 ‘팔리는 음악’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업적인 타협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리듬을 만들어 대중들의 인정을 받겠다는 것인데 데드 프레즈가 주목을 받는 것은 정말로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때문이다.

 

앨범의 제목은 다른 의미도 함축한다. 약자인 RBG는 아프리카인 단결의 상징인 붉은색, 검은색, 녹색을 나타낸다.

 

이 앨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곡은 ‘나도 꿈이 있다I Have a Dream, Too’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 문구를 살짝 비틀은 제목이다. 경찰에게 살해당하는 흑인소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어나가면서 언젠가 흑인아이와 백인아이가 손잡고 언덕을 오르는 킹 목사의 연설이 얼마나 먼 나라 이야기인지 비판하고 있다.

 

   
  혁명(!)적인 힙합 듀오 '데드 프레즈'

이 노래는 마지막에 암살당하거나 투옥되는 등 권력의 탄압에 직면했던 혁명가들과 단체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그런데 단지 흑인해방운동가들 뿐만 아니라 레오나드 펠티어 같은 미국원주민(이른바 ‘인디언’) 해방운동가와 투팍 아마루 같은 라틴아메리카 게릴라운동과 사파티스타 같은 메히코 원주민운동들도 등장한다. 아프리카인의 단결이 제3세계의 연대로 확장된 것이다.

 

물론 이 제3세계는 1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1세계의 안에, 그러니까 뉴욕과 런던의 거리 안에 제3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음악적인 평가는 데뷔앨범에 비하면 다소 미진했던 두 번째 앨범이지만 “퍼블릭 에너미 이후 가장 정치적인 랩”을 들려주는 데드 프레즈의 노선에는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혁명적인 갱스터” 발표 후 데드 프레즈는 랩의 창시자라고 여겨지는 대선배 아티스트 라스트 포엣츠Last Poets와 함께 녹음한 싱글 ‘팬더스Panthers’를 발표했다. 블랙팬더 이후의 블랙팬더를 계승하고 있는 후배와 60년대 블랙팬더 당원들과 함께 투쟁하며 노래했던 선배가 손잡고 미국 역사상 가장 과격하고 근본적이었던 해방운동의 역사를 노래한 것이다.

 

검은 표범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백인지배사회에 상처를 남겼던 운동은 이제 힙합의 무거운 비트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2007년 02월 10일 (토) 09:12:47 장석원 객원기자 bandiera@redian.org

 

"경제 망친 주범들 풀어주며 경제살린다니…"

 

 -비리재벌·정치인 등 434명 사면복권 … 노동자는 한명도 없어

"××놈들, 설마 했는데 파렴치한 재벌들과 비리정치인을 다 풀어주다니…"

 

 

▲ 사진 왼쪽부터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김현철씨,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9일 아침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비리재벌 사면반대"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던 금속노조 두산중공업지회 김창근 조합원은 사면 소식을 전해듣고 할 말을 잃었다.

 

노무현 정부는 9일 286억원을 횡령한 두산그룹 박용성 전 회장을 비롯한 비리경제인 160명과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포함된 비리정치인 등 434명을 특별사면·복권시킨다고 발표했다.

 

사면복권 대상자에는 불법 정치자금 제공으로 인한 정치자금법 위반과 분식회계 관련자들인 고병우 전 동아건설 회장, 김석원 전 쌍용양회 명예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 비리재벌들이 대거 포함됐다.

 

반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길거리로 쫓겨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감옥에 갇힌 노동자들은 단 한 명도 사면복권되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은 지난 4년 동안 840여명의 노동자를 구속했고, 지금도 62명이 차디찬 감옥에 갇혀있으며 31명이 수배생활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사면복권에 대해 "첫째 경제 살리기 차원의 배려이고, 둘째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이후 10년을 되짚어보는 의미도 있으며 관행적으로 부도덕한 잘못을 범했던 경제인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는 차원에서 대상자가 선정됐다"고 말했다.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은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모은 회사의 공금 286억원을 횡령해 회사에게 크나큰 손실을 입히고 나라경제를 망쳐놓았다. 다른 비리재벌들도 모두 한국경제를 망쳐놓은 정경유착과 공금횡령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다.

