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3분의 2.
그 과정에 대한 반성과 고찰 ..
정말 원했던 것이 무엇일까?
당은 나에게 뭘까?
진보는 또 나에게 뭘까?
그건 가능하기나 한걸까?
나는, 당은, 우리는 진보하고 있는 걸까?
나는 상처받았을까?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
인간의 관계란게 뭘까?
우리는 언제나 진실할까?
거짓조차도 인간의 진실에 속한다고 여겨진다면 .. 무엇을 위한 거짓이고, 무엇을 위한 진실일까?
나는 관계 속에만 존재할까? 스스로 하나의 우주일까?
내가 변하면 세계가 변할까?
내가 아녀도 누군가는 할 일이었을까?
이런 바둥거림이 진보정치라는 것에 도움이 되었을까?
우리는 진보정치를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누구지?
나이와 상관없이 진보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
진보는 .. 누구의 발자국일까?
결국 지나간 후에나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얼마나 성실할까?
나는 또 얼마나 성실할까?
정말 무엇을 위해 .. 무엇을 위해 .. 우리는 선택했을까?
그 선택앞에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까?
그 선택앞에 얼마나 성실했으며
그 선택앞에 얼마나 진실했는가
역사의 길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면 이젠 부디 자유로와지길 ..
다시 선택한다고 누구도 뭐랄 수 없다.
다만 자기 자신에게만 설명하면 된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듯이 다른 삶도 가능하다.
정치는 서로 다른 것들의 조절자들이며, 조율자들이 할 일이다.
자신이 거기에 있지 않고
가고자 하는 길을 분명히 보아야 한다.
그리고 성실하게 눈 앞의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진보는 어쩌면 다시 성실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이미 정치적이다.
선택이란게 거기서 의미를 갖는다.
모두들 부정하지만 그럼에도 모두 정치적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엔가부터는 선택할 수 없다.
누군가의 선택에 이끌려 가고, 쫒아가고, 그러다보면 ..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정치력을 상실한다.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한 조율과 조정이 살아가는 이유이고, 그것이 정치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것 부터 .. 가족, 직장, 국가, 지구에 이르는 고민과 선택이 .. 정치다.
귀찮고 힘들지만 하지 않으면 이렇게 ... 되는 것이다.
지금의 모든 것은 어제의 결과다.
누구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나와 우리, 나의 주변화 우리의 환경, 그 모든 것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적인 호소가 .. 인간적 관계의 이용으로 느껴지게 된 것은
나의 감성이 날카로와졌음을 말한다.
나에 대한 걱정을 .. 나에 대한 우려로, 비판으로 느껴지게 된 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나의 판단이다.
모든 것의 이유는 결국 .. 나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변명 .. 그러나 사실 ..
역사를 다시 읽는다.
생각을 다시 읽고
흐름을 다시 읽고
나를 다시 읽는다.
열정만 가지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믿지 않았던 거 같다.
아니 누군가의 가벼운 말에도 쉽게 그 믿음을 잃었던 거 같다.
나는 나와 누군가들 속에서 만들어진다.
나는 나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이기도 하다.
그것이 서로 논리를 갖고, 설득을 하고,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 나를 존재케 한다.
실패했지만 절망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싶다.
페스트를 다시 읽어야 겠다.
다시 시를 쓰고 싶다.
소설을 쓰고 싶댜.
아니, 시를 써야지 .. 소설도 쓰고 ..
그전에 ..
나는 .. 나를 용서해야할까? 아니면 그들을 용서해야할까?
관계를 풀어야할까?
두어도 .. 그냥 두어도 풀어질 관계일까?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할까?
새로운 변화를 해야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가능할까? ..
당연히 가능하겠지만 .. 물음표를 붙히는 이유는 뭘까?
무엇이 서툴고, 무엇이 충분한 걸까?
세 살이 넘으면 누구나 아는 것이 있다.
일곲 살이, 열 살이, 열 네살이, 열 여덟살이 ... 나이를 먹으며 아는 진실은 .. 누구나 있다.
그것을 자각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 ..
스물 아홉이 그렇고, 서른 아홉이 그럴 것이다.
마은 아홉이 그렇고, 쉰 아홉이 그렇겠지 .,..
결국 누군가를 만드는 것은
그 자신이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이기도 하다.
더 많은 열정과 애정을 가진 자의 몫이다.
이 세상에 자본의 득세는 아마도 .. 자본가들의 비뚤어졌지만 더 많은 욕심과 그에 대한 열정 ..
그리고 그것을 꿈꾸는 자들을 더 많이 만들어낸 탓이다.
지금 2009년은 ..
그 꿈의 허망을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다.
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법,
돈이 아니라 인간이, 삶이, 존재가 ... 그것의 희망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들이 알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사람이 꿈꾸면 그것이 현실이 될꺼라고 했다.
하지만 꿈이란 걸 꾸는 법 조차 모른다면 ..
남의 꿈인지 자신의 꿈인지 조차 모른다면 ..
우리는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하는가
나는 어디서 부터인가
그저 차가운 겨울 냇가에 돌 하나 놓을 수 있어야 하는가
그저 그 겨울 냇가의 물 한방울로 섞여 흐르면 그만인가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이 궁금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런데 만나서 이야기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없는걸까?
내가 눈감은 걸까?
....
어디서 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어디에 있을까?