 

보통 사람 같으면 무기징역을 살아야 하는데 박용성 전 회장은 단 하루도 감옥에 가지 않고 '죄사함'까지 받은 것이다. 이제 다가오는 석탄일이나 광복절에는 김우중 전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사면복권을 받게 될 게 뻔하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경제를 망치고 빈부격차를 심화시킨 비리재벌의 정경유착과 공금횡령이라는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관행적인 잘못'으로 둔갑시켰다.

 

노무현의 비리재벌 사면복권은 오는 대통령선거에서도 대통령 후보들에게 수백억원의 사과상자를 헌납하는 '관행적인 잘못'을 하고, '재수 없게' 걸리더라도 걱정하지 말라는 '확인서'를 써 준 것과 다름 아니다.

 

재벌의 검은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노무현 정권이 비리재벌을 응징하고,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준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갈수록 노골적으로 '자본의 정부'가 돼가는 현 정권의 말기를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분노와 회한은 깊어만 간다.

 

 2007년 02월 09일 (금) 11:56:55

박점규 현장기자 bada9957@hanmail.net

 

 

[경향]교복 협회가 밝힌 유명상표 원가 10만원에 훨씬 못미쳐

 


입기만 해도 다리가 길어 보이고 몸매가 S자로 돋보이게 된다는 대형 교복업체들의 교복 값에는 거품이 얼마나 끼어 있는 것일까. 대형 교복업체들은 영업 비밀을 이유로 생산원가 공개를 꺼리면서 최근 몇 년째 출고가를 동결했다는 해명만 되풀이하고 있다.

경향신문 취재팀은 8일 중소교복업체 모임인 한국교복협회가 공개한 2007년 교복 생산원가를 기초로 교복 값의 거품을 계산해봤다.

협회 측이 밝힌 생산원가는 남학생의 경우 10만3200원, 여학생은 9만6260원. 남학생을 기준으로 교복 상의는 캐시미어 원단 구입비로 2만9400원, 안감과 실, 단추, 마크 등의 기타 부자재 비용에 임가공비를 더하면 생산원가는 5만3200원이다. 교복 하의는 원단가격 1만5600원에 역시 임가공비와 부자재 구입비용을 합쳐 2만5600원이 생산원가다.

여기에 와이셔츠 생산원가 1만2400원, 조끼 생산원가 1만2000원을 더하면 남학생 교복 1벌을 만드는 데는 10만3200원이면 충분하다는 게 협회 측 설명이다. 협회 측은 대형 교복업체의 경우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췄고 원단을 대량구매하기 때문에 생산원가는 이보다 훨씬 낮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생산원가가 10만원인 교복값은 본사와 총판, 학교앞 대리점 등 여러 차례의 유통단계를 거치면서 거품이 부풀어 오른다. 총괄마케팅을 담당하는 본사의 경우 광고·마케팅 비용과 애프터서비스 비용, 이윤 등 생산원가에 4만5000원 정도의 마진을 붙여 지역총판으로 내보낸다.

지역총판에서는 유통비용과 물류비용으로 1만5000원가량 추가된다. 여기에 최종 소매상인 학교앞 대리점으로 가면 1벌당 평균 8만5000원 정도가 판매마진으로 추가돼 결국 최종소비자인 학생들에게는 25만~26만원선에 판매된다. 여벌의 바지와 셔츠까지 구입하면 4만원가량 추가된다. 코트 등은 구입하지 않았을 때의 경우다.

한 대형 교복업체 관계자는 “중소업체와 대형업체 간에는 품질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가격만으로 대기업과 중소업체의 제품을 비교하기가 곤란하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의 경우 제품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개발 및 애프터서비스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중소업체들은 그러나 “대부분의 교복이 같은 원단을 사용하고 있으며 원단에서 가격차가 있더라도 극히 미미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이호준·김보미기자〉경향신문

 

 

30년된 교복 제조․판배 업자가 본 교복값 거품요인


“저도 교복을 만들어 팔고 있지만 일부 브랜드 교복값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죠. 학생과 학부모들만 불쌍합니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30여년간 교복을 제조·판매해 온 김석진씨(69·삼성상사 대표)는 8일 “요즘 교복값 파동에 대해 어이가 없다”면서 혀를 찼다.

김씨는 교복값 폭등은 엘리트, 아이비클럽, 스마트 등 메이저 3사의 교묘한 상술과 교육당국의 무관심이 빚어낸 합작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기업이 제작한 교복은 한 벌당 25만~30만원. 실제 원가는 8만~10만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복잡한 유통구조(본사-총판-대리점)와 인기연예인들의 TV 광고비 등을 가격에 반영시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간 유통단계인 총판만 없애도 20% 가격인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한다. 대기업은 본사에서 인터넷 등을 통해 일일 판매내역, 재고관리 등이 충분해 중간 유통단계는 생략할 수 있는데도 총판업자들의 반발을 의식, 그대로 두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인기 연예인들이 등장하는 광고비와 MP3 등 판촉 비용도 가격 상승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재고비용마저 신규 교복값에 반영시키다보니 대기업의 교복값은 천정부지로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지역 업체들이 생산한 남학생 교복은 10만~13만원, 여학생 교복은 15만~18만원 선으로 메이저 가격의 절반에 불과하다.

원단은 차이가 없는데도 지역 교복 생산업자들이 교복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학교측이 단지 번거롭다는 이유로 공동구매를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동안 대구에서 붐을 일으키던 공동구매가 시들해진 것도 학교 측의 비협조가 주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브랜드 교복’이 아니면 왕따를 당하기도 하는 사회적 병리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이같은 분위기로 인해 지역 교복시장의 주고객은 모자가정 조손가정 등 소외계층과 극빈층이 대부분이다.

대구에서는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교복업체가 80여개에 달했으나 지금은 20개로 줄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대구의 교복시장도 메이저 3사가 90%를 점유하고 있다.

〈대구|박태우기자〉

 

 


말썽때마다 ‘공동구매’ 타령만

(::또 교복파동 ‘입었다 벗었다’ 반복… 정부, 정책불신 키워::)

 

신입생 학부모들에게 교복을 공동구매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라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지침 뒤 ‘5월 교복 착용’을 결정하는 학교들이 잇따르고 있다. 학생들은 3월에 입학한 뒤 일상복을 입고 다니다가 5월 중순부터 교복(하복)을 착용하는 이른바 ‘반쪽 자율화’ 조치인 셈이다.


지난 1969년 중학교 평준화정책을 시행하면서 시·도별로 학교의 교복을 통일시킨 뒤 거듭되는 ‘교복정책’ 변화로 인해 학생들은 교복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 및 교복업체의 민원이 제기될 때마다 당시 비난만을 피하기 위한 탁상 교복행정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 자율화에서 교복값 논란까지 = 우리나라 교복은 지난 1886년 이화학당에서 4명의 여학생들에게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도 록 한 것이 시초다. 남자는 1898년 배재학당에서 당복(堂服)을 입힌 것이 처음이다. 이후 학교는 설립이념 등을 상징하는 교복 을 입도록 하면서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교복의 논란은 1969년 당시 문교부가 중학교의 평준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정부는 “교복이 학교마다 천차만별이 어서 통일성이 없다”는 지적을 수용, 교복의 색상과 디자인을 시·도별로 통일시킬 것을 지시했고, 현재 유형의 교복이 정착됐다. 하지만 민주화 바람을 타고 “교복이 일본문화 잔재이며 학 생들의 개성을 말살하는 군사적 문화”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졸업식 때에는 교복을 칼로 찢으며 이같은 불만이 표출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1982년 교복 및 두발 자유화 조치가 내려지고 이듬해 인 1983년부터 학교에서 교복을 입지 않도록 함에 따라 교복은 ‘박물관’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교복은 불과 3년 뒤 ‘부활‘했다. 교복 자율화 조치 이 후 80년대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옷값에 대한 서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일부 학생들의 탈선이 이어지기도 했다. 1986년 교장 재 량에 따라 교복을 다시 입도록 했고, 현재 중·고등학교의 90% 이상이 교복착용을 실시하고 있다. 90년대 들어 교복시장에 대기업들이 뛰어들면서 한 벌에 20만 ~ 30만원 하는 교복값 논란이 일 자 교육부는 2001년부터 학부모들이 공동구매로 싼값에 살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 “공동구매 문제 더 많았다” = 8일 서울시 북부교육청은 관 내 40개 중학교에서 5월부터 교복을 입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7일 서울시 강남교육청도 관내 37개 중학교에서 5월부터 교복을 입도록 하겠다고 밝히는 등 모두 77개 학교가 ‘반쪽 자율화’ 조치를 내렸다. 다른 교육청에서도 참여할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추세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공동구매가 자칫 더 많은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강남구 S여중 교장은 “공동구매는 이미 지난 2001년에 일선학교에서 시행했다가 업체 선정과 교복 재질에 대한 잡음이 일면서 폐기처분을 내린 조치”라며 “공동구매만 하면 교복값 문제가 없을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오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하미연 대변인은 “비싼 교복 값 문제가 단순히 입는 시기만 늦춘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며 “대기업의 교복값 거품을 빼고, 공동구매·협의구매 등 다양한 구매방식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두현기자 ydh117@munhwa.com



학생․학부모 “교복보다 사복이 돈 더들어 .. 절대반대”


[세계닷컴] 교육부가 신입생에 한해 교복 착용을 입학 후 약 2개월간 보류했다가 학교 실정에 맞춰 하복을 입는 5월부터 교복을 착용토록 하는 방안을 발표하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대부분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사복의 경우 매일 똑같은 옷으로 입힐 수 없기 때문에 교복보다 더 돈이 들어가게 생겼다”며 “또 추후에 교복을 사게되면 이중으로 돈이 들어가게 되는 셈”이라고 교육부를 비판했다.


또 이미 교복을 구입한 학생과 학부모들은 발표 시기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했다.


수원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한 자녀를 둔 김모씨는 “이미 고가의 돈을 주고 교복을 샀는데, 다시 사복이라니 말도 안된다”며 “설사 교복을 입어도 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학생들은 사복입고 등교하는데 그게 쉽겠느냐”며 교육부의 발표를 비판했다.


이번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이모군도 “사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학교에 사복을 입고 갈 기회가 생기더라도 학생들 사이에 브랜드별로 위화감이 생기는데, 입학때부터 학생들 사이에 이런 분위기 만들어 질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일부 시도교육청 홈페이지에도 이와 유사한 불만과 함께 정부가 조속한 대책을 내놓기를 요구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고, 각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도 비판의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수원의 한 일선 고등학교는 “학교별로 논의해 결정하라는 공문이 경기도교육청에서 내려와 현재 회의중에 있다”며 “5월 교복착용에 대해서 아직 정확히 결정된 것이 없다”고 전했다.


이에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교복착용에 대해서는 이미 몇 년전부터 학교장 재량으로 하라고 각급학교에 권고문을 내려보냈다. 하지만 의례적으로 교복을 입었고, 이번 사안에 대해서도 교육청에서 결정해주길 바라는 것 같다”며 “5월까지 반드시 사복을 입고, 이후에 교복을 착용해야 한다는 것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 세계닷컴 유명준기자 neocross@segye.com


 

중․고교 신입생 5월까지 사복착용

교육부, 내일 전국 시도교육청 장학관 회의 소집


(서울=연합뉴스) 황대일 기자 = 교육부는 해마다 신학기를 앞두고 고가 논란을 빚고 있는 교복 구입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중ㆍ고교 신입생의 경우 5월까지 사복을 입도록 하고 학부모들로 구성된 공동구매추진위원회를 발족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6일 학생들의 값비싼 교복으로 인해 학부모 가계 부담이 가중되고 일부 고가의 교복이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함으로써 교복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면서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 `학생 교복 공동구매 활성화를 위한 협조' 공문을 최근 내려보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 공문을 통해 교복 착용 여부는 학교 방침에 따라야 하는 만큼 각급 학교는 학교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 학생회 등의 의견을 수렴해 교복 관련 학부모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교육부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로 짜인 학교별 교복선정위원회에서 디자인 등을 결정하면 학부모들로만 구성되는 공동구매추진위원회를 발족해 업체들과 자율적인 협의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교복을 구매할 수 있도록 권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또 시도교육청과 학교운영위원회, 학교장 등은 교복관련 지침을 홍보하고 지역내 교복 제조 및 판매업체 대표와 간담회 등을 통해 불공정 행위의 근절을 위한 업체들의 자정 결의를 유도하도록 주문했다.


특히 교육부는 교복 공동구매 추진에는 통상 수개월의 준비기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해 신입생에 한하여 교복 착용을 입학 후 약 2개월간 보류했다가 학교 실정에 맞춰 하복을 입는 5월부터 교복을 착용토록 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중고교 신입생은 신체 성장이 빠른 시기여서 1∼2개월 동안 동복을 착용했다 하복으로 교체할 경우 겨울철에 다시 동복을 구입해야 하는 부담이 큰 점을 감안해 교복 착용 시기를 조정토록 일선 교육청에 권고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또 시도교육청이나 학교별로 가칭 `교복 물려주기 센터'를 설치해 선배들의 교복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운동을 전개하고 공동구매 안내 가정통신문 발송과 학교 홈페이지 공지 등을 통해 학부모의 교복 공동구매를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7일 전국 16개 시도교육청 생활지도 담당 장학관회의를 긴급 소집해 교복 문제를 비롯한 신학기 현안들이 차질없이 해결될 수 있도록 지도할 예정이다.


한편 교육부의 학교 교복 선정 및 구입 관련 실태를 조사한 결과 1986년부터 학교별로 교복 착용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한 이후 2005년 12월까지 전체 중고교의 96.5%인 4천869개교에서 교복을 착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교복 가격은 공동구매한 모예고가 17만9천원이었는데 반해 영국산 원단을 사용한 모외고의 경우 57만원에 달해 무려 3배나 차이가 났으며 스마트와 아이비클럽, 엘리트베이직 등 대형제조업체의 시중가격은 12만∼15만원인 중소업체의 약 2배인 20만∼25만원으로 조사됐다.


hadi@yna.co.kr

 

 

오늘 아침 <경향신문>에는

이필상 총장의 논문표절시미 문제가 본말이 전도되어 권력싸움으로 변질되었다고 꼬집고 있다.

 

학생들의 학비를 팍팍 올려서 졸업하자마자 신불자가 되는 젋은이들이 적지 않다는데 ..

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이 권력싸움이나 하고,

학교는 등록금 장사애 여념이 없고,

그런 꼬락서니의 대학에 가야한다고 학교와 부모는 오로지 진학에 목숨걸고 ..

그런 미래도 없는 대학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아직 어린 조카들에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포츠칸의 헤드라인이 보였다. 사실 스포츠는 관심이 없지만 .. "독오른 이천수.." 축구선수들의 꿈이라지만 모두 프리미어리그로만 달려가면서 국민들에게 경기장을 찾지 않는다고 욕하지 마라. 스타가 없는 경기장을 찾는게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면서 말이다. 차라리 베컴이나 호나우두를 데려오는 게 맞지 않을까? 베컴 하나로 축구가 있는지도 몰랐던 미국이 난리가 아닌가? 씁쓸하다.

 

영화 <그 놈의 목소리>가 선전을 하고 있다며 관객이 늘수록 '그놈'만 떤다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감독은 화성 연쇄살인사건과 개구리소년 실종사건과 더불어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을 미해결 3대 미스터리라고 칭하면서 범인의 목소리를 ARS로 들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효과가 크다는 .. 그리고 희대의 유괴범이 우리주위에 있다며 공소시효를 없애는 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 했다.

 

아마 <수사반장>을 보면서 물어봤던거 같다.

형사들이 범인을 쫒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서 공소시효가 만료되 풀려나는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 하루까지 범인을 쫒던 형사,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그를 피한 범인, 그리고 그 형사를 위로하는 선배 형사 ..

 

어린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범인을 잡지 못하는지 .. 그래서 왜 범인을 잡지 못하느냐고 물어봤는데 누군지 모르지만 이렇게 답해줬다.

 

" 죄를 짓고 10년인지 15년인지 잘 모르지만 여하튼 오랫동안 도망다니며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냐. 아마 감옥에 있는 것 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런 제도가 있다."

 

어린아이였지만 그러한 범인의 고생도 이해가 됐다. 

 

그런데 요즘 <고스트 앤 크라임>, <CSI>, <특수수사대 SVU> 등 각종 범죄스릴러를 보게 되는데 .. 인간을 끝이 없는 악한으로 몰아가는데 .. 죽을 놈은 죽어야 한다고, 죄지은 놈은 죽여야 한다고 .. 하는 논지다. 그리고 잔혹한, 이유없는(? 그런게 없다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잔혹범죄에 대해 냉혹하다. 법도 잔혹하고 그 주위의 사람들에 시선도 잔혹하고, 죽은 자도, 죽인 자도 잔혹하다.

 

사람을 죽인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말에 더 공감이 간다. 설령 이근안이다 정형근, 전두환 조차도 말이다. 죄는 규명하되 .. 벌은 주되 .. 사형은 안된다는게 내 생각이다. 그런 나도 구체적인 잔혹살해를 들으면 흔들린다. 아마 위의 세가지 사건을 비롯해서 말이다.

 

하지만 친일파들의 자기땅찾기 같은 것을 보면, 그리고 피의 권력자들- 이승만, 박정희같은 끔찍한 자들과  전두환, 정형근 .. 같은 엄청난 살인을 자행한 자들이 멀쩡이 살아있고, 호의호식 하며 .. 심지어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사는 거 보면 ..

 

누구를 위한 공소시효인가 싶다.

어머니는 참 보통 어르신인데 .. 그런 윤리를 상처낸 범죄에 대한 판단이 참 냉정하시다. 잔혹한 살인과 범죄에 대해서는 뉴스에 나오는 범죄자들 뿐만 아니라 전두환, 노태우, 정형근 .. 누구라도 사형시켜야 한다고 말하신다. 그러나 법은 .. 아니 법이 아니라 법관과 변호사들은 ..  힘없고 돈없는 자들은 얼마든지 벌주고 사형시키지만 .. 진짜 범죄자들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아이들이 범죄에 대해 혼란스러운 것도, 정의와 원칙이 쉽게 무시되는 것도 .. 일관적이지 못한 사람들의 시선이다. 배운 것도 없는 우리 어머니보다 못한 지식인들의 행태들이 지금 이 사회의 모든 문제들에 근원이 아닐까?

 

공소시효에 대해서 어린 내가 이해했던 것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법이 그런 이들을 위해 죄를 묻되 사람을 해하지 않게 하는 마음을 담았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법은 힘있는 자들의 도구가 된지 오래다.

 

나는 아이들과 여성애 대한 어떠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절대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것들과 관련된 범죄자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없는게 맞지 않을까 ..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들의 권리는 그 다음에 판단할 수 있을 꺼 같다.

 

그런데 친일파나 독재시절의 범죄자들은 명확함에도 죄를 가리지 않고 벌도 주지 않으니 ..

 

이 생각 저 생각이 많이 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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